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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영화들.-웰메이드? 웰메이드 .<킹스 스피치>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11. 11. 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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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느 날 영화 한 편을 보고 와서,그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할 때,사람들은 이렇게 당신에게 질문할 수 있다.

- 그 영화 재밌어?

혹은

- 그 영화 감동적이야?

또는

- 그 영화 슬퍼? ..

 

이런 질문은 당신이 본 영화에 대한 당신의 매우 구체적인 이미지 혹은 느낌을 묻는 질문이다.그래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매우 단순한 형태로 따라나오게 될 것이다.예를 들어 응,재밌어 또는 아아 너무 재미 없어,감동은 커녕 하품만 나와,정말 슬퍼서 죽을 지경이었어..등등.이어 당신은 당신이 본 영화가 왜 재밌었는지,왜 감동적이었는지,왜 슬펐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또는 설명 따위는 필요없다며 직접 가서 보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포괄적인 질문이 있을 수 있다.좀 더 뭉뚱그려 던져지는 질문.

- 그 영화 어땠어?

 

이런 질문에 대답할 때, 당신은 당신이 동원하는 수식어를 통해 당신의 가치관을 드러낸다.그리고 이때 당신이 보았던 영화에 대한 여러가지 인상 중 가장 중요한 인상이 가장 먼저 당신의 입을 통해 튀어나오게 된다.또다시 예를 들어,당신이 '응,그 영화 재밌어'라고 대답한다면,당신이 그 영화를 통해 추구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재미'였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것이다.또 당신이 '아, 그 영화,정말 내 심금을 울렸어'라고 대답한다면,당신은 사실상 당신의 심금을 울릴 영화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는 마음 속 어딘가의 소망을 드러낸 것과 다름이 없다.

 

내 경우,대답은 항상 이렇게 나온다.

- 응, 그 영화 정말 좋았어.

 

내지

-글쎄,그렇게까지 좋진 않았어.

 

이런 식이다.그런데 내가 말하는 '좋다'라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일까? '좋다'라는 말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닐까? 좀 더 정확하게 말뜻을 규정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다 보면 너무나 복잡해진다.'좋다'라는 말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수많은 또다른 '좋음'이 동원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더 공정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있음','감동적임''웃김''슬픔' 같은 수사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그곳 역시 수많은 작은 요소들이 함께 숨쉬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그냥 놓아두는 게 더 편하고 자연스러울런지도 모른다.내 '좋음' 역시 그냥 마음에 든다 정도로 마무리 지으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답도 있다.

-그 영화,정말 웰 메이드 (wellmade) 영화야.

 

언제부터인지 일반 관객들 뿐만 아니라 영화를 다루는 언론에서도 자주 쓰이는 웰 메이드라는 이 단어,이런 종류의 공적인 단어는 그냥 놓아두고 넘어가기가 좀 어렵다.이런 단어에는 어느 정도의 규정이 필요하다.왜냐하면 웰 메이드란 단어가 사용됨으로써 얻어지는 일종의  품질 보증기능과,관객이 특정한 영화를 대하는 정서 자체에 미치는 영향,또 영화라는 산업 (어쨌든 현대 영화는 확실히 비즈니스다)에 미치는 이 단어의 연관성을 간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웰메이드란 말은 무슨 말인가?

그냥 잘 만들어진 영화란 말? 그렇다면 그 '잘'을 정의하는 주체는 또 누구란 말인가.영화 평론가들? 아니면 관객 전체의 어떤 총의? (그렇다면 높은 평점- 예를 들어 네이버 영화 평점- 을 받은 영화가 웰메이드 영화란 말인가?) 또 그 웰(well)의 조건이라는 건 도대체 뭔가?

 

영화 카피식으로 말하자면 감동과 재미? 아니면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영화인들의 불굴의 용기? 그것도 아니면 환상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완벽한 스펙터클?사실상 '잘'을 정의하는 조건 역시 불분명한 것이다.

 

나는 사실 웰메이드란 말 자체가 좀 의심스럽다.어디 한 번 사전을 찾아보자.

 

웰메이드.

(well­made) 신어
[명사] 잘 만들어져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
 

국어사전에 나온 말이다.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말은 '완성도'다.여전히 모호하다.완성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애정남'이라도 불러야 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사전이 아니라 영화전문잡지에서 정의된 웰메이드를 보자.씨네 21 김소희 편집장의 말이다.

 

웰 메이드 ; 영화란 장르의 관습, 스타 시스템 등을 활용하되 감독의 개성적인 스타일과 문제의식을 겸비함으로써 대중의 호응까지 얻어낸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는 뜻 정도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잘 만들어짐’이란 쾌적한 리듬감으로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반면 전통적으로 이 용어가 작가주의 지지자들에 의해 사용될 때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를 띠었다. “환부를 들춰 보였던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에 비한다면 <런어웨이>의 교훈은 노골적인 데가 있다. 웰 메이드 상업영화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는 표현이 그 예다.


하나의 개념이 용법의 분화를 일으키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는 셈이다. 웰 메이드 영화는 상업성, 즉 대규모 소통을 지향하기 때문에 미학이나 주제 면에서 급진적이지 않은, 타협의 지점이 있다. 나는 여기서 낡은 질서를 뒤집어엎은 프랑스혁명은 위대한 계몽사상보다는 대중 사이에 널리 팔리던 베스트셀러들로부터 이미 촉발되었다는 말을 상기한다. 길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중략)

 

이 글엔 웰 메이드 영화를 설명하는 주요한 키워드들이 다 들어가 있다.작품성,작가주의,스타 시스템의 활용, 쟝르의 영리한 원용,그리고 대중의 호응,즉 대중성을 모두 다 아우른다.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이다.특히 김소희는 '잘 만들어짐'이란 말을 '쾌적한 리듬감'이라고 표현했는데,이 표현 속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쾌적함'이다.,이 단어야말로 '영화적 완성도'라는 말과 조응할 수 있는 말이다.그러나 불쾌함이 반드시 반예술적이다,또는 '영화적 완성도'와 거리가 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오히려 이 글 속의 '쾌적함'은 대중적 호응과 맞닿는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어딘가 거리끼는 구석이 덜 하다는 것,물 흐르듯 흘러간다는 것,그래서 쾌적함이란 말 뒤에 리듬감이란 말이 따라 붙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김소희는 예술을 대하는 어떤 태도,우리가 예술을 소비하는 가장 건전한 방식,또는 우리가 예술을 생산하면서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양식으로서의 '쾌적함'을 제시하는 것이다.언뜻 보면 옳은 말이긴 하나,불편함을 야기하는 좋은 작품도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빼먹었다.고의는 아닐 것이나,우리는 또 상반되는 예를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그래서 씨네 21의 김소희는 이 글의 말미에 웰 메이드 영화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이며,작가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 타협의 지점이 존재한다고 못박고 있다.웰과 베스트는 다르다는 것이고,웰의 기본은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그리고 거기에 대규모 '소통'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웰 메이드 영화들을 살짝 변호하고 있다.프랑스 혁명까지 얘기한 것은 약간 오버이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 '웰 메이드 영화'에 대한 무슨 논문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2011년 올해 내가 보았던 영화들에 대한 긴 목록을 작성하려 하고 있을 뿐이며,어쩌면 그 목록을 위해서 '웰 메이드'라는 확실하지 않은 개념을 동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렇다면,올해 내가 본 영화 중 웰 메이드 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는 어떤 영화들일까.그렇다,몇 개 있다.웰 메이드 영화가...

 

2011-20 킹스 스피치.-톰 후퍼

 

톰 후퍼의 <킹스 스피치>야말로 앞서 말한 웰 메이드의 조건에 부합되는 영화다.이 영화는 예의 조건들 중 여러 가지를 충족시킨다.특히  관객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말을 더듬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왕자,그러나 임박한 전쟁 때문에 끝없는 대국민 연설을 해야 하는 그의 처지(그래서 다가오는 인간적 그리고 국가적 대의를 맞닥뜨린 고통),원하지 않았던 왕위를 안겨준 자유로운 형과 권위적인 아버지,그리고 그런 장애를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괴짜 언어치료사와의 우정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감동적인 관계들..

 

모든 것이 드라마틱하다.특히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해내는 사람이란 요소는 미국의 영화 아카데미가 특별히 좋아하며 (예를 들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신들린 퍼포먼스가 돋보였던 <나의 왼발>같은 작품들),관객들 역시 주인공의 처지에 쉽게 동화되고 공감하며 그의 고난을 스스로의 고난처럼 안타까워할 수 있게 만드는 설정으로 기능한다.그래서 무장해제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전형적인 웰 메이드 영화는 거기에 여러가지 다른 장식들을 엮어넣는다.조력자들과 압박자들 캐릭터,관계의 고비를 넘나드는 캐릭터들 사이의 투쟁과 화해,그리고 대단원을 장식하는 라디오 연설들과 함께 흘러나오는 귀에 익은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음악들,그리고 그 음악에 조응해서 벌어지는 클라이맥스 장면..이쯤 되면 흰눈을 뜨고 바라보는 관객들을 오히려 흰눈 뜨고 쳐다봐야 할 상황이 되어버린다.

 

거기에 결정적인 양념을 더하는 것은 웰 메이드 영화의 또다른 요소인 배우들의 연기다.<킹스 스피치>는 영국을 무대로 하는 만큼 영연방 출신의 올스타 캐스트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의 명연기자들이 총출동한다.타이틀 롤을 맡은 콜린 퍼스를 비롯해서

 

 

데렉 자코비나 마이클 갬본 그리고 클레어 블룸 같은 고참 배우들,그리고 언제 어느 곳에 나타나도 제 몫 이상을 하는 헬레나 본햄 카터 같은 배우들이 등장해서 정통 영국식 걸음걸이와 발성에서 나오는 섬세함과 고풍스러움을 아낌없이 관객들에게 선사해 준다.

 

그리고 과거 영연방 국가였던 호주 출신 배우들이 그들과는 다른 결의 연기들을 더해 준다.가령 심슨 부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왕위를 걷어차버리는 에드워드 8세를 연기하는 가이 피어스나  말더듬이 교정 선생님으로 등장해서 왕족의 권위 따위는 아랑곳 않는 교사이자 셰익스피어 연극 지망생을 연기하는 제프리 러쉬의 연기에서는,오스트레일리아인 특유의 매력적인 터프함과 거침 없음 그리고 엉뚱함이 다같이 묻어나온다.이러니 연기자들의 좋은 연기라는 웰 메이드 영화의 중요한 조건을 이 영화는 또다시 충족시키는 것이다.

 

물론 콜린 퍼스의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수트 패션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그는 그의 배역 조차 그의 수트처럼 완벽하게 연기해낸다.그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고백해낼 때 (그래서 자신의 원초적인 갈등을 해결할 때),또 그가 마이크 앞에서 쩔쩔 매며 당혹해할 때,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섬세하고 클래시컬한 걸음걸이로 스크린의 양쪽 끝을 천천히 왔다 갔다 할 때,관객은 하나의 캐릭터를 직조해내는 연기 장인의 숨결들을 목격하게 된다.Academy award performance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이다.그래서 끝내 영화가 다정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될 때,관객은 안도의 한숨 마저 내쉬게 되는 것이다.(다만 이 영화의 연기들은 여러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 보다는 배우들끼리의 1대1 연기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는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콜린 퍼스가 히틀러의 연설 장면을 지켜보며 '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설 만큼은 정말 잘 한다'고 말하는 대사에서 친나치 논란이 일긴 했지만 그것은 지엽적인 논란에 불과하다.영국 입헌 군주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파고 들거나,세계 대전 자체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는다.모든 것은 배경에 불과하며 영화는 말더듬이 영국 왕의 내면으로만 파고 든다.이것이야말로 웰 메이드 영화의 또다른 조건인 '타협의 지점'인지도 모른다.

 

또,의미는 분명히 다르지만 관객의 '쾌적함'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또 하나의 어쩔 수 없는 책략일 수도 있다.결국 웰 메이드 영화는 영화의 엔딩 이후를 관객에게 맡겨 버린다.관객은,말은 더듬지만 진짜 노력과 진심을 통해 국민의 힘을 한 곳에 모으는 정성 어린 리더의 모습을 바라보며,거짓말과 꼼수로만 일관하는 자신들의 어떤 리더를 한심해할 수도 있으며,리더의 조건은 무엇이냐라는 근본적인 고민에 빠질 수도 있다.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영화가 자신의 내러티브로 얘기한 사항이 아니다.관객의 지성 속에서 스스로 작동시킨 생각들이다.그렇게 웰 메이드 영화들은 아주 깊은 곳을 향해서는 발길을 옮기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이 영화 <킹스 스피치>에 대해서 큰 불만을 느끼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들 중에는,이 영화가 '실제 일어났었던 실화'를 옮긴 이야기라는 데에 있을 수도 있다.그렇다,이 영화의 주인공인 콜린 퍼스는 현재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이고,사랑을 위해 왕위를 걷어찬 왕자 가이 피어스는 너무나 유명한 로맨스의 주인공인 것이다.실화의 영화화는 이렇게 관객을 또 한 번 무장해제시키는 것이고,올해의 몇몇 웰 메이드 영화 역시 바로 실화에 기초해 있다.

 

그런 영화를 찾아보자.

 

                               (계속)

 

 

 

사랑스러우면서도 기괴하고,한껏 다정하면서도 쓸 데 없는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헬레나 본햄 카터 얘기를 쓰는 것을 빠뜨렸다.그녀 만의 영화가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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