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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내와 함께 본 영화들.그리고 <하얀 거탑>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07. 3. 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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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지나치게 바빠서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러다가 리플 전문 블로거로 변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그것도 굉장히 매력적이고 전문적인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에 아내와 함께 본 몇몇 영화에 관해 짧은 말들을 덧붙일까 한다.그런 생각을 가지고 지난 일 년 정도를 돌아보자,지난 2년간 아내 아닌 다른 사람과 영화를 본 날은 단 하루라는 생각이들었다.깜짝 놀랐다.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일까?그리고 아내와의 데이트가 거의 극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놀랐다.극장 아닌 다른 곳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술집 말고 말이다..



가끔 아내는 내가 일하는 도시엘 찾아온다.예고도 없이 불쑥 말이다.일종의 '검열'같은 것이라고 아내는 말하지만,나로서는 반갑기 이를 데 없다.'박물관이 살아있다'를 보던 날도 그런 날이었다.그런데 그 날 아내는 몹시 지쳐보였고,'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린 아무 생각 없이' 이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선택했고 '아무 생각없이'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 내내 펼쳐지는 지극히 평범한 상상력의 행렬에 지쳐가는 쪽은 오히려 나였고 내 눈꺼풀은 한없이 무거워져 갔다.집중력이 강한 아내는 눈을 부릅뜨고 영화를 지켜보고 있었는데,재미없어 하는 빛이 역력했다.'애들 보긴 참 좋겠다'고 그녀는 짧게 코멘트했다.

'애들'이란 말에 어린 시절 보았던 동화가 떠올랐다.'뉘른베르크의 난로' 였던가? 난로가 주인공인 동화였는데,정확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고 그 난로의 이름이 '히르시포겔'이었다는 가물가물한 기억만 난다.그 이야기 한 쪽에, 가구들이 한밤중에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사물들의 밤의 대화..고전적인 상상력이다.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어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묘사되었다는 기억도 난다.

어쨌든 타임킬링용 영화였다.



우리가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웃자'고 선택한 영화는 '미녀는 괴로워'였다.실제로 아무 생각도
없이 웃는데 성공했었다.

아내는 김아중과 이한위가 성공한 '기적같은 성형수술'에 대해 감탄을 연발했다.그리고는 자신도 성형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라고 불평을 시작했다.턱관절만 좀 다듬으면 몰라보게 예뻐질 거라고 아내는 자신있게 말했다.진심으로 하는 말이냐,고 묻자 그녀는 당연히 진심이라고 대답했다.

당신은 동급최강이며 안 고쳐도 '내겐 너무 예쁜 당신'이라고 감언이설을 늘어놓기 시작하자,아내는 '알았어,알았어'하며 귀챦은 듯 두 손을 내저었다.나는 당신의 상한 위장과 하지 정맥류,그리고 뒤틀린 허리 척추부터 고치는 것이 낫다고 말하려다가..,말았다.나중에 생각해보니 잘 했다.

성형수술'은 이미 대세가 되었다.성형수술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농담처럼 한마디.,정 수술을 하고 싶음 의사를 잘 선택해라.,당신의 수술 후의 얼굴엔 그 의사의 미적 감각이 분명히 반영된다.(그런데,이거 농담 아니다.)

난,가수로서 성공하는 김아중이 좀 아쉬웠다.우리 영화에서 '마돈나'같은 여성 캐릭터는 언제쯤이나 등장하게 되는 걸까? 분명한 속물인 주진모에게 복수의 하이킥을 날려주는 쪽이 훨씬 통쾌했을 텐데,,우리나라 대중예술은 언제쯤이나 '착한 여자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일까..뭐,그런 생각이 들었다.뭐,웃자고 만든 영화에게 이런 요구,,좀 무리라는 것,나도 안다..

아내는 김아중의 라이벌 여가수로 나오는 지서윤이,조금만 있음 모바일 화보를 찍게 될 거라고 말했다...정말 그렇게 될까?



<블러드 다이아몬드>

정형화된 캐릭터들이 이젠 좀 아쉽게 느껴진다.영화 속 아프리칸들은 너무나 스테레오 타입화되어 있다.부성 모성 가족애에 불타고,순진하며 돈도 모르고,용감하고 과감하며 서양인에 대해 포용력과 의리를 지키고 결국 서방으로 망명하는 주인공 캐릭터와,

잔악하고 돈 밖에 모르며 타 종족들에게 숱한 린치를 가하고 한 몫 챙기는 일 이외에는 관심도 없는 무자비하고 무식한 악인 아프리칸과,

아웃사이더에다가,껄렁껄렁하지만 용맹하고 싸움 잘 하며 결국은 희생되어가는 백인 용병 캐릭터..,약간은 지겨워진다..단,기자로 나오는 제니퍼 코넬리만은 너무 반가웠다.디카프리오나 그녀나 아역배우에서 시작해서 진짜 배우로 성장해가는 일군의 배우들 중 하나이다..

난 아직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에서 그녀가 춤추던 모습,그리고 같이 흘러나오던
'아마폴라'가 기억이 난다.( 기억의 정확도에 관해서는 별로 자신이 없다)

아내는 이 영화의 폭력 장면에 진저리를 쳤다.사지절단 정도는 보통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난 아내에게,저토록 피로 물든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갖고 싶으냐고 물었다.아내는 사 줘나 보고 그런 소릴 하라고 대꾸했다.

<데자뷰>

잔뜩 기대하고 극장엘 들어갔다가,한없이 밋밋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극장에서 나왔다.그러나 뭐,7000원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현대적인 삶의 복잡성을 고려해 보면,이런 스릴러는 이미 진부해졌다.그만큼 삶이 복잡해져 버린 것이다.생각보다 빨리 잊혀지고 말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아쉬웠던 것은 덴젤 워싱턴이다.그의 최근 몇 년간의 이미지는 너무 고정되어져만 간다.그는 너무 반듯하고 정의에 불타는 역할 만을 연기한다.스테레오 타입화된 이미지가 배우의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은,무성영화시절부터의 고전적인 진리다.



<행복을 찾아서>

또 하나의 흑인 배우 윌 스미스가 그의 아들 제이든과 함께 출연한 영화다.최악의 상황에 빠졌다가 재기한 남자의 얘기다.극심한 생활고에,아내도 떠나고 ,집에서도 쫓겨나서 아들과 홈레스가 되고..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힘든 상황을 저 두 부자는 겪는다.

아내와 난 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난 이 불행에 갑자기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는데,그것은 저 괴로워하는 윌 스미스의 모습이 내가 아는 누군가와 너무 닮아있다는 것에 있었다.그리고 그가 윌 스미스처럼 재기하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남의 등을 치고 다닌다는 것에,그리고 윌 스미스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 곳 코리아에서는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에,난 더 짜증나 했다.

반면 아내는 나 보다는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아내는 슬퍼했고,가슴졸여 했고,그들의 재기를
기뻐했다.그리고 말했다.재미있지만 재미없는 영화라고..




<황후화>.좀 큰 그림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아내는 정소동이 만들어낸 줄타기 액션과,두 눈을 멀게 하는 노란 빛 국화의 향연에 감탄을 연발했다.그리하여 이 영화를 재미없다고 매도한 처남은 아내에 의해 역적으로 강등되었다.

아내가 매료된 그 화면에 나 역시 매료되었다.그러나 그 화려함의 이면엔 공허함이 엿보인다.그 공허함의 정체는 뭘까? 보수정당의 386정치인들처럼 변해가는 장이모 때문일까? 그 세대 감독들이 추구하는 거대함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 때문일까? 아님 자꾸만 느껴지는 제5세대 감독들에 대한 연민? 중국 애들의 여전한 중화주의에 대한 오랑캐 민족 일원으로서의 자동적인 반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는 장이모우의 안간힘에 대한 가엾음?

아닐 것이다.장이모우나 공리와 함께 했던 내 젊은 날에 대한 아쉬움,그리고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그 공리와,또 한 명의 완전소중 흑인배우 제이미 폭스가 나오는 <마이애미 바이스>.우린 어느 한가한 토요일 저녁 이 영화를 DVD로 보았다.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둘 다 동의했다.<히트>의 마이클 만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또 하나의 DVD 영화 <다빈치 코드>

종교를 공격하려는,혹은 속된 말로 까는 ,또는 신성모독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는 바로,그 종교 자체의 이의제기와 항의에 의해 흥행의 보증수표를 얻는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해 준 영화다.나와 아내는 이 영화를 너무나 늦게 보았기 때문에,그리고 소문만큼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에,한마디로 빈둥거리며 ,거실과 방 사이를 부단하게 왔다갔다하며,때로는 전화를 걸고 받았다가,때로는 잠든 은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쳐다보러 들어갔다가..그렇게 시간을 보냈다.타임킬링했다.

그런데..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해서,그의 신성이 결정적으로 훼손되어버리는 것일까? 하나님의 아들은 꼭 부활해야하며,결혼도 사랑도 하면 안되는 것일까? 왜,도대체 왜?



재밌었니?
아내에게 물었다.

자자.늦었다.
아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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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끝내려다가,소위 '불법다운로드'에 대한 글을 읽고,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짤막한 얘기를 하려 한다.

나도 가끔 다운로드받은 영화를 본다.그러면서,'이건 옳지 않아'라는 생각을 한다.나의 다운로드행위 때문에 ,영화노동자들의 일자리가 그만큼 줄어든다면,내 행위는 그 어떤 논리로도 변명하기 어렵다.물론 다운로드 자체가 갖는 사회적 함의나 변화된 미디어 환경안에서의 다운로드행위의 달라진 위상 같은 레벨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좀 더 복잡하고 다른 논의로 나갈 수도 있겠지만,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아직도 내겐 '이건 옳지 않아'라는 생각이 앞서니까 말이다.

그러나 난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던 영화나,DVD몰에서도 이미 품절된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 신나게 감상할 수 있었다.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런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서 볼 것이다.여전히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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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드라마 <하얀 거탑>에 대한 얘길 하고 싶다.많은 분들이 빛나는 분석을 해주시고 있기 때문에 굳이 내 말을 덧붙인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에,조금만 거기에 덧붙일까 한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아내와 내가 둘이 함께 볼 수 있는 유일한 드라마이다.주말부부이니까 말이다.아내는 '의사들이 정말 저래?'라고 묻지는 않는다.아내는 이 드라마가 의학드라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 보다도 훨씬 먼저 알았다.'의사들 부인회'따위가 묘사되는 것을 보면서 코웃음을 펑펑 날리고 있었다.

나 역시 ,이 드라마가 의학드라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물론 대학병원에서,약간의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우리나라 대학병원의 권력은,드라마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다.그러나 그 곳에서 묘사되고 있는 몇몇 캐릭터들에 대해서만은 약간의 유감을 품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우선 난,장준혁 같은 인물들이 참 지겹고 싫다.야망에 불타는 남자,거기다가 직업적 능력까지 겸비했고,경제적 백그라운드에다가 미인들을 거느리기까지 하고,강력한 리더쉽까지 갖춘 '현대적 영웅'의 모습.그러나 그 이면엔 암투와 긴장,부패와 부정,금력과 계략이 분명히 숨쉬고 있다.장준혁은 정상적이고 도덕적인 방법으로 그 자리에 올라선 것이 아니다.

물론 당시 그의 카운터파트인 이주완 역시,장준혁과 유사한 인물이어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상대방의 악함이 나의 비도덕을 완전히 상쇄시켜주는 것은 아니다.가난한 홀어머니로 대변되는 개인사 역시,장준혁의 부정을 변호할 수 있는 완벽한 방증이 될 수 없다.

이런 인물들이 동경받고 추앙받으며 리더가 되는 사회,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회는 명백히 병든 사회다.이명박의 '김유찬 의혹'이나 박근혜의 '정수장학회'는 사실상 치명적인 일이다.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두 사람 다 똑같이 대통령직 따위는 꿈꿀 수도 없는 일이다.같은 흙탕물에 몸담고 있는 물고기들 끼리 서로 손가락질을 해대는 꼴은 참 보기 역겹다.장준혁이나 이들이나..뭐가 다른가?

난 장준혁에게 자못 '감상적인 죽음'을 선사하려는 작품의 엔딩 조차 불만스럽다.그의 암 발병과 상관없이,그가 대학에서 쫓겨나 개과천선하는 것이 온당한 설정이다.(물론 아직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으며,이것이 '드라마'라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최도영은 한 술 더 뜨는 캐릭터다.그는 '내부고발자이자 내부감시자'로 존재하는 편을 선택해야 옳다.그는 병원내부의 증거조작을 꾸준히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며,그것이 자기가 몸담은 '거탑'에서의 자기 존재증명이 된다.질시와 모멸섞인 대접을 받더라도 견뎌내야 한다.그렇게 하지 않을 작정이라면,처음부터 나서지 않는 게 맞다.

사람들은 현실을 들먹인다.'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맞는 말이다.그러나 '현실에서' 그렇게 저항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계속 밀리고 깨져가면서도 싸우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많다.수많은 '장준혁'들에게 당하고 다치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것이다.

최도영 처럼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병들어 간다.( 그러고보니 <하얀 거탑>은 분명히 의학드라마였다..)

정작 진작에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야 할  사람'은 염동일이다.아내는 고뇌하는 염동일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딴 병원 가면 될 것을 뭘 저렇게 빙신같이 구냐'며 어이없어 했다.정확한 말이다.사회에 발을 내딛자마자,권력과의 타협부터 시작하는 염동일 같은 캐릭터에게 나는,일말의 동정심 조차 베풀 생각이 없다.

어떤 분들은 또다시 현실을 들먹일 것이다.'현실적으로' 염동일 같은 초짜가 자신의 앞길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에게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느냐는 뜻일 거다.그 말도 맞다.이해한다.

그러나 타협에도 레벨이 있는 것이다.염동일은 사업가나 변호사,사회운동가가 아니다.그는 의사다.중환자실에서 자신의 환자를 책임졌던 주치의였다.그가 타협하고 무릎꿇는 지점은 그의 '직업적 존재'와 직결되는 지점이며,그것은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그 존재를 포기하면 그는 곧 장준혁이 되는 것이며,한 번의 포기는 이어지는 계속되는 포기를 필요로 한다.심약한 척 괴로운 척 해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오히려 드라마는 그의 본원적인 책임을 잘 지적하지 않으려 한다.그는 환자의 주치의로서 가장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며,그 책임은 '장준혁'이라는 카리스마적인 존재로 덮어지는 것이 아니다.증언번복 같은 그의 최근 행보는 얼마든지 악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일이다.

인생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착한 자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염동일은 '먼저' 자신의 책임부터 인정해야 한다.

인권변호사 김훈의 팀은 상당히 희화적으로 그려진다.솔직히 말하자면 현정부를 보고 있는 것 같다.'소송'은 '정의를 집행하는 일'과는 다르다는 것이 내 개인적 경험이다...

아직 드라마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너무 성급하게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것 같다..삶은 생각보다 어렵다....



장준혁이 소송에서 패배한 것은 이런 방심과 장난끼 때문이었다고 어떤 블로거가 그러셨는데,출처를 잃어버렸다.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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