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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연인>-착한 자들의 도시

신의 영화들/culture club

by 폴사이먼 2009. 3. 1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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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착한 자들의 도시

 

<스타의 연인>에 나오는 사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모두 다 착하다는 것이다.그들은 가급적이면 자신의 이득이나 위치에 연연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챙기고 위하며,어떤 경우에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곧잘 희생적인 위치에 선다.주인공인 스타 여배우 이마리(최지우)는 자신과의 연애담 때문에,자서전 대필 경력이 알려져서 소설가로서의 입지가 망가지고 학교에서의 자리가 위태롭게 되는 김철수(유지태)를 위해서 여러가지 희생을 감내하려 한다.또한 김철수 역시 자신의 연인을 위해서 불편하고 고통스런 일을 감당해 낸다.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갈수록 더 힘들어지지만,관객들의 입장에선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다.

 

그들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짝사랑 당사자들인 이기우와 차예련 역시 숱한 우울함과 슬픔을 견뎌내면서도,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닥친 어려운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앞일들을 주선해 준다.이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드라마 전체를 감도는 분위기에 따라서 그렇게 착하게 행동한다.그렇게 해서 그들의 질시와 실연의 고통은 부드럽게 또 말랑말랑하게 승화된다.

 

심지어 악역으로 기능하는 기획사 대표 성지루 역시,끝내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만약 그가 멍청하게 개심했다면 이야기는 굉장히 심드렁해졌을 것이다),결론적인 패배 이후에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다.회생의 가능성을 남겨 놓는 것이다.

 

행복한 끝맺음.해피 엔딩.드라마는 가족을 구성하여 딸을 낳은 유지태와 최지우 부부의 행복한 일상을 그리며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그러나 이 엔딩은 관객을 위로하려는 것이 아니며 또한 해결점을 주려는 것도 아니다 착한 사람들의 자연스런 귀결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착한 사람들'이 등장하여 '착하게' 진행되고 끝을 맺는 드라마는 ,현재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내보내는 드라마들 사이에선 매우 이례적인 존재로 자리매김되어진다.현재의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온통 악인들의 파노라마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히트하는 드라마일수록,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일수록 악역의 존재는 날카롭게 두드러진다.

 

4.악한 자들의 도시

 

<아내의 유혹>이 사람들의 식탁을 점령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안하무인 격의 악역 신애리의 공이 그 누구보다 컸다.신애리는 히스테리컬한 말투와 신경질적인 행동으로 단박에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공분과 더불어 강력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사람들은 그녀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행여나 복수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말이다.

 

 

 

<에덴의 동쪽>의 신태환 역시,악업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사람이다.온갖 민사 형사 패륜 범죄를 다 저질러 놓고도 끝까지 재기의 기회를 벼르며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악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굳이 <스타의 연인>의 악역 성지루와 비교해 보자면 거의 대마왕과 작은 악마 사이의 심연에나 맞먹는 거리감을 지니고 있다.이 드라마의 경우 납치나 린치 칼질과 야구 방망이질은 마치 일상처럼 묘사되고,(한화의 김승연이 야구방망이를 동원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직업,인간성이나 교양과는  아무 상관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스포츠 신문의 기업만화 수준이다.

 

그런데 이 뻔뻔스런 악한 사람들은,그들의 연기력 뿐만 아니라 그들의 캐릭터 그 자체에 의해서도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다.관객들은 이제 과거 드라마가 그랬던 것처럼,악인은 벌을 받고 정의는 승리한다는 권선징악적 스토리 전개 따위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드라마 속의 악한 캐릭터에게 과감하게 자신을 투사하고,악역을 맡은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수록, 더 악해질수록 그들의 연기력에 박수를 보낸다.

 

악한 연기자가 히스테리컬한 분노를 폭발시키면 시킬수록,잔혹해지면 잔혹해질수록 스토리는 더 흥미진진해진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운명을 예의주시하는 것이다.게다가 악한 캐릭터의 지위와 위치도 아주 많이 변했다.이제 찌질한 악역 따위는 거의 없다.적어도 재벌회장급,적어도 지식인 엘리트 급이 아니면 우리나라 드라마의 악역에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됐다.동네 깡패나 중간급 조폭 정도는 드라마에 윤활유를 붓는 삐에로나 코믹한 캐릭터로 기용되지 절대로 주인공으로 격상되지 않는다.악함에도 급수가 있고 강렬한 아우라가 없으면 악인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찌질이는 악한 축에도 못 낀다.

 

'돈',그리고 화폐경제(혹은 MONEYTARISM) 는 거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았다.'돈'이 빠지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우리나라 고시청률 드라마들의 캐릭터들은 이제 '사랑'이나 '정의' 또는 고매한 이상 따위를 가지고 갈등하지 않는다.혹 그런 갈등이 있다 해도 거의 부차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모든 롤러코스터적 드라마에는 '돈'이 개입한다.돈과 권력으로 인한 싸움으로 인해 아무리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지더라도,그들은 핏발선 눈길과 가시돋친 언사들을 앞세우며 서로를 무너뜨리려 갖은 지략과 폭력을  동원한다.그리고 관객들은 그 싸움의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매일 저녁 식탁과 거실에서 숨을 죽인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이 자신의 드라마를 구성할 때,드라마의 스토리를 먼저 만드는 것이 아니라,인물들의 캐릭터들을 먼저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좀 더 강렬한 사람,좀 더 인상적인 사람,좀 더 멋지고 좀 더 극한적인 사람들을 먼저 떠올린 다음에,거기에 맞추어서 스토리들을 끼워넣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다.시청자들의 집중력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의 감성에 가장 맞는 사람들을 완성한 다음에,그들간의 관계를 고조시키고 관계 자체에 폭발력을 일으킬 수 있도록 화약을 장착시키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집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돈'과 '매력'을 갖춘 사람들이 벌이는 비정상적인 감정분출의 향연.이것이 가장 시청률 높은 드라마들의 특징인 것이다.

 

5.왜소한 자들의 도시

 

그런데 왜일까? 왜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드라마들에 열광하는 것일까? 실제로 신태환이나 신애리,혹은 <태양의 여자>의 강도영 같은 악한 캐릭터들은 우리 주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닌가.우리 이웃에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피하고만 싶고,조금이라도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온당한 사람들이 아닌가.왜 이런 자들은 맨날 맨날 텔레비젼 브라운관에 등장하여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왜 돈많은 자들,권력 있는 자들,소위 가진 자들만이 나타나 그들의 스토리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일까? 실제로 재벌가나 권력가들과 연관을 맺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은가.

 

어떤 호기심 때문에? 일종의 선망 때문에? 대리 만족? 서민 금잔디도 왕자 구준표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비현실성을 실제로 눈 앞에 보여주기 때문에?

 

그러나 이것은 일면,우리 자신의 욕망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더 이상 서민 계층이 주인공으로 등극하기 어렵다는 사실,나왔다 하면 재벌 2세나 대기업 기획실장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은,우리 자신의 염원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변하며,지금 우리나라 사회를 지배하는 화폐경제가 이제 브라운관 안쪽과 시청자들의 두뇌 한복판을 완벽하게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들에게 우리가 집중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한다는 사실은,우리 자신의 왜소성을 가감없이 증명하는 것이다.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그러기에 개개인이 살아가는 데에 짊어져야 할 짐은 너무나 커졌다.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지출해야 할 항목도 늘어났다.아이들의 교육비는 천정부지로 높아졌고,집을 장만하는 데에 들어가야 할 돈과 에너지는 천 배로 커졌다.20년 전의 사람들과 동일한 시간의 노동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해도,그때의 사람들이 누릴 수 있었던 생활의 상황을 이제 우리는 만들지 못한다.우리가 벌어들여야 할 화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부담을 느끼고,더 벌고 더 신경쓰고 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왜소함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으며,그 대리만족으로 강렬하고 스펙터클한 존재들을 원하게 되었다.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바로 드라마 속 악역 캐릭터들인 것이다.그들은 강하고 과감하다.그들은 물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강렬한 파워를 발산한다.또한 그들은  거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윤리적인 잣대도 기본적인 교양도 없다.그들에겐 오직 돌파 또 돌파만 있을 뿐이고 그렇게 인생을 거칠게 헤쳐 나간다.도저히 그럴 수 없는 우리가 그들에게 열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지속적인 돌파 (돌팍이 아니라) 캐릭터로 인생을 살아온 이명박씨가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의 왜소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그 숱한 의혹과 보통 사람들 이상의 전과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의 소망을 쟁취해냈다는 것은,그의 경쟁자들이 워낙 보잘 것 없었다는 측면과 전정권의 바보짓이 여러 몫을 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그의 승리는 바로 우리들의 성향 ,강한 자들을 선망하고 그들의 스토리에 집중하는,이제는 왜소해진 우리들의 좌표 때문이다.

 

물론 이것 조차 일종의 자연스런 반응일 수도 있다.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근본적으로 깨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다만 언제나 저항의 씨앗은 살아 있다.사람들은 강한 악역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하면서도,그들이 계속 승리하는 꼴은 보기 싫어한다.신태환이나 신애리는 언젠가는 응징받아야 할 존재들로 그려지는 것이다.우리들의 왜소함이 또 하나의 반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최근 우리나라 드라마 속의 있는 자 캐릭터들은 거의 다 어딘가 망가져 있는 사람들이다.

 

<아내의 유혹>속의 변우민 가족들이나 <에덴의 동쪽>속의 돈 있는 자들은 심각한 결함들을 가지고 있다.지능이 떨어지거나 범죄를 저질렀거나 과거의 악업에 의해 고통받는다.얼핏 삐에로처럼 희화화되기도 한다.장미희는 오랜만의 텔레비젼 드라마 복귀작에서 희화화된 부잣집 마나님 역을 소화해내서 광고에까지 진출했다.우리는 그들을 선망하면서도 그들을 경원하고 또 경멸하며 그들이 그 자리에 올라서기까지의 과정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6.환상의 도시

 

그러나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시간 개념이다.우리는 현재를 잃어버린 것이다.현재를 살아가면서도 현재의 우리 상황을 보려고 하지는 않는것이다.고통스런 현실은 머릿속의 염원 혹은 욕망과 상호작용을 일으켜서 ,실제의 경험에서 우리를 유리시키고 새로운 환상으로 우리를 밀어넣는 것이다.현재는 끊임없이 살아가는 우리를 협박하고 우리는 근본적인 저항 대신 강한 환각으로 현재에 대응하는 것이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연애를 다뤘던 <스타의 연인>역시 대중문화의 스타를 다루면서도 그 험악한 이면을 천착하지 않았다.차라리 SBS의 <온 에어>쪽이 훨씬 방송계와 쇼비즈니스계를 적절히 다루었다.그러나 그것은 <스타의 연인>의 전략이고 선택이니 어쩌는 수가 없다.그들의 전략은 그저 맑은 사랑이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드라마들이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이 아주 오래 전의 일은 아니라는 것 하나 정도는 지적해두고 싶다.15년 전만 해도 보다 현실적이고 또 보다 착한 드라마들이 얼마든지 방송국이 송출하는 전파들을 점령하고 있었다.강한 드라마들은 오히려 이례적이었고,그들이 화제가 되는 차원은 지금보다 훨씬 건전했다.

 

가령 청소년들을 다루는 드라마가 그렇다.잘 보지 않아서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들이 몇 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그 꽃남들이야말로 순정만화 속에서 막 뽑아온 만화 주인공들처럼 보인다.구준표의 앙탈 섞인 거들먹거림이나 구혜선의 캔디 캐릭터는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꽃보다 남자>는 동화적 만화적 환상에,예의 강한 재벌과 유행하는 꽃남 캐릭터들을 뒤섞어서 여러 계층의 시선을 붙잡아두기 위해 분투하는 시청률 지상주의 드라마다.그러나 과거의 청소년 드라마들은 그렇지 않았다.약 15년 전 쯤에 문화방송에서 방영했던 드라마가 있다.

 

 

제목은 <사춘기>.구구하게 설명을 덧붙이고 싶진 않으나,참으로 현실적인 드라마였다.저 드라마 속 두 중학생 아이들은 정말 동네 아이들처럼 굴었고,엄마와 아빠,그리고 선생님들 역시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들처럼 저들에게 대응했다.그들은 멋있게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고 스포츠카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마음에 드는 소녀에게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하던 숙맥들이었다.

 

저런 아이들이 브라운관을 장식하던 때는 고작 15년 전이었던 것이다.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독백을 중얼거리던 아이들이었다..

 

저 드라마의 연출자와 작가들이 훗날 어떤 작품들을 집필하고 연출했는가를 살펴 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얻으실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보고 싶다.그래야 식탁에서 체하지 않을테니 말이다.물론 좋은 드라마들도 다수 있으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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