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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첫 책-<호수의 여인> --그러니까 레이먼드 챈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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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사이먼 2016. 3. 1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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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챈들러였는지는 모르겠다.나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좋아하지만 그의 광팬은 아니다.하루키를 어느 정도는 좋아하지만 그의 팬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물론 챈들러는 위대한 추리소설가이자 특별한 개성으로 문학사에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챈들러의 소설과 챈들러가 창조한 인물은 절대로 쉽게 잊혀지는 캐릭터들이 아니다.(누구나 필립 말로를 잘 기억한다.여기엔 헐리우드와 험프리 보가트의 결정적인 영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필립 말로를 제외하면 바로 눈 앞에 떠오르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캐릭터란 그리 많지 않다.챈들러 매니아들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적어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필립 말로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심지어 챈들러가 창조하는 데에 성공했던 훌륭한 팜므 파탈 캐릭터일 때에도 그렇다.필립 말로라는 인물의 너무나도 강력한 아우라가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엔 아마 또다른 이유들 역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을 너무 일반화시키지는 말자.판단의 범위도 훨씬 축소시켜 보자.나 개인을 향하여 그 의미망을 제한해 보자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챈들러는 내게 어떤 '기능'이다.챈들러의 문학과 챈들러의 인물들이 내게 던지고 영향을 끼치는 어떤 기능이란 것이다.나는 챈들러의 이야기들을 읽으며,그가 펼치는 신랄하고 건조한 대화들과 무섭도록 생생하면서도 말할 수 없이 신선한 묘사들에 매번 감탄하지만,그 감탄 속에서 어떤 미묘한 불순함을 느낄 때가 많다.그리고 불순함이란 바로 '나'의 '감탄'이다.


나는 챈들러에 감탄하기 위해서 챈들러를 집어든 것이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을 나 스스로에게 던진다.도시의 묵시적 감성,종말적 밤들의 특별한 내면,그것을 헤쳐나가는 총을 창처럼 치켜든 창기병 같은 인물,부패하고 문드러진 도시의 근본적인 행태를 다시 한 번 느끼고,'무언가'를 위해 재생하고 기억하기 위해 그의 책을 들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나 스스로에게 갖는 것이다.


이 의혹은 기실 나 스스로에 대한 불만 때문일 것이다.나는 명랑하고 긍정적이며,게다가 세상에 대해서는 수용적이면서도 따뜻하다.나는 온기를 잃어버린 적이 거의 없으며 가급적이면 웃음짓고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분노를 터뜨리거나 상대방을 비웃으며 조롱하지도 않는다.폭력적 성향을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내는 외로운 늑대는 결코 아니며 사람들과의 조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니다.내 내면 어딘가에는 이런 종류의 나를 거부하고 배척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요구가 있다.그런 요구는 가급적이면 웃고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대신,한 번 싫어져서 정내미가 떨어지면 다시는 그 대상에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으려는 냉혹함으로 표현된다.사람들과의 조화와 팀플레이를 좋아하지만,사람들의 우매함과 이기적인 성향에 대해서는 치를 떨고,어떤 때는 조화를 중시하기는 커녕 훌쩍훌쩍 어딘가로 떠나,살아가는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리기도 했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이런 또 하나의 '내'가 내 스스로에 대해 요구하는 소망의 문학적인 대체물이다.챈들러는 평소의 나는 갖고 있지도 않고 표현하지도 않는 어떤 것들의 집합이다.그것은 별로 은밀하지 않는 내 내면의 요구이며,그 요구들의 과잉에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거나 혹은 또다른 특별한 목적들을 위하여 사용처를 변경해야 할 때 필요한 필수적인 대체물이다..


챈들러란,chandleresque란 단어란,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꽉 막힌 기관지를 뚫어내 주는 기관지 확장제라 말할 수 있다..챈들러는 ..그렇다..





<호수의 여인>은 그래서 올해 내가 사용한 첫번째 기관지 확장제(bronchodilator)였다..


언젠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묘사'에 대해서 다뤄볼까 한다.그는 대화와 서술과 묘사에 다같이 능한 거의 유일무이한 추리작가였다.특히 그가 LA를 다루는 어떤 묘사들..가령 이런 묘사들..


- 나는 똑바로 늘어선 통통한 오렌지 나무들이 마치 바퀴살처럼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포도 위를 지나가는 타이어가 잉잉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수면 부족과 지나친 감정 소모 때문에 생기가 다 빠진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산등성이로 올라갔다가 파노마로 떨어지는 샌디 마스 남쪽의 긴 오르막길에 이르렀다.이곳은 안개 지대의 궁극적인 끝이었으며 아침에 마시는 오래된 셰리주처럼 태양이 밝고 건조하며 정오에는 타오르는 용광로같이 뜨거우며 밤이 되면 벽돌처럼 뚝 떨어져버리는 반사막지대의 시작이었다..


아무나 이렇게 쓰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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