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쩌면 마지막,그리고 인생의 축소
두 세기에(?) 걸쳐 가을만 되면 부산을 향하고 있다.한때 여름이었던 부산행이 이젠 가을로 변해버린 것이다.가을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부산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이제 내 머릿속에서 영원히 바뀌어 버렸다.그것은 물론 부산영화제 때문이다.그때 20세기 말의 살풍경 속에서 뭔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 영화제를 처음 대했을 때의 내 개인적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때, 20세기의 말의 내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우울했으며 혼자였다.나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외적 요소들을 다 떠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버렸으며,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권태와 불합리,그리고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삶은 지겨웠고 또 지겨웠다.또다시 어디론가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기였고,또 마음 한쪽에서는 그런 고민 조차 다 쓸모가 없다고 느끼고 있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부산은 그런 나에게 그냥,아무렇지도 않게,홀연히 다가왔다.아마 우연히 그 가을 그 시간에 아무 일도 없이 놀게 되었을 것이다.당시에는 지금 벌어지는 예매 전쟁 같은 건 없었고,남포동을 쏘다니다가 남아있는 티켓을 현장구매해서 극장에 들어가버리면 그만이었다.영화제 도처에는 한가함과 여유가 넘쳐나고 있었고,그것은 가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울려 이상한 해방구적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지금은 전주영화제에서나 느낄 수 있는 정서다,특히 전주 영화제는 봄에 한다)
영화 역시 나에게 최고의 예술은 아니었다.나는 영화보다는 음악을 더 좋아했다.극장과 필름으로 구성되는 영화의 세계는 그저 그랬고,차리리 가끔씩 보게 되는 오래된 클래식 필름들을 훨씬 좋아했다.그럼에도 부산의 영화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그걸 설명해보라면 이런 저런 말들을 가져다 붙일 수 있겠지만 그건 그냥 가져다 붙이기에 지나지 않는다.왜냐하면 그런 감동들은 다 내 머릿속의 어떤 기억의 저장고들과 관련이 있고,거기서 그 기억들을 끄집어낼 때,오히려 손상되고야 마는 귀중함들,그리고 이어지는 왜곡들이 우선 걱정되기 때문이다.나는 가끔 그때 그 영화들이 지녔던 당시의 향취를 찾아내곤 한다.그리고 즐거워한다.그것은 이제 내가 나이를 꽤 먹었기 때문이고,그런 기억들에 대한 의존도가 과거 보다 높아졌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습관처럼 몇 년 동안을 부산에 가게 되자,부산은 기묘한 인공호흡기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이게 영화 때문이었다고?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보석 같은 영화 몇 편이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새로운 영화의 조류들의 탄생과 새로운 천재들의 준동을 지켜보며 흥분에 빠진 채 저녁 마다 포장마차에 앉아있곤 했지만,그것만이 부산영화제의 전부는 아니었다.부산의 또다른 측면은 아까 말했던 내 기억들과 연관이 있다.나는 그곳에 갈 때 마다 또다른 새로운 기억들과 또다른 새로운 경험들로 내 두뇌 속의 묘한 폴더처럼 존재하는 저장고들을 채워 놓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내 삶들과 거의 절대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내가 부산에서 보았던 영화들과,거기서 만났던 사람들,그리고 걸었던 거리와 보았던 바다들은 내 15년 동안의 삶과 거의 수평적으로 조응한다.나는 그 사실을 분명히 느낀다.그래서 부산영화제는 이제 내 삶의 조용한 증언자처럼 존재한다.부산영화제를 돌아보면 나는 내 지난 삶의 궤적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그리고 내가 2001년의 어떤 때 하필 왜 그 영화를 그렇게 좋아했었는지,2007년의 어느 날 왜 그 영화에 대한 글을 그렇게 열심히 썼었는지,확실하게 깨닫게 된다.부산은 이상한 도플갱어인 것이다.내 사랑스런 유령.
2011년 또다시 부산을 향하는 내 행장은 지난 십 몇 년과 거의 유사했다.가방 하나,가방 안에 든 책 (올해의 경우엔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박카스 몇 병,옷,양말..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예를 들어 사람들과의 약속들,예매한 영화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그리고 부산에 대한 신기루 같은 감각.나는 여느 때와 똑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 부산영화제 기행이 올해를 기점으로 결정적으로 변화하리라는 것을,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다.도대체 왜,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딱히 뭐라 정해진 대답은 없다.그냥 그랬다.그리고 또 그런 예감 때문에 슬프거나 안타깝지도 않다.왜냐하면 직감은 어떤 천재적인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이다.그것 역시 쌓여진 감각과 느낌 때문에 다가오는 예지와 비슷한 것이다.내가 그렇게 느꼈다면 거기엔 어떤 이유들이 잔뜩 쟁여진 탓일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그 이유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그것은 이제부터 달라질 수 있을 내 또다른 삶 때문일 것이다.이것 역시 막연하지만,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그러나 내년 부산 영화제 개막 이전이 될 것이다) 나는 내 삶을 그전보다 더 축소된 방향으로 몰고 가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직감이다 - 나는 그동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며,이젠 나 자신을 향하여,내 내면을 향하여 더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이것은 물론 내가 스스로에게 행했던 어떤 약속과 결부되겠지만 그래도 변화는 언제나 찾아오는 것이며,그것이 결국 내 앞으로의 부산행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그러나,역시 나는 내 삶을 축소한다.- 내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무언가가 없다면 나는 아마 이대로 그냥 늙어가다 죽게 될 것이라 여겨진다 - 그렇게 될 거다.
그렇다면 잠정적으로 이 영화제는 내 마지막 부산영화제이다.그래서 나는 좀 더 좋아해야 하고 좀 더 뛰어다녀야 마땅하다.영화도 더 많이 보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그러나 영화에 대해서라면,나는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여러 편의 영화를 마치 허기진 사람이 음식들을 먹어치우듯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그것이다.편식도 필요 없다.말하자면 화제의 영화나 떠오르는 뉴웨이브의 영화들을 '필견'영화라며 어떻게든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지워버렸다.이제 나는 부산영화제 정도라면 거의 모든 영화가 다 괜챦다고 여기게 되었다.사실 그 어떤 영화에도 빛나는 요소들은 다 있다.그 어떤 영화 속에서도 우리는 그 영화가 비극적으로 호소하는 말들이나,어떻게든 전달하려고 애쓰는 이미지들을 취할 수 있다.그러므로 이제 영화를 '많이,또 특정한 영화들을 꼭 볼 '필요는 없다.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물론 내게도 취향은 있다.취향은 결국 예매에서 드러나게 마련이어서 나는 이번에도 두기봉의 영화와 다르덴 형제의 영화,그리고 포르투갈의 영화들 (특히 올리베이라) 과 남미의 영화를 선택했다.그러나 이 영화들을 꼭 보지 않아도 상관 없고,누군가에게 티켓을 양도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한 개 정도의 영화만 건진다 해도 2011년의 BIFF(그런데 BIFF가 도대체 뭐냐,고기잔치도 아니고...)는 내 기억의 저장고 속 한 칸을 여유있게 차지하게 될 것이다.
2.첫번째 폴더
나는 술을 마신 후에 영화를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음주 후에 영화를 보면 뭔지 뒤틀린 기분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기분과 어울려서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세계를 이상하게 끌고 가버리기 때문이다.(그러나 물론 숙취 상태에서 영화를 본 적은 많다)
물론 몇 번의 예외는 있다.올해 5월 광주에서 5월 광주항쟁을 다룬 <오월애>를 보았을 때와,그리고 올해 부산 그리고 작년의 부산이다.작년의 부산에서도 나는 술을 마시고 저녁 영화를 보았다.그리고 올해의 부산에서도 술을 마신 후 영화를 보았다.그리고 그 술은 같은 사람과 마신 것이었다.메뉴도 똑같았다.서울의 엔지니어인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소주와 등심을 시킨 다음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얘기하는 사람이다.그녀의 반짝임이 술 때문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나는 우리의 술 들이킴을 막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게다가 이 경우,나는 그녀의 '부산에서의 증인'이다.나와 그녀의 경우 내가 그녀의 관찰자인 것이다.- 물론 인간 관계가 꼭 이렇게 관찰자와 피관찰자로 통일되는 건 아니다.그러나 이렇게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만나는 관계인 경우,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수도 있다- 그런데 작년의 그녀와 올해의 그녀는 다르다.그녀에게서 나는 어떤 고통 후에 나타나는 맑음을 보았다.그러나 그 고통은 다른 종류의 쾌활함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것 같다.다시 말해 그녀는 이제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 된 것이다.이런 종류의 유능을 '가면 쓰기'나 '실용적 적응'으로 파악해서는 안된다.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메커니즘으로 생각해서도 안된다.그것은 물론 내가 이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궁극적으로는 내 신뢰가 타인에 대한 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따라서 믿음이 없다면 그 관계는 그저 수박 겉핥기 식의 스쳐 지나가기와 똑같다.좀 더 나아간다면 그런 종류의 관계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 음주 후 나는 두기봉의 탈명금을 보러 갔다.낯설고 낯선 영화의 전당에 들어서자 새 집 증후군 특유의 매캐하고 건조한 냄새가 밀려 왔다.낮술 마신 사람이 이런 걸 느낄진대,예민한 사람의 후각이 느낄 고통이 어떨지 상상이 갔다.그러나 낮술은 모든 걸 이긴다.(낮술에 대한 무지막지한 시쳇말들은 또 여러 개다)
아무리 낮술을 먹었어도 두기봉의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사실 조차 몰라볼 만큼 사람이 바보가 되지는 않았다.이 영화는 대부분의 두기봉 영화처럼 매우 단순한 영화다.'돈'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사채업자와 은행원,조폭과 경찰,그리고 은행고객과 경찰 가족 들은 모두 '돈'에 연관된다.그리스의 경제위기는 이들 모두를 위기로 몰아넣는다.그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도망가거나 위기에서 벗어난다.두기봉은 이 스토리를 폭력과 유머,그리고 처절함과 안타까움을 거의 무절제하고 무질서하게 섞어서 전시한다.
단순히 집을 갖기 위해서,또 단순히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또한 단순히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유청운과 임현제를 포함한 배우들은 분주하게 홍콩의 공간을 뛰어다닌다.그리고 그 배후에는 거대한 원칙과 질서인 '금전'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Life Without Principle 이다.원칙없는 삶,즉 두기봉의 principle은 돈이 아니라는 뜻일 거다.그는 돈을 사람들 사이의 원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금융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채 영화를 만들려고 애쓰던 그의 개인적인 이력이 오버랩되며 아무나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이 대목에서 심형래가 받았던 국고지원금이 생각날 수 밖에 없는데,그 돈이면 작고 훌륭한 영화 수백 편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유청운은 능숙하고 느물느물하게,페이소스와 파토스를 혼합한 연기를 관객에게 보여준다.결국 관객을 즉물적으로 감동시키는 것은 이런 종류의 '감정'이다.특히 유청운,무감정한 형사,냉혈한,그리고 기인스럽고 폭력적인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그가 늙다리 조폭이라는 다소 전형적인 역할을 연기할 때,관객은 또다른 종류의 흡인력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좋은 영화다.혹시 개봉한다면 꼭 보시라.('좋은'영화라는 말 만큼 영화에 대한 찬사는 다시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 두 사람을 만났다.대기업의 젊은 사원인 그 남자는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 특유의 낙천성과 부드러운 눈빛,그리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지녔다.우리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아는 출판사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이 곳 부산의 밤하늘엔 별이 잔뜩 떠 있으며 우리는 그 별을 잡기 위해 밤바다로 출발할 거라고 염장을 질렀다.(순간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는 매를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행인 여학생은 단단하고 깔끔한 태도를 지녔는데,그것은 그녀의 지성적 자신감을 나타내는 표지였다.우리는 바다로 출발했고 나는 그날밤의 소주를 아주 잘 마신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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