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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영화 8.올해의 우리나라 영화들에 대한 또다른 메모들.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13. 12. 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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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 (오멸)

 

 

 

때로는 거의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혀지는,곧 살해당하게 될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는 일은 생각 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죽이는 자와 죽는 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하는데,이 피할 수 없는 순간과 더불어,산의 능선과 겹쳐지는 살해된 여학생의 몸 그림자 그리고 결국은 학살당하고 마는 순박한 사람들의 동굴 안 패닝 샷을 제시하면서,그 끝나지 않은 세월의 영정 사진들을 영화 곳곳에 흩뿌려 놓는다.

 

  시체를 탐하는 까마귀들,연기와 어두움을 헤치며 야차처럼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는 군인들,살해당한 할머니의 품 속의 감자들..처음엔 이런 비극과 학살의 영화적 재현이 원혼의 씻김굿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었다.그러나 잘 정제되고 분배되어 그 시간의 벽화처럼 구성된 다양한 캐릭터들과 사건들을 보면서 결국은 설득되고 말았다.승리만이 해원은 아니다.아직도 어떤 사건들은 위로라는 낱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세월은 끝나지 않았다.

 

10.공정사회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복수자의 아이콘을 원했지만 결국 금자씨를 넘어서지 못했다.완소 배우 장영남이 그야말로 고군분투하지만,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빈 곳이 많은 설정,그리고 너무 많은 복수자의 설정 (그러나 금자씨는 그런 멀티복수 조차 가능했었다) 이 결론부의 극적인 폭력을 방해한다.공허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영화엔 더 강력한 여성 폭력이 필요하다.치아 뽑는 것 정도로는 많이 부족하다.

 

11.러시안 소설(신연식)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몇 편의 소설에 기반한 영화 전반부의 내러티브는 후반부에 벌어지게 될 일들을 미리부터 예시하며 관객에게 매혹과 궁금증을 선사한다.배우들의 바르고 또박또박한 내레이션 역시 색다른 기운을 풍긴다.그러나 오히려 이런 전반부의 환상의 무게가 후반부의 '현실'에 압박으로 작용해 버린다.뒤로 갈수록 영화는 '리얼'을 잃고 비틀거린다.그냥 페테르스부르크적 환상을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진심으로 궁금했다.어쨌든 매력적인 영화.

 

12.관상 (한재림)

 

 

 

 

1. 개그와 웃음으로 시작해 액션과 눈물로 마무리하는 히트 영화 특유의 과잉에의 의지...참 사라지지도 않는다.이런 경향,영원할런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이런 경향이야말로 본질적 승리자가 될 수도 있겠다.

 

2.배우들의 능력과 이미지는 무분별하게 낭비되고 (송강호의 비탄과 뜀박질은 더 자제되었어야 했으며 김혜수의 경우는 우정출연이었음이 분명하다는 의심을 살 정도),덜어내어야 할 장면들의 분량도 만만치 않다.이런 기획 영화에 대한 지적을 감독에게만 돌리는 것도 어쩌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3.다시 말하자면 사극을 좋아하시는 아빠 엄마 삼촌 외숙모를 모시고 극장에 가는 효도용 영화라고 할수 있겠다.흥행에의 강렬한 의지에 애써 눈을 감을 수 있다면 말이다. 수양의 캐릭터에 약간의 승부수를 던지고 있지만,그 마저 조폭과 마초 사이,권력과 폭력 사이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만다.이정재가 문화방송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 역할을 맡았던 이덕화로 변하는 걸 보는 건 싫다..

 

13.전설의 주먹 (강우석)

 

 

 

이 영화의 흥행 실패의 원인.

 

1.분명히 승리의 메세지를 관객에게 건네주는 엔딩 장면이 어쩐지 판타지로 보이고 말  정도로 영화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돈이라는 공포스런 우상에 대한 관객의 정서적인 거부 때문에

2.굵은 메세지만 제대로 던져주면 디테일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386 특유의 습성에 대한 알러지 때문에

3.적어도 40 세가 넘는 엄마 아빠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14.7번방의 선물 (이환경)

 

 

 

이 엄청난 흥행 영화에 대하여 나는 좋은 느낌을 갖지 못하고 말았었다.그렇지 않아도 판타지인데(이렇게 착한 교도소라니..,차라리 교도소의 선인들로 제목을 바꾸던가),거기에 마지막 열기구 판타지로 노란색 환타까지 끼얹을 필요는 없었다.

 

눈물과 슬픔의 오남용이라고까지 말하지는 않겠지만,정상적인 사회라면 수백만명이 본 이 영화로부터 사형제가 기반이 된 허무하고 부조리한 사법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항의가 잇달았어야 옳다.그러나 노란색 환타의 판타지와 너무나 귀여운 아역 배우가 무언가를 방해하는 것이다.

 

착한 눈물 만을 유도하는 사회 역시 병리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

 

15.1999, 면회 (김태곤)

 

 

 

 

군대,면회,외박,술.젊은 날의 일탈적 하룻밤.이 영화는 대다수의 남자들이 언젠가 겪었을 듯한 밤을 작가의 경험에 기초해서 무난하게 풀어간다.그렇다,소소하지만 무난하다.영화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왜 젊은 감독들은 모두 다 강원도로 달려가는가.강원도의 황량한 풍경이 그들에게 무엇을 주는 걸까? 강원도 영화가 미국으로 치면 서부 영화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는 것일까?

 

 

술,정처 없는 외로운 차량의 질주,영화를 싸고 도는 외롭고도 푸른 젊은 정서,언쟁과 부딪침,군대라는 거대하고 강제적인 시간 상실 매커니즘.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강원도 산야의 헐벗음..우리나라 젊은 영화 작가들의 공통정서다.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적어도 만주 벌판의 고독 정도는 건져내야 하지 않겠는가..

 

16.명왕성 (신수원)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재와 살인 사건에 이르게 된 과거 사건들의 플래시백이 결합된 이 영화를 입시라는 대학살적 모멘트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스릴러로만 보면 재미없을 것 같다.원래는 보안사의 고문실이었던 학교,학생들간의 출신 계급 문제,평형감각을 잃은 개구리로 묘사되는 중간계층,김꽃비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독립언론 스러움 등이,이 영화를 우리 사회 전체의 본질적인 모습과 윤리와 도덕을 탐구하는 영화로 비춰보이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차라리 학교 전체를 다 폭파시켰으면 어땠을까 싶다.좀 더 화끈하게 말이다.

 

17.가족의 나라 (양영희)

 

 

 

 

또 하나의 슬픈 영화.권력,국가,이데올로기가 한 개인의 생명을 압착시켜 손상시키는 장면을 꼼짝없이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종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그렇다고 무작정 '반북'이 종북을 이길 거라는 단순무식한 생각을 품게 되는 사람도 없을 거다.종북이란 환상이다.반북 역시 그냥 정치적 레토릭이다.평화와 전쟁이란 말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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