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와의 노래를 처음 그리고 직접 듣고 보았던 곳은 몇 년 전 5월의 전주였다.
조금은 뜨거운 햇살이 영화의 거리를 달아오르게 하던 그 때,-전주영화제 기간이었다-시와는 정말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무슨 노래였는지는 모르겠다.아마 '아주 작게만 보이더라도 내지 길상사에서 였던 것 같다)
그녀는 매우 정갈하고 곱고 이상한 공간을 만들어냈고,노래가 끝나면 관객들을 향하여 몇 마디 말들을 건넸었다.그녀 주변에 모인 많지 않은 관객들은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말과 노래를 듣고 있었고.
나는 지금 그녀의 팬이 된 계기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이 노래 '랄랄라'와 연관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나는 이 노래 '랄랄라'가 우리나라 노래 중에 '랄라라'라는 가사를 가장 자연스럽게 사용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의 랄랄라는 꼭 나와야 하는 그 시점에,랄랄라~하고 나왔다.
물론 이 '랄랄라'가 흥겨운 랄랄라는 아니다.어떤 의미를 깨달은 후 여진이 남았을 때,혹은 사유와 사유 사이의 빈 공간을 메꿀 필요를 느꼈을 때,무심코 튀어나오는,그러나 듣는 사람의 귓전을 온전히 메꾸는 랄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온당할 것이다.
갑자기 랄라라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요즘 우리나라 노래 가사에 너무나 많은 추임새들이 끼워넣어져 있기 때문이다.그게 랄랄라가 되었든 yeah~가 되었든,요새 우리나라 가사 쓰는 사람들은 ,가사의 흐름이 막히거나 또 그 빈 공간을 무의미하게 메우려고 할 때 이런 종류의 '소리'들을 그냥 무작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쟝르를 가리지도 않는다.볼빨간 사춘기로부터 자이언티까지,거의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이런 종류의 추임새들을 마구 마구 집어넣는다
.
그것이 교착어와 굴절어 사이의 차이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불리함 때문일 것이라는 대답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또 어쩔 수 없겠지만,시와 같은 음악가들은 또 그 불리함을 딛고 작은 공간들을 무수하게 창조해내는 것이다
.
음..그냥 팬심으로 가득 찬 글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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