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아내와도,일련의 정식대화를 나누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냥 같은 침대 위에 눕거나,거실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서 하는 대화 말고,뭔가 정식 이벤트를 만들어서 진지하게 '잡담'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들으면 참 이상한 소리라고 느껴지기도 하겠지만,이런 식의 '진지한 잡담'이 없다면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긴장도 떨어지고 서로를 너무 '막' 대하며 살아가게 될런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깜깜한 한밤중이 되었든, 조용한 공원이 되었든,아내와 단 둘이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나는 여긴다.
무슨 인생에 관한 철학적인 대화일 필요는 없다.또는 우리 사회에 대한 철저한 해부이거나 보았던 영화나 소설에 대한 분석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그저 '잡담'이면 된다.단,그 '잡담'의 분위기가 '정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분위기라는 것은 언제나 중요해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장소와 시간 그리고 환경이라는 것을 준비해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그런 분위기를 위해 투자할 돈과 시간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또 꼭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무언가 분위기의 방아쇠가 될 '이벤트'나 '컨셉'만 있으면 된다.그리고 그 '컨셉'은 그저 평소 생활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 -
9월 셋째 주 토요일,우리는 그런 종류의 '정식 잡담'을 하기로 마음먹었다.우선 해야 할 일은 은별이를 맡기는(?) 것이었다.한 달에 한 번 정도의 주말에 아이를 보아주시는 장모님은 우리의 부탁을 흔쾌하게 들어주셨지만,정작 은별이 본인만은 상황을 쉽게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은별이는 결코 떼를 쓰거나 울며 앙탈을 부리지 않는다.아이는 엄숙하게 마치 힐난이라도 하듯이 부모를 쳐다보며,차에 실려간다.이런 표정이다.
자정 정도가 되자,우리는 '파티'준비를 한다.오늘의 컨셉은 그저 꽃과 촛불이다.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노란 장미꽃 한 다발을 집에 사 왔고,아내는 꽃의 목을 과감하게 쳐낸 후 조그만 정사각형의 불투명한 꽃병에다가 목이 잘려진 꽃들을 가지런히 집어넣어 놓은 것이다.그리고 그 옆엔 키는 작지만 목이 뚱뚱해서 중년의 사나이를 연상시키는 촛불을 배치했다.이것으로 끝이다.파티의 준비는 끝났다.
싸구려 와인과 치즈가 오늘의 음식이다.우리는 식탁을 마주 하고 앉아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얘기하기 시작한다.우선 그 날 가기로 했다가 결국 불발탄이 되고 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화제에 올랐다.우리가 가지 못했던 것은 비와 태풍 때문이었는데,나로서는 스탠리 클락과 죠지 듀크의 공연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한스러웠다.원래는 우리와 일행이었던 M누나가 자라섬에서 '비도 그리 많이 오지 않고 공연도 아주 �다'며 전화로 염장을 질러오는 통에 아쉬움은 더 했다.아내는 10월의 부산영화제로 상황을 대치시키라고 나를 위로했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무한도전'의 정준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정준하가 운영하는 또는 얼굴사장인 술집에서 여성접대부를 고용했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아내는 바로 그 술집에서 접대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덧붙였다.
- 정말 술값,무지 비싸더라..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어.
- 그런 돈 있음 남편 맛있는 거라도 좀 사 주지 그랬어.
- 내가 지불한 게 아니라니까..그렇지 않아도 먹으면서 그랬다,이 돈이면 은별이 옷이 몇 벌이냐..
아내는 모든 종류의 과소비 항목들을 옷값으로 대체하는 희한한 버릇이 있었다.
- 그런데 정말 여성접대부도 있고 2차도 나가고 그런 거냐?
- 그거야 나도 모르지..그런데 접대부로 생각되는 여자애들이 있긴 있는 것 같았어..야시시한 옷차림의
젊은 애들이 여럿 있었거든.뭐 여자애들만 있는 게 아냐,남자 디제이들도 언니들 방에 들어와서 놀아
주고 그러더라구..
- 그렇군..
-그런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아내는 약간 도끼눈을 떴다.아내에겐 이상한 반골기질 같은 것이 있어서,사람들이 누군가를 마녀사냥 하듯이 내몰아 갈 때,그 당하는 '마녀'를 옹호하려는 습관이 있었다.
- 그 기사 쓴 기자 걔도 그런 술집 분명히 갈 거 아냐.,자기도 그런 술집에서 접대 받고 2차도 가고 그러면서 연예인이 그런 술집 운영하면 안된다는 거야? 사람들도 그래.지네들도 기회만 되면,또 거기다가 공짜 술이라도 될라치면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면서 그렇게 난리들이냐,난리들이..
- ...
아내의 말이 옳든 그르든 이럴 땐 아무 말도 않고 가만 있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그리고 그것이 바로 생활의 지혜이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있었다.
-아이고 위선 덩어리들..싫으면 싫다,좋으면 좋다.분명히 말도 못하면서 그저 문제만 생기면 떼거리로 욕이나 해대지.
나는 '무한도전'에서의 정준하의 훈남 컨셉과 접대부 고용 술집사장이 다소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확대된 것이라며 약간의 변화를 시도했다.그러나 아내는 그런 정도의 논리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잘못된 유흥문화 자체를 그대로 두고 무슨 조그만 꼬투리만 생기면 그 야단이라고 인터넷 전체를 비아냥거렸다.
- 하긴 다음 번 대통령이 된다는 이명박 장로님께선,'마사지걸 고르기'에 대한 경험적 강의까지 시도하고
계시니 말야..아,그럼 이명박은 위선적인 사람이 아닌 거야? 솔직하게 다 얘기하니까 말야.
- 자기 바보냐?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거하고 이거하고 뭐가 똑같냐며 면박을 주었다.그리곤 말했다.
- 그런데 그 사람 교회 장로가 맞긴 맞는 거야?
- 아마 그렇다지.나라를 하나님께 바친단 사람이야.마사지 여인들에게도 성령의 은총을 베풀었을지도 모르지.
- 그럼,그거 가짜 장로야.
아내는 단정적으로 말했다.나로서는 최근 들은 이명박에 대한 가장 짧고 간명한 해석이어서 어리둥절했다.
-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으면서,
-몸으로는 마사지걸들의 손길을 갈구하시는 거지..그래도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그 장로님을 지지하는 줄 아냐?
아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녀는 우선 이명박의 목소리를 싫어했다.이상한 동물의 소리라는 것이었다.나로서는 대강 그 동물의 정체까지 상상이 되지만,한 사람의 목소리를 동물의 그것에 비유하기는 좀 그랬다.
이명박이 나오자 우린 잠시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어차피 그는 술자리의 지나가는 안주로 지난 5년간 기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내가 노무현을 ,'혹시 보수진영에서 심어놓은 트로이의 목마가 아니었을까? '라며 고개를 갸웃거리자,아내는 너무 많이 생각해 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일은 없는 것이라며 갑자기 노무현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그 사람도 원래는 그러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아내의 강변이 시작되었으므로,나는 잠시 당시 화제가 되고 있던 변양균과 신정아의 얘기로 화제를 돌리려 시도했다.오늘 아내는 약간 나의 '안티'가 되고 싶은 게라고 짐작했다.
-그건 또 뭐야?
아내가 또다시 소리를 높였다.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인 거냐고 아내는 말했다.나라를 뒤흔들 정도의 대단한 잘못은 아닌 것 같다.,좀 더 중요한 어떤 일들을 덮기 위해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까발린 일이라며 아내는 근거 없는 음모론까지 펼치고 있었다.
- 스폰서 끼고 출세하는 연예인하고 똑같은 거지 뭐.
-하지만 학력 위조는?
나는 신정아의 학력위조를 끌고 나왔다.'거짓말'이라면 거의 경끼를 일으키는 아내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아내는 대답했다.
- 글쎄,적어도 나는 고학력 따위에 주눅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그건 정말로 그랬다.그리 좋은 학교에 다녀본 적은 없지만,아내는 학력을 가지고 잘 난 척 하는 사람들 앞에서 꿀려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사실 인생은 학력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학력이니 뭐니 하며 신정아를 비난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컴플렉스의 발로일런지도 몰랐다.나는 아내의 음모론에 몇 가지 살을 덧붙여 주었다.동국대를 둘러싼 불교계의 암투,대선과의 연관성,정몽구에 대한 비난여론을 잠재우려는 문화일보의 저열한 누드공작 등등..,아내는 그러나 그다지 주의해서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냥 술을 마셨다.아내는 술이 세므로 나보다 술 마시는 속도가 두 배는 빨랐다.나는 와인을 그렇게 빨리 마시는 사람이 어딨냐고 타박했다.'맛있으니까.'간단하게 대답하며 아내는 와인을 마셨다.그러다 문득 아내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땠을 것 같애?
-응?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던지는 함정 같은 질문들이 나는 언제나 무서웠다.
-당신이 권력을 가진 50대 아저씨 관료란 말야.그런데 싱싱하고 세련되고 머리에 뭐가 든 것 같은 여자애가 막 대시한단 말야..어떻게 할 거냐고..
내 이럴 줄 알았다.그러나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글쎄..신정아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 당신이 50대라니까?
-그래도 신정아 정도론 안 돼.
-그럼 누구면 되는데?
내 이럴 줄 알았다.나는 엉뚱한 쪽에서 돌파구를 찾기로 했다.
-만약에 변양균이 말야..난 정아를 너무 사랑한다.그래서 내 권력을 남용했다.사랑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오늘부로 모든 공직을 사퇴한다.뭐 이랬음 어땠을까?
- 딴 소리 하시기는..그래도 미친 건 미친 거지.
- 왜,위선적인 것도 아니고 솔직한 거지.사랑이 무슨 죄냐..뭐,이런 건데..
- 나한테 한 번 그랬단 봐라.
- 어떡할 건데?
-뭘 어떡해.오피스텔 하나 빌릴 돈 주고 팬티만 입혀가지고 쫓아내는 거지.
- 무어라..
참으로 효과적인 복수방법이긴 하다.
- 사랑은 다 이긴다며?
아내는 신정아를 싫어했다.몸을 너무 함부로 굴렸다는 거다.
나는 그랬다.
-=하지만 사람들이 신정아를 비난하는 이유는 걔가 교수인데다가 무슨무슨 큐레이터인데다가,하는 그런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그런 타이틀에 우리는 언제나 그에 어울리는 도덕성을 요구하는 거쟎아.
- 그러면 이명박은 정말 안되는 거지.건설회사 사장 하면서 요상스럽게 돈 모으고 그런 게 아무리 신정아 몸굴리기 보다 작은 죄겠어?
- 죄는 타이밍이야.재수고 운이야.우리나라가 그렇다는 건 알쟎아.
-재밌는 사회야.
-심심하지 않은 사회이고 말이야.
우리는 또다시 와인을 홀짝거렸다.아내는 갑자기 갖가지 시중에 떠도는 유언비어를 집대성하기 시작했다.심은하 아이의 실제 아버지가 유명정치인이다.노현정은 이미 이혼했으며,노현정의 아이는 지금 남편의 아이가 아니다,등등 최신 유언비어로 테이블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 현대가 바보냐?
나도 약간의 핀잔을 시도해보았다.
아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아내는 '된장녀의 말로'에 대한 강의로 들어가길 원하는 것 같았다.와인 두 병을 다 비웠으므로 나는 맥주를 꺼내 왔다.그러면서 자본주의적 박탈감이란 것이 대중의 두뇌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생각했다.
얘기는 개인적 주제로 흘렀다.내 블로깅,추석,처남의 결혼 문제,지나치게 비싼 유치원 수업료,고부관계.잡담은 끝이 없었다.그런데 아내는 추석만 다가오면 시부모들을 원망하는 것이었다.이유는 시어머니가 너무 냉정하다는 것이었다.어머니는 추석 당일 날 아침만 먹고 아들부부와 헤어지길 원했고,아내는 하루 종일 시댁에서 밥도 먹고 놀고 뭐 그런 시간을 보내길 원했다.그러니 두 사람의 시간대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냉정하신 거냐고 ,아내는 진심으로 징징거렸다.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추석 스트레스 땜에 온몸이 다 아파할 내 환자들이 생각났던 거였다.인간이란 결코 자기 환경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가 생각났다.아내는 갑자기 내 첫사랑을 궁금해하기도 했다.나는 첫사랑이 약간 가물가물했다.도대체 누가 첫사랑인지가 헷갈리기도 했다.첫사랑에 대한 글을 써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 -
다음 날 나의 부산영화제 동반자 M 누나가 도착했다.우리는 또 술을 마시기로 했다.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던 탓이었는지 갑작스런 복통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복부의 통증은 등 쪽으로 번지기 시작했는데,허리를 펴기 어려운 지경으로까지 발전했다.나는 인생 처음으로 술자리에서 후퇴하기로 마음먹었다.아내에게 누나의 술상대를 부탁했다.
월요일 오전 세 시,나는 심한 복통으로 방바닥을 헤매이다가 기분좋게 취해서 들어온 아내에게 발견되었다.몇 시간 후면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아내는 음주 중이었으므로 운전은 내 몫이었다.도로의 가로등 불빛은 환상적으로 빛나고 있었는데,통증이 너무 심했으므로 불빛의 흔들림이 서 있는 유령나무들의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느껴졌다.
도착한 병원에서 나는 침대에 누워 초음파 검사를 했다.내 배에 기계를 갖다 대고 보이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담낭에 결석이 있었다.쓸개에 돌들이 촘촘이 박혀 있었다.
-저게 정말 내 배 맞아?
난 내가 돌팔이이길 바라면서 강한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 내과 선생님이 웃으면서 내가 오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아직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쓸개의 벽도 아직 두껍지 않고 담도가 넓어진 것도 아니고 ,뭐 이러시면서 웃었다.'약으로 해 보자'고 얘기하는 통에 나는 배를 움켜쥐고 참았다.
화요일과 수요일 목요일,통증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간간이 나는 내 쓸개 속에 틀어박힌 돌들을 생각했다.그리고 과거 응급실을 찾던 복통환자들을 떠올렸다.그들은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마약성 진통제들을 원했다.병원이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면 언제나 소란을 벌였다.전인권을 본 적도 있었다.그는 통증 때문에 응급실에 온 것은 아니었다.그는 '진통제'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마약'을 원했으니까 말이다.몇몇 친구들이 내 수술을 자청했다.가장 인상적인 권유는 모 대학병원에 있는 친구녀석의 말이었는데,내 배에 들어있는 돌을 꺼낼 생각을 하니까
입 안에 침이 고인다는 소리였고,가장 끔찍한 소리는 일 년 후배 녀석의 말,'형 쓸개에 빨대 꽂을 준비 다 끝났어'였다.
금요일 저녁,바로 집 앞 병원으로 갔다.요새는 담낭절제 (쓸개를 잘라내는 수술)는 거의 복강경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매우 간단하다며,그 병원의 외과 선생은 나를 위로했다.
-단,
그의 어조가 변했다.
- 해부학적인 구조가 복잡하거나 예상 못한 염증이 발견되면 개복수술을 할 수 밖에 없지요.5%정도의 가능성이지만 말이에요.
응급실 침대에 누운 내게 그는 상냥하게 설명했다.
'그러면 안될텐데'라고 나는 생각했다.
토요일 ,수술했다.
마취가 깨자 엄청난 복통이 시작되었다.아,이거 뭐 잘못되었구나,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집도의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복강경은 불가능했어요.담낭의 염증이 너무 심하고 일부는 괴사되고 있었어요.개복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 큰 일 났네요.저 대신 대리진료할 의사도 못 구했는데요..
그는 웃으면서 내 배에서 꺼낸 돌들을 보여주었다.
돌들이 마치 바윗덩이처럼 보였다.저 공깃돌들은 어쩌자고 내 뱃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추석연휴에만 병원신세를 지기로 했던 계획은 완전히 물 건너 갔다..
온 몸에 주사기 바늘을 꽂고,쓸개엔 튜브를 꽂고 환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환자가 되는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몽롱한 와중에서도 특이하고도 유용한 경험을 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환자들의 불편과 고통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그리고 현대의학이 환자에게 행하는 대부분의 치료도구들이 너무나 폭력적이고 잔인하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다 당해보니 하는 말이다.(
아내는 매일 은별이를 데리고 왔다.
이제 말이 상당히 늘어버린 은별이는 내게 말을 건넸다.
- 아빠 많이 아파?
세상에,감동적이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깜짝 놀래고 있는데 한 마디 더 던진다.
-어떡하지.?
그러더니 삭 돌아서 제 볼 일을 본다.
은별이는 자신이 세 살이라는 것이 대견한 모양이다.몇 살? 그러면 세 손가락을 저렇게 쫙 편다.
-10월 7일까지 회복할 수 있을까?
통증에 시달리다 아내에게 묻는다.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아내는 나를 쳐다본다.
-왜?
-부산영화제 가야 하거든.
아내의 잔소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나는 딴소릴 한다.
-자기야,아프지 마라.
-무슨 소리야?
-아프면 정말 아프다.
아내는 내게 등을 돌리고 은별이를 쳐다본다.은별이는 병실 안에서도 구김살 없이 놀고 있다.옆 자리에 입원한 청년의 어머니가 은별이에게 그런다.
-콱 볼을 깨물어버리고 싶네!
아주머니의 잔인한 칭찬에 나는 다소 놀란다.여전히 딸은 장난감 카메라를 만지작거린다.나는 다시 영화제를 생각한다.이래저래 이상한 가을이다...
선거가 끝나고 난 뒤...몇 몇 초상화들. (0) | 2007.12.21 |
---|---|
ㄱ 씨의 행복 (0) | 2007.10.30 |
친절함,그리고 마음씨 좋음. (0) | 2007.07.09 |
어? 이젠 혼자가 아니쟎아! (0) | 2007.03.19 |
Clapton is still GOD !! (0) | 2007.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