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일 이 도시를 떠난다.대한민국 남서부의 이 도시에서 나는 병원에 관한 내 가장 이상적인 실험들을 진행했고 대부분 성공했다.물론 내가 떠난 후 무슨 일이 벌어질런지는 잘 모른다. 예전의 구태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뭐,어쩔 수 없다.병원도 생명체다.우리는 그 태동과 성장과 쇠락을 모두 다 책임질 수 없다.삶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어려운 한 과정일 뿐이다.
떠나기 전에 이 동네에서 휴대폰으로 찍었던 몇몇 사진들을 올림으로써 이 도시에서의 체류를 기념하기로 한다..
어느 따뜻한 가을 날 우리는 소풍을 갔다.(사실 점심 시간에 소풍을 간답시고 병원을 떠나 숲길을 산책하는 의사들은 아마 전국에서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그 날 우리는 차를 타고 영암의 월출산까지 가서 '백운동 별서정원'이라는 조선시대의 숨겨진 정원을 찾아 나섰었다.(이 정원에 대해서는 구구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궁금하시면 검색해 보시기를.ㅎㅎ) 우리는 안온한 봄날의 햇볕을 받으며 저 숲길을 걸어들어 갔었다
정약용이 유배되었던 곳.정약용이 술을 마셨던 정원.동네의 천재들과 교류했던 곳.그리고 바람까지 났던 곳.(뭐,조선시대 버젼의 사랑과 전쟁)
그 곳에 이런 정원이 있었다.찾아오는 이 조차 없이 고적했던 장소.우리는 구석구석을 조용히 돌아다니기만 했다.그리고 이 정원이 자본의 힘에 의해서 개발되지 않기를,관청의 아이디어에 의해서 관광지로 개발되어지지 않기를 바랬다.그러나 전라도 서남부를 여행하신다면 이 정원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시기를,백운동 별서정원.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그 이상한 시간의 힘.쌓인 시간의 역사의 부드러운 압박.아쉬움이,결핍이 시를 낳는다.
진료시간에 쫓긴 우리는 다시 예의 숲길로 되돌아갔다.타박거리는 발걸음에 이어 먼지들이 고요하게 피어올랐고 쌓인 낙엽들은 이례적인 포근함을 발바닥 사이사이로 선사했었다.
언젠가는 백호 임제의 글들을 보고 싶었었다.그러나,그 어느 날 백호문학관은 임시 휴관..그러니까 백호 임제와 나의 인연은 아직은 미완성 상태라 할 수 있겠다.
수줍어 하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으니,나는 열 다섯 살의 정신적 나이를 넘어선 거다.그 씁쓸한 노화.
또 어느 날 이 도시 구 도심의 풍경 하나.건물 하나에 떡볶이 파는 가게와 만화 보는 가게와 선원들의 일자리를 알아보는 낡디 낡은 직업소개소가 함께 들어서 있다.이 20세기적 풍경.20세기에 태어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언제나,내 일생을 통틀어 보아도 언제나,떠날 때는 뒤를 돌아본 적이 없다.절대로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는다.잘못된 발걸음들과 어지러운 과거의 행적들에 대해서도 애써 눈을 감는다.
다만 인터넷의 어느 한 부분들이 기록으로 내 과거를 정리하고 기록한다.꽤 많은 시간이 흘러 이 사진들을 쳐다볼 때,나는 웃을 것이다.명랑한 웃음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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