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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신의 영화들/정체에 대해 떠들기

by 폴사이먼 2013. 2. 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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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주말에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은별이를 요새는 매일 밤 보고 있다.이 녀석은 그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양, 저녁 마다 거의 나와 붙어지내며,온갖 종류의 놀이를 개발하여 놀이의 파트너로 나를 지명한다.어쩔 수 없는 유전 탓인지 유난히 공을 좋아하는 은별이는 공을 이용한 여러가지 게임의 방법을 만들어내어 저녁 마다 나와 시합 중이다.따라서 나의 오버 액션은 거의 필수적이다.나는 은별이가 던진 공을 슬라이딩 캐치하며 온 몸을 아끼지 않는다.이 아파트의 소음 방벽이 매우 튼튼하거나 아랫층에 매우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거나,그도 아니면 아예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

 

여자 아이들이 흔히 좋아하는 소녀 인형 보다는 곰이나 강아지 같은 동물 인형을 훨씬 좋아하는 은별이는,공놀이가 끝나면 나를 자신의 놀이방으로 끌고 간다.그리고는 자기 방 이곳저곳에 진치고 있는 곰과 사슴과 강아지와 원숭이 인형을 모조리 꺼내놓고는 어떤 이야기를 연출하기 위해 그들에게 배역을 나누어 준다.어떤 테디 베어 한 쌍은 '눈의 여왕' 에 나오는 카이와 겔다 남매가 되고,은별이 몸의 반 만한 또다른 곰 인형이 악역을 맡아 눈의 여왕 역할을 하게 된다.곰과 여왕의 조합이 워낙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지,은별이는 곰에게 흰 의상을 입히고 모자까지 씌운 다음 내게, 얘가 바로 눈의 여왕이니까 이의를 달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때부터 우리는 짜여진 각본 없이,그러나 어디까지나 안데르센의 원작에 나오는 기본적인 결론부에 맞추어서 즉흥적인 인형극을 진행하게 되는데,내가 조금이라도 엉뚱한 대사를 읊었다 치면 연출자인 은별이는 내게 단호한 질책의 메세지를 전달한다.지금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역할극이 개그 콘서트 같은 코미디가 아닐진대 어찌하여 그렇게 말도 안되는 대사를 원숭이나 사슴에게 말하게 하느냐는  볼멘 소리를 곁들이며 나를 나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놀 수 만은 없다.공부도 시키긴 시켜야 한다.어느 정도의 나이대 까지는 사교육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현재 은별이를 학원에 보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어쩔 수 없이 거기에 대한  응분의 댓가를 치뤄야 한다.영어를 가르쳐야 하고 수학을 연습시켜야 하는 것이다.나는 교재를 사고 영어 CD 를 준비해야 한다.그리고 저녁 마다 은별이와 공부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그래서 내 자유 시간은 확연히 줄어들어 버렸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완전히 은별이에게 매여 있는 것으로 내 스케쥴은 조정됐고,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 시간 만을 내 자신에게 부여하기로 결정되었다.이런 것이 패밀리 맨으로서의 생활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어쨌든 즐겁게 견뎌내고 있다.그러나 나와 은별이 둘 중 한 사람이 이런 종류의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한다면,강제와 부자유의 냄새가 어디선가 모락모락 피어난다면,나와 은별이의 일상생활이 명랑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우리는 현재 유지하는 이런 시간대의 생활을 집어던져 버릴 것이다.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과 명랑함이며,명랑함이 배제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다.그렇게까지 하면서 몇십 년의 시간대를 보낼 필요는 없다.삶은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다.그렇게 노예처럼 살아가기엔 말이다.

 

그러나 이 녀석,벌써 아홉 살이다.까다로운 질문을 계속 퍼부을 때도 있고,남자인 나로서는 돌발적으로 느껴지는 감정 반응이나 행동을 보일 때도 있다.나는 답을 모르겠는 질문엔 철저하게 모른다고 대답하고,이유를 찾아보자고 말한다.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그러나 아이가 보이는 어떤 감정 반응,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특히 남자가 아닌 여성스러운 반응에 대해서는,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어젯밤.영어 공부에 돌입하기 전 은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바람 같이 달려와 품에 안기며 그냥 서럽게 울어대는 것이다.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무엇이 이 아이를 이리도 슬프게 만드는가..아홉 살 짜리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른다.한참이나 울다가 아이는 말한다.

 

 -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아니,이창동 <오아시스>의 설경구도 아니고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나는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다.

- 언제로 돌아가고 싶단 말이냐.

- 다섯 살 때로.

 

은별이는 특정한 나이대를 분명하게 지목한다.뭔가 있다.나는 천천히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은별이 역시 왜 하필 다섯살 때인지를 말한다.

 

- 그때는 사람들이 나를 더 사랑했어.엄마도 나를 훨씬 더 좋아해 줬어.그리고 나도 지금 보다 그때가 훨씬 더 애교 있었어..

 

애교라니..이게 무슨 소린가 싶으면서,또 갑자기 그 단어에서 실마리 하나를 끄집어낸다.저녁의 퇴근 엘리베이터에서 은별이 모친께서 은별이를 건드린 것이다.은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얘,옛날 보다 훨씬 무뚝뚝해졌어..애교가 줄었어..' 뭐,이런 식의 얘기를 사람들로 둘러싸인 '공공의' 공간 엘리베이터에서 하고 만 것이다.예민한 은별이의 울음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틀림없었다.줄어든 애교가 부족한 사랑 받음으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여전히 아이는 울고 있다.눈물은 언제나 눈물의 연쇄를 부르며,슬픈 감정은 감정 자체의 화학적 반응에 의해서 전혀 다른 슬픔의 양상을 유도한다.나는 '무뚝뚝함'이나 '애교' 보다는 '사랑'이라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느낀다.그래서 말한다.

 

- 엄마 아빠가 너를 옛날 보다 덜 사랑하는 것 같아?

은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나는 속으로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이러면서도 입으로는 전혀 다른 말을 꺼낸다.

 

- 사실은 반대야.

무슨 소리냐는 듯,은별이가 울음을 그치면서 고개를 들자,나는 대사를 읊기 시작한다.

 

- 너하고 내 사이에서,시간이 흘러서 서로를 덜 사랑하게 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야.엄마나 나는 옛날 보다 지금 훨씬 너를 더 사랑하고,우리가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면 더 그렇게 돼.

 

무언가 반박하려는 은별이의 말을 가로채며 나는 재빨리 내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넌 반대야.세월이 흘러갈수록,네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너는 점점 더 나를 덜 사랑하게 돼.왜냐하면 너에겐 새로운 사랑들이 많이 생기게 되거든.남자 친구가 생겨서 사랑하게 되고,또 너도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이때쯤 은별이는 거의 눈물을 뭠췄던 것 같다.

 

-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나나 엄마를 덜 사랑하게 되는 건 당연하지.그렇지 않니?

 

은별이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아빠의 설명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느끼고서,조금은 내 말에 설득되었거나 내 말의 진위를 고려중인 모양이었다.나는 이쯤 하기로 하고 은별이를 업고서 다시 은별이 공부방으로 달려갔다.그리고는 생각했다.어쩌면 내가 은별이에게 했던 말이 진실일 수도 있다고,그러나 또 삶의 어느 변곡점을 지나면 사랑의 또다른 형태가 나타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고..

 

즉 어느 순간,은별이는 우리를 떠날 것이다.그리고는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언젠가는 아예 우리에게 관심도 없을런지도 모른다.(아니,그렇게 말하면 좀 비참하지만 말이다).그렇다고 그런 미래를 그렇게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다.우리도 그렇게 했으니 말이다.그러다가 또 언젠가는 불현듯 우리를 기억하게 될 것이고,예전에 잊었던 우리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그리고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어느 정도 회복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나도 어느 순간 어머니와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신경쓰게 되었다.그분들의 육체가 점점 노쇠해갈수록,강건했던 정신이 갑작스런 약함을 보이는 것을 목격하는 빈도가 늘어갈수록,나는 부모님께 전화드리고 찾아가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그렇게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의 주기는 일정한  변화의 곡선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어쩌겠는가.받아들여야지..차라리 이런 곡선을 그려가며 살아가는 것이 더 평온하고 평화로운 삶일 것이다.애정의 강온이 조석으로 물결치고,사랑이 증오로 바뀌고 갈등의 양상이 동남아시아 국가의 소나기처럼 갑작스럽게 내렸다가 그치는 거라면,삶의 명랑함은 너무나 자주 방해받게 될 것이다.가급적이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나는..

 

은별이와 나는 다시 영어 cd를 틀었다.이 녀석,언어 능력 하나는 기가 막히다.(반면 수학은 언어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다.)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일기를 너무 재밌게 쓰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은별이는 아까의 눈물을 벌써 잊어버렸다.그리고는 다시 날개치는 작은 새로서의 활기참을 회복했다.나도 공부를 끝내고 낮부터 읽던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책 제목은 <김승호:아버지의 얼굴,한국 영화의 초상>이다.우리 영화의 대표적 아버지..김승호..그러나 그의 '한국의 아버지' 역할도,역사의 어떤 시기에 이르러 결국 끝장나고 말았다.김승호는 김희갑으로,김희갑은 최불암으로..이렇게 대체되어 갔다.최불암의 '한국 아버지' 역할도 끝나가고 있다.이제 누가 한국 아버지의 대명사가 될까? 천호진? ^^

 

글쎄,지난 대선 결과만 가지고서 생각해 보자면,당분간 '한국의 아버지상'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아버지란 아들이,아들은 아버지의 존재가 상호간에 전제되어야 한다.즉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그 인정이 어렵다.대통합이란 세대간의 차원에서도 시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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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 같다.나는 그토록이나 분주했나 보다.오랫동안 내 글을 보셔온 어떤 분들을 위해서 아이의 사진 - 이제는 많이 커버린- 을 올릴까 한다.역시나 이 녀석은 나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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