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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3일..,<법원과 마그리트>

신의 영화들/정체에 대해 떠들기

by 폴사이먼 2007. 1. 2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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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4시.

 

법원에 있었다.햇수로는 3년째를 끌고 있는 지루한 민사재판.재판은 사람을 정말로 지치게 한다.진력이 나게 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이 재판을 시작하기 전엔 '법'이라는 것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하고,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도 별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재판 이후에 여러가지가 많이 변했다.예전엔 '법'

이라는 것이 시민사회에 필요한 '룰'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이런 일 저런 일 겪어 보니,판사도 사람이고 변호사도 경제인이며 검사도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법'이라는 체계가 꼭 진실을 100% 반영하는 것도 아니며,그 적용이 상당히 자의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법의 세계 안에서 쓰이는 언어들은 일반 사회에서 쓰이는 언어와 그 시스템과 의미가 상당히 달라 보였으며,그 언어를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세계에서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나마 알게 되었다

변호사를 공연히 고용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난 법원에 들어갈 때마다 프란츠 카프카를 자꾸만 떠올렸고,그의 소설 '심판'과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했던 ( 정확하지는 않지만 ) 동명의 영화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불꽃 튀는 대결도 없고 극적 반전도 없다.계속되는 다툼과 명령,서류들이 존재할 뿐이다.헐리우드식 법정드라마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카프카의 원작이 현재의 법원에 훨씬 가까운 것 같았다.민사재판이 이러하니,형사재판을 받는 사람들이나 법에 자신의 삶을 걸어야 하는 사람은 오죽할까,싶었다..

 

법원의 직원들은 도무지 평범해 보이질 않았다.그들의 달싹거리는 입놀림이 사람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 만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아무리 가볍고 단순한 판결이라도 개인과 개인의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대하다는 사실을,그들은 교과서 이외의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까..글쎄요,싶다.인혁당 사건을 다시 대하니 더욱 그런 생각을 갖는다.내가 이회창이라면,얼굴도 못 들지 싶다...(근혜 누나는 예외로 두자,그녀는 귀족의 혈통이다.물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우리와 같은 세계를 사는 분이 아니다 ) 나는 법원에 있는 내내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라고 일컬어지는 법조인들의 실제 두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다..

 

김명호 교수의 '석궁'은 어쩌면 '그들만의 언어'에 대한 일격이었을 것이다.'해고절차가 정당하니,해고도 정당하다'는 그들의 문법.그 문법은 물론 자의적으로 적용된 것이다.그는 석궁으로 그 문법책에 화살을 날린 것이다.그러나  김교수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사안에는 경중이 있는 것이다.강풀의 '26년'은 인정할 수 있지만,김교수의 석궁은 인정하기가 힘이 들다.교대 앞은 OK목장이 아니며,김명호씨는 와이어트 어프가 아니다.문제의 본질은 삼성이라는 리바이어던에 있다..물론 그렇다고 '석궁'이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것만은 아니다.'석궁'하나가 수많은 인간군상의 면목을 밝은 대낮에 드러낸다.법원과 판사,600년이 되었다는 성균관 대학교,그리고 교수들의 사회..

 

법원 가는 날엔 언제나 말 못 할 스트레스가 있다.전날 저녁부터 압박감에 소화가 잘 안된다.그래도 1월 23일은 좀 희망이 있었다.저녁 8시에 올림픽 공원에서 하는 에릭 클랩튼의 콘서트 때문이다.오랜 친구 하나가 콘서트를 예약했다.그는 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400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려 온다.나 역시 1월 23일이 아니었다면,병원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음,,그런 의미에서 법원은 내게 귀중한 콘서트 하나를 선물해주었다.고마워해야 하는 건가..어쨌든 클랩튼을 생각하며 법원의 스트레스를 버티어내면 된다.

 

그 친구와 난 20년이 넘게 에릭 클랩튼을 들었다.클랩튼의 나이가 이미 62세이고,그가 우리나라에 자주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린  1월 23일이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에 동의했다.

 

16시.

 

변호사와의 면담 역시 법원에서의 일정처럼 간단하게 끝이 났다.그는 언제나 'Don't worry be happy'라고 얘기한다.뭐라고 하겠나,웃을 수 밖에.그는 내 통역사이다.법의 세계라는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데에 따르는 돈이 많이 드는 가이드이다..그래도 그는 꽤나 양심적인 사람 중 하나이다.내가 변호사하고 재판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면서도 끝까지 도와주겠노라고 약속한 사람이니 말이다..그에겐 '전관예우'따위가 없다.

 

17시.

 

덕수궁 옆.서울시립미술관.옛날엔 법원이었던 것 같은데..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르네 마그리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주말에 시간을 낼 수 없는 내 현재 삶의 특성상,도저히 볼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던 전시회였다.법원은 내게 절호의 짜투리 시간이라는 보너스를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애호가라는 것은 아니다.미술,잘 모른다.전시회를 자주 가는 것도 아니며 주변에 미술과 연관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아는 화가라곤 삶이 영화로 표현된 몇몇 화가들..고호나 잭슨 폴록,고갱,바스키아...이 정도..그래도 내가 르네 마그리트를 기억하는 이유는 폴 사이먼의 1983년 앨범, 때문이다.그의 앨범들 중 가장 상업적으로 실패한 이 앨범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그 중에서도 가장 로맨틱하고 가장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노래가 바로 < Rene and Geogette Magritte with their dog after the war>이다.

 

어느 날 폴 사이먼이 친구 집에 찾아가 보게 된 옛 화가,르네 마그리트 부부의 사진을 노래로 옮겼다고 한다.그리고 그 사진 제목이 바로 이 노래의 제목과 일치한다.낭만적인 화가 커플의 어느 날 밤을 아름답게 묘사하였다.이 노래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담당한 사람은 바로 영화음악의 거장 George Delerue이다.바로 이 노래 덕택에 난 르네 마그리트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인터넷 서핑을 통해 마그리트의 몇몇 그림을 보게 되었는데,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림들도 있었다...또 그림들 중 몇 개는 영화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영화 속 이미지와 연계된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은 일종의 작은 기쁨이다..


 

Rene And Georgette Margritte With Their Dog After The War

 

Rene and Georgette Magritte
With their dog after the war
Returned to their hotel suite
And they unlocked the door
Easily losing their evening clothes
They danced by the light of the moon
To The Penguins
The Moonglows
The Orioles
And The Five Satins
The deep forbidden music
They’d been longing for
Rene and Georgette Magritte
With their dog after the war

Rene and Georgette Magritte
With their dog after the war
Were strolling down Christopher Street
When they stopped in a men’s store
With all the mannequins
Dressed in the style
That brought tears to their
Immigrant eyes
Just like The Penguins
The Moonglows
The Orioles
And The Five Satins
The easy stream of laughter
Flowing through the air
Rene and Georgette Magritte
With their dog apres la guerre

Side by side
They fell asleep
Decades gliding by like Indians
Time is cheap
When they wake up they will find
All their personal belongings
Have intertwined

Rene and Georgette Magritte
With their dog after the war
Were dining with the power elite
And they looked in their bedroom drawer
And what do you think
They have hidden away
In the cabinet cold of their hearts?
The Penguins
The Moonglows
The Orioles
And The Five Satins

For now and ever after
As it was before
Rene and Georgette Magritte
With their dog
After the war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는 르네 마그리트의 여러 그림들을 참조했다.미술관엔 바로 저 그림들이 보이고 있다.젊은 예술가 커플들의 하루 저녁,정원에서 비쳐오는 달빛에 맞춰 옷을 벗고 춤을 추는 낭만적인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중간의 펭귄스나 오리올스나 문 글로우스는 그 당시 잘 나가던 두왑 밴드의 이름들이다..

 

이 화가를 유난히 좋아하던 블로거 h역시 생각난다.그는 마그리트의 매니아이다.그러나 난 그의 인생이 그 화가하고는 거의 닮아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그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방학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연인들..홍보작업에 성공한 것인지,마그리트의 팬층이 두터운 것인지..사람들이 많이 붐빈다.평일이어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중간중간 그림을 설명하는 스케쥴도 있고..사람들이 우우 하니 몰려다니는 분위기다.클랩튼의 공연장은 이보다 훨씬 혼잡할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들이다.나는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시간과 공간의 교차,그리고 혼합을 읽는다.서로 다른 공간의 사물들과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물들이 한 공간에 배치되서 복잡한 효과를 나타낸다.시공간의 믹서기 같은 그림들이다.인터넷을 통해 찾아낸 몇몇 그림들을 올려 본다.

 

 

그림이 좀 작다.이해하시라.제목은 내 기억에,<이렌느,금지된 책>인가 그럴 것이다.나는 이 그림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알레프>를 떠올렸다.손가락 위의 공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시간'을 나타낸다.영원히 변하지 않는 시간의 파노라마,그 지속적인 유동..금지된 책을 보려면 오른쪽의 계단을 내려와야 한다.누군가 (혹시 이렌느?)의 손가락은 아주 다른 공간에서 저 시간의 영원한 비밀인 공(보르헤스 식으로 말하자면 '알레프')을 가리킨다.비밀을 아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비밀은 지하실에 숨겨져 있다.그래서 이 지적인 과정은 금지되어져 마땅하다.

 

이 그림은 더 작다.이해하시라.사실 제목도 <보이지 않는 선수>이던가? ,잘 모르겠는데,120억짜리 그림이라고 하더라.잘 클릭하면 크게 나온다.여기엔 더 많은 사건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있다.중앙에 크리켓을 하는 선수들과 선수들 위로 유유히 헤엄치는 바다거북들,숲을 연상시키는 테이블의 다리들,그리고 오른쪽 밑의 입을 가린 여인에 이르기까지,많은 시간과 공간의 사람들과 사물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다.마그리트의 세상은 이렇게 영겁 속에서 퓨전된 한 타이밍이다.해석은 믿지 마시라.나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거니까..

 

 

큰 그림을 찾아냈다.제목이 <여행의 결과>였던가? 여행의 열매들은 이렇게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시간의 숨결들은 테이블에,와인병에,책에,과일에,벽에,바닥에,켜켜이 쌓여 있다.이 여행이 단순한 일회성 여행인지 아닌지 우린 아직 모른다.몇 번의 여행,서로 다른 몇 장소로의 여행이 한꺼번에 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마그리트는 기억 속에 몇 장면을 한꺼번에 융합시켜 화폭에 그린다.적어도 내 생각엔 그렇다..

 

시간이 없으므로 오늘은 여기까지,내일 다시 마그리트의 그림에 대한 내 마음대로의 해석을 덧붙일까,한다..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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