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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화 14.빛나는 우리 영화들5 <혜화,동><숨> <심장이 뛰네><엄마는 창녀다><카페 느와르>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11. 12. 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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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배우가 원톱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드문 우리나라 영화 현실에서 지금부터 언급할 몇몇 영화들은 여배우를 대표선수로 내세우면서 영화적 성공을 성취한 소중한 영화들이다.이 여배우들의 연기는 2011년의 소중한 영화적 자산이었다.

 

2011-40.<혜화,동>-민용근 2010.Actress-유다인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re-encounter>이다.다시 만난다는 것.재회한다는 것.

 

실제로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만난다.5년 전 아마 여고생이었던 무렵 사랑하는 남자와 아이까지 가졌다가 헤어지고 출산 후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유다인은 5년만에 돌아온 남자 친구 유연석과 만난다.그는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아이가 실제로는 입양되었으며 자신이 그 아이를 찾아냈다고 얘기한다.그 후  아이와의 에피소드들 -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으로 찾아간달지 또는 유연석이 아이를 유괴한달지 하는 가슴아픈 스토리가 영화 내내 흘러서 관객을 참 힘들게 한다- 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심지어 유다인이 연기하는 여주인공 혜화가 일하는 동물병원의 의사 마저도 아내를 잃고 아들과 살아가다가 첫사랑이었던 여인과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복원'이다.과거에 당해야했고 저질러졌던 심각한 상처를 딛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느냐,과거의 좋았던 관계들이 다시 복원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

 

영화는 어쩌면 심각할 수도 있는 이런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함과 서정성을 반반씩 섞어 풀어나간다.영화는 풍부한 상징과 주변 이미지들을 영화 속에 집어넣어 주인공 혜화의 심리 상태와 그녀의 현 상황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을 거의 흠집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연결시키고 봉합시킨다. 플래시백과 장면 연결들의 유연함만 고려해 본다면,복원과 봉합 역시 그러한 테크니컬한 유연함에 의하여 실제로 가능하다는 감정까지 갖게 만들 정도다.

 

혜화의 상처들은 그녀가 깎아서 보관해 놓은 필름통 속의 손톱 발톱들로 표현되고,그녀가 자신의 집에서 버려진 개들을 돌보고 떠돌이 개들을 찾아다니는 장면들은 유기된 개들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하면서 스스로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의 표현처럼 느껴진다.홀연히 나타나는 과거 자신이 버렸던 개의 모습,그리고 그 개의 새끼로 생각되는 강아지들을 다시 찾아 키우게 되는 에피소드 등은 상처의 치유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그리고 복원 역시 가능할 수 있다는 착하고 희망적인 메세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이 가능하기 위해서 혜화가 겪어야 할 일들은 너무 가혹하다.영화는 그녀가 겪었던 과거의 힘듬과,다시 찾아온 과거 상처의 재현에 의한 힘듬을 차분하게 묘사한다.마지막에 이루어지는 메디컬 드라마적인 반전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혜화가 치뤄야 했던 고통의 진실성에 그 원인이 있다.그리고 그런 고통을 이렇게 관객들의 가슴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은 민용근의 연출력과 주인공 배우들 유다인과 유연석의 힘이다.

 

2011년 올해의 배우로 꼽을 수 있는 다소 낯선 이 여배우는 창백해 보이는 인상과 정갈한 눈매,조용함과 낮게 깔리는 말투로부터 연유하는 생래적인 침착함으로 이 영화의 서정성과 동력을 다같이 유지하고 추진하는 힘을 가졌다.21세기 우리나라 영화들에 등장한 가장 착한 소녀라고나 할 수 있겠고 스스로의 배역에 조차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으나,상대역 배우 유연석과 노련한 여성 배우들인 김주령과 길혜연의 도움 역시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보였다.

 

왜 착한 사람들이 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그리고 정말 복원은 가능한가.혹은 이 영화에 삽입된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에서처럼 굳이 앵콜을 요청할 필요 조차 없는 것은 아닌가.이런 의문들이 영화 보는 내내 머릿속을 왔다갔다 했었다.(나? 나는 갔던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가 일종의 좌우명이다...)

 

 

 

 

 

2011-41.<숨> 함경록 2009.-actress- 박지원

 

전라북도 김제의 기독교 영광의 집에서 벌어졌던 장애 원생들에 대한 성폭행과 횡령 사건을 영화화한 함경록 감독의 영화 <숨>은 비슷한 소재를 영화화한 영화 <도가니>보다 적어도 열 발걸음은 더 앞으로 나간 영화다.물론 <도가니>가 기본적으로는 상업적 대중 영화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숨>은 실제로 피해를 당했던 장애 여성들의 입장에 직접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그들의 섹슈얼리티와 그들의 인권,나아가서 그들의 숨결 하나하나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제로 장애를 앓고 있는 여성인 박지원씨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는데,그녀의 출연이야말로 일종의 결단이며,그녀의 연기 결과물은 거의 performance of the year 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녀의 연기가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울림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여배우의 연기로부터 그녀의 현존재,그리고 영화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장애 여성의 존재 자체가 함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녀가 단순히 장애를 앓고 있어서가 아니다.영화가 사건 자체를 고발한다기 보다는, 내러티브의 발화를 언제나 그녀로부터 시작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집요하게 여배우의 뒤를 쫓아다니는 함경록의  카메라가 진동하듯 흔들리며 그녀의 밭은 숨과 힘든 발걸음,그리고 역시 고통스런 동작을 따라잡는 데에 성공함으로써,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직접 짓쳐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그녀가 처한 최악의 한계 상황을 직접적으로 강조하며 관객의 감각을 그녀 쪽으로 동화시켜 나가고 만다.그녀의 진실은 외부의 사람들,심지어 그녀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파악하고 고발한 상황과도 다르다.그녀를 임신시키고 성폭행한 사람들은 시설의 목사나 목사의 아들이 아니라,그녀가 사랑에 빠진 동급생 민수였던 것이다.그녀가 민수를 만나기 위해서 행하는 거울 보기, 머리 빗기와 옷매무새 고치기는 순수하게 사랑에 빠진 성인 여성이 할 만한 행동과 똑같고 그녀 역시 자신의 그런 행동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녀가 사건에 휩쓸리기 시작했을 때,일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관객들은 거기에 저항하는 그녀의 숨가쁜 움직임을 보면서 저절로 괴로와하게 되는 것이다.결국 민수와 강제로 이별하고 미혼모 수용시설로 들어가게 되지만,거기에서도 그녀는 소아과 119책을 보면서 자신과 아이의 앞날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한다.그녀의 아이를 입양시키려는 사람들에게,아빠도 없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며 순전히 선의에서 비롯된 걱정과 염려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과감하고 감연하게 '나 안 해!'를 외칠 때,그녀를 둘러싼 모든 세상에게 'NO!'라는 부정적 외침을 발할 때,그리고 그녀가 방으로 돌아와 미소지을 때,우리는 그녀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장애와 정상이라는 거대한 벽의 빗장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가치는 바로 그것이다.그리고 역시 여배우 박지원의 존재가 담긴 연기다.

 

2011-42.<심장이 뛰네>-허은희 2011.actress- 유동숙

 

 

 

코미디로도,심리 드라마로도,로맨스 영화로도,이 영화는 거의 모든 쟝르의 영화에 다 걸쳐질  수 있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그렇게 여러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한 가지 측면으로 깊숙이 천착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진짜 울림이 있다.또한 중년 여배우의 성적인 각성과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과 분투를 노련하면서도 순진하게,진정성과 농담을 아우르며,배우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을 결코 무시하지 않으면서,말하자면 여러가지 변수들을 골고루 신경쓰면서 이 영화의 제작진은 영화를 만들어냈다.(이 영화는 순수하게 부산 지역의 영화계 사람들의 힘으로만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처음 본 여배우,그리고 다시 볼 수 없는 여배우 - 이 영화의 주연 배우 유동숙씨는 영화제 참석을 위해 로마에 갔다가 신종플루에 이환되었으며 귀국 후 사망하고 말았다 - 고 유동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그녀는 이 영화에서 참 쉽지 않은 연기를 했다.다소 세상에 대한 현실감이 떨어지면서도,그래서 언제나  영악함과는 거리가 먼 굼뜬 삶을 살아가면서도,포르노 배우가 되어보겠다는 새로운 꿈을 인해 과감하게 돌진하는 역할은 아무 여배우나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아니다.그녀의 심장은 아마 이 영화와 더불어 영원히 뛸 수 있을 것이다.

 

 

 

2011-43.<엄마는 창녀다>-이상우

 

'빛나는 우리 영화들'이란 제목을 붙여서 글을 쓰고 있다고 해서,지금 쓰는 영화들로부터 반드시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빛의 가능성만을 엿보게 하는 영화도 있었다.내겐 이상우의 <엄마는 영화다>라는 영화가 바로 그랬다.

 

 

이 영화는 정말 '센' 스토리로 가득하다.엄마를 창녀로 선전해서 - 아들은 자신의 엄마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싼 년이라고고 선전하는 전단지를 붙인다- 생계를 유지하는 아마 에이즈에 걸린 듯한 아들,그를 좋아하는 동성애자 소년,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행과 강간,광신도인 젊은 여자와 결혼한 그의 아버지,결국 그를 죽이고 마는 아들,그 아들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새 딸,또다른 양아들을  강제로 성폭행하는 아버지,엄마의 성을 사러 오는 장애인 청년,예비군들..이 영화는 그야말로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인물들과 사건들로 가득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이렇게 메모했었다.

 

<김기덕의 주인공들이 깊은 비극성에서 우러나오는 잔혹한 울림을 가지고 삶의 도저한 저지대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이상우의 존재들은 아직 피상적인 잔학함과 폭력적인 관계에만 머무른다.결국 스토리의 동력은 친부살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치달을 수 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어쩔 수 없는 결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른 지금,나는 내 메모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이 영화의 감독 이상우가 김기덕의 제자라는 사실에 내 자신이 지나치게 영향 받은 듯 싶으며 - 물론 이 영화는 김기덕 식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긴 하다- 이렇게 센 소재들이라면 좀 더 사려깊은 통찰이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일단 지지와 의견을 유보하기로 한다.이 감독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예술가의 경우,그의 전작과 뒷날의 작품들을 본 후에야 종합적인 평가가 가능하다는 내 스스로의 경험이 있다.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것이 온당하다.그리고 그때에야 이상우가 지닌 빛의 파장과 세기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나는 영화의 한 장면,어느 순간 아들은 엄마를 안고 가볍게 춤을 춘다.그들의 댄스는 부드러우면서도 처절하고,슬프면서도 기괴하다.아마 이 한 장면이 이 영화에 대한 내 선입견에 균열이 가게 했을 것이다.

 

 

 

2011-44.<카페 느와르>-정성일 2010

 

전설적인 영화 잡지 '키노'의 편집장,현학과 박식으로 넘치는 유려하면서도 기나긴 문장들,우리나라의 그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느끼는 씨네필로서의 위치와 모습,맘에 들지 않는 영화를 만나면 가차없는 악평을 중국 무협 영화의 표창처럼 날려대던사나이.그리고 발터 벤야민..지금까지 내가 정성일에게 느낀 감정들이다.

 

그런 그가 영화를 만들었을 때,사람들은 아마 '너도 한 번 당해봐라'라는 심정을 가지고 극장엘 들어갔을 거다.영화의 흠집과 잘못된 맥락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켰을 거다.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그냥 기대감만 있었다.그러나 광주극장의 마지막 상영을 겨우 잡아챈 채,극장 의자에 피곤한 몸을 기댔을 때,나는 옆 좌석의 두런거리는 소리로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이 무려 198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말았었다...

 

 

그러나 2011년이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도 아직은 지지나 동의,혹은  리뷰를 유보해야겠다는 심정을 갖는다.영화 속의 수많은 영화,드러내놓고 또는 조금은 숨겨가면서 바치는 오마쥬들,그리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에서 모티브를 따온 스토리들을 통해 영화를 생각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쉬운 일이겠지만,아직은 삼가하련다.정성일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사려깊게 이 영화를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며,또한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즐겁고 명랑한 코미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물론 러닝 타임 자체가,배우들의 철저하게 문어체적인 대사들이 수시로 그 즐거움을 방해하긴 한다.심지어 정유미는 거의 동어반복에 가까운 독백을 무려 10분씩이나 읊어댄다.그 순간 나는 정유미가 가엾어졌었다)

 

 

 

다만 두 가지 정도의 메모를 통해,이 영화의 가느다란 빛을 정리하고 넘어가려 한다.

 

첫번째.나는 이렇게 썼었다.

 

<이제야 seoul의 soul을 잡아낸 영화를 만났다.정성일은 긴장된 트래킹 샷과 다소 장황하지만  이분법 내지 삼분법적 구도를 가지고 제시된 서울의 장소들과 상징들을 가지고 사실상 과거나 미래가 없이 현재만으로 굴러가는 한국의 기묘한 도시 서울의 육체와 정신을 매우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수시로 서울의 모습들을 말없이 잡아낸다.요조와 신하균이 탄 작은 바이크를 따라가는 트래킹 샷,청계천과 용산 거리를 말없이 패닝하는 꿋꿋한 카메라,서울의 여러 지점들에 대한 불균형적이고 불규칙한 심상들,이런 것들을 통해 느껴지는 것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영혼이다.적어도 정성일은 이런 일련의 시도들을 통해 그가 살아가는 도시의 심상들을 건져내고,적어도 서울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마음의 진동과 반향을 유도했을 것이다.이렇게까지 서울의 외양과 내면을 깊게 탐구했던 우리나라 영화감독은 없었다.

 

두번째,나는 또 이렇게 썼다.

 

<평론집의 확장판처럼 느껴지는 문어체의 현학적인 대사,많은 영화들의 인용,프랑크푸르트와 남산 그리고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와 청계천의 미스매치적인 비교,그리고 기나긴 러닝타임에도 크나큰 불만은 없다.다만 왜 이 영화의 배우들이 영화 속 시공간으로부터 유리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왜 영화 속에 그들의 영혼이 붙잡혀 있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랬다.나만 느낀 감정이나 인상일 수도 있으나 거의 모든 배우들이 영화로부터 겉돌고 있는 듯 보였다.그것도 거의 고의적으로,어떤 의도를 가지고서 그렇게 기획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길고 문어체인 대사들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으나 여기엔 뭔가 본질적인 요소들이 있다.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지금도 그렇다.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결론이 내려질 때 나는 이 영화의 '빛'을 다시 얘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러닝 타임 198분 짜리 영화에 다시 도전하려면 약간의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하긴,벨라 타르의 9시간 가는 영화도 있는데,마음이 있다면 198분이 무슨 대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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