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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편의 영화
4월의 마지막 어느 날에 나는 두 노장 영화 감독들의 작품을 보았었다. 이명세와 정지영. 20세기로부터 영화 이력을 이어온 사람들. 어쩌면 서로 대척점에 위치한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긴긴 세월을 살아남아 여전히 영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작업 내부에 질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두 영화는 내가 극장에 찾아간 날 상영 시간이 나란히 붙어 있었으며 나는 그들 보다 훨씬 오래된 극장에서 이 오래된 두 감독의 영화를 보았었다. 먼저 이명세는 2024년 12월 3일의 계엄 시도와 내란의 그 날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명세 답게,이명세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다큐와는 다르다. 또 스타일리스트답게 스타일리쉬하다. 그러..
백두산에서 다시 인천과 청주로 분리해 날아와 모두들 집으로 총총 흩어졌다. 강력한 에어컨 바람에 감기에 걸린 사람과, 장의 트러블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 여전한 감동에 호르몬 레벨 상승이 여전한 사람, 내일의 출근을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다시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복무하는 루틴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열어놓은 대화방 안으로 각종 사진과 짧은 감상기가 쏟아졌다. 올려놓은 사진들을 보자 이 자들의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했다. 통일과 한반도 정세, 현재의 민주당과 대통령 등에 대한 얘기들은 거의 없어지고, 올려놓은 사진들과 대화들은 다소 센티멘털 밸류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백두산의 진정한 주인은 들꽃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들꽃의 사진들을 와장창 올려놓았다. 가..
다음 날 우리는 두만강변으로 출발했다. 중국 답게 하염없이 버스를 타고 떠난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중국이므로 우리나라의 지방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옆에 앉은 친구가 어제 우리의 동선을 지도로 표시하여 카카오톡 단톡방에 올렸다. 복잡한 생각이 든다. 디지털 증거로 변해 가는 인간의 발자국들, 백두산이 아니라 장백산인 지도 위의 글자들, 지도 자체가 가져다 주는 위화감들. 뭐든지 기록을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심성들.. 두만강변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양떼처럼 인솔 당하여 보트에 올라탔다. 보트가 북한 쪽 국경을 따라 앞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북한 주민들이 살거나 일하는 건물들이 보였다. 누군가 불멸의 히트곡이..
아마도 어쩌면 우리는 통일을 원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런지도 모른다. 첫날 천지를 향하는 가파른 고갯길의 버스 안에서, 두번째 날 다른 루트의 천지를 향하는 천 개 이상의 계단을 기어오르며, 민족 통일에서 연방제와 군축 그리고 평화로 변해 가는 사람들의 소망에 대해 생각했다. 가파른 방향에서의 천지. 지금은 중국인들이 장악한, (이넘들은 땅덩이가 넓으면서..) 그러나 우리 민족의 오리진이라 일컬어지는 생각 보다 훨씬 환상적인 호수. 운이 매우 좋아서 안개와 구름이 우리가 올라갔을 때 사라져 주었다. 아마도 다시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천지를 눈 속에 담았다. 나중에,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리고 남과 북 사이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개마고원을 트래킹했음 싶다.
늙은 남자들과 백두산을 보러 떠났다. 오랜 세월 알고 지내온 고등학교 동창들. 자연스런 우정을 포함한 여러 사건들과 사고들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또한 서로 싸우고 비난하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위하고, 그러니까 온갖 삶은 함께 겪은 인간 한 무리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케이스들. 이 사람들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무한대다.. 첫 여행지는 용정의 윤동주 시인 생가.좋아하는 시인 중 한 사람. (나의 최애 시인은 백석이다. 그 북녘의 로맨티시즘을 난 도저히 잊을 수 없다.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 말이다) 윤동주의 '서시' 가 한글과 중국어로 새겨져 있다.(연변의 조선족 문학가가 윤동주의 시를 중국어로 번역했다_ 어디에선가, 윤동주의 국적 - 당연히 윤동주는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적..
오래 전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로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이렇게 생긴 기계.저기 저 곳, 직사각형 모양으로 생긴 저 곳, vhs 라고 써 있는 저 곳에 비디오 테이프를 밀어넣으면 tv 에 연결된 화면으로 영화가 나왔다. 저 기계는 극장을 집 안 거실로 옮겨놓았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새로운 테크닉으로 자리잡았다. 거실이나 침실이 극장이 되자, 많은 문화가 변했고, 한동안은 극장으로 찾아가는 관객의 수가 줄기도 했다. 극장에서 놓친 영화를 집 안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았던, 또는 상영될 수 없었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생기기도 했다. (영화는 언제 어느 때든 이런 식의 도전을 받는다) 동네마다 비디오 테이프를 대여해 주는 가게들이 넘쳐 났고, 프랜차이즈 비디오 랜탈..
4월의 마지막 시간에 보았던 또 하나의 영화는 러시아 영화 다. 1930년대 러시아를 무대로 하며, 스탈린의 철권 통치가 시작되면서 , 옛시절의 러시아 혁명 동지들이 숙청 당하고 투옥되고, 결국 우리에게 익숙해지는 소련 공산당의 독재정치가 시작되는 그 때 그 시기를 다룬 영화이다. 라니, 한동훈과 윤석열은 아니다. 그러나 두 검사 중 하나는 검찰총장이다. 대세에 순응한, 스탈린식 통치의 조력자가 되어버린 검찰총장이다. 또 한 검사는 그 총장에게 옛 혁명 동지들의 구금 상황과 문제점을 알리려는 젊은 검사다.(그러니까 한동훈은 절대 아니다) 결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결국 그 젊은 검사가 좌절하고 말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좌절이 추방과 몰락으로 연결되리라는 쓰라린 사실을, 역사는 이미 관객에..
아르헨티나가 또 이겼다. 오늘 새벽이야말로 마지막 메시일 수도 있겠구나,생각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스페인한테도 이런 식의 역전극을 보여주면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한다면 적어도 축구의 신 만큼은 확실히 있는 걸로 알고 살아가기로 했다. 긴박한 지루함이 깨어진 것은 아마도 아르헨티나의 중앙 수비수 두 명이 옐로 카드를 받은 때였을 거다. 두 수비수들의 찰라적인 머뭇거림이 있었는데도 잉글랜드는 그 균열을 뚫어냈다. 그 후 투헬이 수비만 하다가 역전을 당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긴 하지만 (카타르에서부터 시작한 특징이다. 잠그면 진다는 거) ,이 모든 것이 다 메시 때문이기도 하고, 또 아르헨티나가 메시만 잘 하는 팀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라도 투헬의 선택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나중에 메시가 오른편 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