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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 그리고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Bookends

by 폴사이먼 2014. 7. 1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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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책 이야기를 하려 한다.책 역시 내 삶의 일부이긴 하지만 내가 책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있거나 아주 많은 책을 읽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읽었던 책에 대한 리뷰를 남긴 적은 없다.그러나 얼마 전에도 이 공간에 기록했지만,나는 이 블로그의 운영 방법이나 운영 개념을 일정 부분 변경했고 - 나는 이제 이 공간을 내 삶의 다큐멘트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제 간단하게나마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기록 역시 남기려 한다.따라서 bookends라는 이 카테고리 안에 담기게 될 글들은 매우 개인적인 독후감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

 

 

첫번째 책은 영화평론가 리처드 시켈이 정리한 미국의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담집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호흡이다.대화를 주고 받는 양자 사이의 수준 차이나 식견의 차이가 심해지면 그야말로 훈화집이나 스승과 제자가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교과서적 차원에 그치게 되는 인터뷰집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영화평론가 리처드 시켈과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와 그 호흡은 그야말로 영화의 바다를 향해 나가는 두 사람의 노련한 항해사들의 호흡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거의 동시대를 살아갔던 영화인들로서,그들은 그들이 공유했던 영화적 경험들과 가끔씩 보이는 의견 차이들을 특유의 달변으로 묘파해나감으로써 그들의 지난 50년간의 영화 인생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리처드 시켈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태생적 배경인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 구역에 대한 회상에 그들의 초반 대화 대부분을 할애해서 스코세이지 영화 정신의 태생적 기초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려 한다.결국 예술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을 가장 잘 묘사해내고 만다는 당연한 명제 하에서,스코세이지와 시켈은 스코세이지 영화에 나타났던 '갑작스러운 폭력의 경향'과 '종교적 구원을 향하는 내밀한 소망'을 조명하는데 - 스코세이지는 어린 시절 성당의 복사였다- ,이 어린 시절과 스코세이지 초기 그리고 중기 영화와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네비게이션하면서 진행되어가는 대화는 이 책의 백미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스코세이지 역시 가끔은 정확하게 맥을 짚는 시켈의 지적을 매우 순순히 인정하는데,이런 대화들을 보고 있으면 이젠 삶의 황혼에 도달한 거장 예술가의 여유 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대화는 스코세이지가 만들었던 모든 영화들을 향하여 기수를 돌린다.시켈과 스코세이지는 영화를 만들던 당시에 벌어졌던 모든 에피소드들과 배경들 - 스코세이지의 약물 남용과 재정적인 어려움,로버트 드 니로나 하비 케이텔 같은 그의 영화적 페르소나에 대한 얘기들이 모두 등장한다- 이 그들이 좋아했던 클래식 무비들에 대한 얘기와 함께 펼쳐져 나간다.두 사람은 스코세이지가 만들었던 영화들을 얘기하면서 그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던 영화들과 예술 작품들 또 음악들을 토론하는데,이 대화들은 그것 자체로 20세기 대중 예술의 일단을 흥미롭게 전시한다.다시 말해 그들의 대화는 20세기 영화 지도의 한 단면으로 순식간에 바뀌고 마는 것이다.

 

스코세이지는 현대 영화와 과거의 걸작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다니엘 데이 루이스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배우들에 대한 찬사,나아가 미국의 현대사에 대한 일정 정도의 생각을 제시하는데,때로는 변명으로 때로는 냉정한 관찰로 또 때로는 자기 고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런 얘기들이야말로 스코세이지의 영화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reference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또한 이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영화를 좋아하거나 마틴 스코세이지의 팬들에게는 즐거운 영화적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그가 만들어보려 애쓰는 차기작 <침묵>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샤쿠의 원작이며 최고의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출연을 승낙한 - 이 하루 빨리 제작될 수 있기를 정말 정말 바란다..

 

아,그리고 스코세이지는 대화 중간에 이런 얘길 한다.영화를 잘 만들어보기 위해서 그리 좋지 않은 영화까지 죄다 섭렵했노라고..과연 영화광다운 이야기지만,몇 년 전 읽었던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잘 못 만들어진 영화를 만나게 되면 절대로 끝까지 가지 않고 보다가 중간에 꺼 버린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과연 어떤 인터뷰가 그의 의중을 정확하게 드러낸 인터뷰인지 모르겠다..어쩌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당시엔 '별로인' 영화 마저 참고했지만,숱한 영화를 보아버린 지금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뭐,어쩔 수 없다.나는 스코세이지와 개인적 채널이 없다.그에게 직접 물어볼 방법은 없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테드 창

 

 

 

처음 테드 창의 단편모음집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그랬다.

-아,이 녀석 천재구나..라고.

 

그러나 곧 나는 내가 하려던 갑작스런 천재딱지 붙이기를 유보했다.우선 SF 소설들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두번째 이유는 -조금은 말이 안되지만-내가 읽었던 그의 작품이 단편의 모음집이었다는 것이었다.단편과 중편,그리고 장편 소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는 맹목적인 믿음과,SF의 대가들이 펼쳐보였던 거의 서사시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들을 그가 써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탄성 이후에 바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 주에 그의 장편적 중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활 주기>를 읽었다.여전했다.인공지능 (A.I)을 다루는 이 작품 속에서 테드 창은 거의 편집증이라 할 정도의 작품에 대한 천착과 캐릭터에 대한 치열한 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특유의 지적 자극 역시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었다.재밌게,그리고 아프게 끝까지 읽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생각 두 가지.SF 의 기본은 다루는 이야기의 규모와 상관없이,작가부터 책의 세계 속으로 완벽히 빠져들어 자신의 작품을 향하여 실종되듯 사기당해야 한다는 것.그리고..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테드 창에게 있어서의 특이한 보너스 포인트는 그러한 미시적인 치열함과 아울러 그가 펼치는 이야기 속에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는 무엇이 있다는 것.바로 그 두 가지였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가지는 관계,그 따뜻함과 안타까움,슬픔,또 명랑함,기쁨..이런 모든 감정들을 테드 창은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게 적절하게 다 건드리고 있었다.즉 그는 인공지능을 유한성을 가진 존재로 보고 있고 자본과 트렌드와 인간의 이기심 속에서 언제나 사라져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피해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거기에 반해 또 어떤 작가들은 인공지능의 막강한 폭력성과 위협을 그리고 있다..)

 

생각은 이어졌다.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컴퓨터 모니터,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상이지만 가상 아닌,진실 같지만 어쩐지 감각적 진실의 맛이 덜 한 이 커뮤니티 역시 분명한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어느 순간 접속이 끊기면 소멸되고 실종되어버린다는 것.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주요 세계가 되어버린 인터넷 스페이스 역시 무한과 유한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은가..지난 13년 동안 이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접속과 접촉 포인트가 다 끊어져서 내 세계에서 소멸과 실종을 경험한 그들의 '없어짐'과 '사라짐'은 진짜 '없어짐'과 '사라짐'일까..그럼에도 여전히 아주 간헐적이나마 여전히 얘기를 주고 받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가..그런 종류의 생각들로 잠시 두뇌는 막 날아다녔다.그런 기억과 추억은 인공적 두뇌작용이 아니라 진짜 내 두뇌 작용이다.(그런데 진짜? ㅎㅎ)

 

어쨌든 테드 창의 글들을 계속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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