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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의 뜨거운 블록버스터들.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07. 8. 1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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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다.비와 무더위가 무작위적으로 교차하는 알 수 없는 여름이다.나는 이런 여름에 적응할 수 없다.어쩐지 낯설다.내가 바라는 여름은 한낮엔 태양이 쨍쨍 내리쬐고 나무에선 매미들이 한껏 울어대는 그런 고전적인 여름이다.물놀이하는 아이들이 서로 뿌려대는 불규칙한 물줄기들이 태양빛을 현란하게 반사하고,이어 초저녁 어스름결엔 서늘한 기운이 대지를 뒤덮어 진정한 휴식을 가져다주려는 듯한 나날들,그것이 내가 바라는 여름이다.

 

거기에다가 밤하늘의 은하수들,그 환상적인 꼬리들이 필요하다..

이십 년도 더 지나지 않았을까,내가 그런 은하수를 보았던 것은.

별들의 환상적인 군무를 보았던 그 밤이 어느 시절 어떤 여름밤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그곳이 경기도 여주의 어느 냇가에서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그러고보니 그 당시 내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면면까지 아스라이 떠오르기 시작한다.그 소년과 소녀들은 지금쯤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그들도 은하수와 밤하늘이 장관을 연출하던 그 밤을 기억하고 있을까..

 

어쨌든 휴가도 없는 올여름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26개월 짜리 딸 은별이는 연방 '물놀이 가,물놀이'를 외치고 있다.언젠가 어린이 풀장에서 신나게 놀아준 탓이다.비가 와도 물놀이,한밤중에도 물놀이 타령이다.이상한 건 물놀이란 단어를 언제나 두 번 반복한다는 것이다.'물놀이 가.물놀이..'이런 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은별이의 발성은 언제나 한 옥타브 위다.아내가 낮은 허스키식의 발성을 하기 때문에,녀석은 언제나 한 옥타브 위의 발성을 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은별이는 아내의 톤에 자신의 음을 정확하게 일치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난 그것이 은별이가 가지게 될 앞으로의 음악성에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게다가 얘는 상당히 정확한 피치와 박자감각을 가지고 있다.언젠가 어머니께 이런 내용의 말을 전하자,'부모 눈엔 다 그렇게 보이는 거'라며 면박을 주시는 것이었다..웃을 수 밖에 없었다...(아빠 고슴도치 얘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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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와 무더위의 나날들을 몇 편의 블록버스터로 버텼다.

 

블록버스터.특정한 시즌을 겨냥하여 대규모 흥행을 목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들여 제작한 영화..이것이 블록버스터의 정의이다.네이버 백과사전에 그렇게 쓰여 있다.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몇몇 영화들 역시 블록버스터다.그런데 난 이런 블록버스터에 많은 것을 바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작품성을 바라거나 예술성을 바라거나 혹은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바라거나 그래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어차피 '특정한 시기'에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이니까 말이다.그리고 마찬가지로, 영화를 광고하고 흥행하는 사람들 역시 너무 오버하거나 관객들에게 지나친 마약을 주입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돈을 벌어보겠다고 소비자들의 눈을 멀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일종의 상도덕이니까 말이다.물론 세상 일이 꼭 원칙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사실,영화를 보는 것은 관객이다.주로 관객들이 블록버스터의 운명을 결정한다.평론가들이나 언론이 아니다.그들은 부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천 명의 관객들은 언제나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극장에 오는 천 개의 발걸음 역시 제각각이다.그들은 천 개의 눈동자를 통해 천 개의 해석을 동원해내고,그들이 영화로부터 얻으려는 것도 천 개 이상의 어떤 의도들이다.그냥 재미를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 시간을 때워보려고 오는 사람들,그리고 어떤 유혹을 구하려하는 사람들까지 천양지차다.

 

그러므로 이 때 어떤 한 두개의 눈이 모든 눈들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영화적인 상상력과 교양이 남들보다 더 풍부하다고 해서,그것이 빈약한 사람들의 눈을 형편없이 깔아뭉개서는 곤란하다.다수대중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에는 뭔가 거대한 공통분모 같은 것들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비평하는 사람들,그리고 영화를 남 보다 더 많이 보아오는 사람들이 대중의 취향에 언제나 영합하기만 하거나 그들의 타겟들을 방치하기만 해서도 곤란하다.무언가를 발언하는 사람도 필요하다.때론 뭇매를 맞기도 하고 때론 그들 역시 오류를 저지르기도 하겠지만,약간의 발언권을 가진 사람의 숙명이기 때문에 그것 역시 그들은 감수해야만 한다.억울해해서는 안된다.그리고 그것은 비단 영화판 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역시 억울해할 것 까진 없다.

 

다이하드 4

12년 만에 돌아왔다는 다이하드.아주 오랜 세월 보아왔던 ,그래서 지금은 익숙해져버린 브루스 윌리스의 고생담과 무용담,그리고 그의 액션 ,또 시니컬한 농담들..이번에 또 돌아왔다.올 때가 되니 온 것이다.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브루스 윌리스도 이젠 늙어버렸다.이 범상치 않은 배우의 외양은 이제 프로레슬러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을 닮아있다.물론 그의 말빨은 지금도 여전하다.가끔씩 날려주는 독설도 여전하고 쌈박질도 잘 한다.

 

영화를 보며 일종의 데쟈뷰 현상을 느낀다.과거 1편,2편,3편의 어느 영상들을 또다시 보고 있는 것 같다.

악당의 설정이 약간 달라졌다고 해서 그들이 영화 말미에 윌리스의 주먹에 박살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윌리스에 도움을 주는 FBI 요원 역에 중동계 배우를 쓰고 있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브루스가 늙어버린 연유로 그의 파트너는 한참이나 어린 세대의 배우를 쓰고 있긴 하지만 ,그 파트너쉽의 근본이 바뀐 것도 아니다.4번에 걸쳐 등장했던 <다이하드>의 악당들 중 가장 매력적인 악당은 3편에 나왔던 제레미 아이언스였다.그의 호리호리한 카리스마는,브루스 윌리스의 무대포스러움과 묘한 대비를 일으켜 관객들로 하여금 악당에게도 감정이입할 수 있다는 색다른 경험을 갖게 했었다.

 (당시의 제레미 아이언스의 포스는 정말 대단했다)

 

거기에 비해 2007년의 악당은 좀 별로다.악당 뿐만 아니라,윌리스의 파트너 역시 별로다.3편에서 보여주었던 새뮤얼 잭슨과의 거의 알콩달콩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대립과 하모니를 12년 후에는 찾아보기 좀 어렵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처럼 보이는 파트너와의 관계 역시,어쩐지 무정부주의자들을 교화하려는 정적인 보수주의자들의 온정처럼 보이고 결국은 세대간의 화해로 결론나는 그 파트너쉽의 끝마무리 역시 언젠가 어디서 보았던 것 같은 내용들이다.그렇다,블록버스터는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심지어 영화에 나타나는 거대한 트럭과 헬리콥터들 역시 과거에 <다이하드>시리즈에서 유료임차해온 듯 하다.윌리스는 영화에서 아내와 이혼한 상태로 설정되어 있지만,아내에서 딸로 바뀐 상대여배우의 얼굴 윤곽 조차 전편들의 여배우의 얼굴에서 별로 변하지 않았다.(물론 딸이 엄마를 닮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언제나 모든 사건들이 해결되고 나서야 나타나는 경찰들의 백차와 사이렌 소리도 여전하다.

 

이 익숙한 진부함..그러나,또 바로 그것이 편안함을 준다.긴박감을 자아내는 오케스트라의 음악 역시 진부하고 편안하며,가끔씩 늘어지는 영화의 템포 역시 진부하고 편안하다.그리고 그 익숙한 진부함이 관객을 평온한 심정 속에 빠져들게 한다.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혁명적인 변화는 없다,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윌리스가 온 몸을 다해 지켜주는 안온한 세상에 살고 있다,그러니 안심하고 그의 액션과 시니컬한 냉소를 즐겨라..,뭐 이런 소리다.

 

그래서 즐겼다.그리고 영화관을 나온다.아무 생각없이.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편하게 잠든다.다만 과거 다이하드의 세번째 시리즈를 같이 보았던 그 당시의 연인의 얼굴을 떠올린다.그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어딘가 외국으로 떠났다는데..

 

오,이런 회상들 조차 무의미하고 무해하다..

 

2.트랜스포머.

 

 

 원작이 탄탄하다는 이 영화..난 참 재미있게 보았다.그도 그럴 수 밖에..이 영화엔 우리가 아는 모든 블록버스터들의 요소들이 몽땅 담겨 있다.평소엔 아주 심약하고 엉뚱해보이기만 했던 아이가 갑자기 지구를 구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달지,그의 조상 누군가가 그를  그 엄청난 사명의 단초가 되었달지,(주인공 할아버지의 안경이 손자인 주인공을 막중한 임무로 이끌게 된다)

 

또,섹시한 여자친구가 존재하는 한편,그들의 멜로라인을 방해하는 머리는 텅 비고 근육만 더덕더덕 붙은

muscle man인 방해꾼이 존재한달지..,그리고 지구를 구하는 데에 결정적인 조력자들인 어떤 요원들의 존재 (이 영화엔 오토봇이라는 로봇군단이다) 가 상정되어서 그들과의 알흠다운 우정이 싹트고,또 그들 중 누군가는 결정적으로 희생당하는 듯하고 그러다가도 회생하고..,또 착한 녀석들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녀석들이 있어서 결국엔 최후의 전투를 벌이고....

 

결국 선은 악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그래서 지구는 결정적인 위기에서 벗어난다...세상은 여전히 편안하고 주인공 소년은 이제 마음 놓고 그의 러브라인으로 빠져든다.어차피 다 아는 얘기다.관객들은 결말을 다 알고 있고,그래서 한층 더 편안하고,그래서 문제는 그 결말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얼마나 거대한 스케일로,얼마나 관객의 의표를 찔러대는 스토리상의 반전으로,또 얼마나 다양한 영화적 기법으로 결론을 이끌게 될지,뻔히 알고 있는 조바심을 쳐가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그리고 결국 만족한다.(이 만족은 기본적으로 '만족하기 위한 ' 만족일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로봇의 첨단변신술과 마이클 베이 특유의 카레이스가 바로 그 '어떻게'이다.아,참 멋있다.감탄한다.이것이 꼭 진정한 감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워낙에 머릿속에 각인된 이 진부함과 익숙함과 새끈함 때문에 극장을 행복하게 걸어나온다.물론 불만을 표하는 부류도 있고,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어떠랴,이토록이나 무해한데,,뭐하러 쓸 데 없이 돌을 던지나..돌이 아깝다.

 

물론 트집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난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전거성이자 전원책인 어떤 변호사'에게 잡을 수 있는 트집 보다는 덜 치열할 거라고 생각한다.난 그가 철없는 가수 이안과 벌였던 그 말싸움 동영상을 보면서,'딸 가진 아빠로서의 충격'을 느꼈었는데,가장 충격받은 대목은,그가 자신의 누나와 아내 역시 전문직인 '의사'여서 전문직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던 대목이었다.군가산점제도가 폐지되기 전- 그러니까 내가 한참이나 진급시험을 보아야했던 시절이다.-,여성의사들이 군대에 다녀온 남성의사들과 비교하여 받아야했던 그 어처구니 없었던 상대적 불이익을 돌이켜보자,난 전거성이 자신의 누나나 아내와 전혀 대화가 없었거나 그들의 과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말았던 것이다.그리고 깜짝 놀라서 이 문제에 대해 무슨 글을 쓰려다가 말았다.이런 단순한 놀람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또 전거성 그 분이 자신도 모르게 진짜 무한도전의 박명수의 포맷을 복제하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굳이 글까지 쓸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결론은 그거였다.전거성과 박거성은 서로의 시뮬라크르라는 것..

 

그런데 아무리 <트랜스포머>가 '우리의 전거성님'보다 더 유해할까? 아니다.이건 그냥 블록버스터다.그러니 극장을 나가서 어서어서 집으로 가자...

 

3.<디워>

 

<디워>에 대해선 좀 무섭다.하도 논란이 되고 있고 그래서 굳이 나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뭐,가볍게 이야기하기로 하자.

 

우선 나는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다.텔레비젼의 무슨무슨 영화소개프로그램에서 <디워>에 나오는 이야기와 영상을 미리 소개하는데 - 참,난 이 짓 좀 안했으면 좋겠다- ,영 형편없던 것이었다.게다가 난 원래 '괴수영화'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CG로 도배된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더구나 심형래의 팬도 아니었다.그런 내가 이 영화를 보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우리나라 사람이니까 봐야 한다고? 에이 무슨 농담을..평소에 우리 영화를 얼마나 보신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나..)

 

또 난 심형래의 바보연기를 아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우리나라 코미디언의 바보연기 계보는 심형래 윗쪽으로 한참이나 올라가야 하는데,전설적인 코미디언 배삼룡에 비교해본다면,심형래의 바보연기는 너무 느끼했다.'비실이' 배삼룡이야말로 진정한 약자였고 언제나 구박당하고 넘어지는 서민형 바보인데 반해,심형래의 바보연기는 무언가 새도매저키스틱한 면이 엿보였었다.'바보연기'가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페이소스,약자로서의 '오히려 반항'적인 측면이 심형래의 바보에서는 거의 도외시되었고, 슬랩스틱한 면만이 지나치게 강조된다고 생각했었다.배삼룡의 상황은 언제나 다양했다.그는 언제나 물건을 잘 팔지 못하는 외판원이거나 시골에서 갓 상경해 서울의 물정을 잘 모르는 촌사람이었고,그 부적응성으로 인해 파트너 구봉서에게 매를 맞다가 결국 구봉서에게도 역시 피해를 입히는 스타일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바보였었다.그는 개다리춤을 추거나 살짝 흰눈을 뜨면서 그의 압박자에게 저항했다.결코 완전히 망가지지 않는 심성을 가지지 않는 바보였던 것이다.아니 배삼룡은 바보라기 보다는 약자를 연기했던 것이다.또 그를 언제나 구박하던 그의 카운터 파트 구봉서 역시 - 이 사람 역시 탁월한 코미디언이었다- 결국은 마음을 고쳐먹고 변화하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되는 일이 많았다.인간성의 회복이다.

 

그러나 70년대 드라마 '여로'의 장욱제 -'색시야'를 연발하던 - 를 패러디한 것이 분명한 '영구'를 연기하는 심형래는 배삼룡과는 약간 차원이 달랐다.영구는 언제나 어떤 마을의 분명한 구성원으로 존재했고,그 마을 안에서 확실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그의 파트너들이 아무리 그를 괴롭혀도 그는 마을을 떠나거나 떠돌이가 되지 않았다.게다가 영구는 어느 정도 경제적인 뒷받침을 받고 있었고 ,우선 '가족'이 있었다.(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그래서 심형래의 영구는 그저 일회성 바보 에피소드가 반복되는 스타일의 '이웃주민'일 뿐이었다.그는 과도한 얼굴근육 사용을 통해 바보를 연기했고,그것은 성인들을 겨냥한 바보가 아니라 ,그 당시 텔레비젼의 주된 관객으로 떠오르던 어린이들을 위한 '못난이'였다.따라서 심형래를 계승한 바보들 -맹구 이창훈이나 심현섭-이 매저키즘을 떠나 새디스틱한 상황을 연출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과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것이었다.바보도 진화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바보'는 진정한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인사이더였던 것이다.심형래 이후의 바보들이 -예전의 배삼룡 보다- 훨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물론 배삼룡의 훗날도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

 

따라서 내겐 <디워>를 꼭 보아야 할 이유가 전연 없었다.그러나 <디워>는 어느덧 이슈메이커로 변해가고 있었고,마치 장이모우의 <영웅>이 중국에서 개봉했을 때 중국인들이 그 영화를 보지 않으면 타인과의 대화마저 불가능했던 것처럼,이제 <디워>는 꼭 보아야 할 어떤 것이 되고 있었다.더구나 이송희일이나 진중권이 불씨를 지핌으로써 심형래 영화의 흥행성공은 따놓은 당상이 되고 말았다.

 

난 열 두살 짜리 조카를 유혹했다.오랜만에 삼촌 노릇을 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말이다.이제 사춘기에 접어들기 직전인 조카는 경멸하는 듯한 시선을 내게 던지면서 말했다.

 - 삼촌은 유치하게!! (내 조카가 이제 '질풍노도의 시기'로 들어가고 있으므로 화내시지 말기 바란다)

 

결국 난 혼자서 <디워>를 보게 되었다.그 날 그 상영관에 혼자서 그 영화를 보러 간 사람은 아마 내가 유일했을 것 같았다.약간 외로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디워>는 블록버스터였고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그리고 심형래스러운 영화였다.(이것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미덕인지도 모른다)

<디워>에도 블록버스터스러운 진부함 그리고 익숙함이 넘쳐나고 있었다.<트랜스포머>의 소년처럼 갑자기 ,어쩌면 본인에겐 황당하게 지구를 구해야 할 운명에 처한 주인공이 있었고,그에겐 또 여자친구가 있었다.(물론 이 여자친구와의 러브라인은 약간 부조리한 측면까지 존재하고 있었으나,이렇게 부조리하게 사랑에 빠지고 마는 블록버스터도 있긴 있다.어쩌겠는가 ,두 청춘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해변에서 키스하고야 말겠다는데..) 또한 주인공들을 뒤쫓는 악의 무리가 있고,주인공들을 도와주는 지원병들이 존재했다.<다이하드>처럼 결국 승리하고 말 것이 뻔했으며,그 승리를 위한 '어떻게'는 심형래가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전투씬을 통해 정립되어 나가고 있었다.

 

그냥 보기엔 무난했다.뭐 ,뭐라고 비평을 하거나 딴지를 걸 필요까진 없다고 느꼈다.마지막의 <아리랑>이나 심형래의 인간극장 다큐멘터리가 삽입되어 있어서,'이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뭐,박수치는 초등학생들이 몇몇 눈에 띄어서 그러려니 했다. 약간의 어색함을 그들의 감동과 맞바꿀 아량과 요량 정도는 내게도 있었다.더구나 심형래는 초등학생들의 오래된 벗이 아닌가.하여간 용과 이무기는 싸웠고  착한 용이 이겼다.용과 이무기의 어지러운 전투 와중에 누가 우리 편인지가 약간 헷갈렸으나,그것은 내 시각적 무능의 탓이다.하여간,그래서 ,지구는 또다시 구조되었고,파괴된 도시는 서울도 아니고 로스엔젤레스라..,뭐 다행이다 싶었다.ㅋㅋ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는다,배우들의 연기가 엉망이다..뭐 ,이 말도 맞다.그런데 말이다.이 영화는 다른 사람도 아닌 심형래의 영화다.이 말이 심형래를 폄하하기 위해 쓰여진 문장이라고 생각한다면,당신은 정말 심형래를 모르는 사람이다.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아주 예전 심형래의 영화들을 떠올렸다.그의 영화엔 언제나 황당한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 대사,그리고 어설픈 장면이 존재했다.그의 배우들은 언제나 어울리지 않는 감탄사와 개그스런 대사를 남발했었다.가령,<디워>의 불행한 조선시대 연인들이 절벽으로 뛰어내리기 직전,소녀가 소년에게 '사랑해요'하는데,이거 약간 부조화였다.그 소녀의 '사랑해요'는 전혀 절박한 투의 사랑해요가 아니었다.뭐,언제나 사랑해요가 절박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그런데 과거 심형래 영화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식의 부조화가 발견되었었다.나는 그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디워>에서,전투 중의 사망한 미군들은 우리나라 교외의 공사판 언덕을 연상시키는 공터에 가지런히 널부러져 있었다.대략 여덟명이서 가지런히 넘어져서 옴쭉달싹도 하지 않고 있었다.그런데 과거 심형래 영화의 시체들도 그랬다.그렇게 넘어져 있었다.씬이 끝나면 일제히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을 것이다.

 

심형래의 연출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아니다.그는 그냥 자신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뿐이다.민지환이나 이종만 같은 노장배우가 출연하긴 하지만,어떤 배우들은 아주 낯선 얼굴들이다.가령 조선시대 두 연인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어제 연기학원을 졸업한 듯한 배우들이다.그런데 그것도 과거에 심형래 감독이 했던 일이다.그런 단역에 그렇게까지 비중있는 배우들을 쓰지 않는 방식,조금 어설퍼도 관객에게 과감하게 이해를 구하는 방식,그것은 그가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방식이다.얼마나 경제적인 방식인가?꼭 그 역에 장동건과 전도연을 써야 하겠는가? 어떤 분들은 이런 식의 어설픈 연출력이 미국에서 통하겠느냐는 이야기들을 하시는데,미안한 말이지만 미국 관객들,그렇게 수준 높지 않다.그 애들,프로레슬링이 진짜인 줄 아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10%나 된다.내 보기에 그들은 심형래의 <디워>를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보아줄 아량이 있는 사람들이다..미국에서 성공한다.<디 워>는..(책임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뭐하러 내가 책임을 지겠는가..할 일도 많은데..은별이하고 물놀이 갈 시간도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뭐,어쩌겠는가..그렇게 만들었다는데..

 

지루한 회상들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파괴와 전투 장면들이 시작되자,난  심형래의 전투씬이 꽤 볼 만하고 멋있다는 데에,흔쾌하게 한 표를 던지기로 했다.괜챦았다.깨고 부수고 건물을 올라가고 멋진 용들과 이무기들과 헬리콥터들과 전투기들과...그 정도면 됐다.

그러면서 갑자기 움베르토 에코의 어떤 글들을 떠올렸다.그가 포르노그래피의 어떤 특징들을 얘기했던 글들이었다.포르노 영화들은 정사씬과 정사씬들을 연결하기 위해,가엾은 스토리와 일상적인 동작라인들을 중간에 끼워넣는다는 취지의 말들이,에코 특유의 블랙 유머와 패러디를 통해 그려져 있었다.내가 갑자기 에코의 글들을 떠올린 이유는,<디 워>역시 이무기들과 용의 전투씬을 위해 사람들의 어설픈 스토리들을 중간중간에 끼워넣지 않았을까,하는 갑작스런 상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오해하지 말아주라.난 포르노그라피도 분명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그리고 <디워>가 포르노란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더구나 심감독은 그렇게 심약한 사람도 아니다.심형래는 그가 심혈을 기울인 그 전투씬을 위해서,그 결정적인 스펙터클들을 위해서 얼마든지 스토리나 연기 따위는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얼마나 배짱있는가? 멋지지 않나? 쿨하고 저돌적이지 않나? 이명박과 노무현을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사람이 아닌가..차기 대통령과 현대통령을 섞어놓은 듯한 캐릭터.돈 벌고 권력도 가질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더구나 그는 자신의 일관성을 유지한다.그리고 성공을 거둔다.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성공시키시고 이제 거대한 미국시장을 향해 진군하시는 과거의 '바보'..멋지다..!!

 

'평론가'라는 친구들은 상대를 잘 못 골랐다.오해 마시라.'심형래'를 잘 못 골랐다는 것이 아니다.그들은 '대중'을 모른다.몇 몇 영화감독과 '진교수'의 트러블을 통해 난 '전문가 계급'의 몰락을 읽는다.무언가에 대한 전문가는 이제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정확히 말하자면 전문가의 아우라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진료실에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대개 인터넷에서 읽은 자신의 병세에 대한 전문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다.그들은 쉴새없이 내게 질문을 퍼부으며,인터넷에서 읽은 정보들과 내 대답들을 비교한다.그들의 그 '지식'들 중엔 물론 잘못된 지식도 있고,본인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만한 거짓정보도 있지만 ,현재 이 글에서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이제 대중은 더 이상 과거의 '전문가'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들은 '전문가'들을 향해 언제든지 돌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몇 년 전의 '황우석 사건'을 통해 다 경험해 놓고 모른 척 하다니,이거 좀 개그스럽지 않은가..특히 마이너리티 센스에 대한 매력,동정,울분이 연합하면 가공할 위력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어차피 '평론가'ㅡ,과거의 '전문가'들.이젠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순교'할 사람은 순교하고 '봉사'할 사람은 봉사해야지 뭐,어쩌겠는가..

 

어쨌든 난 <디워>를 재미있게 보았다.관객은 천 개의 눈을 갖는다.그 이야기는 어떤 한 관객이 천 개의 눈을 가질 수도 있다는 뜻도 된다.다른 눈을 가지면 그 어떤 것도 해피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밀양>을 보면 된다 이 말이다....그런 의미에서,나는 결단코 <디워>를 해피하게 본 사람이다...

 

몇 마디 덧붙이자면,덧붙일 수도 있겠다.

우선 <디워>속엔 참 여러 영화들이 보였다.이 글에서 <디 워>이전에 말한 두 영화도 보였었고,심지어 <터미네이터>와 <스타워즈>까지 보였다.<백 투 더 퓨처>와 <킹콩>이 보였고,하마터면 <로미오와 쥴리엣> 아차 아니,<트로미오와 쥴리엣>이 보일 뻔도 했다.<반지의 제왕>과 <쥬라기 공원>까지.진수성찬에 종합선물세트다.그러나 '하늘 아래 새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심형래가 스스로를 셰익스피어라고 말한 적은 없지 않은가..

 

'애국'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심형래 영화를 '보아주는'것이 '애국'이라는 거.이거 말도 안 된다는 거,이 글을 읽는 그대도 알고 나도 안다.'애국'은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다.내가 보았던 가장 훌륭한 애국자는,중국과 대만의 양안위기때,갑자기 대만으로 돌아가서 군복무를 하고 돌아왔던 대만 출신의 의사였다.그는 평소에는 말도 없고 얌전하며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는 생각은 도무지 머리에 떠올릴 가능성도 없는 채식주의자였다.그러나 그는 병원에 사표를 던지고 타이페이행 비행기를 탔었다.물론 여기에도 왈가왈부할 분이 계시겠지만,'자기 기득권까지 버려가면서 나라를 생각할 정도'는 되어야 '애국자'가 아니겠는가..그래도 어쨌든 심형래가 남은 아니며,<디워>를 누가 만들었던 그 영화는 '우리 영화'다..심형래가 난 어느 정도 자랑스럽다.그가 비록 학력을 속였다고 해도,그렇게 속이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닌 이 마당에 어쩌겠는가.('어쩌겠는가'란 단어를 난 오늘 너무 사용한다) 아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알았을텐데.

 

마지막 '진중권'이다.내 주관적인 판단만 섞여있으므로 태클걸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진중권이 질려 했던 것은 <디 워>가 아닌 것 같다.진중권의 평소 글이나 말로 볼 때,그가 이렇게 <디 워>라는 영화에 집중한다는 것이 조금 우습다..그가 타겟으로 삼았던 것은 ,소수에게 집단적 폭력을 행사하는 다수라는 모호한 개념이었다.다수와 소수는 언제나 뒤바뀔 수 있는 것이므로 그의 그런 태도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현재 그의 스탠스는 또 어쩔 수 없다.그래서 기냥 놔 두었음 한다.그런 사람도 한 두 사람 필요하다는 것을 그대도 알고 나도 안다..

 

어쨌든 결론은 심형래가 전원책 보다는 무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딸 가진 아빠가 하는 말이다.)

 

4.화려한 휴가

 

참 저주스런 작전명이다.

난 우선 이 작전이름을 지은 놈부터 죽였음 한다.이 영화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할 작정이지만,내가 지금 광주에 살고 있고,이 작전을 통해 사랑하는 둘째 외삼촌이 사망했으므로 어느 정도는 언급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ㄱ.나는  아내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어느 순간 아내는 지루해하고 하품하고 짜증스러워 했

    다.아내는 말했다.'왜 죽을 줄 알면서도 저렇게 싸워야 했느냐'고.'자신 같음 안 나가겠노라고'

    난 조금 화를 냈다.나는 유족이라고.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전두환과 그 일파에게 싸움을

    걸었다고.아내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내 작은 아버지도 그 때 돌아가셨다'고.'그러나 난 여

    전히 저런 싸움에 끼어들지 않겠노라'고.

 

    나는 아내의 작은아버지가 그 때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우리 둘은 그 당시 광주에 살지

    않았고,그 당시의 상황을 체험 조차 할 수 없었지만,우리의 가까운 친척들이 그 때 사망했다는 공통점

    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나의 외삼촌은 교도소 앞 전투에서 돌아가셨고,아내의 작은

    아버지는 시가지에서 돌아가셨다.나는 아내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ㄴ.아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했다.'왜 전두환을 사형시키지 않느냐'고.나는 약간 가물거리는 기억으

     로 대답했다.'김영삼이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사형선고인가를 내렸는데,김대중이 사면했다'고.아내가

   마구 화를 내기 시작했다. '김대중이 무슨 권리로 그 사람들을 사면했느냐'고.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 당시 김대중이 대통령이었다'고.아내는 단순하게 내뱉었다.'자기 땜에 죽은 사람들도 한없이 많은

   데.'라고...

 

ㄷ,우리 병원의 방사선사는 그 당시 대학생이었다.<화려한 휴가>를 보고 온 그가 내게 말했다.

    - 저렇게 만들려면 아예 만들지를 말지.훨씬 더 참혹했었어요.

 

ㄹ.그 당시 동생을 잃은 우리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 많이 잔인하냐?

   - 아니요,그렇게 잔인하진 않아요.러브 스토리도 있고,웃긴 장면도 있어요.

   - 그래? 그럼 봐도 되겠구나.

 

ㅁ, 그 당시 목포에 살았던 우리 병원의 대표원장님의 얘기.

   -그러니까요.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선생님들이 집으로 가라고 그러더라구요.광주에서 군인들이

     사람을 죽이고 그러니까,나중에 연락 오면 학교 오라구요.좀 지나서 학교에 가 보니까,보이지 않는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어요.아,그 당시 경찰관이셨던 우리 아버지와 동료 경찰관들은 모두 다 섬으

     로 피신 가셨었어요..

 

ㅂ.내 느낌.

    이 영화도 일종의 블록버스터다.무더운 여름에 보았던 뜨거운 블록버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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