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4시.
법원에 있었다.햇수로는 3년째를 끌고 있는 지루한 민사재판.재판은 사람을 정말로 지치게 한다.진력이 나게 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이 재판을 시작하기 전엔 '법'이라는 것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하고,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도 별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재판 이후에 여러가지가 많이 변했다.예전엔 '법'
이라는 것이 시민사회에 필요한 '룰'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이런 일 저런 일 겪어 보니,판사도 사람이고 변호사도 경제인이며 검사도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법'이라는 체계가 꼭 진실을 100% 반영하는 것도 아니며,그 적용이 상당히 자의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법의 세계 안에서 쓰이는 언어들은 일반 사회에서 쓰이는 언어와 그 시스템과 의미가 상당히 달라 보였으며,그 언어를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세계에서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나마 알게 되었다
변호사를 공연히 고용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난 법원에 들어갈 때마다 프란츠 카프카를 자꾸만 떠올렸고,그의 소설 '심판'과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했던 ( 정확하지는 않지만 ) 동명의 영화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불꽃 튀는 대결도 없고 극적 반전도 없다.계속되는 다툼과 명령,서류들이 존재할 뿐이다.헐리우드식 법정드라마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카프카의 원작이 현재의 법원에 훨씬 가까운 것 같았다.민사재판이 이러하니,형사재판을 받는 사람들이나 법에 자신의 삶을 걸어야 하는 사람은 오죽할까,싶었다..
법원의 직원들은 도무지 평범해 보이질 않았다.그들의 달싹거리는 입놀림이 사람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 만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아무리 가볍고 단순한 판결이라도 개인과 개인의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대하다는 사실을,그들은 교과서 이외의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까..글쎄요,싶다.인혁당 사건을 다시 대하니 더욱 그런 생각을 갖는다.내가 이회창이라면,얼굴도 못 들지 싶다...(근혜 누나는 예외로 두자,그녀는 귀족의 혈통이다.물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우리와 같은 세계를 사는 분이 아니다 ) 나는 법원에 있는 내내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라고 일컬어지는 법조인들의 실제 두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다..
김명호 교수의 '석궁'은 어쩌면 '그들만의 언어'에 대한 일격이었을 것이다.'해고절차가 정당하니,해고도 정당하다'는 그들의 문법.그 문법은 물론 자의적으로 적용된 것이다.그는 석궁으로 그 문법책에 화살을 날린 것이다.그러나 김교수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사안에는 경중이 있는 것이다.강풀의 '26년'은 인정할 수 있지만,김교수의 석궁은 인정하기가 힘이 들다.교대 앞은 OK목장이 아니며,김명호씨는 와이어트 어프가 아니다.문제의 본질은 삼성이라는 리바이어던에 있다..물론 그렇다고 '석궁'이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것만은 아니다.'석궁'하나가 수많은 인간군상의 면목을 밝은 대낮에 드러낸다.법원과 판사,600년이 되었다는 성균관 대학교,그리고 교수들의 사회..
법원 가는 날엔 언제나 말 못 할 스트레스가 있다.전날 저녁부터 압박감에 소화가 잘 안된다.그래도 1월 23일은 좀 희망이 있었다.저녁 8시에 올림픽 공원에서 하는 에릭 클랩튼의 콘서트 때문이다.오랜 친구 하나가 콘서트를 예약했다.그는 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400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려 온다.나 역시 1월 23일이 아니었다면,병원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음,,그런 의미에서 법원은 내게 귀중한 콘서트 하나를 선물해주었다.고마워해야 하는 건가..어쨌든 클랩튼을 생각하며 법원의 스트레스를 버티어내면 된다.
그 친구와 난 20년이 넘게 에릭 클랩튼을 들었다.클랩튼의 나이가 이미 62세이고,그가 우리나라에 자주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린 1월 23일이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에 동의했다.
16시.
변호사와의 면담 역시 법원에서의 일정처럼 간단하게 끝이 났다.그는 언제나 'Don't worry be happy'라고 얘기한다.뭐라고 하겠나,웃을 수 밖에.그는 내 통역사이다.법의 세계라는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데에 따르는 돈이 많이 드는 가이드이다..그래도 그는 꽤나 양심적인 사람 중 하나이다.내가 변호사하고 재판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면서도 끝까지 도와주겠노라고 약속한 사람이니 말이다..그에겐 '전관예우'따위가 없다.
17시.
덕수궁 옆.서울시립미술관.옛날엔 법원이었던 것 같은데..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르네 마그리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주말에 시간을 낼 수 없는 내 현재 삶의 특성상,도저히 볼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던 전시회였다.법원은 내게 절호의 짜투리 시간이라는 보너스를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애호가라는 것은 아니다.미술,잘 모른다.전시회를 자주 가는 것도 아니며 주변에 미술과 연관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아는 화가라곤 삶이 영화로 표현된 몇몇 화가들..고호나 잭슨 폴록,고갱,바스키아...이 정도..그래도 내가 르네 마그리트를 기억하는 이유는 폴 사이먼의 1983년 앨범,
어느 날 폴 사이먼이 친구 집에 찾아가 보게 된 옛 화가,르네 마그리트 부부의 사진을 노래로 옮겼다고 한다.그리고 그 사진 제목이 바로 이 노래의 제목과 일치한다.낭만적인 화가 커플의 어느 날 밤을 아름답게 묘사하였다.이 노래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담당한 사람은 바로 영화음악의 거장 George Delerue이다.바로 이 노래 덕택에 난 르네 마그리트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인터넷 서핑을 통해 마그리트의 몇몇 그림을 보게 되었는데,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림들도 있었다...또 그림들 중 몇 개는 영화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영화 속 이미지와 연계된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은 일종의 작은 기쁨이다..
|
어? 이젠 혼자가 아니쟎아! (0) | 2007.03.19 |
---|---|
Clapton is still GOD !! (0) | 2007.01.31 |
[스크랩] Paul Simon / Armistice Day (0) | 2006.09.22 |
노인과 미국 (0) | 2006.08.30 |
답장 1.<황라열 연구> (0) | 2006.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