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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서 노래하기.Alabama <mountain music><dixieland delight>

신의 영화들/정체에 대해 떠들기

by 폴사이먼 2012. 8. 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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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과 열대야 때문에 수면의 리듬이 약간 바뀌었다.수면 시간은 줄어들었고 수면 개시 시간은 늦쳐졌다.어쩔 수 없는 일이다.승부란,그 어떤 것이든 인간의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므로 사람들은 그 승부의 결과와 과정에 집중하기 마련이고,결국 올림픽 같은 대규모의 승부 시리즈는 스포츠가 주는 상황들 말고도 많은 부수적인 결과들을 파생시킨다.

 

예를 들어 엄청난 돈을 벌어제끼는 사람들이 있다.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아마 대표적인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그들은 스포츠와 돈이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돈을 위해 막강한 권력을 건설해왔다.뭐..그냥 그렇다.그런데 그런 사람들 말고도 매우 공교로운 부류들, 올림픽과 같은 커다란 이슈가 진행 중일때 사람들이 싫어하는 어떤 공적인 일들을 재빨리 진행시키려는 어둠 속의 설치류 같은 작자들도 있다.또 예를 들자면 인천공항의 매각,은진수의 석방,독도 문제,저축은행 문제,영광 원전 문제..이런 문제들이 하루 빨리 덮어지길 바라면서 설치류들은 설치류들 특유의 암울한 운동성으로 올림픽의 휘황한 조명 아래에서 재빨리 그리고 또 재빨리 일들을 진행시킨다.그것만으로도 부족했던지 이번엔 걸그룹 티아라까지 동원한다.(확실한 증거가 있는 말은 물론 아니다.아마 쓸 데 없는 의심일 것이다.그러니 티아라의 지지자들은 너무 화내시지 말기 바란다)

 

한편 자신의 일들이 덮어지길 원하는, 설치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통합진보당의 구주류 사람들이다.그들은 설치류라기 보다는 깊은 숲속에 살고 있는 희귀종의 조류 정도가 될 것이다.숲에서 도시로 나오자 적응에 실패하고 말았다.도시의 공해 속에서 숨쉬기가 힘들었나 보다.간단하게 말해서 그들은 일종의 오심을 저질렀다.신아람의 펜싱 1초보다도 더,유도 조준호의 경우보다도 더,박태환의 출발 부정 논란보다도 더,심각한 일들을 저질러놓고도,거의 습관이 된 오심을 저질러 놓고도, 그들은 그냥 그렇게 자기가 가던 길을 간다.올림픽의 일부 심판 무리들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음악을 선사하련다.컨트리 음악을 하는 그룹 Alabama의 노래 <mountain music>.그들에게 가장 어울릴 노래다.

 

 

 

산 속에 사는 이민자들 그리고  카우보이들의 노래.그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즐겨 연주했다는 음악을 다시 연주하고 싶다고 선언하는,,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언급되는 노래.가사 속에선 심지어 세월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는 립 반 윙클 마저 언급된다.참 어울린다.

 

이 노래를 연주하는 그룹 앨라배마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풍미한 컨트리 음악 팀으로서,컨트리 음악하는 사람들 치고는 좀 특이한 것이,그룹의 구성이 거의 록 그룹처럼 이루어졌고 음악 속에는 드럼과 일렉트릭 기타 같은 컨트리스럽지 않은 악기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시류를 탄 것이다.그들은 20세기 후반의 음악적 상황에 적절히 적응했으며 상업적으로 꽤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도 역시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 노래의 제목인 <mountain music>이 꼭 산의 노래,산 속의 노래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mountain music은 실제로 컨트리 음악의 한 부류로서 현재의 컨트리 음악의 싹을 만들어낸 맹아 정도에 해당하는 음악이다.

 

얘기가 좀 이상하게 흘러가게 되겠지만,컨트리 음악 자체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백인들의 음악이라고 불리우는 컨트리 음악,미국인들 특유의 음악,미국 백인들이 마음 속의 고향처럼 여기고 있는 이 음악은 사실 20세기 전반기에 이르러서 태동한 음악이다.

 

애팔래치아 산맥 기슭으로 이민한 유럽 이민자들이,그들이 유럽에서 가지고 온 민속 음악들을 토대로 해서,전원에서의 유유자적한 삶과 그들의 청교도 정신 전체를 음악적으로 표현했던 것이 바로 컨트리,혹은 컨트리 앤 웨스턴 음악이다.이 음악을 지칭하는 말은 꽤 다양한데,흔히 말하는 촌뜨기 음악 hillybilly music이라는 말도 컨트리 앤 웨스턴 음악의 한 별명이다.아주 쉬운 멜로디와 화성,매우 단조로운 악기 구성  - 밴죠,만돌린,기타,피들 (컨트리 음악에서 사용되는 바이올린) 컨트라 베이스 등으로 이루어진다 - 으로 이루어진 이 음악들은,태동 초기에는 매우 종교적이고 엄격한 윤리가 깃든 가사가 지배적이었던 음악들이었다.

 

이민자들은 그들의 생활 - 신에 대한 찬양과 농경 생활 (rural music이라고 얘기된다),그리고 그들의 또다른 삶의 터전이었던 산 속에서의 일상 (이것이 바로 mountain music이다 ) - 을 단순한 음률에 실어 노래했고,인간의 삶 자체가 토양이 된 이런 음악들은 백 년의 세월을 관통해서 미국인들의 삶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사실 산악지방의 이주민들로서는 가족끼리 혹은 친구들과 모여 노래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것이다.거기에 유럽의 음악 (요들 송 같은)과 가스펠 음악들이 혼합된 것이 바로 마운틴 뮤직이다.마운틴 뮤직은 이렇게 일종의 어쩔 수 없는 폐쇄성으로부터 유래된 음악이다.통합진보당 구주류의 시작처럼 말이다.

 

그러나 컨트리 음악은 산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특히 라디오 프로그램의 활약이 그 음악의 대중화를 선도하기 시작했고,컨트리 음악의 고향이라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 같은 곳에서는 grand ole opry 같은 대형공연이 등장하면서 대중음악으로서의 외연을 넓혀 갔다.또한 컨트리 앤 웨스턴은 시대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답해 나갔다.

 

대공황과 2차대전,그리고 그에 이은 사회적 이주와 혼란의 와중에 컨트리 음악은 블루스나 재즈 그리고 심지어는 록 음악과도 결합되었다.행크 윌리엄스로 대표되는 홍키 통크 (honky tonk)음악은,컨트리를 산에서 끌어내려 바(bar)나 펍(pub)으로 데리고 갔다.그들은 블루스나 가스펠 음악,심지어 재즈까지 포함시키면서 음악을 변화시켜 갔다.경쾌한 피아노 연주와 스틸 기타가 포함되면서 음악의 외양이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컨트리의 기본 정신이 훼손되었던 것은 아니다.이것은 꼭 행크 윌리엄스라는 천재가 있어서만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다.시대적 조류와 변화에의 갈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컨트리 음악의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이 쟝르의 스타들이 탄생한 시기였다.쟈니 캐시나 태미 와이넷 같은 스타들이 나타났고,오케스트라로 편성된 음악이 그들을 뒷받침했다.(개인적으로는 이 시기가 내쉬빌 음악의 전성기라고 생각한다).1970년대엔 outlaw 음악이라는 컨트리 뮤직의 하위 쟝르가 태어나면서 윌리 넬슨 같은 사람들이 튀어나왔고,록과 결합한 컨트리 음악은 로커빌리라고 불리웠다.이 음악은 eagles,poco,byrds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을 낳으면서 컨트리 록,서던 록으로 발전해 나갔다.

 

현재의 컨트리 역시 마찬가지다.갖가지 쟝르들과 퓨전했다.컨트리 가스펠은 흔히 말하는 CCM으로 나아갔고 (이것은  본질적으로 성인들의 음악이다) 심지어 프로그래시브 컨트리라는 쟝르까지 생겨났다.그 와중에도 언제나 복고적인 경향은 존재했으며 돌리 파튼이나 에밀루 해리스 같은 대중적인 스타들도 복고 경향에 한 몫 하기도 했다.

 

이렇게 컨트리 음악의 생명력은 시대의 변화에 적절하게 조응하면서도 자신의 본질적인 생명력  - 삶을 노래하는 근원적으로 낙관적인 태도와 미국적 전통에 입각한 가족주의적 태도 - 을 잃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만약 그들이 여전히 산과 전원에만 머물러 있으면서,소치며 야영하면서 부르던 자기반영적인 음악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들 음악의 명칭은 그냥 Old west음악으로 굳어졌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대중을 향해서 끝없이 변화했고 그 결과 현재의 가스 브룩스 같은 컨트리 대스타를 낳을 수 있었고 현재의 음악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정한 미국 음악 쟝르의 역사를 우리나라 진보정치세력의 오늘날과 연결시키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런지도 모른다.그러나 분명히 어떤 진보세력은 아직도 마운틴 뮤직에 머물러 있으면서 카우보이와 광산 노동자들,그리고 외래 음악과 연결된 이주민들의 음악만을 연주하고 있다.그들은 경기의 오심 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자신만의 리그를 운영한다.심약한 정치 결사체,폐쇄적인 써클로 굳어져 가는 것이다.

 

현재의 지구 자본주의 구도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으로 볼 때,진보의 발언권은 절대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세력이 존재해야 하며 짓밟히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사람들 역시 필요하다.이 역할을 민주당이나 안철수 혹은 정부 공무원들에게 넘길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얘기다.그리고 진보의 기회는 바로 여기에서 찾아질 수 있다.그러나 지금처럼 산 속에 머물면서 마운틴 뮤직이나 부르고 있다면,그들의 기회는 이십 년 후,혹은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것이고,자본의 미친 드라이브는 아무런 제동장치 없이 지속될 것이다.이제는 산 위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만의 라인 댄스는 멈추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천덕꾸러기가 되어서야 되겠느냐 말이다.

 

물론 산 위에서,자신들의 이념적 순결함을 지키면서,그들만의 리그로서 존재하겠다는 결의에 차서,첫 시간에 대한 영원한 기억으로 현대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그렇다,복고는 언제나 가능하다.또한 최초의 느낌들을 보존하겠다는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인정해주어야 한다.(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수 감각,시간에 대한 보수적 감각이지만 말이다)

 

컨트리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컨트리 음악이 다른 음악 쟝르들과 퓨전되며 변화하자 거기에 반기를 들고 최초의 마운틴 뮤직을 지향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했다.음악사가들은 그들에게 블루그래스 (bluegrass) 뮤지션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블루그래스는 켄터키 주에 존재하는 소먹이는 풀을 지칭하며 상암동의 월드컵 경기장의 잔디 역시 블루그래스 잔디이다.블루그래스 음악의 대표 주자는 빌 먼로라는 사람이다.그는 만돌린의 명인으로 현악 밴드와 밴조를 위주로 음악을 만들어냈다.이러한 그들의 순수한 경향은 1940년대 후반 미국 남부를 시작으로 세력을 넓혀갔으며,드럼과 전자악기를 배격하는 그들의 음악은 흔히 무공해와 순수,소박함의 대명사로 음악사에 족적을 남긴다.가령 이런 음악이다.

 

 

 

 

(이 영상은 1955년에 grand ole opry show에 등장한 빌 먼로와 blue grass boys의 음악으로 우리 눈과 귀엔 그야말로 전형적인 컨트리 앤 웨스턴 음악으로 비친다.여기에 춤추는 마을 사람들이 끼어들고,멀리로 목장과 산이 보일 때,그것은 웨스턴 영화의 익숙한 풍경으로 변화한다.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목가적인 환상에 매몰되어 있을 것인가.진보당 사람들아...모여서 춤추고 노래하고 술 마시다가 사람은 늙어가고 삶과 시대는 끝나버리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후세에 실수가 아니라 죄악으로 기록될 여지가 있다.녹색연합을 대표한다는 어떤 국회의원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묘한 균형감각은 저 영상 속의 빌 먼로가 연주하는 만돌린 만큼의 가치도 없다..)

 

변화가 싫다면 적어도 튜닝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룹 Alabama는 1990년대에 (내 기억이 맞다면) <dixieland delight)라는 노래를 발표한다.딕시랜드.그것은 1910년대의 뉴올리언즈 재즈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다.1980년대에 mountain music을 노래했던 앨라배마도 90년대에는 딕시랜드로 떠났던 것이다.(물론 후자의 노래 역시 컨트리 음악이다.정교한 하모니와 컨트리 발성법으로 노래하는 것은 맞다.다만 제목이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다)

 

 

 

 

컨트리 음악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삶에 대한 위로였다.도시로 떠나왔던 시골 출신 사람들에게 그 음악은 자신의 출신 성분과 전원 생활을 음미하게 만들었다.기교를 부리지 않는 보컬과 복잡하지 않은 곡 진행 방식과 담백한 화성은 음악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고,그 결과 이 음악 쟝르는 자신의 수명을 계속 연장시켰다.(심지어는 우리나라에서 조차 이 음악을 부르는 동호인들이 존재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정치 세력이 시민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위로와 함께 희망이다.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오래 간다.그런 사람들이 오래 간다.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아니,튜닝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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