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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일기.그리고 <아포칼립토>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07. 3. 2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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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들어 평생 안 쓰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그렇게 성의있게 쓰는 편은 아니다.마치 플레이톡에 글을 남기듯 한 줄 짜리 일기가 되는 경우도 많다.왜 갑자기 일기를 쓰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초등학교 시절,방학숙제 중에서도 가장 부담스러워했던 것이 바로 일기였는데도 말이다.사실 한 달 치 일기를 하루 만에 다 써야 했으니 오죽했겠는가.(도대체 왜 강제로 일기를 쓰게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남의 걸 보고 베낄 수도 없는 게 일기다.( 날씨만 빼고!) 펌질이나 스크랩으로도 해결불가능이다.다른 사람의 작품을 참고하는 것도 어렵다.예를 들어 '안네의 일기'나 '난중일기'를 베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초등학교 3학년 짜리의 일기가,
- 오늘도 왜선 세 척을 수장했다.우리측 피해자는 한 사람도 없다.이 나라는 도대체 우찌 될 것인가..
  
뭐,이렇게 시작할 수는 없는 거니까..

올 해부터 쓰는 내 일기장엔,그 날 봤던 영화와 책,그리고 순간순간의 삶의 느낌들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때로는 약간 흥분하거나 한 잔 했던 탓에 많이 두서 없어지고 형편없는 내용으로 흐르기도 한다.

오늘 쓰는 글은 그 일기를 참고로 작성된 것으로,2월에 내가 보았던 몇 편의 영화들을 다루고 있다.역시 일기장이라는 건 참 묘하다.

1/FEB.. 거룩한 계보



- 장진은 절대로 평균 이하의 영화를 감독하거나 제작하지 않을 것이다.또한 걸작이라고일컬어질 만한 영화를 만들어낼 수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모험하지 않으면 대가가 될 수 없다.그가 시를 읽고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장진의 
  팬들이여,그에게 시집을 선물해서 그를 타르코프스키로 만들어라..

- 장영남의 연기가 가장 훌륭했으나,가장 절묘한 캐스팅은 화이 역의 윤유선이다. 여동생
   친구인 윤유선은 실제의 그녀와 가장 비슷한 역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물론 15년 전의 
   그녀를 말하는 것이다.)

-정준호에겐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평소에 잘 가 보지 못했던 레스토랑엘 가 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그리고는 여전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 곽경택의 <친구>가 영원한 영향력을 가질 것 같다...

2/FEB 내 청춘에게 고함.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매력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

어딘가 홍상수의 냄새가 느껴진다.그러나 홍상수의 아류라고까지는 결코 말할 수 없다.홍상수의 길은 이미 복잡한 미로로 변해버렸다.이 영화는 그렇게까지 복잡하지 않다.복잡한 척 하려 하면 망할 것이다.

한 가지 거슬리는 것,참을 수 없이 거슬리는 것은 - 감독에게 어떤 고매한 숨겨진 의도가 따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문어체적인 대사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 나 간다.(한참이나 뜸을 들이다가) 여기서 멈출 수 없으니까.여긴 죽었으니까.
- 날 정희라 부르지 마세요.내 이름은 에비타니까.

뭐,이 정도는 약한 쪽이다.솔직히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현실의 우리는 이런 형태의 문장들을 웬만해서 입에 올리지 않는다.이 영화의 대사들은 세계명작소설의 번역본에서 복사해온 것 같다.어색한 수준이 거의 무한도전의 정형돈이다.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훨씬 가치있는 일이다.해외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영어자막을 통해 배우의 대사를 읽는다.듣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하며 그들이 대사의 어색스러움을 느끼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영화가 기본적인 소통의 도구라면,감독은 조금은 더 친절해져야 할 것 같다.(물론 선택사항이지만.)

일본의 NHK가 공동제작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뭐,whatever..

김태우의 분전이 눈에 띈다.그런데 그는 앞으로 기상천외의 코미디 영화에 출연해야 한다.그는 코미디 배우로서 자질이 있다.(물론 근거없는 예감에 근거해서 하는 말이다) 뭐,whatever..

5/FEB 도마뱀



역시 문어체스러운,아니 순정만화스러운 상상력.

- 나는 저주받았어.내 고향은 지구가 아니야.그 말을 믿었니,바보!

좀 모순적인 이야기지만 순정만화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극단의,극강의 순정만화스러움을 추구했음 한다.어영부영 현실의 꼬투리를 끼워넣지 말고 말이다.

-이젠 헤어진 커플,조승우와 강혜정의 공연작이다.나는 아주 평범하게 ,그들의 이별을 아쉬워한다.잘 어울리던 커플이었는데..

-이 영화가 최악의 연인을 만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닐까,하고 생각하려다가..비뚤어진 상상력을 스스로 꾸짖었다.

6/FEB 라디오 스타.



이준익의 영화는 소품이어도 빛이 난다.

- 내 보기에 그는 이 영화에서,저 명품배우들에게 조금도 빚을 지지 않았다.그는 영화 전체의 감정적인 측면을 감각적으로 통제했고,배우들은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 그러나 아마도 해외에서는 안 통할 것이다.

- 이준익의 주방장 까메오는 옥의 티다.그래서 안 통한다는 것은 아니다.

안성기와 박중훈의 모습을 보면서,오래된 듀오의 모습 -사이먼과 가펑클처럼- 을 느꼈다.그리고 생각했다.난 도대체 저 두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몇 개나 보았을까? 헤아려보려다가 말았다

7/FEB 흑사회 2



천장지구 시리즈의 두기봉이 삼합회를 다룬 영화.
개인적으로 강추하고 싶지만,1편을 보지 못했으므로 약간은 추천하기에 모호하다.찾아봐야 한다.1편을.

<거룩한 계보>와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같은 조폭(?)영화지만,<흑사회>나 <무간도>엔 실존적 고뇌,또 조폭 개인의 존재적 고민이 있다.

정말일까? 중국쪽 조폭이 이렇다는 것은..,혹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폭력의 미화'가 아닐까?
ㅋㅋㅋ

8/FEB 굿 나잇 앤 굿 럭.



어쩔 수 없이 '시사저널 사태','짝퉁 시사저널'을 떠올렸다.몇십 년 전,미국 CBS의 사주는 기자들에 대한 자본의 압박에 '적어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압력 조차 젠틀했다.


그런데,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과 금창태는?
한국의 언론과 재벌기업은 너무나 천박하다.이왕 나쁜 짓을 하려거든 세련되게라도 해야 될 것 아닌가? (하긴 홍석현을 보면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낮엔 국제신사인데,밤엔 X file작성자이니까..)

아무래도 이 영화에 대한 리뷰는 따로 써야 할 것 같긴 한데,괜히 흥분할까봐 자제하고 있다.

9/FEB 해피 피트

<매드맥스>와 <베이브>의 죠지 밀러가 만든 극장용 3D뮤지컬 애니메이션.훌륭한 음악에,비쥬얼에,호화 캐스팅에..흠잡을 데가 없다.끝까지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는 솜씨는 여전하다...

그러나 아주 자세히 훑어보면 펭귄이란 동물의 외모는 약간 비호감이다.그 비호감을 죠지 밀러는 굳이 감추려들지 않고,탭댄스와 노래로 돌파하려는 작전을 세운다..

- 브리타니 머피에게 반해버렸다.

- 영화 속에서 들리는  Queen의 Somebody to Love이 귓가에 생생하다.그리고 죽은 프레디 머큐리가 자꾸 생각난다..

12/FEB 단연 2월의 영화인 아포칼립토.



헐리웃의 쌈마이 멜 깁슨이 호나우딩요를 주인공으로 써서,
그냥 액션영화로만 찍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쓸 데 없이 몇 마디 자막과 몇 장면을 덧붙여서,
미국인이 아닌 관객의 기분을 매우 불쾌하게 만든 결정적 비호감 영화.아포칼립토.

학살과 인신공양으로 대표되는 잔혹한 마야문명의 몰락시점을 그린 이 영화는 다분히 고의적으로 윌 듀런트의 < 거대한 문명은 내부로부터 붕괴된다>는 글귀를 영화도입부에 삽입함으로써 마야의 멸망이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그 문명권 구성원 전체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시작부터 명토박고,

영화 말미에는 상륙하는 스페인 함대의 거룩한 모습을 묘사하며 주인공 호나우딩요로 하여금 아포칼립토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내뱉게 하여 백인들의 침략에 새로운 지평을 선사한다.

이 다분히 의도적인 수미쌍관적인 배치에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장난 수준이기 때문이다.깁슨은 아니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이토록이나 유치한 것인가? 바겐세일인 것처럼 과대선전,과대포장했다가 갑자기 덤터기를 씌우는 불량상인들의 수법에 다름 아니다....

13/FEB 아포칼립토,고도의 안티!



어쩌면 깁슨이 고도의 미국 안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문제의 그 말,<거대한 문명은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다>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로 해 보자.그런데 혹시 이 문장의 '거대한 문명'은 혹시 미국?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아포칼립토>의 학살 장면은 지구 곳곳에서 (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그리고 노근리에서) 자행되었던 미군의 살인행각들을 닮아 있다.비참한 노예시장의 풍경은 미국 흑인노예제도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도망치는 호나우딩요는 '엉클 톰스 캐빈'의 탈주하는 노예의 전생이다.

마야신전의 제식은 미국 대중문화의 시민에 대한 철저한 마취와 연결되고,전염병 같은 재앙을 외부의 적에 투사시키는 짓도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때면 사용하는 고전적 수법이 아닌가?
(물론 미국만 그러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깁슨의 불길한 예언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자기 나라의 심장부를 향해 있다고? 깁슨이 미국의 몰락을 예언하고 있다고? 아,고토의 안티,멜 깁슨..드디어 해냈구나!

아니면 그가 단 한 줄의 인용구로 (이거 무슨 플레이톡도 아니고 ) 음울하게 읊조리는 멸망할 운명은 바로 깁슨과 내가 발 붙이고 사는 지구 전체의 운명인 것일까? 혹시 호나우딩요는 역사상 가장 오해받은 문명비판영화의 주인공? 그러면 영화 속 학살된 시체들은 인류 역사상 다반사로 저질러진 수많은 야만을 상징하는 것이네! 깁슨이 영화내내 지속시키는 그 잔인한 묘사는,지구 문명에 대한 슬픈 송시였구나...그렇다면 좀 더 강도 높게 묘사했어야지...생각보다 심장이 약하구나..미스터 깁슨..

여기서 생각나는 사람은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문소리와 결혼한 천재.그는 외계인 백윤식의 손으로 지구를 처단한다.백윤식은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지구 문명을 보다 못해 최후의 폭파스위치를 누른다.애정에 기초해서 말이다.백윤식은 <아포칼립토>의 끝 장면에 등장하는 스페인 침략자들이다.그들은 당당히 십자가를 앞세우고 바다를 건너온다.멜 깁슨에게 십자가는 장준환의 UFO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내내 고생한 호나우딩요야말로 너무나 불쌍하다.그냥 바르셀로나에 있지,뭐하러 객지에 나타나 이런 개고생을 한 것일까? 좋은 소리도 못 들을 거면서.아니,중간에 희생된 돼지는 더 불쌍하다.도대체 돼지한테 무슨 잘못이 있나? .

이렇게까지 생각하니 액션 장면까지 다 진부해진다.폭포 장면이니 추격 장면이니 다 진부해진다.이 모든 것이 깁슨이 집어넣은 수미쌍관의 장면들 때문이다.따라서 내부로부터 붕괴한 것은 마야문명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지구도 아니고 바로 멜 깁슨의 영화 <아포칼립토>가 되버렸다.

<영화는 쓸 데 없는 몇 장면 때문에 그 내부로부터 붕괴하는 것이다.>.피노키오.

극장엘 살짝 늦게 들어왔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조금 일찍 나갔던 관객이 가장 현명하고 행복한 관객이었던 것이다..

그만..내일은 쵸콜렛 받는 날..열 받지 말자...2월은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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