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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는 하모니가 필요하다.Al Di Meola

신의 영화들/정체에 대해 떠들기

by 폴사이먼 2012. 7. 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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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나는 은별이의 첫번째 콘서트 관람 계획을 짰다.올림픽 공원의 야외 콘서트장.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한때를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다.은별이가 워낙 음악을 좋아하고 (이 아이의 태교 음악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재즈였다),자신의 미래를 피아니스트로 설정하고 있는 통에 (물론 이녀석이 피아니스트라는 직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회에서 입는 드레스를 좋아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가 않다),녀석의 콘서트 데뷔를 빨리 앞당긴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일요일 오후 외에는 없었다.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일요일 라인업은 죄다 기타리스트들이었다.이병우,알 디 메올라,그리고 조지 밴슨.이 기타의 달인들에 과연 은별이가 적응할 수 있을까,나는 계속 반신반의 하면서도 도시락과 돗자리용 매트를 챙겨 공원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공원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우리는 뒷편에 자리를 잡고 쉴새없이 군것질을 해댔다.은별이는 '방해받지 않는 음식 쇼핑'에 몰두했고,나는 굳이 은별이의 무절제한 군것질 성향을 반대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아이는 이병우의 기타를 좋아하지는 않았다.그렇게 재미없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흥미로워 하지도 않았다.이병우의 머리카락이 거의 없다는 것에 오히려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녀석은 알 디 메올라의 음악에 이르자 조금은 달라졌다.그의 강력한 기타 연주에 깜짝 놀라면서도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느냐며 신기해 했다.아빠도 저렇게 할 수 있느냐고 해서 매우 당혹스러웠다.은별이를 위해서 스테이지 바로 앞까지 진출해서 목마를 태웠다.(30분 이상 버티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나에게도 알 디 메올라의 기타는 엄청나게 인상깊었다.의 기타는 지루하고 평범한 세상에 대한 격렬한 튀김처럼 느껴졌다.야외 콘서트에 걸맞는 간단한 밴드 세팅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가장 스패니쉬하고 가장 플라멩코적인 방식으로,모종의 항의와도 비슷한 대포 같은 사운드를 창조해냈다.게다가 너무나 멋있게 늙어버려서 나도 모르게 부러워져버렸다.

 

저 사람의 음악을 맨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알 디 메올라 본인의 음악이 아니었다.폴 사이먼의 1982년 명반 <hearts and bones>에서 유일하게 싱글로 발매되었던 <allergy>라는 노래에서 알 디 메올라는 그야말로 불꽃 같은 기타 솔로를 보여주었던 것이다.1970년대 폴 사이먼의 음악에서는 거의 삽입되지 않았던 아주 강력한 기타 워크였다.

 

 

 

(약 2분 40초가 지나면 알 디 메올라의 기타 솔로가 시작된다)

 

은별이는 나와,약 30년의 시간차를 두고 같은 뮤지션의 다른 음악을 듣고서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약간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하긴 녀석은 나를 닮아도 많이 닮았다.피아노와 글을 좋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외모는 거의 판박이라 말할 수 있다.(말도 안된다고 항의하는 몇몇 분들의 얼굴이 떠오르긴 하지만,그대들은 38년 전의 내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낙천적이고 게으른 것도 어느 정도는 나를 닮았고,굉장히 쓸 데 없는 부분에 형편없이 예민해지는 성향도 나를 닮았다.물론 청결에 대한 집착처럼 나와 저언혀 상관없는 부분도 있긴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유전자의 강력한 위대함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있다.나는 물이나 술이 든 컵을 손 안에 쥘 때,다섯 손가락 모두를 사용하지 않는다.새끼 손가락 하나는 컵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다.그래서 컵에서 자유로워진 새끼 손가락은 언제나 엉거주춤한 모양으로 둥글게 구부러져 있는데,놀랍게도 은별이가 그 새끼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은별이 역시 컵을 쥐고 있을 때 새끼 손가락을 컵에 대지 않고 있는데,그래서 약간은 허공에 위치한 새끼 손가락의 구부러진 각도가 거의 내 것과 똑같은 것이다.처음으로 그 새끼 손가락의 모양을 보았을 때,나는 거의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얘기가 좀 엇나가지만,그래서 나는 박근혜를 무서워한다.나와 같은 범부 조차 내 유전자의 일부를 내 딸에게 전달하고 말았는데,그녀 아버지의 강력한 유전자야말로 어떻게 되었겠는가.나는 박근혜의 새끼 손가락 안에 박정희의 유전자가 코딩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그녀가 1961년의 쿠데타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변했을 때,그것은 그녀의 정치적인 워딩만은 아니다.그녀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아버지의 피가 그렇게 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조종했던 것이다.그래서 나는 그녀가 무섭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심장부라고 지칭될 수 있을 전라도 광주에도 그녀의 지지자들이 있다.다분히 감성적인 지지자들이다.우리 병원의 식당 이모들을 예로 들 수 있다.그녀들은 박근혜를 좋아한다.이유를 묻는 내게 식당 이모들은 육영수와 박정희의 영향,그리고 박근혜의 정치 경력을 얘기했다.그녀의 정치 경력을 신뢰한다는 얘기다.경상북도 구미가 아니라 전라도 광주에서 말이다.물론 우리 식당 이모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에게 표를 던질런지는 알 수 없다.그러나 박근혜가 전라도 역사상 가장 거부감이 덜 한 보수후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이권 공동체라고 지칭될 수 있을 보수 정당에서 이런 후보가 나오기가 매우 힘든데 말이다.

 

더구나 그녀의 잠재적인 경쟁자라고 할 수 있을 문재인의 한심한 '군복 코스프레 삽질'이 등장한 다음이라 더욱 찝찝함을 감출 수 없다.'대한민국 남자'라는 한심한 타이틀 카피를 만들어낸 홍보 담당자를 문재인은 바로 해고해야 한다.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대통령 선거에 임한다면 필패다.더구나 특전사 군복이 광주에서 의미하는 바는 '남자'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문재인 캠프가 1980년의 5월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광주의 남자'들은 특전사 군복을 보는 순간 구토감과 혐오감을 일으킨다.(일부라고 말하신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알 디 메올라는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했다.은별이는 30분 정도 그의 연주를 홀린 듯 바라보고 있다가 '아빠 힘들지?'라며 내 어깨를 걱정하면서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했다.자리에 앉아서 또 뭔가를 집어먹고 있다가 나는 알 디 메올라라는 기타리스트 자체를 생각했었다.어쩌면 그는 본질적으로 솔로 연주자다.그 보다 더 솔로 연주자라면 paco de Lucia를 들 수 있겠지만,알 디 메올라는 다른 사람과 연주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예를 들어 그는 러시아의 기타리스트 Roman Miroschnichenko 와 함께 연주하면서도 솔로적인 감성을 다분히 드러내었다.물론 기타 연주자들의 숙명일 수도 있지만..

 

 

 

 

좀 엉뚱하지만 여기에 안철수를 대입시켜보지 않을 수 없다.그는 현재 솔로로 활동한다.마치 알 디 메올라 같은  기타리스트처럼 말이다.신천지 아니 새누리당 사람들로서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링에 올라오지 않고서도 포인트를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더구나 그들의 두목 근혜 양과는 너무도 다른 삶의 궤적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가령 안철수가 힐링캠프에 출연하자 마자 인터넷 검색어로 떴던 것은 '안철수 딸'이다.박근혜의 소위 가족들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차이가 나서 숨이 찰 정도였을 것이다.

 

박근혜의 가족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업가 동생 그리고 하나 밖에 없는 변호사 올케,사실은 상당히 순진해 보이지만 현실감이라고는 도통 없는 유일한 여동생과 비교해서 안철수의 가족들은 너무나 명료하고 너무나 건전하다.그러나 박근혜에겐 안철수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있다.그것은 현실적인 지지이다.우리 병원 식당 이모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그 지지는 감성적이지만 강력하다.

 

그리고 안철수에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그것은 피와 먼지다.결국 그 어떤 대통령 선거가 되었든,그 싸움은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강자들과의 싸움으로 변하기 마련이다.본질은 그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선거에서는 당선되었지만 기득권 계층과의 싸움에서 마저 승리를 거두어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특히 노무현은 아예 기득권자들에게 포위당한 채 힘겨운 싸움을 벌인 끝에 전사하고 말았다.좀 이상한 얘기지만 노무현에겐 그들과 맞섰을 때, 대신 피를 묻혀줄 원군들이 너무 부족했다.(적어도 김대중에겐 동지적 관계로 맺어진 측근들이라도 있었다) 그는 고립되었으며 힘겨운 개인기로 대항하다가 온갖 모욕을 다 당했다.

 

과연 안철수는 자신의 손에 피와 먼지를 묻힐 수 있겠는가.그를 대신해서 싸워줄 전사들을 준비하고 있기나 하나..그가 얘기하는 '상식'은 유혈극 보다 더 한 유혈극이 벌어질 때 참신한 무기로 기능할 수 있겠는가.무엇보다 바로 그런 문제에 대해 ,도대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안철수의 최대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그가 이런 쪽의 상황에 대해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다면,그냥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걸로 그의 외도를 끝낼 일이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갖는 유일한 희망은 그의 경력인 '의사이자 비즈니스맨'이다.그가 환부를 가차없이 도려내는 외과의사적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비즈니스맨적인 냉정한 실리 판단을 토대로 해서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다면 또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하모니가 필요하다.동지 없이 난관을 돌파하기란 그 누구라도 힘이 부친다.그의 책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의 동지가 아니다.그냥 독자다.피와 먼지를 공유할 용기를 가진 사람들만이 결국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싸운다.알 디 메올라도 마찬가지다.나는 그가 솔로로 연주했던 mediterannean sun dance 보다 존 맥러플린,그리고 파코 데 루시아 같은 다른 솔로 연주자와 함께 연주했던 mediterannean sun dance 를 더 좋아한다.훨씬 멋있다.그렇게 멋있게 갔음 한다.하모니가 필요하다.

 

 

 

(완전히 다른 음악이 아닌가..거장들의 하모니란 이런 것이다..)

 

사실 은별이는 알 디 메올라 보다는 밤에 출연했던 죠지 벤슨의 연주를 더 좋아했다.나와 또 닮은 점이라면 댄스에 완벽하게 젬병이라는 것인데,은별이는 죠지 벤슨의 음악을 들으며 춤까지 시도했다.은별이의 몸치적 움직임 때문에 나는 실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영상을 여기에 올리고 싶긴 하지만,행여라도 나중에 은별이가 이 글을 읽게 되면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으므로 참기로 한다.대신 얼마 전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어느 밤의 다음 아침,은별이가 경고의 의미로 내게 보낸 사진 하나로 대체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이 사진이다.

 

 

연출된 분노이지만 그래도 좀 무서웠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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