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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어떻게 국가적 종교가 되었는가(아사미 마사카즈,안정원) 그리고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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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사이먼 2017. 7. 2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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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은별이와 나는 구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 건물에 들어갔다.손톱을 다듬는 아내 덕분에 생겨난 자투리 시간을 처리하기 위해서 였다.그러나 우린 그날 도서관에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고,오히려 아내를 기다리게 만들고 말았다.


나는 6층 서가를 돌아다니며 의외로 많은 신간들의 리스트에 감탄하며 마치 수초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은별이는 은별이대로 자신이 선택한 책 속 이야기에 빠져 가방 속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의 울음 소리를 감지하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약간 화가 난 아내가 우리를 찾아 도서관에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렇게 그렇게 토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채근해대는 아내 덕택에 은별이와 나는 서둘러 도서관의 대출 카드를 만들었고 결국 몇몇 책들을 빌려서 집으로 왔다.그리고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갔고,무한도전 본방이 시작되는 순간까지는 서로가 서로를 모른 체 했다.




내가 대출했던 책 하나.제목은 <한국 기독교,어떻게 국가적 종교가 되었는가> .그냥 제목에 끌렸었다.

물론 이 제목은 오버다.개신교의 교세 자체는 대단할런지 몰라도,기독교를 국가적 종교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면이 매우 많다.더구나 우리나라의 일부 개신교 세력을 과연 '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읽었다.책도 그렇게 잘 쓰여지지는 않았다.저자인 아사미 마사카즈는 한국 기독교 연구가 전공이 아닌 일본 카톨릭 -정확히 말하면 키리시탄 시대- 역사가 주전공이며,파트너인 안정원 역시 아사미와 같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동료 교수였다.저자들로부터 깊은 얘기가 나올 구조는 애초부터 아니었다.또 그래서 개신교 보다는 카톨릭의 얘기 자체가 훨씬 신뢰감을 주었다.


하지만 몇몇 얘기들은 경청할 만 했다.해방 이후 기독교 세력과 미군정이 연합하는 과정이랄지,일제 시대부터 지속된 서양 선교사들 사이의 알력과 대립을 다룬 내용이랄지 - 이 알력과 대립은 고스란히 개개의 선교사들을 따르는 신자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 해방 이후 사회주의의 대항마로 떠오른 기독교 세력의 배경이랄지,또 과거 독재정권 시절 왜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권력자들을 초대한 조찬 기도회에 그토록 목을 매었는지랄지..일부 내용들은 매우 재미있었다.


그러나 쉽게 수긍할 수 없거나,그리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인용하거나,또 정확하고 상세한 논거에 의거하지 않은 내용 또한 눈에 띄었다.예를 들어 21세기 일부 개신교의 '무당스러움'을 얘기하며 굳이 친일파 교수로 유명한 오선화의 책을 인용한 것은 매우 바보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이런 내용들이 편집 과정에서 아무런 이의도 없이 전혀 걸러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출판사 이름까지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또 동학-천도교가 일신교적인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우라나라에 쉽게 기독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가설 같은 대목은 저자들의 한국사나 한국종교사에 대한 이해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이래저래 매우 아쉬움.2주 후 도서관 반납을 대비하여 서가 맨 아래 쪽에 뉘여놓았었다..




책을 구입하는 방법 역시 많이 달라졌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주로 서점에서 책을 샀으니까.심지어 책방-서점은 만남의 공간이기도 했고 어떤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특화된 지명으로까지 활용되었었으니까.책방의 그 오래된 책들 특유의 냄새는 책을 사러 가는 사람의 위장에 한없는 포만감을 가져다 주었었고,서가에 꽂힌 책들 사이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눈길을 사로잡는 책들을 꺼내 읽을 때의 그 묘한 설레임은,인터넷으로 구입해 택배 아저씨를 통해 배달되어 온 책들을 처음 대할 때의 기분과는 분명한 생리적 차이점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쓸 데 없이 바빠졌다.도시는 넓어졌고 가야 할 곳은 많아졌으며 들여다보고 잡아내야 할 정보의 양 역시 터무니 없이 많아졌다.책 보다는 웹이,또 지면 보다는 휴대폰의 액정이 우리의 시선을 점점 더 집중시킨다.사고 싶은 책을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로 던져 넣은 후 클릭과 클릭을 통해 책들을 공급받는 것이 현대의 독서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가끔 동네 도서관은 그런 종류의 장바구니에 미세한 구멍을 낼 수 있는 의외의 무기가 된다.인터넷 장바구니에 던져만 놓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어떤 책을 동네 도서관의 서가에서 발견했을 때,나는 당혹감과 반가움을 한꺼번에 느낀다.대여 후 반환의 의무가 당혹감을, 장바구니 내부에서도 이루어지는 선택에 대한 고민이  반가움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니콜라스 터프스트라라는 작가의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나는 장바구니로부터 이 책을 탈락시키고 도서관의 저 먼 구석에 있는 이 책을 집어든 거였다.


책? 괜챦았다.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어느 소녀 구빈원에서 벌어졌던 소녀들의 잇단 실종사건 - 실종이라기 보다는 다른 시설들에 비해서 터무니 없는 사망률- 에 대한 미시사적인 접근이 이루어지는 이 책은 우선 흥미로웠다.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게 할 정도로 조각 조각 흩어진 퍼즐들을 치밀하게 조합해 결말을 향해서 다가가고 있었다.거기에 당시의 문화사와 정치사 그리고 종교사를 아우르는 여러 가지 정보들을 한 곳에 얽혀들게 만들어 독자의 교양 욕구를 제대로 채우기까지 해서 지적인 풍성함을 안겨 주는 책이다.물론 소녀들의 실종 사건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사실 어쩌면 그런 식의 결론이 다양하고 또 솔직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몇백 년  후의 미시사 전공 역사 학자들이야말로 불행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

웹이라는 거대한 그물 속에 떠 있는 수많은 개인사와 정보와 사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려면 그들의 뇌 주름이 구겨지고 또 구겨져 엉망이 되어버릴 거라는 생각.

거기에 가짜뉴스들까지 감별하려면 어마어마한 노동력과 정신력이 소요될 테고.음..이러다가 미시사 연구가 없어져버릴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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