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주,그리고 JIFF는 봄이다.
거의 매년 봄이면 전주엘 갔었다.정확히 말하면 전주 국제영화제를 갔었다.영화제가 열리는 전주의 그 조그맣고도 낯익은 거리.그리고 그 도시만이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게까지 만드는 봄날의 안온함.여기저기서 울렁이듯 들려오는 따스한 바람들의 부드러운 속삭임.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거리에 앉아있기.그러다가 다시 졸음을 쫓으려고 에스프레소나 박카스를 들이켜고 극장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그리고 나와서 또다시 어슬렁거리기.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 내용을 홀로 구시렁거리며 좀 전에 보았던 영화의 이미지들을 두뇌 안에서 곱씹기.그러다가 어느 순간 찾아오는 작은 정신의 광휘.전혀 몰랐던 시네아스트 한 사람이 들려주는 기적 같은 메세지.또는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갑작스럽게 되살려내는 마법을 경험하기.이것이 영화이고,또 영화제의 풍경들 중 하나다.그리고 전주는 언제나 내게 그런 풍경을 갖게 해 주는 고마운 도시다.
JIFF(전주국제영화제.이하 그냥 JIFF) .영화의 뷔페,영화의 성찬.그러나 작고도 고풍스런 레스토랑.예쁜 밥상.
영화제란,그곳에 가는 사람의 심상과 목적에 따라서 달리 정의된다.어떤 사람은 오로지 영화를 보기 위해,또는 극장에서 개봉되기가 어려운 영화들을 보기 위해 또는 자신이 친애하는 작가들의 영화를 보기 위해,혹은 그저 영화의 색다른 별미들을 즐기기 위해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를 향해 줄달음친다.뭐,그런 이유만 있겠는가.영화제의 관객들에겐 그야말로 제각각의 수다한 이유가 있다.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대개 무언가 이름모를 것과 사랑에 빠져 있고 낯선 도시의 향취에 빠져 있다.그들은 대개 유령처럼 도시를 떠돌지만,갑작스레 호기심으로 가득 차 정신의 180도 회전을 경험한 끝에,이내 그 도시에 도착했을 때와는 좀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도시를 빠져나가고,그러다 언젠가는 영화제에 중독되고 만다.즉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내게 영화제란..,영화를 매개체로 하는 짧은 여행이다.부산을 가든 제천을 가든 부천을 가든 전주를 가든..,난 여행자의 심정을 갖는다.영화제의 티켓을 예매하는 것은 입국 비자를 신청하는 일과 같고,영화제가 열리는 도시의 교통 수단을 예약하는 것은 신규 여권을 만드는 일과 같다.난 그 도시의 철저한 낯선 사람이고,그 익명성을 즐긴다.타향 타지 낯선 곳을 유유히 떠돌고,아무 곳에나 주저앉을 수 있으며,그 어느 곳에서든 글과 메모를 쓸 수 있다.물론 시간에 쫓긴다.타이트한 영화 스케쥴이 내게 서두름과 부산함을 강요하지만,그 강요는 일상이나 먹을 것을 위한 강요와는 그 본질부터 다르다.이 강요에는 무지막지한 설렘이 있고,이로 인한 심장 박동으로부터는 감미로운 화학물질이 마구 분비된다.그런 종류의 여행,,.이것이 내겐 영화제다.
지난 세기말부터 영화제 여행을 시작한 내게,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는 이제 익숙한 타향,낯익은 낯선 곳,즐거운 여행지가 되었다.각 도시에는 도시 마다의 개성이 있고 영화제라는 이색적인 분위기를 통해 그 개성은 내 두뇌와 마음 안에 각각의 엷고 고운 방어막을 형성한다.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 반투명 상태의 방어막 안에서 여행을 즐긴다.물론 몸은 고달프다.영화제가 끝나면 다시 언제나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씁쓸하기도 하다.그러나 '그 나의 도시'들의 익숙함 때문에 언제나 나는 그곳들을 찾아가고야 만다.유혹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그리고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다.
PIFF의 부산은 소주가 어울린다.과거 해운대의 포장마차들은 지금처럼 한 곳에 수용되어 시끌벅적하지 않았다.지난 세기 말의 '영화제 포장마차'들은 '포장' 보다는 '마차'에 가까웠고 그 마차는 존 포드의 '역마차 (stagecoach)' 를 저절로 연상하게 했다.술과,꼼장어를 비롯한 안주들이 춤을 추는 포장마차들은 실제로 어디론가 움직이고있는 것 같았으며,물론 취한 탓이겠지만 나는 가끔 바다가 보이는 밤하늘 어딘가로 두둥실 떠올라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실제로 나는 '루나파파'라는 영화를 부산에서 보고 난 후 그런 뉘앙스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부산은 가끔 지나치게 춥고 차가운 밤바람들이 몰려와서 정신을 번쩍 나게도 만들고,그 한기는 비단 정신에만 끼치는 한기가 아니라 수영만 요트경기장의 야외상영장에 앉아있을 때면 피부에 와닿는 극히 물리적인 추위로 변해서 나를 오들오들 떨게 하곤 했다.그리고 내 가을은 언제나 부산의 그 한기와 함께 시작되었었다.
그러나 전주는 무조건 봄이다.4월말에서 5월초에 시작되고 끝나는 JIFF 를 생각하면,그 도시를 감싸안은 봄의 기운,그 나른한 향기가 언제나 기억 저 깊은 곳으로부터 퍼올려졌었다.전주라는 도시의 고풍스런 분위기가 봄의 보수적인 냄새와 연합하여 추억과 그리고 과거를 마구 되뇌이게 하고 다시금 어쩔 수 없이 전주를 향한 채비에 분주하게 만드는 것이다.즉,내게 있어 전주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매력과 유혹의 요소는 바로 봄인 것이고,전주라는 도시 자체의 분위기 때문인 것이다.
전주는 부산에 비해서 작다.부산에 비해 상영되는 영화의 규모와 전체적인 스케일도 작고, 영화가 상영되는 거리 마저 작다.전주영화제는 거의 좁은 골목길에서 열린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상영관들은 (전북대학교를 제외한다면) 모두 다 한 거리에 몰려 있고,그 옹기종기함 속에서 관객들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영화를 보러 다닌다.어떤 친구 하나는 바로 그 영화제의 '골목성'을 비웃곤 했다.그 작은 거리에 무슨 핸드 프린팅이냐고 비아냥거리면서 (사실은 전주엘 가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전주 영화제를 매우 힘들여 폄하했다.
2.그러나 전주는 영화의 도시다.
그러나 그 친구가 모르는 게 있다.전주는..'영화의 도시'가 맞다.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영화 중흥기에,전주는 '영화의 도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뽐냈다.대부분이 운수회사 경영자였던 전주의 부유한 극장주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자본을 이용해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아마도 내 기억에 이강천 감독의 영화들 (그의 잊을 수 없는 영화 <피아골>도 바로 그런 케이스였을 것이다) 중 일부는 전주 영화인들의 자본으로 완성되었을 것이다.물론 전주 뿐만 아니라 광주의 극장 자본들 역시 마찬가지로 영화를 제작했다.그러나 광주의 극장가는 커다란 영화 체인에 의해 완전히 잠식당했고 (광주극장 정도를 제외한다면),여타 지방과 거의 다를 바 없이 변모했다.그러나 전주엔 뭔가 다른 게 있다.전주의 과거 극장들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건물의 형태들이 '그때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있고,그 극장들을 영화 체인들이 인수해서 지금도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든 전주든,호남의 극장가가 과거의 영화를 누렸던 사실은 일반 관객들의 호응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었을 것이다.그만큼 자본 뿐만 아니라,기층 관객들의 극장 (정확히 말해 '극장'이다.영화가 아니라) 에 대한 높은 호응도가 그런 일을 가능하게 했음이 틀림없다.이제 호남에서 10년 이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도 그들의 '판'에 대한 감각을 조금은 안다.'판'이 벌어지면,특히 예술적인 판이 벌어지면,나이가 든 호남 대중들은 저절로 일어나 어깨를 들썩거린다.흥과 가락이 그들의 저 깊은 심장과 골수 밑바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어쩌면 피압박과 차별의 질곡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러한 감정을 오히려 더 보존하고 키워냈을런지도 모른다.
'극장'과 '영화'에 대한 그들의 감각은 그러한 판,조금은 현대 기계문명의 요소가 가미된 '굿판'에 대한 감각과 맥이 통한다.그들은 영화라는 '판'에 대해 쉽게 감정을 이입했으며,무대 위의 사람들과 더불어 웃음과 눈물과 비탄을 함께 했다.따라서 전주라는 도시가 단지 작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영화제를 폄하한다는 것은 사실 뭘 잘 모르는 소리다.그 도시엔 수십 년의 세월과 수백만 명의 관객이 존재했던 것이다.그리고 그 관객의 존재,그들의 감각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다시 말해 전주는 여전히 영화의 도시인 것이다.(물론 앞날은 알 수 없다.분명히..)
물론 약간의 행정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는 있을 것이다.지역의 유지라는 이름을 가진 - 사실 돈을 가진 자들의 행태는 호남이 아니라 그 어디든 유사한 성향을 갖는다.대부분의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이고..심지어 나는 호남 지역의 야당 국회의원들이 만약 영남에 태어났다면,적어도 그들의 반 수 이상은 새누리당 당적을 갖고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사람들의 압력에 의한 일부 불상사와,'영화'라는 특정 예술 쟝르에 대한 '관'의 몰이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영화제를 영화가 열리는 도시의 경제적 이득과 연결짓는 고루하고 정말 그저 그런 시각 역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영화제를 방문하는 타지 관객들의 금전적 소비 액수와 영화제에 투입되는 자본 사이의 상관관계를 열심히 그래프로 작성하는 사람들 역시 있을 테고 말이다.그러나 착각이다.영화제는 단 몇 년 만에 승부가 나는 행사가 아니며,단순히 '돈'이라는 척도로 계량화될 수 있는 이벤트도 아니다.적어도 수십 년은 유지될 수 있을 때,그리고 꾸준히 관객이라는 거대한 존재들이 뒤를 받칠 때,영화제 자체를 경제 보다는 문화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그 영화제는 전통이 될 수 있다.'돈' 역시 그런 뒤에나 측정할 수 있을 작은 척도에 불과한 것이다.
어쨌든 전주는 봄이다.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전주의 나른하고도 아련한 봄을 기다렸다.그러나 올해의 봄은 좀 이색적이고 이상했다.날씨는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했고 심지어 4월에 눈이 내리기도 했다.커다란 일교차가 많은 감기 환자를 발생시켰고,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역시 '봄'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계절의 기운을 유지하고 있었다.더구나,내가 전주를 찾아가던 그 토요일 저녁 고속도로엔 비가 내렸다.약간 춥기까지 했고 조금은 당황스러웠다.그러다 2년 전을 생각했다.2년 전 전주에 갈 때도 그런 날씨였던 것이 기억난 것이다. 그때 전주엔 황사가 몰아닥쳤었다.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705
2년 전에 전주에 갔다 와서 쓴 글이다.황사와 강풍 속에서 덜덜 떨면서도 어쨌든 영화를 보러 다니긴 했던 모양이다.황사의 거침과 강풍의 한기를 뚫고서 말이다.물론 그 이전에도 좋지 않은 날씨에 시달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그래서 전주에 관해 내가 쓴 글을 더 찾아보았다.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654 음..2011년과 달리 2010년의 전주는 고적하고 평화로웠고,나는 행복감에 젖어 포르투갈의 거장들과 체코의 미클로시 얀초를 보았었던 모양이다.이 기록에 의하면 그때 나는 좋은 봄을 경험했다.이 해에, 내게 전주는 봄이었던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며,나는 2013년의 전주가 내게 어떤 봄을 선사할런지 궁금했다..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3.전북대학교
너무 속도를 올려대는 통에 영화 상영 2시간도 전에 내 첫 영화를 볼 수 있는 전북대학교에 도착하고 말았다.한산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학교 구내에 있는 중국 음식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그래도 시간이 남아 대학 구내의 잔디밭과 꽃들을 바라보며 걸었다.빗줄기는 현저히 약해졌으며 나는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학교 안을 어슬렁거렸다.그리고 이 어슬렁거림으로부터,나는 영화제 특유의 감각을 되살려냈다.영화제 때가 되면 나타나는 내 걸음걸이,매우 느린 그 발걸음,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도 어느 한 지점에 시선이 박히면 그 앞에 서서 집중하고 또 집중하는 '영화제적 걸음걸이'가 마치 오래된 유전자의 연못에서 퍼올려지듯 살아올라와,내 사지를 컨트롤하기 시작한 것이다.내 다리와 팔이 이 걸음걸이에 적응하는 순간,내 존재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 틀림없었고 드디어 나는 여행자가 된 것이었다.
나는 비를 맞아 달라진 정원의 냄새와 달콤한 시큼함이 맴도는 꽃들의 내음을 맡으며 돌아다니다가,드디어 학교 바깥으로 걸어나와 카페인을 찾아다녔다.별다방에 들어가 책을 읽고,다시 전북대학교로 돌아오다가 꽃집에서 꽃을 샀다.나는 주차장으로 돌아가 꽃들을 앞 좌석에 앉혀놓았고,내가 영화를 다 보고 돌아올 때 쯤 그 꽃들의 향기가 나를 반길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레 행복해했다.
4.마스터 - 폴 토마스 앤더슨
2013년 전주에서의 내 첫 영화.폴 토마스 앤더슨의 <더 마스터>.주저없이 맨 처음으로 예약했던 영화다.이 영화에 엄청난 기대감을 품었느냐고? 그건 아니다.나는 영화제에서는 그 어떤 영화도 기대하지 않는다.차라리 머리를 비운다.그래서 나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유명세와 이 영화의 어떤 영화제에서의 선전,그리고 주연 배우인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호아킨 피닉스 그리고 에이미 애덤스의 저력을 애써 잊으려 했다.영화제에서 보는 영화는 내가 사는 도시의 극장이나 집 안의 DVD 영상을 통해 보는 영화와는 다르다.완전히 백지 상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이유? 없다.그저 일련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자기방어 메카니즘이거나 스스로를 향한 관례적 행동일 뿐이다.그래도 나는 그렇게 한다.그러나 손가락은 나를 따르지 않는다.컴퓨터 자판 위에 놓인 손가락은 그 기대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마스터>를 향해 줄달음 쳤다.그렇게 나의 영화제 전초 과정이 진행된다.
(그런데,이 과정은 이 영화 <마스터>에 나오는,특정한 정신적 상황에 대한 종교적 PROCESSING 과정과 유사한 데가 있다. 완전히 격리된 정신의 두 트랙들을 향해서 치료사 혹은 설교사가 거의 강제적인 방법을 통해서 치유라는 미명 하에 트랙의 연합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나는 나의 영화제 예약 과정을 다시 되새기며 좀 웃었었다..)
그러나 이 영화, 언젠가 개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자세한 얘길 할 수는 없고, 영화가 끝내고 내가 작성했던 짧은 메모로 리뷰를 대신한다.
- 격렬한 불꽃이 튀고 있는,바알갛게 달궈진 현악기의 string 위에서 두 남자가 정신의 혈투를 벌인다.
아마 이 문장이 이 영화의 절반 정도를 설명할 것이다.사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캐릭터들은 그의 서사 보다 언제나 크고 거대하다.<데어 윌 비 블러드>를 잇는 미국의 현대사,그리고 종교와 종교 조직의 부조리함이라는 익숙한 서사를 그는 영화 내내 유려하게 이끌어가지만,그의 캐릭터들은 그의 서사들 보다 훨씬 강렬하다.어느 순간 ,나는 스토리를 잊을 정도였다.인물들의 미래가 어떻게 규정되고 결정될 것인가를 궁금해하기 보다는,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라는 두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상호 작용,그들의 끌고 당김,폭력과 매력이 뒤얽혀 그들의 존재가 혼미하게 충돌하는 모습,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제각각 떨어져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그 도저한 모습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은 오독일 것이다.작가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 없는 한 관객의 감정선의 단순한 폭발,혹은 캐릭터에 압도당한 관객의 넋두리일 수도 있다.그러나 폴 토마스 역시 내 오독에 대한 책임의 반은 져야 한다.왜냐하면 그의 캐릭터들은 보통 너무 강렬한 나머지,연기력이 뒷받침되어지지 않는 배우들을 만나면 죄다 허당 인격들로 변해버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고,당연히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의 영화엔 적어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정도의 클래스가 아니라면,거의 소화해내기 조차 힘든 캐릭터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비단 호프만이나 데이 루이스,혹은 호아킨 뿐만이 아니다.조연이지만 불쑥불쑥 끼어들어 진한 빛을 발하는 에이미 애덤스의 캐릭터 역시 카리스마의 레벨이 만땅으로 충전되어 있다.
아마 어쩌면 폴 토마스 앤더슨과 관객 사이에도 processing (영화에 나온다.나중에 개봉하면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시라) 이 필요할 수 있겠다.3도 화상을 입지 않으려면 말이다..
5.집으로 intermission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도저히 숙소를 예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영화제가 열리는 거리 근처의 모든 숙소는 이미 2주전에 예매가 끝난 것 같았다.집이 멀었다면 어떻게든 잠 잘 곳을 마련해야 했겠지만,내 집은 전주에서 두 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그렇다면 퇴근이다..,라고 생각하고 집을 향해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3시간 전에 샀던 꽃의 향기가 은은하게 차 안을 감싸돌고 있었고,그 향기가 <마스터>의 강한 반향을 중화해주고 있었다.
밤의 고속도로엔 차들이 거의 없었다.어느새 비도 그쳐 있었다.5시간 전의 차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하고 말도 안되는 상상에 빠져 있다가 나는,이 비 그침이 내일의 따뜻한 봄날을 보장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나는 음악을 keith jarret 으로 바꾸었고 미끄러지듯 도로를 달려 집으로 도착했다.그리곤 거실의 꽃병에 꽃의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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