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예술도 시대의 영향을 완전히 비껴갈 수는 없다.
특히 움직이는 영상 속에 사람들이 등장해서 말하고 싸우는 모습이 그 배경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영화예술은,그 어느 시대를 다루더라도 그 시대의 일부분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밖에 없다.그리고 그 효과는 그 어떤 다른 예술쟝르보다도 더 강력하다.영화는 영화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시간의 풍경을 통해,그 시대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보여주고 ,관객은 그 정보가 거짓이든 참이든 영화에서 말해주는 풍경을 듣고 받아들이게 된다.
2008년의 어느 영화들 역시 시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전달한다.나는 몇 개의 영화를 얘기하며,2008년의 우리 영화가 어떤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지 얘기하고자 한다.
1.고고 70 - 고고와 70
흔히 박정희 시대라 불리는 70년대를 묘사한 영화가 있다.방법은 음악을 통해서이다.우리는 흔히 70년대의 우리나라 대중음악이,이미자나 나훈아로 대표되는 트로트와 양희은이나 김민기로 대표되는 저항적 포크음악만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그러나 아니다.다른 음악도 분명히 존재했다.특히 그 답답하고 엄혹한 시대에 소울(soul) 음악이 존재했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실제로 그 시대에 존재했던 소울 그룹 '데블즈'를 소재로 한 영화 <고고 70>은 이렇게 철저한 음악영화로 시작한다.조승우를 위시한 '음악을 할 줄 아는 ' 배우들이 등장해서 신나는 콘서트를 열어제끼는 것이다.거기다가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신중현의 아들들이 등장해서 '데블즈'의 라이벌 음악인들을 연기하고,콘서트를 제대로 잡아낼 줄 아는 카메라가 현장의 열기를 치열하게 잡아내고 있다.음악영화로도 수준급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1991년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 <커미트먼트 the commitments)>를 떠올렸다.아일랜드의 더블린이 무대인 그 영화는,아일랜드의 한맺힌 역사 때문에라도 우리나라의 지난 과거를 기억할 수 밖에 없었고 소울 밴드의 갖가지 에피소드와 공연 장면들 그리고 밴드 구성원 사이의 유치찬란하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근본적인 갈등들은 이 영화와 <고고70>이 공유하고 있는 특성들이었다.어떤 의미에서 서울과 더블린의 사람들 역시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느낌까지 가지게 되었었는데,두 도시 사람들 특유의 다혈질적인 성향들엔 그 도시가 가지는 일종의 근원적인 희망이 포함되어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 아일랜드의 밴드 멤버들이다.이들 중엔 올해 우리나라에서 히트한 음악영화 <원스>의 주인공 글랜 핸사드가 끼어 있다.어디 있는지 아시겠는가?
- 바로 이 사람이다.글렌 헨사드의 17년 전은 이렇게 풋풋했었다..(지금이 나은가?)
가끔 차에서 <커미트먼트>의 영화음악 사운드 트랙을 듣곤 하는데,당시 열 여섯 살이었다는 보컬리스트 앤드류 스트롱의 음색에는 그저 대단하단 느낌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지곤 한다.(유튜브 검색 하면 나온다..)
<고고 70>속에 나오는 많은 노래들 중에 'mustang sally' 같은 노래들은 <커미트먼트>에서 역시 불려지는데,똑같은 노래가 부르는 사람과 연주하는 밴드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나도 가끔 노래방에서 '머스탱 샐리'를 시도하는데,노래를 끝내면 내가 미쳤구나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ㅠ.ㅠ.
그러나 <고고 70>속의 어떤 다른 노래들은 ,결코 <커미트먼트>의 더블린 밴드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노래들이다.'proud merry' 같은 노래들이야 그들 역시 마음대로 부를 수 있겠지만,'그리운 건 너'나 '밤차'같은 노래들을 아일랜드의 청년들이 흉내낸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그것은 우리나라 소울 밴드들의 노래이기 때문이다.또한 <커미트먼트>속에 나오는 유럽인들의 소울적 상상력을 우리나라 소울 밴드들의 감성과 맞물려 생각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그것은 그들과 우리가 맞닥뜨린 삶의 풍경과 질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또다시 어떤 예술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공기를 호흡할 수 밖에 없다는 기본 명제를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고고 70>속의 밴드 '데블스'가 시대 자체와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들 또한 투사다.그들의 음악 자체가 시대에 불온한 공기를 전염시키고,그렇게 해서 '유신'으로 대표되는 완벽하게 숨막히는 밀폐된 공간 내부에 작은 환기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그 환기구로 불어드는 조그만 바람결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그들의,당시의 시대 분위기에 비교하여 결코 정제되지 않았던 몸짓과 '고고'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육체적 박진감은 '병영'이라는 한 마디 단어로 정의될 유신공화국에겐 충분한 위협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박정희의 문화 하수인들은 그점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장준하나 김대중을 죽이는 것 보다 ,데블스나 신중현을 문화의 뜰에서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음악인들은 퇴폐풍조를 조장하는 사회의 버러지로 몰렸고 무대와 마이크를 빼앗긴 채,뒷골목을 전전하고 골방에 틀어박혀야 했다.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영화는 그때의 살풍경을 외면하지 않는다.통행금지 이후의 해방구였던,데블스가 노래를 부르던 공연장 '니르바나'를 폐쇄하고 심지어 공연을 하고 있던 밴드와 관객들에게 최루탄을 던지는 장면까지 연출된다.70년대의 풍경들은 그 당시의 기록필름들 -예를 들어 '대한뉴스'- 을 통해 재현되고 ,대왕코너의 화재사건 같은 구체적인 사건들을 영화 속에 집어넣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연행되어 몽둥이로 얻어맞고 있는 '데블스'의 멤버들에게 대마초를 피우는 음악인들을 밀고하라는 강요가 이어지고,그들의 긴 머리는 가차없이 잘려나간다.
자유는 이렇게 흉칙하게 박제되어 유치장에 감금되고 예술인들은 초라하고 비루해져서 숨죽인 채 죽어지낸다.<고고 70>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외면하지 않고,그 풍경을 (그리 정밀하게 그리지는 않지만) 담담하게 묘사하여,'고고'가 표상하는 당시 젊은이들의 닫힌 현실과 '70'이 대표하는 당시의 지배자들의 대결에 대한 풍속화를 완성해낸다.
가끔 영화 속 여주인공 신민아의 존재가,어쩐지 시간을 넘나드는 듯 60년대부터 2000년대의 모습을 죄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눈에 거슬리고,우리나라 남성 영화감독들 특유의 여성 캐릭터에 대한 무의식적 오작동이 또다시 등장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그래도 영화가 진행될수록 신민아는 고고와 70 속으로 집중해간다.
2008년의 우리 사회의 풍경도 또 내일이면 시작될 2009년의 풍경 역시,'고고'와 '70'의 싸움이다.우리 사회가 이루어냈던 피의 민주화는 다름 아닌 '말할 수 있는 자유',그리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었다.사진 속 신민아처럼 배꼽을 드러내고 가슴을 흔들며 춤출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싸움이었고,머리가 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치장엘 들어가지 않기 위한 운동이었다.
언론관계악법이나 사이버모욕죄도 똑같은 선상에서 얘기할 수 있다.그 시절로,70년대의 바보같은 상황으로 돌아가기 위한,또는 돌아가지 않기 위한 작은 전쟁인 것이다.가끔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70년대로 돌아가더라도 개인의 기본적 자유 만큼은,노래할 수 있는 공간 만큼은 훼손시킬 수 없을 거라는 처절한 낙관을 피력하시는 분들을 만난다.그러나 자유란,언제나 억누르고 싶은 사람들과 언제나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의 전쟁으로 이루어진다.딱 그만큼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또 그 전투 사이에서 전리품을 얻어챙기는 사람들과 많은 것을 잃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 <고고 70>속의 그 시절 풍경들은 바로 그 점을 얘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2.님은 먼 곳에 - 수애는 왜.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님은 먼 곳에>는 베트남 전쟁에 우리나라가 군대를 파병했던 60년대 후반을 다룬다.이 영화 역시 전쟁의 모습을 어느 정도 제대로 그려냈고,그 당시에 있었을 만한 사건을 영상화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앞서 얘기한 <고고 70>처럼,음악이 영화에 주로 쓰인 소재이며,<고고 70>보다는 좀 못하지만 음악은 영화 안에 잘 녹아들어 있다.또 수애의 노래 솜씨는 평균 이상이며,많이 연습했던 것으로 보인다.특히 빨간 미니드레스를 입고 빗속에서 위문공연을 펼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올해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그러나 무언가 엇박자가,삐걱거림이 감지된다.그것도 가장 중요한 무언가로부터 어울리지 않는 균열음이 미세하게 소릴 지르고 있다.그것은 다름 아닌 주인공 수애다.수애는 도대체 왜 남편을 찾아 그 먼 곳까지 여행을 하는가? 그토록이나 절절하게 엄태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녀의 사랑에 대한 어떤 합리적인 정보 하나도 관객에게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하나 때문에 그렇게 먼 길을 떠난다고 말하려는 것은 일종의 강요이고 억지다.이 서사와 인물의 불균형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돌며 암호화된 의문처럼 관객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 나서서 '그럴 수도 있는 거지,무슨 그렇게 사소한 트집까지 잡아대는 거냐'고 핏대를 올린다면 특별히 대답할 말은 없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내부로부터 올라오는 의문에는 어쩌는 수가 없다.
다시 물어보자. 수애는 왜 그런 생고생을 마다하지 않는가? 머나먼 타국 땅,더구나 전장의 한복판,믿을 만한 구석이라고는 거의 하나도 보이지 않는 남자들 틈 사이에서 그녀는 왜 그렇게 자신만의 복잡한 전쟁을 치르는 것일까? ..
적어도 영화는, 주인공에 한해서만은 이런 의문에 대답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어떤 여성상이 이토록이나 험한 인생역정을 걸을 때엔,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랑 때문이라고? 수애와 엄태웅의 관계는 이렇다.
수애는 벌이라도 받는 아이처럼 엄태웅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도저히 사랑하는 사이 같지는 않다.
수애는 엄태웅이 자신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자신에게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않은 채,베트남으로 떠나버렸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깨닫고 있다.심지어 엄태웅은 수애에게,'니가 사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 알기나 아는 거냐'는 야유까지 던지고 있다.그렇다면 '사랑'은 아니다.
그녀가 그 시대의 여성상으로서,그래서 여필종부하는 심정으로 엄태웅을 쫓아갔다고도 가정해 볼 수 있다.그녀의 시어머니는 끝없이 그녀를 전근대적으로 압박하고 있고,그녀의 친정 식구들 조차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수애의 시어머니는 그녀의 면전에서 솟을대문을 닫아 걸고,이제 수애는 갈 곳이 없다.그래서 결국 베트남을 찾아가는 것이다..라고 더 심한 설명을 시도할 수도 있다.그러나 그것도 우습다.그녀는 당시의 유행가를 흥얼거리고 있고,위기가 닥쳐 오면 섹스를 이용하기도 하며,험악한 상황 속에서는 오히려 강인해지는 여자다.여필종부라니,당치도 않다.
오히려 그녀는 오기에 가득 차 있는 듯 보이며,어떤 인생의 우연 때문에 자신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한마디로 동떨어진 존재다.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기묘해보이기까지 한다.
갑작스레 뛰쳐나온 어떤 구원의 여신처럼,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찌질한 남성들을 구원하고 자신의 여성적 파워로 그들의 영혼을 씻겨 낸다.때로는 무대 위의 댄스와 열창을 통해,종내에는 한바탕 신나는 따귀 올려부치기(영화의 마지막에 신애는 거센 손바닥으로 엄태웅의 뺨을 통타한다)를 통해,결국 그녀는 이준익을 포함한 모든 남자에게 구원의 세례를 베푼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일종의 종교적인 것? 아님 구원의 여성성을 표현하기 위한 두 시간의 퍼포먼스?
자신의 시간을 뛰어넘어 건너온 미네르바?
이 모든 우연적인 불일치는 감독 이준익의 책임이다.그는 아마,빗나간 아이 같은 남자들이 벌였던 전쟁 한가운데에 수애라는 성모마리아적 캐릭터 하나를 던져 넣어 그들의 야비한 심정 전체를 씻겨내려고 했던 것 같다.그러나 그런 폭탄투척작업이 성공하려면 언제나 앞과 뒤를 맞추어야 하며 전략적으로 영화를 구성해야 한다.그는 수애를 덜 고민했다.좀 더 사려 깊었어야 했다.세상 모든 여자들을 모두 다 천사라고 생각하는 이런 태도는 대단히 비현실적이고,어쩌다가 사람이 비뚤어지기라도 하면 비열한 팜므 파탈을 창조하는 지경에까지 나아가 버린다.우리나라 텔레비젼 드라마가 처한 위치와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다.
물론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상관없다면 또 별 문제겠지만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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