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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화5-알탕 영화의 막다른 골목 <불한당>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17. 12. 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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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은 가장 앞으로 나간 형태의 알탕 영화다.앞으로 나간 형태? 내가 써 놓고도 알 수 없는 모호한 소리다.

그냥 우리가 한국 영화에서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알탕 영화들에 어떤 것들이 더 보태어진,그것도 집중된 감성의 형태로 덧대어진 영화라고 간략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다.그러나 가장 앞으로 나간 형태라는 말을  완전히 포기할 순 없다.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일종의 막다른 골목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가장 나아갔으나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막힌 공간.남초-알탕 영화는 이제 그곳에 있다.


물론 과연 이 영화 <불한당>을  알탕 영화의 범주 안으로 넣을 수 있느냐,하는 부분에 대한 의견은 좀 엇갈릴 수 있다.아니라고 볼 이유도 있긴 있다.다만 지금까지 해 온 알탕 영화에 대한 정의의 어느 부분이 이 영화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만은 틀림 없다.즉 주로 남성 캐릭터들이,그것도 한국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조폭과 경찰의 '정체성'을 가지고 등장하고,거기에 피와 폭력과 배신과 돈과 암투가 떼를 지어 달려드는,또 그런 종류의 주제를 중심으로 온 세상이 회전하는,남성과 남성 사이에서 거의 모든 일이 벌어지는,이 영화의 이런 주된 측면들은 분명히 알탕 영화스럽다.


그러나 여성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찰 간부 전혜진 만큼은 예전 알탕 영화들에서의 여성 캐릭터들처럼 쫄아들고 찌그러지거나 한없이 천사처럼 그려지거나 폭력과 잔인함의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이 영화가 표방하는 '나쁜 놈들의 세상'에 적극적으로 결을 맞추어 남성들 못지 않은 나쁜 놈으로 그려진다.배신하고 뒷통수를 치고 일정 정도의 폭력에 의존하고 욕설을 내뱉고 남자 배우들의 멱살을 움켜 쥔다.(물론 한국 영화의 또다른 흐름 하나는 공권력과 범죄인들,또는 위선과 위악 사이의 구분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데에 있다)




쎈 언니가 각광 받는 시대의 한 단면에 전혜진의 배우로서의 기량이 더해져 영화의 인상적인 한 축을 담당하지만,그렇다고 해서 이 캐릭터가 영화의 주된 기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좀 더 강해진 여성이 등장했을 뿐이다.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인공인 조폭 설경구와 조폭으로 위장한 경찰 임시완 사이의 관계다.홍콩 영화 '무간도'에서 부터 프랑스 영화 <베티 블루>까지를 연상케 하는 이들의 관계가 마치 애절한 연인들 사이의 그것처럼 그려졌다는 얘기는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잘 알려져 왔다.무슨 무슨 평론가들 보다 훨씬 날카로운 인터넷 유저들이 두 캐릭터 사이의 관계들을 세밀히 분석해 놓았다.(사실 마지막 <베티 블루>적인 살해 장면-임시완이 설경구를 살해하는-은 피폐한 낭만의 절정을 달리는 사랑의 결말이었다)


조폭-경찰-남초 영화 특유의 남-남 케미 (그것도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 운명을 생래적으로 타고 난 듯 설계되고,간혹 정체를 감추고 관계가 진행되며,그러나 바뀌어진 정체성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면서,거기에 믿음과 의리라는 대명제가 떠오르며,그 와중에 여러 번씩이나 비틀어지고 온갖 신산을 겪는,마치 숙명적인 연인 관계와 비슷한) 는 사실 이 영화 <불한당>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홍콩 영화 <무간도>는 범죄자와 공권력 사이에서의 인위적인 정체성 혼란이 원존재의 속성 자체를 교란시키는 방법으로,폭력성 자체와 홍콩이란 도시의 근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시도했다.(그러나 이 영화는 남초 영화가 아니다) 이런 존재 바꿔치기는 어쩌면 영화 역사에 있어서 단골 소재이지만,어찌된 셈인지 범죄자와 공권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바꿔치기가 한국 남초 영화와 홍콩 영화 (혹시!)에서는 일종의 강력한 임팩트로 자리잡았다.


특히 박훈정의 <신세계>는 잡입된 공권력의 실체를 알면서도 치열하게 그를 보호하려는 조폭 보스를 그리고 있는데,이 영화의 이런 남-남 관계는 확실히 <불한당>에서의 남-남 관계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9.여기서 뜬금없이 <신세계>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두 대사는 황정민이 라이벌 조폭들에게 최후의 습격을 당할 때 하는 말인 '드루와,드루와'와,가짜 조폭이자 사실은 경찰인 이정재를 호칭하는 '부라더'다.그는 이정재를 피를 나눈 형제로 칭하고 있는 것이다.전자는 한국 남초 영화의 주된 동력인,액션-폭력이 가지는 쾌감,대결 자체가 풍기는 숙명적 존재감과 그 부딪침,죽음의 정서가 근거리에 배체된 일시적인 장엄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사였다.'고마해라 마이 묵었따'의 허무 정서를 성공적으로 딛고 일어난 '드루와'는 그래서 남초 영화의 전형적 서사가 표현해낼 수 있는 최고의 헌사였다.


그러나 '드루와'의 장엄함은 '부라더'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이라는 또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신세계>의 황정민은 단순한 폭력-권력 기계가 아니었다.영화는 그가 다른 폭력배와 동일한 레벨의 폭력배- 영화는 관객들에게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또다른 조폭 박성웅에게도 꽤 두툼한 영화적 비중을 부여하고 있다- 로 전락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그래서 영화는 그에게 감성적인 인간성을 부여했는데,그것이 바로 '형제애'였다.그러나 형제-그러니까 DNA적인 혈연이 아닌 남성과 남성 사이에서만 고유하게 나타난다고 남초 영화가 상정하는 의리- 만 가지고서는 불만족스러웠던 <신세계>는 한발짝 더 나아가야 했고,그 진전이 바로 위장경찰-형제를 향한 과감한 희생적 사랑이었다.결국 사랑이 목숨까지 불사하게 만든 것이었다.


한껏 양아치스럽게 굴던 황정민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되자 영화는 다른 결을 띠게 될 가능성을 시사하게 되었다.즉 황정민과 이정재 사이의 이런 브로맨스가 영화의 주된 흐름으로 떠오를 뻔 한 것이다.그러나 박훈정은 거기서 일단 멈춘다.경찰 쪽의 인물들 -최민식과 송지효-을 살해하여 (나는 희한하게 그 두 경찰관이 조폭이 아닌 영화에의해서 살해 당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폭력적 희생의 균형추를 맞추고 조절한 것이었다.그렇게 해서 <신세계>는 다시 폭력을 다루는 남초 영화로서의 전형성을 회복하고 원래 갔던 길 안에서 영화를 끝맺을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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