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오래된 노래는 어떤 시대의 어떤 분위기를 회상하게 했다.아직 세기말의 혼란상이 도달하기 전,한쪽 거리에선 최루탄이 난무하고 또 한쪽 거리에선 방관과 비겁을 괴로워하던 어떤 시절의 격렬한 분위가가 존재하는 가운데, 거기엔 또다른 기운을 가진 청춘들이 존재했었다.힘을 가졌으나 그 힘을 완전히 쓰지 못하던 청춘들,가끔 주먹 쥔 손을 휘두르며 권력자와 돈에 저항하면서도 또다시 책상 앞에 앉으면 소위 실용성에 얽힌 미래와는 전혀 다른 몽상에 빠지던 영혼들.
그들의 몽상은 대개 나른하고 느렸다.고요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상들이 계속 꼬리를 물어 점점 현실 세계에서 멀어지기만 하다가도,어느 결에 다시 돌아와 식탁 앞에 가지런히 두 손 모으고 앉아있던 존재들이었다.나는 그들을 아웃사이더도 인사이더도 아닌,아웃슬라이더라고 부르곤 했다.그들은 언제나 승자도 패자도 아니었고 겉으로는 매우 평범하게만 보이던 사람들이었다.지금의 시대라면야 분명한 네이밍이 따라붙어서 존재할 테지만,그때 그런 사람들에게 딱지 매겨지던 단어들은 그저 남들과는 뭔가,또 어딘가 다르다는 뉘앙스의 말들 뿐이었다.
조동익의 노래들과 이병우의 기타 연주들 -그러니까 그들의 당시 음악들- 역시 당시엔 주류가 아니었다.(물론 그렇다고 확실한 비주류도 아니었다.평단은 그들의 음악을 상찬했으며,마치 새로운 천재들이 나온 양 -김현철의 경우- 그들을 추어올리곤 했다) 의 빈 공간들은 예의 아웃슬라이더들의 존재 양상과 약간 닮아 있었다.느리고 나른하며 평화 속의 고뇌가 서려 있는 책상 앞이나 공원 벤치 위의 영혼들의 모습과 유사했다.동물원이 약간의 돈과 빈 가방만 들고 무전여행을 떠날 때에도,신대철이 강렬한 기타 리프로 메탈 씬의 씨앗을 뿌릴 때에도,여전히 어떤 날은 지하의 공연장 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는 듯 했다.물론 그것은 그들 자신의 존재 양상이 아니라 그들 정서의 존재 양상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조용한 한가함은 예의 아웃슬라이더라 불렸던 청춘들의 비관적 낙천성과 닮아있었다.그 청춘의 비관은 세상이라는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감각적 날카로움에 있었고,그들의 낙천성은 그럼에도 그 세상 속에서 미학을 찾아 헤매는 근원적인 성향에 그 뿌리가 닿아있었다.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세대의 그 계층은 굶주림 또는 결핍과 거리가 멀었다.그들은 대부분 중산층 자녀들이었고 하루 하루의 돈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게다가 아직도 그 세대에겐 일자리가 남아 있었다.어떻게든 하늘 밑 세상 어디엔가 존재의 근거를 마련할 기회와 여분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었다.그들은 파트 타임 알바라는 비즈니스 형태를 몰랐고 대학의 등록금은 현재의 대학 등록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했다.그래서 그들은 생각하고 걸었고 조용하게 놀았다.지금의 청춘과 서식지는 같되 존재 양상은 달랐다.
음악도 마찬가지다.<어떤 날>의 음악처럼 '오후의 한가함'을 노래할 만한 한가한 영혼들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이젠 '오후만 있던 일요일'과 같은 노래는 창작되지 않는다-이제 느린 정서를 가진 노래들은 '정확히 분류되지 않는 평화'라는 라벨이 붙여져,어처구니 없게도 '힐링'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밀어넣어진다.그러나 '어떤 날'의 정서는 결단코 힐링이 아니다.그들은 평화나 치유를 노래하지 않았다.그들의 단조로움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본질이었고,그 본질이 그들의 새로움으로 표현되었던 것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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