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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노래패,옛 영화들.

신의 영화들/culture club

by 폴사이먼 2017. 3. 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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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시간과 영화 보는 시간을 제외한 내 시간은 대개 중간중간 끊기게 마련이다.(사실은 수면 시간도 당직하는 날엔 매우 자주 끊긴다)

업무 시간엔 끊임없이 전화가 온다.병동에서,행정팀에서,그리고 간간이 친구들로부터..또 잡다하고 매우 복잡한 방향들로부터.

그러다 보니 무언가에 한 시간 이상 집중하기 어렵다.물론 일하는 시간에 일을 제외한 다른 문제에 한 시간 이상을 마음을 완전히 몰입시키기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집에선? 집에서도 마찬가지다.아직도 인기가 많은(?) 탓인지 가족들 역시 끊임없이 나를 호출한다.심지어 다른 방에서 다른 일을 할 때도 자정 가까이가 되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빨리 빨리 자라고 성화다.(음.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뭐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긴 있는 것이다..또 한편으로 우리 가족 구성원들이 나를 엄청 아낀다고도 - 이 무한긍정을 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그냥 잔다.잠이 안 와도 눈을 감는다.

 

이건 참 놀라운 일인데,최근 두 달 동안 삼십 분 연속으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책장을 넘긴 적이 한 번도 없다.지금 이 순간 다시 한 번 지난 두 달을 돌이켜 봐도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왜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바빠지기만 하는가.왜 세월이 흘러가도 내게 주어진 나 자신만의 시간은 점점 아니 눈에 띄게 줄어들어가고만 있는 건가.그러다가도 생각한다.뭐..찾아줄 때가 더 고맙고 반가운 거지..혹은 이러다가 어떤 변곡점이 될 시각이 닥쳐 오면 이젠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너무 넘쳐 흘러서 그 고요와 공백 때문에 어이없어 할 날도 오겠지..

 

어찌 되었든 책을 읽을 시간이 태부족이다.중언부언하고 있는 꼴이 되겠지만,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권의 책을 읽었으므로 여기에 기록을 남긴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교정 전문가의 비문과 악문에 대한 철저한 공략이자,바르게 글쓰기에 대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그러나 나는 이오덕 선생님이 쓰셨던 글쓰기에 대한 책이 더 좋다.이오덕 선생의 글에선 곱고 아름다운 향기가 묻어나왔었다).저자가 책 내내 얘기하는 바르게 글쓰기는 구체적이고 정확하다.많은 예문들을 동원하여 매우 이해하기 쉬운 참고서처럼 진행되었다.두 번 읽을 만한 책이다.저자는 지속적으로 비문의 문제,악문의 문제를 파고 들어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좋은 문장을 익히게끔 만든다.책 쓰는 전략도 매우 높은 레벨을 사용했다.

 

단,이상한 유감 하나.

비문과 악문의 효용은 조금도 없는 것일까? 또 잘못 쓰여졌거나 '이상하게' 사용된 조사나 부사들이 독자에게 미치는 순기능은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이상함'을 통해서 전달될 수 있는 고유의 뉘앙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부러 문장을 조작해 자신의 미묘한 느낌을 전달하려 하는 경우,교정의 날카로운 손길이 그 '느낌 전달'을 훼손하고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교정이 저자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히려 최근의 한국 문장들은,저자의 잘못된 문장 사용 보다는 영어교육과 영작,영어 번역이나 일본어 번역에 의해 교란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어떤 저자들의 문장을  살펴 보면,그가 어린 시절 영어 교과서를 한글로 번역할 때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시제의 혼란 -우리 말의 시간 감각은 영어권과 몹시 다르다- ,그리고 접속사를 사용할 때의 난맥상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그들은 좋은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영어 문장을 한글로 해석하고 해독하였고,그 와중에 벌어진 해악이 나쁜 문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물론 모든 비문과 악문의 원인을 이것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것은 한글의 영어에 대한 일정 부분의 패퇴를 의미하기도 하는데,이 책을 읽는 내내이런 종류의 모든 문장들을 정확하고 정규적인 방법으로 모두 다 외과적으로 수술해 버릴 때 사라져버리게 되는 '미묘한 뉘앙스'들은 도대체 어떻게 처리되어야 마땅하느냐 하는 지속적인 물음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수술엔 왕도가 없다.더구나 언어의 문제에 있어서.

 

올드 시네마 150

 

 

 

그야말로 oldes but goodess인,그러면서도 영화 교과서엔 자주 소개되지 않는 보석 같은 영화 150편을 소개한 여행 소개 책자 같은 책.지구상 모든 대륙의 영화를 활자로나마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깊지는 않다.비경을 소개하면서 멀리서 사진만 찍고 안 쪽 깊숙한 곳까진 탐색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오해가 가능한 문장이므로 첨언하자면,저자 본인 만큼은 혹시 영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보았을런지도 모르지만,그 탐색 작업을 독자에게까지 전달하려 들지는 않는 것이다.(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다)

 

파워 블로그의 글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었는데,저자는 정말로 영화에 대한 파워 블로거였다..그리고 블로그의 글들을 엮어 책을 꾸렸다.조금 놀랐다..

 

노래,세상을 바꾸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저항과 눈물과 용기의 노래들을 알리기 위해 책  표지를 조금 크게 뽑았다)

 

한때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대학 노래패에 들어가 결국 격렬한 사회운동가로 변모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노래패에서 노래 부르다 결국 국가보안법으로 몇년씩이나 옥살이를 감당해야 했던 친구가 있었다.기타를 배우면 노래패의 악보 모음집을 펴 놓고 기타를 연습하던 시절이었다.'메아리' 가 펴냈던 100개 남짓한 노래들,그 소중한 노래들이 담겼던 조그만 노래책도 기억이 난다.김민기의 이름을 기억하고 김의철이라는 이름을 신화로 여기던 시절이었다.노래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또 재해석된다.그렇게 그렇게 노래는 시간의 우주에 출몰하고 횡단한다.




 

 

 

지금은..노래와 세상의 관계가 그때와는 다르다.노래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돈의 비중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커졌다.노래가 세상을 바꾼다고? 아니다,세상이 노래를 바꿨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엔 원초적인 결합 기능이 있다.그 끈끈한 동력은 특히 분노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빛을 발한다.삼성동 교주의 아버지가 청년들의 노래를 금지시키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입을 강제로 봉합해버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삼성동 교주와 논현동 가가멜이 5월 기념식장에서 5월을 상징하는 노래를 금지시킨 데에도 본원적인 이유가 있다.

 

어떤 노래들은 변질되고 폭행당한다.비뚤어진 집회장의 애국가가 그렇다.'멸공의 횃불'은 혐오의 상징이 되어버린지 오래다.그러나 그들에게도 세상이 있으며,그 세상 역시 이런 노래들의 양념에 의해 일정 부분 유지된다.(그들의 애국가를 생각하면 고등학교 시절 월요일 아침마다 지겹도록 열리던 애국조회가 생각난다.우리는 교장선생님의 지겹도록 긴 훈화를 약 10초간 들은 후 딴 생각에 잠기기 일쑤였다가,결국 애국기 제창 시간에 반항심을 흘려보냈다.박자를 엉망으로 만든 애국가는 결국 돌림노래로 끝나버렸던 것이다.1학년 1반쯤에서 '길이 보전하세'를 부를 때 3학년들은 '대애한 사람 대하안으로'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머리숱이 한참이나 모자랐던 지휘봉을 든 음악선생님은 당황스럽고 화가 나 어쩔 줄을 모르셨다..)

 

엉뚱한 상상.전 대통령이 자신의 사저 앞에서 부를 만한 노래는 무엇일까.곧 '그 때 그 사람'이 되겠지만.

don't cry for me paranoi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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