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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영화들3. 웰메이드? 웰메이드.<127시간> <베리드>-고립되다.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11. 11. 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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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2 <127시간>-대니 보일.

 

대니 보일의 <127시간>역시 <더 파이터>처럼 실화에 기반한 영화다.유타 주의 협곡에서 실족하여 한 쪽 팔을 돌에 짓눌린 채 고립되어 사투를 벌이다 자신의 팔을 자르고서야 탈출에 성공한 한 청년의 실제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고,그 책에 기반하여 영화를 만들었으므로,어쩌면 이 영화 <127 시간>은 이중의 실제 혹은 한 번의 변형을 거친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실제 벌어진 일들의 충격적 사실성 때문에라도,고립된 청년에게 이야기를 집중시킬 수 밖에 없고,그 좁은 바위틈에서 모든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수 밖에 없다.따라서 축이 되는 중심 인물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일종의 영웅 탈색시키기에 성공한 다음 다채로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펼쳐나갔던 <더 파이터>식의 구조는 애초부터 만들어지기 조차 어렵다.어차피 오직 한 사람의 고통에만 주의를 집중시킬 수 밖에 없으므로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스토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주인공 한 사람의 육체적 고투와 정신적 절망감이 위주가 될 수 밖에 없는 이런 영화는, 다양한 표현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만들게 되면,무척이나 지루해지거나 아니면 쓸 데 없는 고어물이 되기가 십상인 것이다.

 

그러나 대니 보일이 누구인가? 지금이야 기대와는 달리 미국의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감독이 되어버렸지만,언젠가의 그는 <트레인 스포팅>을 만들었던 사람이다.그 어떤 폐쇄 공간 속에 자신의 캐릭터를 놓아둔다 해도,거기에 속도감과 스릴을 부여하면서 흥미만빵의 국면 전환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말이다.변기 속으로 다이빙을 하든 (트레인스포팅),야만인으로 가득한 무인도 속에 있든(비치) 그의 영화는 이런 한계 공간을 능숙하게 벗어난다.그리고 원래 가진 실력이 어디 갈 리가 없다.그의 영화는 숨가쁘게 달리고 외치고 벗어나고 또 갇히는 것이다.그리고 결말이 어떻게 나든 최종적인 승리의 감정을 관객에게 심어준다.그만큼 대니 보일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은 내적인 카타르시스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127시간>에서도 보일(boyle)은 영화 곳곳에 끊는 점(boiling point)를 설정해 놓았다.휙휙 돌아가는 과거로의 플래시백과 고통받는 사람의 정반대 방향을 향한 꿈,그리고 감정적인 회한과 즐거움,그리고 분투와 절망을 그는 특유의 스피디한 카메라와 화면의 분할,예측이 불가능한 전개를 통해 저언혀 지루하지 않게 처리해낸다.거기에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음악감독이었던 A.R.라흐만의 음악까지 한 몫을 해낸다.그가 만들어내는 스릴과 박진감은 이 정도의 방법만 가지고서도 충분한 액션과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정도의 방법만 가지고서 '웰 메이드'영화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트루 스토리의 아우라가 더해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대니 보일도 그 정도는 안다.그래서 결국 그는 클라이맥스 격인 절단 장면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팔을 자르고 바위 틈을 탈출한다- 을 준비해놓았다.정말 관객의 팔이 절로 저릿저릿해지는 장면,대니 보일은 한 방의 펀치를 더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적어도 내게는 이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다.어쩐지 헐리우드의 적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만 같은 제임스 프랑코의 빛나는 연기 퍼포먼스가 있었고,그가 그 지독한 조난의 와중에서도 줄창 찍어대는 셀프 카메라라는 또다른 소재가 있었지만 - 이 부분은 사실 진정한 연구대상이 되어야 한다.같은 범주로 포함시킬 수 있는 다른 영화들의 목록이 더해진다면 누군가 여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아야 할 것이다- <127시간>은 '여기까지의 웰 메이드'에서 더 이상 진전하지는 못했다.그것은 대니 보일의 '현재까지의 한계'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고난 극복 이야기는 이제 넘쳐나고 또 넘쳐난다.영화 이외에도 많은 매체들이 이런 종류의 소재들을 영화보다 훨씬 영화스럽게 다뤄내고 있다.제대로 못하면 식상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런 어려움에 대니 보일이 대응하는 방법은 역시 자신의 테크닉을 믿는 것이었다.그는 자기 자신의 개인기로 일정하게 놓여있는 핸디캡을 돌파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강력한 믿음을 가졌으며,이런 자기 능력에 대한 신뢰는 영화 전체에 묻어나고 있었다.그래서 이 영화의 웰 메이드 성향에 또다른 이름을 붙여보자면 '테크니컬 웰메이드' 정도가 되겠다.이상하게 들리시는가? 테크니컬 웰메이드란 말이.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생각났던 영화는 역시 피터 위어의 <행잉록에서의 소풍>이었다.(물론 나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20세기 초 행잉록이란 산에서 의문의 실종을 당한 일단의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인간과 자연 자체의 존재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이야기였다.그런데 <127시간>속의 제임스 프랑코도 <행잉록에서의 소풍>의 어떤 여학생 주인공과 거의 비슷한 대사를 뇌까린다. 

 

- 저 돌은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인간 보다 훨씬 오래된 자연과,인간을 둘러싼 세계 자체의 즉물성과 적대성,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타고 날 수 밖에 없는 짧은 시한이라는 운명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혼잣말이었지만,이 역시 거기서 멈췄다.대니 보일은 생각 보다는 자신의 영화적 테크닉으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옮기는 것이었다.

 

2011-23.베리드 - 로드리고 코르테스

 

2011년의 깜짝 놀랄 만큼 잘 만든 영화 <베리드>는 <127시간>처럼 고립된 사람을 다룬 영화다.그러나 <127시간>의 고립과 <베리드>의 고립은 어쩐지 비슷해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고립이다.우선 <127시간>의 주인공 청년이 '스스로 떠난 (또는 선택한)' 오지 탐험 때문에 고립된 공간에 유폐되어버리는 것에 비하여,<베리드>의 주인공 폴 콘로이는 이라크 전쟁에 파견된 군수노동자로서 - 영화 중간에 악명 높은 '블랙 워터'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되어 땅 밑 관 속에 갇힌 채 500만 달러의 돈을 요구 받고 있는 것이다.돈 역시 스스로 만들어 마련하라는 냉정한 요청에 직면하게 된다.즉,폴의 고립은 자신의 선택과는 거의 거리가 먼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상황, 정치적 금전적 의도에 의한 납치이며 -따라서 개인에겐 훨씬 더 억울하며 - 죽음과도,그 감정적 위치가 더 가까이에 있게 되어 있다.

 

 

 

 

두번째는 물론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고립된 장소의 차이이다.<127시간>의 주인공은 돌에 팔이 꽉 끼어 움직이지 조차 못하지만,어쨌든 하늘이 보이고 날아다니는 까마귀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다.자연 속에,지상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어쩌면 <베리드>의 주인공 보다는 덜 완벽하게 폐쇄되어 있는 거다.(이런 걸 비교한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라 주장할 분도 계시겠지만) 게다가 대니 보일의 영화적 스킬은 적어도 상상 속에서 만큼은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그는 꿈을 꾸고 환상을 보며,무엇보다 자연광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리드>의 폴은 관객까지 폐소공포증에 감염시키게 만드는 관 속에 갇혀 있다.(러닝 타임 내내 그는 그 관을 끝내 떠나지 못한다.따라서 관객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처한다) 이것은 거의 직접적인 죽음의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127시간>의 미국 청년은 자연광에 의지해서 사물을 인지하지만,<베리드>의 폴은 테러리스트들이 일부러 놓아둔 라이터와 경광등 그리고 핸드폰 불빛 만을 조명으로 사용할 수 있다.그 기계들의 동력 수명이 다하면 그나마도 끝이 날 수 밖에 없다.또 그들에게 주어진 목숨유예시간의 차이도 존재한다.어떤 의미에서 <127시간>의 주인공에겐 사실 타인에 의한 구조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그에겐 연락할 수단도 없고 근처에 지나다닐 만한 사람들도 없다.그는 완벽한 오지에서 실종된 것이다.그러나 폴에겐 시한이 존재한다.돈이 마련되지 못하거나,그의 핸드폰 배터리가 그 수명을 다하면 그는 곧 죽게 될 운명인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자신의 목숨을 향한 분투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127시간>의 아론은 근본적으로 자신과 싸운다.자신의 공포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그리고 결국 그는 스스로의 팔을 잘라 자신의 목숨을 구해 낸다.그러나 <베리드>의 폴은 끊임없이 타인들을 향하여 구명을 호소해야 한다.911구조대원과, FBI 요원과,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와,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들과 휴대폰을 이용하여 끝없이 싸우고 애원해야 한다.(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강렬한 대화의 영화이기도 하다.통화하는 상대방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기 때문에 더욱 더 대화의 간절함과 에너지는 강해진다) .따라서 안타까움은 배가되고 직접적인 감성으로 관객을 습격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127시간>은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이지만 <베리드>는 철저한 픽션이라는 차이가 있다.<127시간>의 경우 일부 관객들은 그 결과를 미리부터 알고 있다.적어도 주인공이 죽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서 스크린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홍콩의 과거 무협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팔 절단 정도야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리드>의 경우 우리는 이 무시무시한 상황이 어떻게 끝나게 될런지 그  예측 조차 불가능하다.어떤 땐 구조의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하고,어떤 땐 또다른 무시무시한 살인과 (테러리스트들은 또다른 미국 인질들을  쏘아죽이는 동영상을 폴의 휴대폰에 전송한다),팔 절단 장면 (이 또한 테러리스트들의 요구다)이 등장하여 아찔하게 하고,심지어 어딘가로부터 관 속에 나타난 뱀과 호러 영화 비스무리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어느 상황에서도 예측 불허라는 대명제는 변하지 않는다.그래서 폴의 시도가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폴의 시한이 분명해진 폭탄 같은 휴대폰 통화를 <127시간>의 아론의 플래시백과 연결지어 얘기해야 하기도 하지만,폴의 통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지속적인 전화 대화가 그와 그의 나라를 둘러싼 근본적인 갈등 양상을 드러낸다는 점이다.여기엔 911 뉴욕 테러 이후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두려움이 깊게 형상화되어 있다.(21세기 초의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관 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했으며,그 생매장의 원인을 끝없이 외부에서 찾으며 외부의 사람들을 적으로 돌려세워 왔다.그것은 결국 그들이 가진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미국 자본의 그야말로 자본적인 특성과 미국을 지탱하는 힘들의 관료주의가 주요한 배경으로 장식된다.가령 그가 묻힌 곳을 찾으려는 FBI의 끝없는 헛발질 (폭격기의 폭격은 폴이 갇혀있는 관의 틈새로 모래가 쏟아져 들어오게 만들어서 결국 그를 죽인다.또 그들의 헛발질이 결국 이 영화의 최종적인 반전을 가져온다.심지어 그들은 폴에게 이슬람 납치범의 성향과 상황을 자상하게 설명해주기까지 한다),한심한 관료주의의 행태를 보이다가 결국 회사 동료와의 불륜을 핑게로 관 속에 갇힌 폴에게 해고통보를 하는 폴이 몸담던 회사 (뭐,이런 종류의 꼬리 자르기와 '해고'는 미국이 아니라도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다),등등 시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힘들은 오히려 개인을 죽음으로 더 빨리 내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영화는 이것이 그들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주장하는 듯 하다.그래서 폴은 전화로 해고를 통보하는 회사 간부에게 (테러리스트들 뿐만 아니라)  '너희들이 나를 이곳에 보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물론 두 영화 사이에는 서로 조응하는 요소들도 있다.아론의 셀프 카메라와 폴의 동영상 전송,두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사지 절단,그리고 <127시간>의 스피디한 화면과 긴박한 편집에 대응하는 <베리드>의 격렬한 대화는 두 영화 사이의 공통점이라기 보다는 '고립 영화'가 어쩔 수 없이 취할 수 밖에 없는 활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두 영화는 다른 영화다.완전히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 영화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을 동원하자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베리드>쪽에 두 손을 다 들 수 밖에 없다.좁은 관 속에서 90분 간의 러닝타임을 소모해야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단 한 장면도 허투루 찍지 않았고 단 한 장면도 유사한 장면이 없다.조그만 관 속에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하고 건드릴 수 있는 주제를 다 건드리는 것이다.자본만 탓하면서 영화 만들기를 애초부터 포기하는 사람들이 좀 참고했음 한다.(그러나 사실 자본 보다는 배급을 더 탓해야 할 것이다.)

 

스페인 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를 주목해야 하며,주인공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왜 최근 몇 년 간 갑자기 뜨고 있는 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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