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9.<소울 키친>-파티 아킨 2009
와글와글,시끌벅적,우당탕퉁탕,정신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썩한 난장을 이룬다.소울 음악으로부터 시작한 음악도 록과 사이키델릭,그리고 댄스 음악에 이루기까지 아주 다양하게 관객을 몰아치며,모든 음악들은 영화 속 상황과 싱크로율 100%다.즐겁고 명랑하고 웃기면서도 그 모든 웃음들이 현실의 상황들에 어쩔 수 없이 맞물려 있는 통에 씁쓸함 또한 감출 수 없어지지만, 나름의 소박한 해결점을 제시하면서 '어쨌든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아마 그리스계 이민자로 보이는, 이름이 무려 '카잔차키스'인 레스토랑 소울 키친의 주인인 주인공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애덤 보스도코스는 감독 파티 아킨의 친구로서 실제로 레스토랑의 주인이며 감독과 각본을 같이 썼다),잊을 수 없는 영화 <루나 파파>에 나왔던 모리츠 블라입토이가 연기하는 무대뽀 전과자인 그의 형 지노스,부동산 업자로서 호시탐탐 소울 키친을 노리는 비열한 친구 (함부르크 출신인 파티 아킨은 함부르크의 도시 재개발을 이 영화의 소재로 사용했다),세계의 글로벌화에 충실한 주인공의 부유한 여자 친구 나딘,음식의 전통을 지키려는 집시 출신 괴짜 요리사 셰이프,거기에 세무공무원과 보건공무원들,터키 이민자들인 민간 치료사들,그리고 결정적인 록 밴드들,화가 지망생인 웨이트리스 루시아 등등..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들 역시 매우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는데 적어도 그 중 절반은 그야말로 거의가 진상이다.
이 영화는 그러나, 여타 영화의 주인공들 보다 훨씬 보통 사람에 가까운 이런 사람들의 성장기이자 분투기를 그리고 있는데,이 복잡한 인물들을 소울 키친이라는 레스토랑 한 곳에 집중 연결시키는 것에 매우 넉넉하게 성공하고 있으므로,영화적 구조를 매우 단순하고 집중적으로 만드는 일에도 역시 성공하고 있다.결국 주인공의 고난이 진실하고 소박한 사랑에 의해 보상받는 것으로 끝나게 하는 행복한 결말 역시,재개발이라는 거의 전 세계 도시의 공통된 고민을 목도하고 찝찝해하는 관객의 마음을 조용하게 어루만질 수 있게 한다.
음식,음악,쾌활한 코드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매우 기분 좋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웰 메이드 영화가 되겠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때의 포스터와 독일의 포스터를 좀 비교해보자.
우리나라 포스터다.스푼과 포크,그리고 음식과 식탁이 강조되어 있으면서 '천국의 맛을 느끼는 영혼의 레시피'라는 카피가 포스터 가운데에 박혀 있다.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맛'과 '레시피' ,즉 음식이다.소울과 키친 중 키친을 강조한 것이다.음식이라는 최근 떠오르는 아이템에 뭔가 편승해 보겠다는 의도가 느껴진다.물론 음식 역시 영혼을 치유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특히 음식을 만들고 맛 보는 태도엔 영혼과 상관되는 뭔가가 있다.
그러나..'음식' 장면이 크게 다루어지지는 않는 이 영화에서,뭐하러 이렇게까지 하는가,어차피 흥행에 성공할 것도 아니면서.
반면,
이건 원산지 포스터다.여기에 강조된 것은 음악과 사람들이다.소울과 키친 중 '소울'에 방점을 찍었다는 소리다.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나는 두번째 포스터 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이 영화는 결국 성장기이기 때문이다.음식과 음악,둘 중에서 나는 음악을 택한 것이다.
이 영화의 웃음 코드들을 빼놓을 수 없다.이 장면은 요통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터키계 민간치료사에게 치료를 받는 장면이다.그런데 이 황당한 장면 속에서 사랑이 싹튼다.많은 난관을 겪은 주인공은 결국 옆에 앉은 마사지사와 사랑하게 된다.사랑은 결국 고통스러울 때 옆에 있는 사람과 이루게 되는 법이다.그것이 진리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믿어지지도 않게, <미치고 싶을 때>의 파티 아킨이 만든 영화다.
우연히 극장 옆을 지나가다가 시간이 맞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쑥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본 영화였기 때문에 내겐 영화에 대한 기본 정보가 한 톨도 없었고 스크린을 통해 파티 아킨의 이름을 보고 나서 그야말로 깜짝 놀랐었다.파티 아킨,그는 현 시점에서 대니 보일 보다 낫다.그는 삶과 사회의 어두운 곳과 그것의 명랑하고도 또 다른 어두운 부분 사이를 맘껏 진자운동해나가는 능력을 지녔다.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시길.
2011-30.오슬로의 이상한 밤-밴트 해머.노르웨이 2011
2011년 초에는 머나먼 북유럽의 노르웨이로부터 날아온,눈과 밤과 설원과 스키 점프와 또 거기서 생겨나는 몽환과,삶과 생명의 경로와 기로를 탐구하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밴트 해머가 감독한 노르웨이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이 바로 그 영화다.
이 영화의 전반 50분은 주인공 오드 호텐을 설명하고,나중에 그에게 찾아올 결정적인 변신에 대해 손톱 만큼의 힌트를 제공한다.그는 40년 동안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베르겐을 향하는 기차를 모는 기관사였으며 이제 은퇴를 앞두었다.기차와 집 사이를 오가는 지루하면서도 정확한 삶을 유지하고 있었고,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와 기차 여행 중에 들르는 여관의 여주인에 대한 조그만 연정을 품은 채,그냥 그대로의 삶을 지탱하는 사람이다.그 여관 여주인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지만,용감하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거나,또는 자신의 삶을 확실하게 변화시킬 동력을 가지지는 못한 사람이다.뭐,이런 사람 많다.아니,대부분 이렇게 산다.
그러나 삶이란 어떤 때,전혀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서 균열을,그것도 결정적인 균열을 일으키기도 한다.얘기는 오드가 마지막 기관차 운행을 앞둔 전날 밤,그의 은퇴 기념 이별 파티로부터 시작하는데,파티 후 2차 모임엘 찾아가다가 건물 내부에서 길을 잃고 엉뚱한 집엘 들어가게 된다.어린 아이의 침실로 들어가게 된 그는 놀란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밤새도록 아이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게 되는데 (물론 오드가 아니라 아이의 요구이다),그것이 그의 삶에 미세한 실금이 가게 하는 계기처럼 묘사되고 있다.
결국 오드는 그의 마지막 기차 운행 시간에 지각하게 되고 은퇴하게 된다.아마 그런 종류의 사람에겐 천추의 한이 될 일일 것이다.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영화가 이 시점에서, 오드의 삶을 그동안의 삶과는 다른 부분으로 곧장 직진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영화는 또다시 은퇴 후의 그의 생활로 돌아간다.그는 약간의 우울에 빠져서 집에 틀어박히기도 하고,치매로 요양 중인 어머니를 방문하기도 한다.(여기서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모티브인 스키 점프가 등장한다.오드 호텐의 어머니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키 점프 선수가 되지 못한다.내 기억이 맞나?)
또 단골 레스토랑엘 들르기도 하고 자신의 보트를 친구에게 팔겠다며 친구가 근무하는 공항엘 갔다가 마약 탐지견에 의해 마약 소지가 의심된다고 적발되어 온몸 수색을 당하기도 한다.그가 40 년이 넘게 다녔던 담배 가게에서 담배 가게 주인의 죽음을 알게 되기도 하고 한밤의 수영장엘 나체로 들어갔다가 역시 나체인 레즈비언 커플 때문에 몰래 도망 나오기도 한다.(이때 그는 신발을 찾지 못해서 여성용 새빨간 구두를 신고 나온다).즉 이렇게 영화는 오드의 인생에 갑작스런 변화를 주지 않고,그의 매우 일상적인 삶을 가감없이 또는 심심하게 묘사해 나간다.그로서 영화의 반이 지나간다.물론 '디테일에 충실한' 이런 진행은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삶의 새로운 단계,은퇴 이후의 새로운 삶을 향한 점프를 위해서 영화는 이런 조용한 지루함을 감수하라며 관객을 설득하는 것이다.물론 약간은 강요에 가깝지만 말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거의 50분이 지나고 나서야 변화가 찾아온다.오드는 거리에서 잠든 노인을 발견하고 그를 택시에 태워주는데,노인은 오드를 집으로 초대한다.노인은 자신이 외교관이라며 그가 일생동안 세계 각지에서 모은 각종 컬렉션을 오드에게 보여준다.온 세계의 물건으로 가득한 그 방은 오드가 살아온 삶과는 완전히 정확하게 대조적이다.노인은 드디어 돌 하나를 꺼내며 그것이 운석이라고 말한다.그 돌은 무려 47억 년을 여행한 것이며,자신들이 죽은 후에도 돌의 여행은 멈추지 않을 거라고 그는 덧붙인다.이것은 이 영화의 첫 비의의 순간이다.삶 역시 근본적으로는 결코 멈추지 않는 여정이며,죽음 이후에 재로 화하더라도 우리의 존재 자체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말,은퇴 이후 지루한 삶을 보내고 있는 오드의 생활과 마음에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언명이다.
그러나 영화는 또 한 번 상황을 넘긴다.오드가 갑작스런 깨달음을 얻어서 그의 인생 경로를 급작스럽게 변경한다거나..뭐,그러지 않는다.사실 이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이런 결정적인 순간의 연기(delay) 는 오히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적당한 현실감을 던져주는 것이다.그러나 영화가 마냥 그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드디어 '이상한 밤'을 시작하는 것이다.노인은 오드에게 자신이 눈을 감고서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그날밤 자신의 능력을 시연해 보이겠다며 오드에게 차 동승을 요구하고 (40년 모범기관사인 오드는 이때 자신의 모토인 안전을 포기하고 그 차에 올라탄다),노인은 그야말로 눈 먼 드라이빙 중간에 심장마비로 죽는다.
이때 오드는 저 차 뒤에 올라탄 개를 안고 바깥으로 나간다.그는 노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지만 노인이 최후의 소망을 성취했다는 것 역시 이해했기 때문에 그를 놓아둔 채 밖으로 나간다.이때 카메라는 하늘로 올라간다.오드는 노인의 자동차 건너편에 서 있고 길은 십자로이다.사람들이 노인을 발견할 즈음 개를 안은 그는 천천히 자신의 경로를 바꿔 버린다.다른 길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이렇게 오드는 삶의 다른 부분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쪽 길 역시 묘한 사람들로 넘쳐난다.미끄러운 얼음 비탈길을 미끄러져 가는 오토바이,아내의 심부름이라며 커다란 연어를 들고 가는 사람,자신의 가방을 썰매처럼 이용하여 길을 지쳐가는 수트 입은 신사..밤은 오묘하면서 신비로워진다.오드는 집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와버린다.이제서야 결단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새로운 삶을 향한 발걸음,그는 결국 어머니의 못다 이룬 소원과 자신의 은폐된 욕망인 스키 점프를 위해 스키를 들고 도시의 야경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스키 점프대를 향한다.그는 가물거리는 도시의 불빛들을 향하여 점프한다.(영화는 물론 촌스럽게 그의 스키 점프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오드의 바뀐 삶의 증거를 오롯이 관객의 마음 속에 남기려는 것이다)
오드는 결국 노인의 개와 함께 그가 좋아했던 여관의 여주인을 찾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기분 좋은 결말이다.삶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 단계와 또 그 다음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또다른 삶을 향해서 언제든 또 전진해야 한다는 것을 영화는 밤과 사람들,눈밭과 기차들의 이미지와 상징들을 통해 정말 유유하고 느릿느릿하게 얘기해준다.이런 조용한 속삭임은 치유의 기능 마저 갖는다.
이 설원을 보며 노르웨이에 가고 싶어졌다.실제로 오드가 운전한 베르겐과 오슬로 사이의 기차 구간은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구간이라는 얘길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2011-31.혹성 탈출;진화의 시작 -루퍼트 와이어트 2011
명실상부한 2011년 최고의 웰 메이드 블록버스터.20세기에서부터 시작된 시리즈의 프리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프리퀄로 느껴지지 않는 완성형 영화.인류가 만들어 놓고 망쳐놓은 문명에 대한 감연하고 비관적인 시각으로터 시작해서 그 문명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수준에까지 이르는 묵직하고 강력한 메세지에,패트릭 도일의 완벽한 음악,엄청난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액션과 스피드감,테크놀로지와 인간의 육체 사이의 구분을 거의 무의미하게 만드는 테크놀로지와 배우의 육체 (인간 배우들은 다소 평면적이지만 유인원 배우들의 연기는 경탄에 가까운 놀라움을 자아낸다),가히 21세기의 스팔타쿠스라고 불리우는 게 가능할 유인원 시저의 거대한 영웅으로서의 아우라는 이 영화를 거의 걸작에 수준에 도달하게 만든다
이 정도의 수다라면,내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짐작하시리라 믿는다.단,프리퀄이기 때문에,또 속편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앞날이 어떻게 될런지 현재로서의 예측은 불가능하다.혁명의 기치를 내세워 혹성을 장악한 시저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갈지 알 수도 없고,그의 인간 친구들과의 관계 역시 (특히 궁금한 것은 프리다 핀토와의 사이다) 예측 불가능이다.하지만 2011년 현재 이 영화는 가장 잘 만든 블록버스터다.
몇 가지 장면들은 거의 뇌리에 남았다.도시를 습격하는 거의 장엄하기까지 한 장면,옛 주인 제임스 프랑코의 돌아가자는 말에 과감하게 시저가 'NO!'하는 장면,비스킷을 나눠먹으며 연대와 공유를 과시하며 확실한 유인원들의 인간에 대한 우위를 나타내는 장면 등은 사실 대단하다.매우,매우,그 앞날이 궁금해지는 영화.
2011-32.<줄리아의 눈>-기옘 모랄레스 2010
스페인에서 날아온 스릴러 영화.일단 발동이 걸리면 거의 숨을 쉴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을 관객에게 요구했던 영화였다.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여인 - 이 설정이 오드리 헵번 주연의 <어두워질 때까지>와 비교되는 설정이긴 하지만,결국은 눈 먼 여인의 위기라는 큰 기둥 줄거리로 보면 이 영화는 분명 헵번의 후예라 할 수 있다 - 이 맞부닥치는 위기의 순간 순간이 거의 절묘하고도 정교하게 컨트롤되어 있기 때문에,보는 관객에 따라서는 최고의 흥분과 만족감을 누릴 수 있게 했던 웰 메이드 영화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눈 먼 여인'이라기 보다는 눈 먼 여인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일련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을 일상의 소음과 굉음들,그리고 빛을 이용해서 기옘 모랄레스는 진정한 두려움들을 창출해내곤 한다.그리고 이런 테크닉들은 진정한 공포란 우리 근처에 머무는 사소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기묘한 생각까지 연결시킨다.특히 카메라 플래시를 이용한 추격전이자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물론 알프레드 히치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만 - 이 영화의 백미였다.
상업성과 영화적 긴장감이 잘 어울려지는 스페인 산 웰메이드 영화.(여기서 스페인을 강조하는 것은 스페인 영화 특유의 새도매저키스틱한 성향이 이 영화의 밑바닥에 아주 살짝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벨렌 루에다라는 이 영화의 여배우를 꼭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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