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클린트 이스트우드- 그에겐 가족이 없다
이상하게도 나는,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기나긴 영화 이력 동안에,그가 정상적인 가정의 가장으로 등장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정상'이라니 좀 이상하지만,'가족'하면 우리가 보통 머릿속에 떠올리는 구도,식탁이 있고 아빠가 중앙에 앉아 있으며,엄마와 아이들이 그 주변에 둘러앉아서 저녁밥을 먹는 모습,또는 환한 조명 아래서 창 밖의 검은 어둠을 배경 삼아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는 그런 모습,..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런 장면에서 아빠 역할을 했던 영화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생각나시면 얘기해주시라.)
오히려,그는 언제나 결손가정의 가장이거나- 예를 들어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아내가 죽은 후 두 아이와 돼지를 키우며 산다,그러나 그 영화에서도 가정적인 화목한 장면은 결코 등장하지 않으며,그는 두 아이를 집에 그대로 놓아 두고 현상금 사냥을 위해 떠나 간다-,혹은 도시나 평원을 그림자처럼 홀로 떠도는 독신이었다.그는 언제나 혼자였으며,가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더래도 가정을 이루거나 오랜 동안 사랑하고 연애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그런 캐릭터를 가진 사람에게 어쩌면 가족은 지나친 사치이거나 위험한 도박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영화 속의 그에겐 언제나 정상적인 가족을 가지는 사치가 누려지지 않았다.오히려 과거의 상흔에 압박 받고 괴로워하는 역할들이 주어졌다.가족은 위로로서라도 그에게 기능하지 않았으며,이스트우드 자신 또한 전혀 그것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는 듯 싶었다.
1995년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보여주는 그의 로맨틱한 면모 역시,가족과는 상관이 없다.그 영화의 메릴 스트립은 결국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것으로 로맨스의 결론을 맺지만,킨케이드 (이스트우드) 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지 결혼이나 가정은 아니었다.결국 이스트우드는 아픈 마음을 안고 빗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실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그렇다.그는 다섯 명의 여인에게서 일곱 명의 자식을 낳았고,두 번 결혼했지만,남들과 비슷한 가족의 형태를 이룬 것은 1996년 이후,그가 우리 나이로 67세가 되었을 때였다고 할 수 있다.첫번째로 결혼했던 1954년 이후,그는 15년간이나 자녀를 갖지 않았는데,그것은 아내가 그러길 바랬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트우드 자신이 자녀를 거부했던 결과라고 한다.(그러면서도 그는 다른 여자와의 외도를 통해 자식을 낳았다) 정작,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서 가끔 음악을 담당하는 아들 카일이 태어난 것은,그 당시의 아내가 심하게 아프고 난 다음이라고 했다.그제서야 그는 마음을 바꾼 것이었다.(그러나 여전히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첫번째 아내와 이혼하지 않은 상황에서,그는 더티 해리 시절 그와 함께 영화에 쭉 출연했던 손드라 로크와 함께 살았다.1976년에서 1990년까지 그녀와 동거했던 그는, 결코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으며,헤어진 이후에는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손드라 로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사기죄로 고소했고,그와 함께 살았던 불행한 시절을 책으로 펴냈다.이쯤 되면 이스트우드가 중산층적인 가정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그런 가치를 소홀히 생각하고 어쩌면 거부하기까지 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그가 혐오했던 것은 가족이 아니라 결혼일 수도 있겠다.그는 결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They say marriages are made in Heaven. But so is thunder and lightning
그의 결혼 생활은 천둥과 번개의 나날이었던 모양이다.^^*
그랬던 그는 어느 순간,가족을 꿈꾸기 시작했다.물론 영화적인 가족이다.그것도 혈연 관계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일종의 유사 가족 대체 가족이다.<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그가 가르치는 복서인 힐러리 스왱크의 관계는 누가 보아도 아버지와 딸의 관계이다.또 그로 부터 거의 십 년 전의 영화인 <퍼펙트 월드>에서 소년을 인질 삼아 도주하는 케빈 코스트너 역시 결국 인질 소년과 유사 가족을 이룬다.그 영화에서의 케빈 코스트너는 소년의 아버지이자 형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결코 공권력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기는 커녕 오히려 더 깊게 파고 들어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특히 <체인질링>의 경우), '가족' 또는 '유대'라는 주제를 향하여서는 그에 반비례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천착한다.
오늘의 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역시,클린트 이스트우드인 월트 코왈스키는 이웃의 아시아계 소수민족인 몽족과 결국 '가족'을 이룬다.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이스트우드는 정식 절차와 앞뒤를 고려하는 스토리들을 이 사건에 부여한다.
우선 <그랜 토리노>에서의 가족 만들기는 ,코왈스키의 진짜 혈연 관계의 가족인 그의 아들 가족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영화의 첫 장면들인 아내의 장례식에서 코왈스키는 더 할 나위 없는 혐오감을 가지고 그의 가족들을 쳐다 본다.아들 가족들도 만만치 않다.할머니의 장례식 따위는 아랑곳 않는 손자들,부담스런 시아버지를 어떻게든 적당히 처리해야 하는 며느리,언제나 바쁘기만 한 아들..이들과 코왈스키의 사이는 처음부터 어긋나 있다.
이웃집에 사는 몽족 가족들에 대한 코왈스키의 첫 태도도 마찬가지다.장례식 도중,뭔가를 빌리러 온 타오에게 코왈스키는 으르렁거리며 쏘아 부친다.장례식 도중이란 게 보이지 않느냐고..그는 차갑게 문을 닫아버린다.이유는 있다.
장례식 이후 코왈스키의 집을 떠나는 아들의 차는 일본의 토요타 자동차가 만든 렌드 크루저다.미시건 주의 번호판이 챙피할 지경이다.
토요타의 자동차 딜러인 아들을 포드의 노동자였던 그가 혐오하는 것이 어찌 보면 인지상정일런지도 모른다.이웃 몽족 가정도 그의 혐오 레이다에서 벗어날 수 없다.그는 옆집을 쳐다 보며 끊임없이 구시렁거린다.
-저렇게 작은 집에 도대체 몇 명이 사는 거야..
-야만인들!
-도저히 미국 사회에 융합될 생각을 안 해..
그렇게 닫힌 마음을 가진 월트 코왈스키를 억지로 몽족 가정에 '융합'시킬리가 없다.언제나 그렇듯 이스트우드는 절차를 거친다.몽족 갱들과 타오 남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을 때,코왈스키가 총을 들어 싸움을 말려서 타오 남매를 구하는 이유는,단순히 그들이 자신의 앞마당을 침범했기 때문이다.갱들의 발길에 앞마당의 잔디가 짓밟혔을 때에야 코왈스키는 총을 드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전형적인 미국적 행동,또한 이스트우드적인 행동이다.그러나 몽족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그들의 관습적 생각엔,신세를 진 것이다.이 사소한 오해가 계기가 되어 몽족의 부지런한 오지랍이 시작된다.먼저 손을 내민 것은 아시아계 소수민족 출신의 가족인 것이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음식과 꽃을 코왈스키 노인에게 선사한다.윗사진에서 보는 것처럼,코왈스키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지만,그들을 향하여 서서히 마음을 연다.더구나 우연한 기회에 이웃 노인을 도와주는 타오를 보며 '요새 아이 같지 않다'면서 타오에게 새로운 눈길을 보내기 시작한다.
한편 코왈스키의 생일날 그를 찾아온 아들 내외는,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읽지 않는다.그들의 태도는 다분히 편의적이며,어쩌면 아버지 소유의 집과 가구,그리고 그랜 토리노만이 그들의 주목적인지도 모른다.당연히 아들 내외는 쫓겨 난다.그들 사이에 대화는 없으며,코왈스키 역시 일그러지는 얼굴 표정만으로 그들을 대할 뿐이다.
거기에 비해,몽족은 바로 그 날, 코왈스키의 생일 날,그를 집으로 초대한다.맥주와 처음 맛보는 동양 음식들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는 점점 유쾌해진다.(술과 음식이라,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단어가 아닌가) 물론 동양 사람들을 너무 몰라서- 몽족 관습에 따르면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머리를 만지면 안되는 모양이지만- 생기는 에피소드들도 있지만,그것은 그저 통과의례일 뿐이다.
타오와의 사건들도 조용하게 진행된다.코왈스키는 점점 타오의 할아버지이자 멘토,인생 조언자이자 보호자,심지어 직업 알선자로까지 변해 간다.코왈스키는 타오에게 미국식 유머와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탈리아인 이발사가 운영하는 이발소로 그를 데려가서 잠깐 동안의 소극을 펼치기도 한다.(그 이발사는 놀랍게도 과거 <더티 해리 시리즈> 중 하나에 '조디악 '킬러로 등장했던 죤 캐롤 린치이다)
이런 과정들은 차분하게,그리고 생각보다 길고 디테일하게 편집된다.마치 텔레비젼의 홈 드라마처럼 약간 평화롭기까지 하다.영화 속에서 새로운 전환이 될 폭력 장면이 일어나기 전까지,몽족과의 이 에피소드들은 ,거의 한 마디의 대화도 허투루 흘리지 않은 채 진행된다.
이런 새로운 가족,친밀함과 희생,그리고 세대간의 소통이 기본이 되는 가족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식 가족이다.혈연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먹을 거리'와 '고통',그리고 '기쁨','정신적 유대' 없이 ,그저 관습적으로만 형성된 가족은 가족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태도가,숱한 가정적인 불행과 고통을 겪어낸 남자,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태도이다.아마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가족은 멜파소 프로덕션일 것이다.
그의 '가족'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확대해석되어서는 안된다.그의 유사가족이 사회학적인 분석대상이 되는 것도 정확한 접근이 아닌가 싶다.내 생각으론 오히려 그의 개인이력이 투영된 영화적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계속)
요새 ,심하게 바쁘다.'게으른 자의 나라'는 없을까?...
총잡이 노무현 하늘로 향하다.-<스미스씨,워싱턴 가다> 그리고 <셰인 (0) | 2009.05.28 |
---|---|
<그랜 토리노> PART3- 이스트우드,스스로를 구원하려 하다 (0) | 2009.05.02 |
<그랜 토리노>PART1 - 클린트 이스트우드,자신을 정리하다 (0) | 2009.04.24 |
<스틸 라이프> PART 7 -세계의 인민 (0) | 2009.02.23 |
스틸 라이프 PART7 - <세계의 인민> (0) | 2009.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