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감기에 시달렸던 11월이었다.아주 오래 전부터 11월은 가장 좋은 두뇌 컨디션을 보였던 계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올해 11월은 마치 머릿속에 짙은 안개라도 낀 듯 어둡고 답답했었다.주변의 일들과 돌아가는 상황 역시 답답하기 그지없어서 긴장을 놓지 않을 수 없었던 한 달이었다.바로 그 긴장으로 인한 압박감이 머릿속의 텁텁한 안개주의보를 유발했는지도 모르지만,어쩐지 이 불길한 안개는 현재의 내게 뭔가 근본적인 불안감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였다.명랑하고 활기찬 일들은 좀체로 벌어지지 않았다.사회를 뒤덮은 안개 속에서는 안개 특유의 매캐하고 신선한 냄새가 아닌 악취와 공포의 냄새가 풍겨온다.지금부터 나열하는 2014년 11월의 이미지들을 보게 되면 약간 더 안개스러워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삶과 정신의 건강함을 위해서라도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그러나 안개 일부의 정체성은 무력감이다..
1.압구정 s 아파트.-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
도대체 S 아파트가 모냐..그냥 실명 밝혀도 상관 없는데..집값 떨어질까봐 지레 걱정하는 것이냐..
입주민들의 모욕을 견디지 못했던 경비원이 분신을 시도했고 결국 사망했다.그리고 아파트 입주민들은 경비원들을 채용했던 용역업체를 교체해서 결국 나머지 경비원들까지 해고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한마디로 욕 나오는 소식.고급 아파트 주민들과 그들의 경비원 고용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 변화의 극적인 측면을 민낯으로 보여준다.계층간의 위화감은 이제 즉물적으로 나타나고 아래 계급 사이에는 그 어떤 연대도 없으며 억울한 사건을 당해도 그것을 풀어주거나 대변할 만한 그 어떤 세력도 없는 것이다.공권력과 법은 가진 자들의 편이며 그 어디에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만한 출구가 없다.(정당들의 정치력을 얘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 정당들은 지나치게 정권획득과 권력욕에만 집중한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이런 종류의 일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만약 저 경비원이 자신을 모욕했던 입주민 할머니에게 결국은 인내의 한계가 넘어간 나머지 극렬한 폭력을 행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또 앞으로 압구정이 아닌 다른 '구정'에서 그런 폭력이 벌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일들 -해고와 학대와 분신-이 자꾸만 발생한다면 결국 사건은 폭력화하게 되고 말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폭력적 저항이 분명히 나타나게 될 것이란 소리다.극우와 권력층에게 일방적인 물리적 힘이 몰려있다고는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저항이 전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거기다가 이 막무가내 아파트의 주민들은 다른 용역 경비원들까지 다 해고의 절차를 밟으려 한다.법이 그럴 수 있는 힘과 권리를 보장하고 해고 당한 이들이 연대할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은 극히 미약하다.이런 상황에서..,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런지 예측하기 조차 어렵다.풀리지 않는 갈등들은 언젠가 쌓여서 폭발하고 만다.
2.통영함과 어군 탐지기,그리고 다이빙 벨.
해양구조작업이 완벽하게 가능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던 통영함은 이젠 방산비리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음파 탐지기 문제로 세월호 구조에도 끼어들지 못했던 해군의 액세서리인 저 문제의 배는 배 스스로도 액세서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어디선가 어군 탐지기를 비싼 값에 주워 달았다.아마도 우리나라 인근 해역의 해양 환경과 각종 물고기들의 생태 상황을 면밀히 조사하겠다는 심모원려.해군에서 환경부로 소속을 바꿀 모양이다.혹은 해양수산부이거나.그런데 해군은 또 통영함을 다른 부서에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배의 시설과 기능이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전에 투입할 모양이다.그렇다면 세월호 구조에도 투입할 수 있었다는 건가?
그래서 통영함은 어떤 바다 사나이의 다이빙 벨만도 못하다.
영화 <다이빙벨>을 보셨다면 바다에서만 30여년을 보냈다는 저 사나이야말로 진짜 사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군부대에 입대한 연예인들만이 진짜 사나이인 것은 아니다.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사나이란 불리함과 거짓된 압력을 목전에 두고서도 '다이빙'할 줄 아는 사람들을 뜻한다.그리고,,저 사나이의 다이빙벨엔 어군 탐지기가 달려 있지 않다..
저 사나이 때문에라도 멀티 플렉스는 <다이빙벨>을 상영할 수 없었을 것이다.
3.또다른 사나이들 그리고 남매들
결국 해고가 확정된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이다.저들이 터뜨리는 눈물은 분신한 아파트 경비원의 눈물과도 다르다.저 눈물은 우리 사회 해고 노동자들의 상황,앞으로의 노동시장의 전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눈물이다.저 눈물에서 누군가는 해고시킬 자유를 본다.그리고 우리 사회 평범한 아저씨들이 시달려야 할 악몽은 더욱 깊고 깊어졌다.
삼성 SDS가 연내 상장을 추진하면서 삼성 이재용 아저씨의 재산은 1조 5천억이 더 늘어났다.그 아저씨의 동생인 두 아줌마 역시 마찬가지다.삼성의 상속자들에게 쌍용 아저씨들의 눈물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관심이나 있을까? (그러나 재벌 3세들의 경우 매우 감성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물론 감성적으로만..) 이 정도의 격차,이 정도의 부와 재력의 집중..오히려 공포를 느껴야 하는 쪽은 가진 자들이 아닐까?
4.그의 메모와 그녀의 단어.
이 상황에서 국회에 출석하신 대원군께선 그에겐 정말 같쟎아 보일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답 준비하느라 꼼꼼히 메모를 작성하고 계셨다.
대통령의 1억원어치 헬스기구에 대한 대답이다.대통령의 안위는 경호,그리고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비장하면서도 구태의연한 메모를 그는 노란 종이의 수첩에 갈겨쓰고 있다.글쎄,왜 고가의 헬스기구만이 대통령의 안위,그리고 국가안보를 책임질 수 있다는 건지 평범한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아마 여기엔 대단히 중차대한 심모원려가 있을 것이다.대원군과 그가 모시는 주군은 아주 먼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저 정도 고가의 헬스기구로 유지해야 할 것은 그냥 체력이 아니다.20년 내지 40년 정도의 건강과 장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아주 오래도록 통치의 권좌에 있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불경한 생각이다.어쩌면 그냥 몸매 유지를 위해,미용적 목적을 위한 헬스기구일 수도 있다.(트레이너까지 공무원으로 고용했다니 어쩌면 이쪽 가능성이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해외순방길,갈 때 마다 다른 옷을 입어야 하니 아무래도 옷맵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이러면 국가안위와는 좀 거리가 멀어진다) 그래서..각하께선 결국 연예계 데뷔를 생각하고 계신지도 모른다.세계 최초의 70대 모델 혹은 종편 방송의 토크쇼 사회자를 꿈꾸고 계신지도 모른다.(토크쇼의 제목은 '지금 나하고 싸우자는 거죠'가 될 것이다)
하지만..토크쇼는 아무래도 곤란하다.대통령의 입은 가끔 너무나 험악한 단어를 내뱉는다.예를 들어 '단두대'같은 말.
각하는 경제회복을 위한 규제개혁에 '단두대'라는 단어를 등장시켰다.꼭 목을 뎅겅 잘라내는 단두대라는 말을 사용해야 했을까.결국 입으로 내뱉어지는 단어는 그 사람의 캐릭터를 말해준다.그녀는 사무라이이며 검투사다.(그러나 저 무시무시한 기요틴에 적어도 전국민의 25%는 찬사를 보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무척 선호한다) 다만 그 단두대 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힘없는 아파트 경비원이나 해고 노동자들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서 그칠까 한다.사실은 '받은대로 또 원하는 대로' 헌금을 내야 한다는 어떤 목사님과 롯데 자이언츠의 야밤 사생활을 감시하기 위한 어느 호텔의 CCTV 그리고 바지 안 입은 푸우의 이미지들을 제시할까 했지만,이 이미지들을 골라내다 감기몸살이 더 심해질 것만 같다.마지막 남은 이틀의 11월을 명랑한 고요 속에 보내고 싶은 마음 뿐이다..
아,그리고 모든 아파트 거주민들이 용역 경비원들을 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석관동 아파트의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돈을 아껴서 경비원들의 월급을 19% 인상시켜 주었다고 한다.사실 이런 일이 희망이다.그러나 희망 이전에 연대가 필요하다.관료화되고 마는 연대,권력화되고 마는 연대 말고 진정한 사람들끼의 연대가..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시로서 11월을 끝내고자 한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에게 왔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유대인을 덥쳤을 때,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내게 왔을 때,그때는 더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니묄러가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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