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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없다.<다크 나이트> PART2

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by 폴사이먼 2008. 8. 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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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배트맨과 조커- 이상한 커플

 

배트맨과 조커는 심하게 이상한 커플이다.영화 내내 배트맨과 조커는 서로 주적관계를 형성하고 대치하지만,실제의 증오가 서로를 향하고 있는 지는 불분명하다.배트맨의 기본적 목표는 물론 고담시를 지켜내는 것이지만,그의 또다른 목표는 하비 덴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은퇴하는 것이다.순전히 배트맨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처음에 조커는 그저 단순하지만 강력한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더 큰 목표가 있기에,배트맨은 영화가 거의 중반에 다다르고 있을 때까지도 조커의 존재를 그렇게 심하게 의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트맨이 조커에게 화를 내는 것은 하비 덴트와 레이첼이 납치당한 이후이다.자신의 목표가 훼손된 다음에야 배트맨은 조커를 증오하게 되고 그에게 육체적인 폭력을 행사한다.(물론 그런 배트맨을 조커는 거의 가지고 논다)

 

 그렇다고 배트맨이 조커를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숱한 시민들의 자동차를 부수고 그로 인한 수많은 부상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배트맨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어찌 보면 희한한 자신의 원칙에 따라 조커를 죽이지 못한다.배트맨의 분노라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향하고 있다는 건가?

 

조커가 배트맨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가관이다.조커의 진정한 목표는 혼돈과 파괴,거의 광대한 무의 창조이지만,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꼭 제거해야 할 라이벌인 배트맨을 그는 정식 라이벌로 인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사실 조커는 배트맨을 거의 두려워하지 않는다.그는 능숙하게 매번 배트맨과의 심리전에서 승리하고 배트맨을 궁지로 몰아넣는다.그러나 역시 조커도 배트맨을 완전히 죽이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어쩐지 자신의 존재 양상을 위해서 배트맨을 몹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조커는 배트맨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자신과 같은 무대에 서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그는 세상을 향한 모든 제안과 협박을 배트맨에게 연관시키는데,그러면서도 영화 중간에 배트맨의 정체를 폭로하겠다는 브루스 웨인의 회계사의 입을 막아버리려고 하는 것으로 볼 때,조커는 배트맨을 배트맨의 원존재  ,그 자체로만 필요로 하고 있다.(조커는 약간 스토커다.)

 

조커는 배트맨을 자신과 똑같은 변종 (freak)이며 아웃사이더로 본다.그는 자신이 정상/비정상 이라는 근대 특유의 카테고리에 의한 구분으로 볼 때는 배트맨과 같은 개체라며 마치 악마처럼 그들의 연합을 호소한다.영화적으로는 많이 강조되지 않은 이 부분을 우리는 거의 프로이트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조커의 숱한 거짓말 경력으로 볼 때는 이런 해석에도 신뢰를 부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존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영원히 엇갈려 있다.배트맨은 영원히 조커의 제안을 거부할 것이며,관계망 자체를 형성하길 꺼려 하는 조커의 제안 역시 거짓말과 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을 뿐이다.따라서 둘 사이의 모든 관계와 시선들은 영원히 허공을 맴도는 블랙 홀 같은 것이 될 것이며,어떤 의미에서 이 이상한 커플들 사이에는 진검승부마저 허용되지 않는 복잡한 미로만이 존재할 뿐이다.이것이야말로 혼돈이다..

 

6.다른 캐릭터들- 향연

 

<다크 나이트>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은 배트맨과 조커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에도 만만치 않은 공력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간단하게라도 짚고 넘어가 보자.

 

먼저,전형적 훈남의 비극적 타락을 그려내는 투페이스 하비 덴트가 있다.용감하고 결단력 있고 미남에다 정치력을 겸비하고 있고 언론까지 이용할 줄 아는 그가 투페이스로 변해버리는 데에는,물론 조커의 계략도 있었지만,모범생의 한계라는 하비 덴트 본인의 성향도 한 몫 한다.(재수없고 뜬금없게도 갑자기 김문수를 위시한 몇몇 변절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주특기 동전던지기가 그런 성향을 어느 정도 대변해 준다.그의 의사결정구조는 오직 하나 아니면 둘이었던 것이다.단색의 인간에서 양면의 인간으로 그는 변해간다.그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사이에 무수한 다른 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물론 배트맨과 조커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다음,레이첼 도스.

 

배트맨과 하비 덴트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검사.아내는 레이첼 역을 맡은 매기 질렌할이 너무 매력이 없다고 말했었다.뭐라고 대꾸하지는 않았지만,나는 그 의견엔 정면으로 반대였다.물론 '매력이 없다'와 '역할에 적합하다'가 동의어는 아니지만,매력이 없기 때문에 여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말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게다가 난 매기 질렌할이 의외로 섹시한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아내가 말하듯 매력없는 배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더구나 레이첼로서의 질렌할은 정말 섬세한 연기를 펼쳤다.아내는 취조실에서의 그녀가,조커에게 맞서던 그녀가 '검사 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지만,나는 모든 여검사가 제이미 리 커티스라는 것은 말이 안되고,모든 여배우가 틸다 스윈튼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오히려 애절한 눈빛 연기를 펼치는 매기 질렌할 쪽이 <배트맨 비긴스>의 케이티 홈즈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물론 케이티를 폄하하겠다는 말은 아니다.다만 언제까지 바비인형처럼 생긴 여배우가 나와야 만족할 것인지 오히려 내가 궁금해지고 있다.바비인형은 이제 거리에도 인터넷에도 쌔고 치인다.적어도 스크린에서는 섬세하고 내밀한 감정을 전달할 줄 아는 여배우들이 보고 싶은 것이다.(아,신나는 아내에 대한 뒷담화..)

 

매기 질렌할이 그런 배우다.두 남자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한 남자를 선택하고 (브루스 웨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알프레드에게 전달하는 순간의 그녀를 보라) 비극적인 폭발사고를 당하는 역을 연기하는 매기 질렌할은 평균 이상의 능력을 보여 준다.

 

그리고 세 명의 명배우들을 패키지로 선사하는 세 개의 배역.

고든 경위,알프레드,폭스 사장 역의 게리 올드만,마이클 케인,모건 프리먼..

호화판 선물 세트다.

 

게리 올드만이야말로 정말 다양한 경력의 형사다.<레옹>에서의 부패한 사이코 형사를 거쳐서 <로미오 이즈 블리딩>의 부정과 고민의 한가운데에 놓인 형사,그리고 이 영화 <다크 나이트>의 노련하고 책임감 있는 형사에 이르기까지,형사 역할의 프로필만 가지고서도 우리는 그의 바이오그래피를 만들 수 있다.

 

배트맨의 점쟎으면서도 단호한,유머러스하면서도 강단 있는 집사인 알프레드 역할의 마이클 케인은 1933년에 태어났다.우리 나이로 76세.대단한 노익장이다.케인 역시 그의 50년이 넘는 영화 인생 속에서 카멜레온 이상의 변신술을 보여주어 왔다.

 

예를 들어 주드 로 주연의 2004년 영화 <알피>의 오리지널 영화인 1966년 영화 <알피>에서의 마이클 케인과

 

브라이언 드 팔마의 1984년 미스테리 <드레스드 투 킬>에서의 양성인격 사이코패스인 정신과 의사인 마이클 케인은 동일 인물이다.

 

 

 

그는 수준 높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번갈아 넘나들며 복잡한 필모그래피를 형성해왔는데,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마이클 케인은 1982년의 <데스 트랩>이라는 영화에서의 케인이었다.

 

 

이 영화에서 마이클 케인은 동성애자,살인자,실패한 극작가를 한꺼번에 연기한다.그의 게이 파트너를 연기했던 사람은 <수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였다.겁나는 영화였다...

 

7.기사는 이제 없다.<911,흑기사 그리고 미국>

 

그 마이클 케인은 어떤 인터뷰에서 <다크 나이트>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그 영화를 정의했다.

- 슈퍼맨이 미국이 바라보는 미국 자신의 모습이라면,다크 나이트 속에서의 배트맨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에서

   바라보는 미국이다.

 

이 이야기는 다분히 미국을 '어둠의 기사'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말이다.미국은 스스로 세계경찰을 자처하면서 지구곳곳에 미국의 가치관을 심기 위해 전쟁을 포함한 모든 수단 -예를 들어 경제제재,쿠데타 도와 주기,각종 음모 등등- 을 동원하고 있으나,미국을 제외한 다른 세계에서 바라볼 때엔,그들은 오직 '다크 나이트(dark knight) 배트맨 식의,치외법권적인 그리고 안하무인에 다분히 폭력적인 수퍼히어로 노릇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일 것이다.따라서 미국-배트맨-다크 나이트 는,그 무소불위하고 전지전능한 힘의 행사를,누가 그 역할을 맡게 될 지도 모르는 하비 덴트-화이트 나이트 에게 이양해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것은 물론 미국의 힘의 행사에 대한 가장 온건한 주장이 될 것이고,대안과 실행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영화적이고 환상적인 발언이다.또한 이런 얘기는 결국 크리스 놀런이 그려낸 미국에 관한 우화 -만약 그가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분명히' 미국을 고려했다면- 에 대한 보충주장 중 하나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다.뭐 여러 반론이 있겠지만 그만 하련다.911의 공포와 이라크의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까지를 기억하며 그냥 넘어가자.

 

그러나 한 영화를 바라보는 모든 이의 시각이 다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미국의 보수진영은 공공연히,전세계의 테러리스트들과 맞서 싸우면서도,진보세력에 의해서 갖가지 비난을 받고 있는 조지 부시와 네오콘을,시민들의 질타와 경원을 받으면서도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어둠의 기사 배트맨과 동일시하기도 한다.또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와 전혀 반대되는 시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뭐,이런 황당한 흐름은 아마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어청수는 자신을 이명박의 '다크 나이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최시중은 한국의 언론을 고담시의 부패한 경찰들로,정연주를 조커로 상정했는 지도 모른다.정형근은 분명히 자신을 '음지에서 일하는 정의의 사나이'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리고 이런 식의 수많은 '다찌마와 정'들이 이곳저곳에서 무한히 얼굴을 들이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더 있다.이들이 자신을 '다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어청수는 자신을 하비 덴트로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입 있는 사람들 모두가 소리지르는 인터넷 공간을 보라.더 심각하다.앞뒤도 안 맞는 주장을 매양 날려대는 그 수많은 돈키호테들을 보라.그들의 팔뚝에 곱게 동여매어진 완장에는 수많은 종류의 문자들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다.종교와 언론과 자유와 학교가 그들의 기사 문장을 대변하고 있다.

 

어쩌면 '기사의 시대'는 가버렸다.그것도 아주 급격하게 태풍에 날려가버린 듯 사라졌다.과거의 영광스러웠던 기사들의 이름은 오명으로 가득 찼고,새로 나타난 난쟁이 기사들이 귀후비개처럼 생긴 창을 들고 사회의 백기사를 자처한다.진짜 흑기사들은 그 뒤에 숨어서 자본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비밀의 무기들을 갈고 있고 말이다.

 

그 어떤 영화도 자신이 속한 사회의 영향을 비껴가지 못하며,그 어떤 영화,심지어 인어공주 같은 애니메이션 조차도 그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특히 영화는 그 자체로 산업이며,돈이 많이 드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최근 수퍼히어로 영화의 느와르 필름적 성격,최근 영화들의 선악경계의 불분명함은 현실의 불안을 대변한다.불안은 혼란을 유발하며 경계를 없애버린다.

 

몇십 년 전의 형사들과 건맨들은 정의로 똘똘 뭉쳤었다.그러나 지금은,부패한 형사들과 인간적 조폭들이 쌍둥이처럼 주먹을 날린다.좋은 놈과 나쁜 놈은 이상한 놈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어야 화면으로 완성되고,그럼에도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정확히 알아채기가 힘들어졌고 모두 다 이상한 놈처럼 보이기만 한다.강철중은 오히려 이례적인 캐릭터처럼 보여서 어필하지만,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강철중 뒤에 숨어서 양심의 집행유예를 스스로 선고한다.다찌마와 리는 유머와 구식이라는 코드를 빼면 존재 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불안' 때문에 공정택과 한나라당에게 표를 던지고,저녁엔 삼성과 이명박을 욕한다.또 그러면서 자식들을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학벌사회의 폐해를 스스로 경험하고 또 비난하면서 말이다.

 

결국,현재 우리의 '나이트'는 없다.수퍼히어로적인 나이트는 더더구나 없다.배트맨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며,미국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기사가 아니다.현실의 핑게이고 반영이고 꿈일 뿐이다.

 

그러나 또한 나이트는 있다.있어야 한다.그것은 흑과 백으로 완전히 갈리워지는 문제가 아니다.하비 덴트처럼 말이다.또한 다중의 동의에 좌우되어져야 할 문제도 아니다.(영화 속 서로의 폭파장치를 누를 수 있는 두 척의 배를 보라)

 

용감함과 예의바름을 덕목으로 하는 기사도는,아마 그 시선의 방향 속에 존재할 것이다.배트맨이 어쩔 수 없는 '다크 나이트'가 되었던 이유는,그의 시선이 그의 펜트하우스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그는 펜트 하우스의 통유리창에서 고담시를 조망한다.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부패와 사회악과 갱들을 발견한다.그리고 배트맨의 옷을 갈아 입는 것이다.

 

진정한 기사의 눈은 펜트하우스에서 출발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면서도 더 아래를 바라볼 것이다.또한 그 기사는 허명과 권력과 자본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또한 하비 덴트처럼 흑백양면만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다시 한 번 히스 레저의 명복을 빈다.좋아하는 배우였었다..

출처를 찾을 수 없어서 몹시 죄송한 그의 딸의 모습이다.아빠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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