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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Ann,Annie 그리고 Ahn.

신의 영화들/culture club

by 폴사이먼 2012. 10. 1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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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얘기할 세 명의 뮤지션은 모두 여성이다.이들의 공통점은 모두들 미국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기록했으나,미국에서 출생하지는 않았다는 것,그리고 first name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것이다.말도 안되는 유사성을 가지고 글을 시작했다고 얘기하지는 마시기 바란다.어차피 세상의 유사성,세상의 글들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Anne,Ann,Annie..이것이 이들의 퍼스트 네임이다.스펠링을 잘 외우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언제나 헷갈릴 수 있는 이름들이다.

 

첫번째 뮤지션은 Anne Murray.아마도 어떤 분들에겐 갑작스런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 이름일 것이다.그러나 그녀가 전성기를 1980년대에 보냈으므로 또 어떤 이에게는 흘러간 가수이거나,전혀 기억나지 않는 이름일런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녀의 노래들 중,.you needed me,I just fall in love again 같은 노래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했었다.1945년 캐나다 출생.부드럽고 편안한 보컬,무리없는 음색,지친 삶을 위로하는 듯한 가사,사랑과 삶을 속삭이듯 노래했던 이 여가수는 팝과 컨트리 음악,adult contemporary,그리고 가스펠 음악에 이르기까지,매우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서 활동했던 사람이었다.

 

불멸의 캐나다 소설 <빨간머리 앤>의 실제 무대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조금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그러나 빨간 머리는 아닌) 앤 머레이는 미국에서 히트한 캐나다 여자 가수의 원조 쯤 되는 사람이다.그녀를 뒤이어서 샤니아 트웨인,셀린 디온,sara mclachlan 같은 캐나다의 후배여성 가수들이 연속으로 미국에 등장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그녀의 노래는 아마 you needed me 였을 것이다.아주 오래 전,아마 라디오 fm 방송을 통해서 였을 것이 틀림없다.조그맣지만 강하게 울려나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엄마는 아니고,고모나 이모 정도의 목소리쯤 되는,안심시켜 주듯 나직이 읊조리는 목소리.그런 목소리의 소유자가 바로 앤 머레이였다.사랑이나 이별,절망 따위의 감정에 대해선 쥐뿔도 몰랐고,삶의 복잡한 문제를 마주 대한 경험도 없으면서도,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나는,어쩐지 위로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노랫말 역시 위로 그 자체,사랑의  순기능 그 자체,혼란스럽고 비탄에 빠진 파트너를 위로해주는,완벽한 치유 기능을 가진 사랑의 상대방.어쩌면 불가능할 것 같은 존재로서의 사랑을  얘기한다.언제나 옆에 존재하며 눈물을 닦아주고,삶의 절망을 맞이하여 완전히 구겨져 버린 마음 내부를 온전하게 펴 주고 잡아주는..그래서 마치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완벽한 사랑의 파트너도 앤 머레이의 음색을 통해서라면,어쩐지 어디엔가는 있을 것 같은,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일말의 가능성을 가진다.Anne Murray 는 그런 가수였다.이것 역시 마법이다.

 

그리고 다음 뮤지션 ANN Margret.앤 머레이와는 매우 대조적인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1941년 스웨덴 출신의 여자 가수.1960년대에서부터 가수와 배우 이력을 시작해 21세기에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는 이 사람은 가수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나 TV 시리즈 배우로도 잘 알려진 사람이다.오히려 배우로서의 이력이 가수로서의 이력을 능가한다고도 얘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엔 당연히 1960년대, 전성기의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출연한 <비바 라스베가스>의 여주인공으로 그 존재감을 피력하기 시작했었다.(그리고 그녀는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팝 음악의 황제 엘비스와 염문을 뿌렸다) 잠깐 그 영화에서의 그녀를 보자.

 

 

 

이 영화에서의 그녀는 완벽한 엔터테이너,춤과 노래와 연기가 다같이 가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다.연기가 가능한 이효리라고나 할까.그녀는 1960년대 초반에,쇼 비즈니스계에서 섹스 심벌로 키우려던 사람이었다.

 

 스웨덴에서 태어났지만 5세 때 시카고로 이민 왔고,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수와 배우의 꿈을 이루려 노력했었다.배우와 음악 양쪽에서 재능을 발휘한 그녀는 다섯 개의 골든 글로브와 에미상,그래미상,그리고 아카데미 상에도 두 번이나 노미네이트 되었던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대배우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스타일의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명시절,마릴린 먼로와 조지 번스의 눈에 띄여서 픽업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유명하며,초기엔 여자 엘비스 쪽으로 자신의 음악적 상황을 조준했던 사람이다.(여자 엘비스 쪽으로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하지만 거친 음색과 파워풀한 댄스가 그녀에게 그런 경험의 유산으로 남았고,이것은 배우로서의 이력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서도 매우 소녀적이고 감성적인 노래 역시 가능했던 사람이었다.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그녀의 노래

what am I supposed to는 가녀린 왈츠와 감미로운 음색이 둘 다 섞인 노래였다.그러나 이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한때의 섹스 심볼로 자리잡을 뻔 했던 사람이었던 거다.

 

 

 

 

(이 유튜브 동영상엔 젊은 날의 그녀의 실제 모습이 잘 담겨져 있다...)

 

세번째 앤은 애니 레녹스(Annie Lennox)다.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서 가장 성공한 여성 뮤지션 중 한 사람이며,또한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여자 가수 중 하나였다고 얘기될 수 있는 사람이다.1945년 스코틀랜드 에버딘 출생.하층계급 출신이었으나 부모의 교육열에 힘입어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던 사람이다.플루트를 전공했으며,밴드에 합류한 것도 'dragon's playground'라는 밴드에 플루티스트로 합류하면서 부터이다.

 

학비를 벌기 위해 카페의 웨이트리스로 일해야 했던 그녀가 정작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한때의 연인이었던 데이브 스튜어트와 결성했던 듀오 그룹 'eurythmics' 때문이었고,이 그룹에서 보컬을 담당했던 그녀는,강력하면서도 유려한 벨벳 같은 목소리와,그러면서도 터프하고 록앤롤을 연상시키는 창법으로 단번에 정상으로 진격해 갔었다.짧은 머리에 염색을 하고 남자처럼 정장을 입은 상태에서 강한 공격성을 띤 눈으로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뮤직 비디오는,그 영상 자체로도 충분한 화제를 낳을 수 있었으며 그녀를 동성애자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시키기까지 했었다.

 

 synth pop 혹은 synthesizer pop이라는 1980년대 당시의 신조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또 당대의 성적 조류와 젊은 사람들의 흐름과 함께 했던 그녀의 움직임은,유리스믹스 시절이 끝나고 또 빛나는 솔로 시절을 보낸 후에는,사회적인 관심과 대외적인 활동으로 그 맥락을 이어갔다.

 

그녀의 강인한 앨토 보컬은 그녀가 그린 피스나 앰네스티를 후원하거나 에이즈 환자 돕기 자선공연,티베트나 넬슨 만델라 후원 공연,버마와 가자 지구를 위한 음악 활동을 할 때에도 변하지 않았다.어쩌면 애니 레녹스 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았던 뮤지션도 흔하지 않을 거다.100년 전의 여성 뮤지션이라면 도저히 하지 못할 일들을 그녀는 다 해냈다.(그리고 결국 부자가 되었다.^^)

 

그녀는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를 부를 때의 강인하고 비범하면서도 주류를 멀찍이 벗어나는 기획상품으로서의 모습과

 

 

there must be an angel 에서의 연극적이고 여성적인 모습,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빛나는 카리스마가 다같이 가능한 매우 드문 여성 가수였다.

 

 

 

 

 

 

나는  sweet dreams 보다는 there must be an angel 을 더 좋아했었다.신세사이저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 역시,그녀의 강한 앨토 보컬에만은 어쩌는 수가 없었다...더구나 1990년대 ,그리고 21세기 이후의 그녀의 모습은 1980년대와는 또다른 무언가가 있었다.'아티스트'로 발돋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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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고 점심 먹고 들어왔더니 병원의 동료들이 이 글을 읽고 있었다.(이 녀석들은 수시로 내가 쓰다만 글들을 훔쳐 읽는다.그리고 마음대로 비평한다) 한 녀석이 말했다.

 

- 형,형 지금 대통령 선거 얘기 하고 싶은 거지? 여성 음악인들과 여성 정치가 박근혜를 비교하고 싶은 거지? 특히 앤 머레이의 여성적 음악을 박근혜라는 여성 정치인하고 비교하고 싶은 거고..

 

뭐,조금은 맞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나는 박근혜가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인 정치인이지만,'여성적'인 정치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물론 정치에 있어서의 '여성성',또 '여성성 그 자체' 에 대해선 또다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하지만 박근혜가 여성 정치인이면서도 여성의 권익을 위해서는 그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녀는 얼마 전 군 가산점 문제에 '당연히' 찬성했다.여성인 그가 미혼의 여성들의 취직에 일정 부분 제동을 건 것이다. 혹시 아들 가진 엄마들을   겨냥했던 걸까..) 게다가 그녀의 정당에 소속된 여성 정치인들 역시 그리 변변한 인물이 없다.그곳 특유의 인물군을 한 번 떠올려 보라.한숨이 절로 나올 것이다.최근에 합류한 재벌 좌파라는 아줌마 역시 이상스럽게도 그 정당 특유의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행색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어쨌든 앤 머레이의 모성적 부드러움,앤 마그렛의 섹시한 발랄함,그리고 애니 레녹스의 전투적 지성..그 중에서 박근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세 명의 앤에 대한 글에서 박근혜를 언급할 수 있단 말인가..나는 녀석을 약간 흘겨보았다.

 

- 아마 세 사람의 여자 가수들을 내놓은 것도 세 명의 대선후보들을 얘기하려고 했을 거야

 

또다른 동료도 옆에서 이죽거렸다.문재인 지지자인 그에게 물었다.

 

-문재인은  이 세 명의 '앤' 중에서 어느 축에 끼는 거냐?

 

동료는 문재인이 세 가수의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강변했다.그가 뜬 것은 친구이자 동지였던 노무현 전대통령의 장례식 때였는데,그 장례식을 통해서 강건하면서도 온유하고 책임감을 저버리지 않는 인상,끝장의 매너,그리고 증오의 대상을 눈 앞에 두고서 냉정을 잃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었다고 그는 말했다.텔레비젼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발랄한 면모를 보완해 주었고,전투적 지성이야말로 원래 그가 보유한 것이라고 그는 떠들었다.

 

- 문재인의 문제는 바로 그거야.

 

나는 그를 놀려주고 싶었다.문재인이 세 명의 '앤'의 특성을 고루 갖추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그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그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꼭 안철수 때문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문재인은 아직 문재인 나름의 브랜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겨우 했던 게 군복 코스프레인데,그 정도의 지능지수로 선거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더구나 '단일화' 이야기도 너무 일찍 꺼냈다.우선 자기 자신을 더 어필한 후에 해야 할 말을 민주당은 벌써 떠들고 있다.단기필마의 안철수를 공연히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만 연출하고 있으며,단일화 필승론이란 것도 완벽한 실체는 아니다.아니,환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형이 하필 ANN 발음을 문제 삼았다는 것은 다분히 성이 '안' 씨인 안철수를 겨냥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처음의 동료가  안철수를 끌어들였다.(그때 나는 글 제목에 Ahn을 추가하려고 마음먹었다) 사실 안철수는 세 명의 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다 갖추었다.그는 앤 머레이의 안정적 여성성을 소유하고 있다.'소통 가능'이란 그의 이미지를 그가 끝까지 유지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또한 젊은이들과의 일련의 '콘서트'를 통해 발랄함 역시 강점으로 가지고 있다.게다가 그의 삶의 이력은 애니 레녹스 식의 진지한 지성과 함께 무언가 남과 다른 이례적인 이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는 가수의 선호도와는 또 다르다.가수라면,우리는 세 명의 앤을 다 선택할 수 있다.앤 머레이와 앤 마그릿 그리고 애니 레녹스를 한꺼번에 좋아할 수 있다는 거다.그러나 대통령 선거는 오직 한 명의 앤 만을 선택해야 하는 시험문제다.안철수는 자신의 특성 중 무엇을 가장 부각시킬 것인가.그는 '무언가를 개혁하겠다'라고 얘기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실체를 밝히지는 않았다.(혹은 내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안철수의 운명은 아마 거기서 결정날 거다.어떤 자신의 강점을 특성화 시킬 것인가에서.또한 그에게 있어서도 문재인과의 단일화는 또 하나의 함정이다.단일화 과정에서,두 사람이 무언가를 거래하려는 순간,공동정부라는 미명 하에 권력의 분점을 논의한다고 유권자들이 해석하는 순간,그 둘의 운명은 거기서 그냥 끝장 난다.게다가 이른 단일화가 승리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매력이 우선,선거의 공학으로서의 단일화는 최후로 미루어놓아야 한다...,따라서 안철수는 지금 잘 하고 있다.그는 자꾸만 반 박근혜라는 프레임에서 몸부림치려고 버둥대지만 보수 언론은 그를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고 있다.안철수는 아마 최후의 한 달,TV 토론이나 이런 것에서 승부수를 던지려 하겠지만,언론을 대할 때 그는 아직 표정관리가 잘 안된다.당연하다.그런 연습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라고 나는 그들에게 얘기하려 했었다.그러나 안철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의사들에게 그 얘길 하긴 어려웠다.그냥 마음 속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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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다가온다.가을이 깊어졌을 때 내면의 행복이 최고조에 달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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