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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가족 도서관,그리고 A-HA

신의 영화들/culture club

by 폴사이먼 2009. 8. 2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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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가을 밤들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아직도 대낮의 햇빛은 그 온기 속에 서려 있는 미묘한 악의를 완전히 감추고 있지 않지만 ,결국에는 스러지고야 말 것이다.그렇게 되면 또다시 예의 가을 밤들이 사람의 두뇌를 조심스레 점령하게 되어,노래를 만드는 사람은 노래를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미지를,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조용하고 편안한 중력장들이 도처에 형성되게 될 것이다.

 

뭐,가을이 다가 온다 이 말이다.별 말 아니다.

 

연초에 세웠던 예정대로라면 나는,지금쯤엔 '사랑'과 '기독교'라는 두 가지 테마에 매달리고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그러나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두 가지 주제에 관한 여러 영화들을 시리즈로 다루려던 내 계획은 여기저기서 부서지고 좌초되었다.부분적으로는 내 정신적 게으름과 육체적 유약함에 기인하고,또 어느 면으로는 이상한 종류의 깨달음 - 그 어떤 영화에서도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을 끄집어내더라는 경험칙 - 이 원인이 되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한 글들을 쓰리라고 마음 먹자,나는 모든 영화들에게서 사랑이라는 요소만을 편향적으로 섭취하고 있었다.나는 영화와 영화들을 자꾸만 자의적으로 연결하고 거기서 추출해낸  사랑의 요소들을 화학적으로 접합시켜,어쩌면 정신적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배우의 눈빛 하나하나와 감독의 개개 연출을 묶은 후,그들의 원래 의도를 나는 자꾸만 변형시켜서 내 할 말 만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작업이 정녕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왔다면,

도대체 영화에 대한 리뷰라는 것이 왜 필요한 것인가?

나 자신의 변설들을 합리화하고 어쩌면 쓸 데 없을 지도 모르는 정신의 파편들에 대한 범죄적 알리바이들을 완성하기 위해서?

 

문제는 그런 종류의 자기현시욕만을 펼쳐보이면서 살아가기엔,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들이 너무 짧다는 데에 있다.게다가 나는 언제나 일상사의 잔물결에 휘둘려야 하고 가족과 직장을 유지하기 위한 배터리를 끊임없이 충전시키고 가동시켜야 한다.시간이 없다.차라리 아주 간단하고 보다 결정적이고 명료한 몇 줄의 말들만이 필요할런지도 모른다.

 

가령 사랑은,하고 제목을 달아놓고 문장 열 개 정도로 마무리해버리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또 이것이 오히려 솔직한 태도일런지도 모른다.(물론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할 문제는 아니다)

 

또는 이 모든 나의 정신상태가 순전한 피로감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올 여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박카스를 마셔댔던 것이다.(동아제약은 뭐하나,이렇게 우수한 소비자에게 표창장 하나 준비하지 않고.)

 

게다가 새로 발효된 저작권법의 몇몇 조항들은,내 영화 글쓰기의 근본적 고리들을 건드리고 방해한다.나는 내 부족한 표현력의 일부들을 캡쳐된 동영상과 스틸 사진으로 벌충해왔던 것이다.나는 지아쟝커의 <스틸 라이프>의 주인공인 셴홍과 한산밍의 표정과 동작들을 글로써는 제대로 옮겨내지 못했다.(능력이 달렸다) 또는 그래야 할 개연성도 느끼지 못했으며 최소한의 시도 조차 하지 않았다.나는 그 영화의 일부들을 오려냈으며,그것을 내 가공된 이름 밑에 내 글처럼 붙였다가 떼었다.분명한 저작권법 위반이다.

 

물론 지아쟝커가 그 사실을 알 리도 없고 한반도의 남녘 도시 구석에서 글을 올려대는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 띄엄띄엄) 블로거의 글에 그가 뭐라 할 리도 없다.지아쟝커가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인간이라면,더 이상 그의 영화를 보아줄 가치도 없을 것이다.(몇 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가 <해운대>를 찍을 일은 없지 않겠는가)

 

어쨌든 나는 영화에 대한 내 글쓰기의 몇몇 도구들을 잃어버렸다.화를 낼 일은 아니지만,약간 기분이 나빠지고 어딘지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게다가,새로 태어난 이 신생아 법조항들은 내 또다른 계획까지 망가뜨렸다.언젠가부터 자신의 공간에 자신이 좋아했던 음악들을 올리는 분들을 너무도 부러워한 나머지,나 역시도 그렇게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그런데 언제나 전지구적 계획(내 두뇌 안에서 형성되는 세상을 이르는 말이다)을 세우지 않으면 못 견디는 내 성향은,내가 좋아했던 뮤지션들에 대한 사전적 배열을 요구하고야 말았다.

 

알파벳 A부터 Z까지,0부터 9까지,나는 모든 대중음악가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그들의 음악들을 정리하기 원했던 것이다.A-HA부터 ZZ TOP까지 내 머릿속의 세상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내 목표였다.물론 누가 보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내가 쓰는 음악에 대한 글들을 돈 받고 팔겠다는 것도 아니다.(물론 살 사람도 없다)그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나중에 은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아빠의 방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책들과 음반들과 DVD들을 듣고 보기 바라고,그 거미줄이 잔뜩 둘러쳐진 낡은 도서관에서 그 누구의 방해(특히 엄마가 되겠지)도 받지 않기를 또 바라듯이,그 아이가 나중에 우연히라도 아빠의 블로그를 발견하고 거기에 비웃음을 보내든 찬사를 보내든 상관없이,이 블로그의 컨텐츠들을 쳐다보게 되었을 때,조금이라도 정리된 형태로 또 조금이라도 많은,또 다감각적인 형태의 포스팅들을 보게 되길 소망하는 것 뿐이다.

 

물론 이것 역시 어쩌면 저작권법이 엄금하는 상업적 이용이다.법에 따르면,나는 A-HA부터 ZZ TOP에 이르는 그 모든 음악가들의 CD,LP,Music Video들을 모두 구매한 후,홈 씨어터까지 장만해서,방 두 칸 정도를 허물어버린 후,그 곳에 가족도서관을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법은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근잘근 씹어버리겠다는 (저작하겠다는) 의도 역시 명문화되어 있다.또 어느 면에서,이런 태도 역시 충분히 자신의 옳음을 정당화할 근거를 가지고 있다.

 

충분한 공간과 재원을 가지고 있으면 그 일들을 그렇게 시도하면 되고,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면 그냥 포기해버리면 된다고 그들은 아주 쿨하게 말하고 있다.그래서 지금은 참 추운 계절이다.

 

하지만 A-HA의 음원과 뮤직 비디오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워너브라더스가 미처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그것은 내가 법의 테두리 일부를 부수고 A-HA의 뮤직비디오를 내 블로그에 올리지 않는다면,적어도 내 딸 은별이는 1980년대 중반의 가수인 A-HA를 그리 쉽게 접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또 박진영이 만들어낸 원더걸스의 그 유니크한 노래와 깔끔한 춤들을,그 수많은 네티즌들이 까페와 블로그에 퍼나르지 않았더라면,지금 그 귀여운 다섯 소녀들이 클리블랜드의 야구장에서 추신수가 경기하기 전에 노래 부를 일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며 미국 팬들의 신발에 허리 굽혀 사인해서 구설수에 시달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어떻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말인가?

 

내 뮤지션 사전의 첫머리를 장식할 뻔 했던 노르웨이의 3인조 그룹 A-HA를 인용하면서,아마 나는 내 개인적 경험들을 토로했을 것이다.모튼 해킷 (보컬을 맡았던 그는 그룹 해체 후 솔로로 독립하여 몇몇 히트곡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폴 닥타,마그네 푸르홀덴 (이름에 대한 기억은 물론 정확하지 않다)으로 이루어진 이 그룹과 그들의 노래 ' take on me'는 내게,또 하나의 문화적 전환을 의미하는 노래다.

 

이 노래는 내게,듣는 노래에서 보는 노래로의 변화라는 그 시절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던 노래이다.음악은 이제 라디오에서  M -TV로,오디오에서 비디오로 옮겨가고 있다는 그 시대상황의 또 하나의 증거였던 것이다.비디오는 또다시 라디오 스타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물론 그 이전에 마이클 잭슨이 있었다. M-TV의 흑인장벽을 무참하게 박살낸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의 걸작들이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그러나 그때의 나는 검은 교복을 입은 범생이였다.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를 따라 하는 친구들이 미끄러지듯 실내화의 밑바닥으로 교실의 뒷공간에 윤을 내고 있을 때,영화 <백야>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유연한 몸동작으로 날렵한 새가 날아오르듯 의자의 두 면을 교차하여 밟고 올라 비행하여 대한민국 중고등학교의 의자들을 부실하게 만들고 있을 때,나는 그저 미소를 띄어가며 어쩌면 아주 고풍스럽다 할 수 있을 그 광경들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나는 방관자였으며 별 느낌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A-HA의 'take on me'는 달랐다.소주와 막걸리와 고함과 기합에 지겨워진 학교 동네를 떠나서,다른 동네의 술집들에 진입했을 때,나는 테이블들의 상부와 천정과 벽면에 장착된 수많은 미니 텔레비젼의 수상기들을 보게 되었고,거기에선 노래가 청각 뿐만 아니라 시각까지 압도하며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take on me가 있었다.뭐든지 부드럽게 연주해내고야 말 듯 온순해진 드럼 비트와 광고음악을 연상시키는 신쎄사이저의 전주가 끝났을 때,화면은 이제 애니매이션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그리고 그곳에는 권태로움에 지쳐 있는 고운 백인 중산층 소녀가 식당 테이블에 앉아 만화책을 보고 있었으며,기존의 하드 록의 보컬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말랑말랑한 모튼 해킷의 어딘가 초조하면서도 애끓는 듯한,그럼에도 여전히 가벼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애니매이션의 스토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음악은 철저하게 변두리로 밀려난다.만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가죽 재킷을 입은 불량끼 있는 소년 모튼 해킷은 부드럽고 안온한,그러나 지겨운 세계에만 머물러 있던 소녀를 만화책 속의 세계로 유입시키고,그들은 그 만화 지면 속에서,또한 맥주집의 주렁주렁 매달린 화면들 여기저기 속에서 제한된 로맨스를 즐기기 시작했다.음악은 그들의 스토리를 따라서 배경으로만 존재하고, 전면에 부각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지도 못했다.

 

록커-비일상성-법적 테두리 바깥-노동계층을 상징하는 소년은 끝없이 학생-일상성-법적 테두리 안쪽-중산계층을 표현하는 소녀를 유혹하고 (그래서 이 비디오 클립은 중산계층의 본능적 두려움을 아주 엷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음악과는 별개의 층위에서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소프트해질대로 소프트해진 음악이 마지막 정리를 향해서 달려갈 때면,잠깐 동안 나타났던 긴장감들은 모두 다 사그라지고 화면 속의 소녀와,수동적으로 그 동화적인 화면을 지켜보았던 우리는 또다시 편안한 일상에 복귀하여 생맥주잔을 그러잡고 건배를 외쳤던 것이다.

 

레드 제플린을 듣고 있던 나는 주류음악의 변화에 완전히 어리둥절해졌으며 한 시대의 음악이 완전히 저물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이제 한 가지의 감각-청각-에 의존하는 음악은 쇠퇴하고 말리라는 것을,음악을 듣는 대중들의 보다 복잡해진 두뇌를 상업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더 강력하고 더 공감각적인 공격법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그 때 난 깨닫게 되었고,그 때가 바로 80년대의 팝이 최정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A-HA의 음악과 ,나중에 우리나라 청량음료 광고로까지 패러디되었던 그들의 뮤직 비디오는 이렇게 내게 또 하나의 추억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써놓고 보니 뭔가 심심하지 않은가? 그 때의 화면들을 좀 보아야 할 필요가 느껴지지는 않는가? 모르겠다.올려 보자.글 맨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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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A-HA에 대한 이 글에 대해 생각해 보자.글만 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엉뚱한 위법행위를 저지른 나는 ,근본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그 옛날 A-HA를 좋아했던 그 누군가가 이 글을 잃고 그들의 음반을 구입하게 되었다면 (그들은 몇 년 전 재결합했다),이 글은 상업적으로 이용된 글인가 아닌가?

 

10년 후,은별이는 이 포스팅을 보고 도대체 어떤 느낌을 갖게 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다음 번 뮤지션에 대한 글을 어떤 형태로 써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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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밑으로 내려보시라.아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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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TPgMTIgwS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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