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짧은 여행의 기록
이 블로그에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는 작은 카테고리 하나를 열고 싶었다.그리고 그 곳에다 결코 길어질 수가 없는 내 여행의 기록들을 남겨 놓고,언젠가 아주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읽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일 년 전,전라남도의 벌교와 순천만 일대를 돌아본 어떤 시간을 세 번에 나누어 쓰기로 결정하고,그 중 두번의 여행기를 썼었다.그러나 세번째 여행기를 쓰려다가 그만 두어 버렸었다.
일 년 전 나는,그 한나절의 여행에서 그로부터 십 년 전의 특정한 과거의 시간을 쫓아가고 있었고,글은 점점 시간과 기억이라는 화두로 향하고 있었다.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일 년이 지나 그 때의 여행을 회상하며 글을 쓰게 되면 또다른 기억과, 또다른 두뇌 안의 화학반응이 생겨나서 더욱 중층적인 글이 가능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그래서 그 세번째 글을 일 년 뒤로 유예해버렸다. 그 일 년이 점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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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4월 1일,나는 또 하나의 짧은 여행의 경험을 했다.그리고 그로부터 2주가 지난 지금 또 하나의 여행기를 쓰려고 한다.그런데 이 시간을 과연 '여행'의 범주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일까?
4월 1일,나는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까지 올라가서,영국의 록 그룹 오아시스의 내한공연을 보고 왔다.그리고 그 리뷰를 쓰려 한다.이 글은 어쩌면 원칙적으로는 음악공연에 대한 리뷰일 것이다.그런데 난 여전히 이 글을 여행기로 치부하려 한다.왜일까?
2.비행기와 기차
저녁 8시 30분에 시작되는 공연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내게 필수적인 것은 무조건 내가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을 오전에 끝마쳐야 한다는 것이다.그래야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해서,혹은 KTX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해서 공연장까지 도달할 수 있다.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일들은 만만치 않고 내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난 점심을 먹지 않고도 일을 끝마칠 수 없었고,결국 비행기를 타야 했다.(티켓을 누군가가 사 주지 않았다면 배 보다 배꼽이 더 클 뻔 했다)
비행기가 떠오르자,역시 여행은 아침에 시작해야 제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비일상적인 여행일수록 더 그렇다.오후 늦게 시작한 여행엔 분명한 핸디캡이 있다.우선 정신의 깨어남이랄까,혹은 두뇌의 워밍업이랄까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나) ㅡ 뭐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오후 여행에 있어서는 너무 오래 걸린다.지치고 피로하며 일상사가 머릿속을 이미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아침의 차가운 공기야말로 정신을 예열시키는 데에 아주 유리하다.그러나 어쩌는 수가 없다. 다 내 삶의 조건에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비행기 창 밖의 구름들을 쳐다보며,MP3에서 울려나오는 오아시스의 음악을 듣다가 (오에이시스라고는 하지 않겠다.그냥 내 발음대로 쓰겠다),비행기와 기차여행의 차이를 생각했다.'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전설적인 야구입문서를 쓴 미국의 스포츠 전문 대기자 레너드 코펫의 말이 떠올랐다.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취재하느라 언제나 여행에 시달렸던 그는,
- 기차는 굴러가는 호텔 같고,비행기는 하늘을 나는 버스 같다- 는 말을 남겼다.
맞다.비행기의 좁은 좌석 속에 안전벨트에 결박당한 채 구겨져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나기도 한다.비행기의 좌석은 승객을 수인으로 만든다.그러나 그런 영어의 몸이 유리한 점도 있다.책을 보는 데에,음악을 듣는 데에는 오히려 편하다는 것이다.비좁은 공간과 꼼짝 못하는 육체는 오히려 두뇌의 집중력을 강화시킨다.함께 결박당한 다른 승객들의 소음으로 인한 방해도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훨씬 작은 편이다.몰입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거기에 비해 레너드 코펫이 '굴러가는 호텔'이라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기차는,다른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시끄러운 사람,얘기하는 사람,부스럭거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비행기보다 많다.그러나 기차 자체의 소음들 만은 정겹고 익숙하다.창 밖으로 지나가는 그림들은 비행기의 그것들 보다 더 다양하다.변화무쌍하기까지 하다.
기차는 또한 근본적으로 열린 공간이다.승객들은 일정 부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동반자가 있음 더욱 좋다.기차의 단속적인 소음은 승객의 두뇌를 가볍게 두드려 머리를 깨어나게 하고 대화를 진솔하게 한다.시끄러운 훼방꾼들만 없다면 기차여행은 비행기여행보다 십만 배 정도 좋다.
- 지금도 무궁화호엔 약장수들이 중간에 등장해 약을 팔고 있을까? 12년 전엔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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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플랫폼과 기차역의 대합실은 그 미쟝센부터 다르다.비행기가 착륙하고 공항을 걸어나오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기차역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동선부터 차이가 있다.똑같이 기다리고 헤어지고 만나고 또 갖가지 감정이 교환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두 공간 사이엔 분명한 다름이 존재한다.
공항은 시골 역의 한적함,느슨한 역무원들의 동작,철로 주변에 심어진 코스모스들을 결코 흉내낼 수 없다.기차역의 대합실엔 노숙자들이 잠들 수 있어도,공항에선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소총을 든 공항경비요원들과 정복 차림의 직원들,폭탄 탐지용 셰퍼드들이 정결한 공항 내부를 돌아다닌다.칼날처럼 구획된 배타적인 구역들과 ,기계의 소음들을 방불케하는 어떤 소리들이 공항 내부의 공기들을 감싸고 있고,그 공기 안에 갇힌 방문객들은,어쩐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곧 어딘가로 부쳐질 수화물들 같아 보인다.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은 기차역 보다는 공항에 어울려 보인다.
그러나 그런 공항만 있는 건 아니다.한적한 소도시의 공항들은 기차 정거장의 그것 못지 않은 외로움으로 쌓여 있다.그런 공항 내부에 서있노라면,나는 이상스럽고 예기치 않은 배변 욕구에 시달리게 되는데,그 기묘한 신체 반응들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연유하는지,아직도 나는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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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지하철에서의 역할 놀이
내게 오아시스의 공연을 보여주겠노라며,티켓을 미리 예매하고 만날 날을 지정해 준 고마운 친구는,서울 시내 지하를 파리의 하수도처럼 누비고 있는 지하철 어딘가에서 나를 따라잡겠다고 했다.그는 내게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몇 시에 어떤 역을 지나치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마침내 그는 내가 타고 있는 열차에 올라탔다고 했으며,우리는 서로를 찾아서 무심하게 서 있는 전동차 안의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귀에 핸드폰을 대고,이상한 다급함을 지닌 채 나는 그를 찾아다녔다.
여기에 긴박감 만빵의 음악이 깔리고,또 내 발걸음과 심장박동이 세 배 쯤 빨라지고,갑작스런 액션 장면이 (액션 피겨가 아니라) 추가된다면,그것이 바로 <제이슨 본 시리즈>다..또 내가 찾고 다니는 사람이 9년 전 만나서 짧게 사랑을 나눈 후 헤어졌다가,신적인 우연에 의해 또다시 만날 가능성을 찾게 된 과거의 연인이라 가정한다면,그것은 또한 <비포 선셋>이 된다.(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웃었다)
이 잠깐 동안,어쩌면 넉넉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짧은 동안의 역할 놀이가 나를 여행 속으로 밀어넣었다.여행은 '탈주 불가능을 보장하는 탈주'다.모든 여행객들은 다시 자신의 보금자리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 자신의 여행짐을 싼다.그러나 짐을 싸는 순간이 여행의 시작은 아니다.비행기나 기차에 올라 타고,낯선 도시의 공항이나 여행지의 기차역 광장에 서 있다고 해서,그가 여행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둘러싼 존재의 갑옷,언제나 익숙해져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최소한 단 한 발짝만이라도 비켜서 있기 시작했을 때,비로소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그리고 그 안전한 탈주가 바로 여행의 이유다.4월 1일의 나에게 있어서 여행의 첫 발자국은,서울시의 겉껍데기 바로 밑을 웅웅거리며 달려가는 전동차 안에서 시작되었다.내 동행자를 찾아헤매는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그 순간 나는 <비포 선 셋>과 <제이슨 본 시리즈>를 떠올렸고,내 존재의 겉껍질에는 얼마 전 실금이 간 내 발목처럼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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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의자로 밀어넣었다.내 오른쪽 발목에 금이 갔다는 사실을 미리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내겐 발목뼈를 옆게 가로지른 골절선 따위는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또 그런 얘기까지 할 수는 없었다.(그에게 제이슨 본이나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 속에 나오는 역할을 맡길 수는 없었다)
4.술렁거림,떼창,그리고 공연 그리고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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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가 공연장에 도착한 건 공연이 시작되기 한 시간 쯤 전이었던 것 갔다.우리는 스탠딩석을 예매했지만 무대 바로 앞쪽에 서서 공연을 보는 것 만큼은 일찌감치 포기했다.그 터프한 상황을 견뎌낼 만큼의 체력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 만큼은 확실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좌석과 스탠딩석을 경계짓는 철제 울타리에 기대어 선 채,역시 우리처럼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두리번거렸다.바닥에 앉아서 묵묵하게 책을 읽는 사람,같이 온 친구와 명랑하게 수다를 떠는 사람,휴대폰을 한 쪽 귀에 댄 채 동행을 찾는 사람들이 불규칙하게 뒤섞여 있다.그 갖가지 모습들이 묘한 조화들을 만들어낸다.
공연 전의 공연장은 언제나 이렇게 이상한 술렁거림으로 가득 차 있다.이 술렁거림은 어느 특정한 순간을,즉 그들이 기대하는 록 밴드가 등장해서 그들의 마음을 빵하고 터뜨려주는 그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이런 긴장감이야말로 공연장 특유의 상징적인 분위기다.공기가 갑자기 가벼워지고 공연장의 천정이 갑작스럽게 풀썩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분위기..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 바꿔버리게 될 그 순간,불이 꺼지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또 하나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새빨간 점퍼를 입고,목깃을 잔뜩 올린 채,방아쇠가 당겨질 그 순간을 기다린다.나는 빨간 점이며 밴드가 나오고 불이 꺼지는 순간,그 빨간 빛은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
오아시스가 등장한다.등장 전의 오프닝 음악은 언제나 그렇듯 'fucking in the bushes (대통령 부시가 아니다)'이고,첫 연주곡은 그들의 이름을 가장 먼저 온 세계에 알렸던 'rock and roll star'이다.보통 같음 공연 후반부에 집어넣어졌을 레퍼토리인데도 맨 앞에 배치되었다.김태균을 1번타자로 기용한 변칙타순 같은 것,1회초에 선두타자 홈런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지속적으로 그들의 넘버들을 쉼없이 연주하기 시작한다.작년에 발표했던 앨범 'dig out your soul'에 수록된 곡들을 연주하다가,과거 90년대 대중문화를 선도했던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음악채널들을 장식했던 곡들로 바꿔 나간다.
사람들은 리암 갤러거의 보컬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그들의 노래를 sing along하기 시작해서,공연장은 사직야구장이나 동네 노래방 비슷한 어떤 장소로 변해 버린다.오아시스의 음악이 비교적 단순하고,보컬의 음역대가 일반인들의 음역대에 비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오아시스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특출한 보컬 실력이나 연주실력,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명적 음악성을 가지지도 않았고,강력한 록의 이념을 선도하지도 않았으며,오히려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1면을 계속 장식하는 기행과 독설,멤버간의 불화로 얼룩진 밴드 이력을 그토록이나 오랫동안 (무려 18년이다)이어왔으면서도,여전히 그들의 음악이 먹히는 이유는,바로 이 단순성,역설적인 용이함,신중하게 계산된 접근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창조적 친밀함 안에 있다.
오아시스가 일부 매니아들에게 폄하받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그러나 오아시스는 자신의 능력 바깥의 범위는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고,자신들의 적당한 단순성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오고 있다.이것은 꼭 오아시스 스스로가 대중의 입맛에 자신의 위상과 현실을 조절하고 영합해왔다는 뜻이 아니다.그들의 감성 어딘가가 90년대 이후 젊은 음악팬들의 감성에 정확하게 조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게도 오아시스는 베스트 밴드가 아니다.그러나 그들의 공연을 보아줄 가치 만큼은 충분하다.더구나 작년의 앨범 <dig out your soul>은 좀 더 진전된 프로젝트다.그들은 그 앨범에서,그동안 그들 내부에 쌓여진 내면의 일부를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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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본격적인 합창,즉 떼창이 계속되었다.노엘 갤러거가 어쿠스틱 기타 하나만을 들고 연주하던
don't look back in anger'는 노엘의 노래가 아니라 관객들의 노래였다.다음에 링크된 동영상을 보시라.
http://www.youtube.com/watch?v=pcWFREMJu6M
이 노래가 어떻게 오아시스의 노래인가.이 노래는 청중들의 것이다.
나는 importance of being idle과 wonderwall,그리고 champagne supernova를 기다렸다.내가 좋아하는 몇몇 노래가 공연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약간 서운했지만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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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언제나 그렇듯 점점 열기를 띄어 갔고 리암 갤러거는 f-word와 crazy를 연발하기 시작했지만,그에게서 예전의 과격함이나 터프함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리암은 어쩐지 수년간 어디선가 잔뜩 '놀고' 돌아와 개심한 탕자처럼,어딘가 맑아지고 씻겨진 인상이었다.나중에 그가 설사 증세로 시달렸다는 얘길 듣고 그러려니 했지만,목소리의 컨디션 역시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그는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약간 흥분해서,급기야 관중석으로 점핑을 시도하기까지 했다.(탬버린 갖고 노는 건 여전했다)
화이트 수트 차림의 노앨 갤러거에게선 묘한 노련함이 묻어나왔다.갬 아처와의 기타 듀오에서 약간의 컨디션 부조화와 엇박자가 났지만,그는 전체 밴드를 우아하게 조율해나갔다.그도 나도 나이를 먹은 것이다.
쉼없이 이어지던 떼창과 긴 앵콜이 끝나자 공연도 잦아들었다.어둠 속의 사람들,옆 사람에 전혀 개의치 않고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클럽에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춤을 추고 ,누군가가 약간의 자극이라도 가하면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는 에너지를 선보이던 수천 명의 관객들도 차례차례 그들의 여행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아직 몽환상태에서 깨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지하철을 점거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AmXdqJQ4MlA
록 콘서트의 분위기란 이런 것이다.무질서의 질서,찰라적인 결합,세포화된 단자들의 우연적인 융합,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에너지..
이것과 정반대되는 장소는 우선 병영이다.각잡고 잠든 병사들,일 미리의 오차나 오류도 허용치 않는 열병식,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이 근간이 된 조직 자체에서 나오는 동력들,그것과 금전이 연결될 때,바로 우리의 프로페셔널한 정부가 이끌어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엄혹한 옛시절의 강철대오 역시 록 콘서트의 분위기와는 다르다.촛불집회의 초창기가 오히려 오아시스의 공연장과 비슷했다.이 에너지는 언젠가 지하철을 점거하고 떼창지역을 선포하게 될 것이며,그런 연후에야 진정한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그리고 나는 떼창 쪽을 선호한다.
또한 저 지하철은,또는 오아시스 공연장의 풍경들은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들의 공연장과도 비교된다.소녀시대나 빅뱅의 공연장 말이다.그 콘서트장들은 오히려 국군의 날 퍼레이드와 더 비슷하다.소녀들의 손에 들린 색색깔의 풍선들은 병사들의 손이 움켜 쥔 총검이다.팬클럽의 일사불란한 구호들 역시 병영에 울려퍼지는 군가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 두 집단의 에너지는 변화를 위한 동력으로 치환되기 어렵다.군대의 에너지는 자유의 갈구라는 인간의 원천적인 심정과 배치되고,소녀 팬들의 환호는 상업성과 미디어의 지속적인 공세에 함몰되기 쉽다.그곳엔,록 콘서트의 공연장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개인의 위상이 없다.때로 그 개인들은 자신의 각성을 이루어내서 변화의 에너지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이돌 팬들과 병사들의 함성을 폄하해서는 안된다.그들은 일시적인 존재들이며,언제든 다른 존재로 변화할 수 있다.진짜 적들은 따로 있는 것이다.
또한 록 콘서트장에서의 장면들과 지하철 안에서의 장면들은 ,왜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이 록 음악을 혐오했는지를,왜 박정희의 하수인들이 신중현을 위시한 한국 록의 제대로 피어나보지도 못한 씨앗들을 그렇게도 확실히 짓밟아버렸는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해 준다.
반면 록에 연관된 여러 모습들이라는 것들이,숨통을 옥죄어오는 권력과 자본이 고의적으로 허용한,즉 공인된,그리고 허가된,따라서 체제 내의 해방구에 불과한 것이란 반론 역시 성립된다.충분히 일리가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개인적 자유에 기반한 목청과 몸짓은 여전히 선호되고 보존되어야 한다.최소한의 동력은 언제든 예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세월이 흐르면 모든 옥석은 다 가려지게 마련이며,어떤 것은 수면 밑으로 들어가 부활을 기다리게 될 것이고,어떤 것은 지폐로 교환된 후 쓰레기통 속으로 직행하게 될 것이며,또 어떤 것은 고전의 반열로 들어가 때로는 대중과 유리될 것이다.그리고 또 어떤 것은 우리 곁에 남아 우리가 숨을 내쉴 때마다 자신의 잔숨을 함께 쉬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선택의 자유는 있으나,인생은 굉장히 짧은 것이고,우리에겐 분명히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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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엔 전국 각 지방으로 출발하는 셔틀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었다.광주로 가는 버스엔 이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올라타서 공연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내는 오전 2시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한다.운이 좋으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아내를 배웅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아내는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광주에 도착한 것은 2시 5분경이었고,아내는 도착 5분전 인천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탔다.물론 비즈니스 목적의 떠남이지만,그녀에게도 이 여행이 의미있는 짧은 여행이 되길 마음 속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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