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3.말리 (케빈 맥도널드)
2012년에 내가 보았던,그리고 나를 불렀던,그리고 내가 반응을 보였던 영화들에 대한 짧은 정리다.2012년이 얼마 남지 않았고,또다른 해를 준비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글을 점점 짧아질 수 밖에 없다....다음은 2012년에 내가 보았던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다..
2012-12.조지 해리슨-living in the material world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음악에 대한 영화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스트 왈츠>라는 1970년대에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고,얼마 전엔 롤링 스톤즈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었다.그리고 이번엔 비틀즈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이다.
조지 해리슨이라는 한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을 축으로 스콜세지는 당대의 문화적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면밀한 벽화를 그려낸다.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문화사가들로서는 시대의 디테일을,심지어 사진작가들로서는 해리슨을 둘러싼 비틀즈의 포토그래피들을 눈여겨보게 된다.조지 해리슨을 통하여 스콜세지는,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문화적 초상화 하나를 정밀하게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어떤 것을 보면서 만족할 것이 틀림없다.
2012-13.말리 (케빈 맥도널드)
자메이카의 혁명적 레게 뮤지션 밥 말리에 대한 음악 다큐멘터리.
그러나 이 영화는 밥 말리의 음악적 삶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분석은 아니다.영화는 오히려 그에 대한 팬심에 기초했으며 ,혼혈로 태어난 생래적인 아웃사이더라는 그의 개인사,종교에 귀의한 후의 영적인 삶,그의 여자들,그리고 그의 콘서트 이력을 다룬다.그의 정치적 경향 역시 자메이카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끌림과 친근함 때문이라는 식으로 묘사된다.(물론 케빈 맥도널드가 옳을 수도 있다) 그의 삶은 동시대를 살았던 죠지 해리슨과 여러모로 비교된다.말리와 해리슨을 그린 영화를 비교하는 글을 쓰려고 했었는데 때를 놓쳐버렸다.
이 영화를 보았던 넓디 넓은 극장엔 나를 포함해 딱 두 사람 밖에 없었다.나와 5미터 정도 떨어져 앉아있는 아가씨는 밥 말리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머리와 어깨를 흔들며 춤을 추었고,난 저 사람만 없다면 큰 소리로 노랠 따라 부를 텐데,,이러면서 말리의 백댄서 아이쓰리가 되어서 그녀의 동작을 따라 흔들흔들거렸다.그런데 엔딩 끝나고 일어서니 맨 뒷자리 에 어떤 아가씨가 숨어 있듯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저 뒤에서 말리의 음악에 따라 흔들리는 몸통 둘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2012-14.서칭 포 슈가맨 (말릭 벤젤룰)
참 오래간만에 영화의 해피 엔딩 때문에 울었다.스크린이 갑자기 빛나보이던 어떤 순간이 여러번 도래했는데,그것은 언제나 주인공 로드리게즈의 인간성과 불굴의 영혼 때문이었다.미국의 멕시칸 뮤지션과 남아공의 저항세력이 만들어낸 음악적 기적이 한 예술가의 삶 자체에 투영된다.조용하게 글을 쓰고 음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올해 내가 보았던 열 손가락에 꼽힐 만한 영화.
2012-15.<치코와 리타>
영화 끝난지 10분이 지나도 여전히 관객을 멍하게 정도의 매력적인 음악을 거의 무기처럼 구사하는 애니매이션.라틴 재즈의 느리면서도 우아하고, 관능적이면서도 어느 때인가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특성을, 다소 전형적이지만 라틴 재즈 음악 그 자체와 비슷한 스토리로 녹여낸다.매력적인 도시,그리고 매력적인 그림들이 꿈처럼 흘러간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2012년의 영화들 중 하나.
2012-16 아티스트
영화 내내 반복되는 '토크'라는 단어에 얽힌 대사와 장면들.관객이 뻔히 알 수 있도록 주어지는 각종 상징들,그리고 이 영화가 흔들림 없이,그리고 고민없이 따라가는 고전적 내러티브는 단순히 옛 영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함 만은 아니다.와서 보고 즐기되 영화라는 쟝르의 원재료들 만큼은 잊지 말라는 조크이자,이 영화가 말하는 영화의 본질에 관한 우화다.그러나 어쩔 수 없이 즐거웠다.명랑한 영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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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세계에는 마법사들이 존재한다.일종의 그랜드 마스터들.우리는 흔히 그들을 '거장'들이라고 부른다.능란한 테크닉과 뚝심으로 가득 찬 메세지들을,그들은 관객들을 향하여 돌직구처럼 날린다.다음은 2012년에 내가 보았던 몇몇 '거장'들의 영화다.
2012-17.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이젠 유럽을 뉴욕보다 더 좋아하는 듯 보이는 우리의 영원한 수다쟁이 할아버지 우디 앨런.이번엔 파리로 떠났다.나는 이 영화를 이혼 기념 전국 투어 중인 선배누나와 보았다.위자료 받은 걸로 술이나 사라 그랬더니 미쳤냐 라는 대답.그럼 소개팅은…뒤질래..라는 욕설.아직도 입은 엄청 험하다..그럼 뭐할래 그랬더니 결혼 생활 동안 보지 못했던 우디 앨런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그래서 우리 역시 파리로 갔다.누나는 25%정도 힐링이 된 얼굴이었다.
영화 본 이후에 휴대폰에 남긴 몇 가지 메모.
1.우디 앨런이 1920년대의 파리를 황금시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였다.무엇보다 콜 포터의 존재 때문에.결국 재즈 때문에.
2.그러나 굳이 교훈극까지 시도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3.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달리로 나왔을 때 빵 터져서 먹고 있던 생수를 뿜었다.
4.우디 앨런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영화감독들 중 하나이다.그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쿠바?
2012-18.르 아브르 (아키 카우리스마키)
카사블랑카 만큼이나 좋았다.혹시라도 마지막 나쁜 반전이 있을까봐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미워지기까지 했다.누구든 자신의 마음이 얼어붙은 듯 냉혹하졌다고 느껴진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따뜻한 온수로 마음을 샤워시켜 줄 것이다.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색감과 공간 ,그리고 네모난 문들은 여전했다.그리고 그의 유머까지도.또 그의 낯익은 배우들의 얼굴까지도.조금은 늙어버렸지만 말이다.진심으로,그들의 천연덕스러운 위트를 배우고 싶었다.
2012-19.사랑을 카피하다.(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현실과 세계와 예술에 관한 그야말로 마법 같은 영화.첨엔 그저 좋은 영화구나 하고 보다가,점점 걸작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었다.키아로스타미는 영화의 의미와 이미지 하나하나를 정교한 무늬들이 새겨진 얇은 비단 하나하나에 수놓아 관객의 몸과 머리에 차츰차츰,그리고 가끔은 격렬하게 영화적 세례를 베푼다.
줄리엣 비노쉬는 점점 잉그리드 버그만의 레벨로 올라가고 있다.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면 관객도 함께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어떤 숏 리버스 숏에서는 상대방 배우와 감정을 충분히 소통하면서도,오로지 카메라와 관객만을 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강렬하게 전달한다.윤정희가 깐느에서 밀렸던 사건이 충분하게 납득이 되었다.정말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
2012-20 대학살의 신(로만 폴란스키)
재즈 명인들의 잼 세션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툭툭 튀어나오면서 서로의 악기를 연주하는 찬란함과,영화적으로는 다양한 전투선이겠지만 연기로서는 멋진 앙상블인 숨가쁜 전장이,각 캐릭터들의 가식 신경증 위선 부정 그리고 열등감과 함께 어우러지며 결국엔 도시에 살고 있는 인간 특유의 어쩔 수 없는 위선을 상기시켜주고 만다.영화 최후의 승자가 햄스터라는 사실까지 덧붙여지며 실소와 썩소를 동시에 자아낸다.역시 로만 폴란스키.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는 다름 아닌 배우들이다.케이트 윈슬렛의 구토 장면과 그녀의 정말 인상적인 머플러,죠디 포스터의 신경 발작과 일부러 강조하는 핏대와 주름,죤.C 레일리의 느물느물함과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오기,크리스토퍼 왈츠의 휴대폰과 속물스러움은 바로 <대학살의 신>이라는 잼 세션에 있어서 그들의 악기였다.그리고.아마 쉽지 않은 리허설이었을 것 같다.좁은 아파트를 무대로 펼쳐지는 실내극이라..그냥 나온 연기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느 순간 폴란스키의 카메라가 조금은 기묘한 클로즈 업을 통해 그들의 강인하고 타인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턱선을 강조하곤 하는데,그 턱선이야말로 도시 중산층의 심리적 산성의 한 상징이었다.물론 그 뒷편에서는 폴란스키가 격렬하게 낄낄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2012-21 안젤리카의 이상한 사건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1908년생.이미 100세가 넘으셨다.그럼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왕성하게 영화를 만들고 계신다.그의 영화 포스터를 이렇게나 크게 붙여놓은 이유는,뭐..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거장께서는 언제나 영화 중간중간에 여백을 심어놓으신다.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관객인 우리는 풍경인,외침인,동작인,정물화인,새인,꽃병인,그 여백으로부터 갖가지 의미를 하사받는다.어떤 땐 아웃사이더로서의 예술가의 본질적 의미를,또 어떤 땐 사랑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병적인 속성을,밤의 사람과 낮의 사람,그리고 반물질과 반문명이라는 영원한 테마를.올리베이라는 영원히 늙지 않는 마법사.그리고 영원한 영화 세계의 요정인 것 같다.
포르투갈 영화에 대한 내 매우 이상스런 사랑은,그들이 사용하는 빛과 그림자들,그리고 건물과 건물이 만들어내는 예각의 각도와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매우 남국적인 긴장들,그리고 끝없이 늘려놓은 원근감에서 비롯되는 깊은 느낌에서 비롯된다.그 오리지널이 바로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감독이다.200세까지 살아계셨음,200세까지 영화를 만들어 주셨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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