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나는 그를 이십대 후반에 읽었다.그리고 삼십대에도 그를 읽었다.읽을 때마다 달랐다.그는 언제나 단순하지 않았다.그의 세계는 구부러져 있었으며 몇 겹의 차원이 한 공간과 시간에 존재하다가도 또 날아가 다른 시공간에서 웃고 있었다.교란당하던 감각은 신비함과 이성으로 제각각 흩어져 달아났으나 언제나 묵직한 말들과 함께 마음 깊숙히 가라앉곤 했다.그리고 그 말들은 읽을 때마다 달랐다.당연한 일이었다.세월과 시간이 흐르며 나 자신도 그 시간을 관통해 지나왔으니,읽고 듣는 말 역시 변형이 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읽은 포송령의 '요재지이'와 로드 던세이니의 '얀 강가의 한가한 날들'은 바로 그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이란 이름 아래 편집한 29권의 책들 사이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나로서는 보르헤스라는 이름 때문에라도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던 책들이었다..이 29권의 책들이야말로 가장 보르헤스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그래서,아마도,어쩌면,나는 결국 이 29권의 책을 다 보게 될런지도 모른다...
7.요재지이 (포송령)
요재지이..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장국영과 왕조현이 등장했던 <천녀유혼>.그 아련한 추억의 영화가 바로 '요재지이' 속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다.요괴와 귀신과 귀신을 쫓아내는 고승과 사람들이 어울리는 이야기였다.요새 식으로 말하자면 매우 판타스틱한 이야기.비실재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그러나 보르헤스에게 '요재지이'는 그렇지 않다.비실재라니,판타스틱이라니,당치도 않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포송령이 쓴 수많은 '리얼리즘' 소설들은 기이한 일들로 넘쳐난다.기이한 일들은 실재하며 절대 불가능하거나 있음직하지 않은 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요재지이'를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말했다.즉 보르헤스는 기이한 이야기,즉 기담의 실재성을 믿었다.또한 포송령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이야기들을 구전한 중국의 민중들도 그러했다.그들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을 믿었다.부활하는 육체들과 호랑이나 이리가 변한 탐관오리들 - 더구나 민중의 고혈을 쥐어짜는 관리들에 대한 풍자 때문에 더더욱 그들은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산산이 흩어지는 혼백들과 반대로 흩어지지 않고 정연하게 모여 인간계를 징벌하고 교훈을 주는 혼백들,지하의 정령들..당시의 중국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믿었다.그들은 이 모든 것을 상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그들은 초자연을 실재로 생각했고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영화 <천녀유혼>에서,감독 정소동에 의해 그려진 요괴 왕조현을 우리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비현실로 생각한다.장국영을 껴안고 밤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을 꿈스런 판타지로 생각한다.뒤이어진 혼돈과 악몽 역시 영화적인 표현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우리가 모르는 사이 실재로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존재가 있다면 어떡할 텐가.꿈과 현실,혼돈과 악몽이 긴밀하게 결합되는 또다른 차원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 어딘가에 실재로 존재한다면,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날아다니는 혼백들이 지금도 우리 곁을 부유하고 있다면 어떡할 텐가.
이 모든 것들을 감각의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도 없다.감각 이외에 물성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다만 우리가 몰라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 뿐이다.현대적 상황 -오로지 먹고 사는 데에 분투해야 하는,그리고 수많은 관계와 관계,그보다 더한 외적 자극에 쌓여 있는 - 이 우리의 정신이 고양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포송령의 <요재지이>의 말투는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다.현실을 풍자할 때 조차 비분강개하는 말투가 아니다.어조는 평이하며 옆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조용하다.어쩌면 보르헤스가 높이 샀던 것은 이러한 포송령의 말투였을런지도 모른다.판타지를 얘기하면서도 다큐멘터리적인 톤을 유지하는 이 심상함.그래서 리얼리티.
멋진 이야기들이다.
현대적인 에피소드들도 많다.마치 지금의 성형외과의사들을 예지하는 듯한 어떤 판관 -그는 심장을 똑똑하게 만들고 얼굴을 바꿔치기 한다.심장이식수술과 미용성형수술을 시행한다- 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예이다.또 어떤 에피소드 -'보옥의 꿈'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야기인데,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꿈 속에서 잠든 자신과,잠에서 깬 자신이 자신을 알아본다-는 완전히 보르헤스적이다.
반복한다.멋진 이야기집이다.
8.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로드 던세이니)
보르헤스가 꼽은 또 하나의 책,그가 최후의 책들을 모아놓은 <바벨의 도서관>안에 포함시킨 또 하나의 책은 로드 던세이니의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이다.
로드 던세이니야말로 특이한 작가다.런던에서 태어난 아일랜드 혈통의 귀족인 그가 삶에서 한 일은 글쓰기 뿐만 아니었다.그는 우선 군인이었다.1차세계대전과 보어 전쟁에 참여했다.그리고 크리켓과 사냥-그는 사자를 사냥했다- 을 즐긴 사람이었고 매너있는 귀족으로서 부유한 삶을 즐겼다.언제나 사람들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한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다시 말해 그는 현실과 유리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글은 달랐다.그의 글은 꿈과 판타지로 가득 차 있다.실제의 삶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로 가득하다.그는 톨킨과 러브크래프트 이전의 환상가였던 것이다.재밌지 않는가.사자 사냥을 즐기는 귀족 출신의 군인이 귀가해 서재에 앉으면 판타지 소설을 써댄다는 것이.마치 두 사람의 인격이 밤과 낮을 교대하는 것 같다.그 교대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유지했던 머릿속의 꿈들이 워낙 강렬하고 실제 삶에 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어쨌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실제로 이렇다.무엇보다 인간은 이율배반적인 존재이며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적어도 다섯 개 이상으로 분절되어 있으며 어느 순간 인생의 조각 하나가 에너지를 얻어 파열되고 분출될 때,또다른 삶의 모습이 튀어나온다.로드던세이니의 경우처럼 그 폭발이 창조와 예술을 향하고 있는 것은 운이자 행복이자 다행이다.범죄인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단편소설집인 이 책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은 바로 그런 에너지의 단편들이다.악몽과 혼돈과 이국적 기행 속에 로드 던세이니의 꿈이 담겼다.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자 군인이었지만,음유시인의 기질로 행복한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다.그 왕국이 그에겐 내적 삶의 본질이었다.
보르헤스가 볼 때 던세이니의 진짜 본질은 그의 시인적 성향,즉 이 소설에 펼쳐진 그의 꿈인 것이다.그러나 그의 꿈은 다분히 카프카적이다.계속해서 살해당하고 또 살해당하는 강변,사실은 전쟁터였던 꽃이 만발한 매혹적인 들판(이 단편에 등장하는 시인은 이 초원이 과거의 전쟁터였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경악한다),어딘지 모를 열대 정글에서의 끝없는 여행...모든 것이 뒤집혀 있고 모든 것이 무익하다.게다가 그는 시간 조차 거슬러 올라간다.소설의 배경을 현대에 국한하지도 않는다.중세와 심지어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는 영원히 회전하는 세계의 모순과 도전을 그린다.물론 그의 꿈 속에서.던세이니는 자신이 꾼 꿈의 서사시를 펜으로 종이에 옮겼던 것이다.
꿈이 비현실이라고 용감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사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꿈의 세계 입장에선 악몽이자 비현실일런지도 모르는 것이다.그러나..꿈 속의 세계로 발을 내디디기도 쉽지 않다.묘한 공포가 있다..그러나,우리는 언젠가 꿈의 세계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죽음이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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