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본적으로 혼자다.결혼했다고 해서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그 상대방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나의 괴로움과 나의 고민을,그리고 숨가쁘게 돌아가는 나의 내면을 아내나 연인이 완전히 파악해주길 바란다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다.그리고 그런 이해가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것도 일종의 사기다.선의의 사기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입을 열어 아무리 소상하게 설명한다 해도 상대방은 내 마음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다.오히려 그가 내 마음을 완전히 알아줘야 한다는 생각이,상대방의 고민을 완전히 공유해야 한다는 의식이,함정으로 작용한다.그런 함정을 지속적으로 품고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차라리 포기해버리는 것이 낫다.상대방의 영역을 인정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또는 그녀의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를 방황을 침착하게 관찰하는 쪽이 스스로의 정신건강에 나을 수도 있다.우리는 정말 기본적으로 -아예 세포의 단위까지 내려가지 않더라도- 혼자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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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파트너와 파트너는 영원히 서로를 공유할 수 없는 것일까?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는 환상의 partnership 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일까?
범위를 한정시켜 부부 사이,아내와 남편 사이라면 어떨까?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얼굴을 바라보고 같이 잠을 자고 아이를 키우고 갖가지 고달픈 문제를 함께 처리해나가는 부부의 관계라면,적어도 각 인격체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좁아질 수 있지는 않을까?
사실,영화 얘기를 하려다가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데,나는 앞서의 질문에 대해 좀 묘하지만 이런 대답을 내놓고 싶다.
답은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에 있다고.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매일 밤 이야기를 창작해내야 했던 인류역사상 최고의 말빨을 가졌던 세헤라쟈데.그녀가 상대해야 했던 아라비아의 왕,그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나이.
그들이 완전히 화합하는 데에 천일이 걸렸다고.적어도 일천 일의 긴장이 필요했다고.또 그 정도의 노력과 결심이 없다면 차라리 혼자로서의 인생을 견지하며 상대의 공간을 배려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나는 그렇게 대답해야 할 듯 싶다..자신있는 대답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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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 동안,나는 거의 '혼자서'영화를 보아 왔다.여러 명이 어울려서 보았던 어떤 영화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을 때면,나는 다시 그 극장을 찾아가서 '혼자' 영화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렸었다.그런 내 성향이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했었다.혼자서
볼 때,그리고 여럿이서 볼 때,또 둘이서 볼 때의 영화는 제각기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보여 준다.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어떤 영화는 '혼자'가 낫고 어떤 영화는 혼자가 '독'이다.그러나 나는 '혼자'의 영화를 선호했었던 것 같고,그런 상황에서 본 영화들이 오롯이 가슴 속에 남아,이후 어느 날 또 태어나고 내게 얘기를 걸고 그랬던 것 같다.
3개월쯤 있으면 주말부부 생활을 접게 된다.그것은 이제야 온전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부끄럽고도 기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지만,다른 한편으론 이제 영화를 혼자 보아왔던 내 고유의 생활이 이제 종막을 고할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한다.그것은 일면 씁쓸하지만,반대로 너무나 반가운 느낌을 내게 가져다 준다.
때로는 인생의 스테이지 자체가 변하고 마는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리시거나,어쩌면 화를 내실 분도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아주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혼자 영화를 보아온 사람을,그리고 그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었던 사람을 상상해 보신다면,조금은 이해를 부탁드릴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또 아무리 바쁘게 산다 해도 혼자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겠다.그렇다.물론 그럴 수 있다.그런데 이번엔 내가 싫다.내 쪽에서 거부한다.
굉장히 모순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글 맨 앞머리에 인간은 원래 혼자니 뭐니 떠들어댄 주제에 이렇게 말하기 뭐하지만,나는 더 이상 '혼자'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설령 여전히 혼자 영화를 보고 있게 되더라도 '혼자' 가 아닌 듯한 의식을 느끼고 싶고,그것이 내가 온당히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40년 만에 알게 되었다.그런데도 내가 이런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그런 변화에 내면 어딘가가 저항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다행히 나는 변화에 대한 가장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그것은 일종의 사랑으로서 딸에 대한 사랑,아내에 대한 사랑..뭐 이런 것들이다.딸이나 아내에 대한 사랑,그리고 가족의 소중함 따위의 가치가 그렇게나 중요한 가치인 것이냐고 반문하신다면,나로서는 아무 대답할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가족이란 단어 전체가 가지는 가치,아내에 대한 사랑 딸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치가 세상 전체를 아우를 만한 지고지순한 가치는 결코 아닌 것이라고,그 보다 중요한 가치들이 세상에 널려있어서 이런 가치를 단순하게 옹호하는 것이 세상 전체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행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어느 분이 얘기하신다면,나로서는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그리고 '나는 이것 밖에 안된다'라고 혼잣말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이 가치를 그저 '중산층적인 가치','시민적인 가치'로 몰아붙이며,이 가치들이 결국 권력과 자본의 의도에 복무하며,이 또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따라서 어쩌면 가장 먼저 반항해야 할 것은 자본이나 권력이 아니라,바로 이런 종류의 정적이고 본능적인 가치들인 것이다,개인적 자유의 맹아 자체를 억누르는 이런 종류의 도그마야말로 가장 먼저 파괴해야 할 첫번째 우상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높여 외친다면...,이제 새상에 태어난지 21개월 남짓 된 내 딸에게 앞으로 그런 얘기들을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을지..무척이나
난감할 것 같다..
전혀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아주 배척할 수도 없고 완전히 그른 이야기여서 듣지도 쳐다보지도 말라고 딸에게 말할 수는 없다.나는 언젠가 내 딸에게 ,내 자신이 한때 가족제도를 거부했었다는 전과가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가족에 대한 나의 얘기들을 실토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내가 내게 '당신 미쳤느냐'고 소릴 지르더라도,은별이가 어느 날부터 혼자서 극장엘 다니겠다고 선언한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얼마나 많은 아빠들이 이런 고민에 시달렸을까를 생각하니 마구 웃음이 난다..
그런데,은별이도 '혼자'가 되고 은별이의 아빠인 나도 '혼자'가 되었을 때 -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다면 - 우리가 동등한 혼자로서,마치 밤하늘에 뜬 별처럼 서로 멀리 떨어진 채 교신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면,나는 과연 만족스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과 일정하게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 것이다.그리고 내겐 선택의 상황이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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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영화 보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새버렸다.굳이 핑게를 대자면 Peter Paul & Mary의 500 miles를 듣다가 이리 되었다.떠나는 기차의 아련한 이미지가 약간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그러니 글도 이상해질 수 밖에. '혼자 본 영화'에 대한 포스팅은 미루어야 할 것 같다...
Brothers Four의 노래가 먼저 나온다.

- Five Hundred Miles -
If you miss the train I'm on
you will know that I am gone.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내가 탄 기차가 떠나고 나면,
당신은 내가 가버린 것을 알게 되겠죠.
당신은 백 마일 (160km)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을거여요.
백 마일 떨어진 곳...
당신은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을거여요.
Lord I'm one, Lord I'm two
Lord I'm three, Lord I'm four
Lord I'm five hundred miles
away from home.
Away from home, ,.
Lord I'm five hundred miles
away from home.
오 주여~ 저는 집으로부터
백마일, 이백마일,
삼백마일, 사백마일,
오백마일 떨어져 있읍니다.
집으로부터 오백마일이나 떨어져 있어요.
주여~ 저는 집에서
오백마일이나 떨어져 있답니다.
Not a shirt on my back,
Not a penny to my name,
Lord I can't go home
this a way
This a way...
Lord I can't go home
this a way.
등에 셔츠 한벌 걸치지 않고
동전도 한 푼 없이
이런 식으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어요.
이런 식으로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구요.
이런 식으로는...
If you miss the train I'm on
you will know that I am gone.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내가 탄 기차가 떠나고 나면,
당신은 내가 가버린 것을 알게 되겠죠.
당신은 백 마일 (160km)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을거여요.
brothers four의 버젼도 괜챦다.그리고 저 위의 동영상은 아마 몬테레이 공연의 그것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정확한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