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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의 미로.<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06. 12. 11.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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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토요일 밤의 데이트

2주일에 한번씩,아이를 장모님께 맡겨놓고 나와 아내는 토요일의 심야 데이트를 즐긴다.한 달에 두번씩 돌아오는 그 날을 우린 꽤 좋아하고 신경을 쓴다.대개 아내의 일이 너무 늦게 끝나기 때문에 밤 아홉 시가 넘어서야 시작되는 그 격주의 토요일은,사실 우리 사이에 굉장히 중요하다.조금은 비일상적이고 조금은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날인 것이다.그러나 지난 토요일은 그렇지 못했다.아내의 일이 너무나 늦게 끝나서 데이트 시작 시각 자체가 너무 늦어버리게 된 때문이다.나는 하릴없이 아내의 일터 건너편 까페에 앉아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고 있어야 했다.( 저번에 이 소설이 원안이 된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썼었는데,거기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까페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11시가 넘어있었기 때문에,우린 특별한 스케쥴을 잡지 못하게 되었다.그래서 우린 일단 극장으로 달려가 심야 영화를 보기로 했다..

10분 후,아내와 난 극장 매표구 앞에서 두리번거리면서,무슨 영화를 봐야 할지 궁리하고 있었다.난 <디파티드>가 보고 싶다면서,그 영화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다고 하소연했지만,아내는 <디파티드>의 줄거리를 내게 듣고 나자, 오래간만에 데이트랍시고 나왔는데 그런 스토리는 너무 우울하고 우중충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리메이크를 뭐하러 보느냐고까지 어깃장을 놓았다.

딴은 그랬다.아내 말엔 충분히 옳은 면이 있었다.나 역시조금은 유쾌하고 산뜻한 영화가 보고 싶기도 했다.그래서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어떻겠느냐고 물었다.어떤 영화냐고 묻는
아내에게,난 이 영화가 아마 <나니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 영화 같다고 대답했다.아내는 그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했다.우리나라의 아주 평균적인 관객인 아내는 답답하고 짓눌린 듯한 분위기의 소위 예술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필요 이상의 폭력이나 잔인한 묘사가 나오는 영화를 혐오했다.

아내는 말하곤 했다.

현실 자체가 충분히 잔인하다,삶 자체가 충분히 폭력적이다..우린 휴식과 즐거움을 위해서 극장으로 달려가는 것이지,현실의 복사판을 대하며 고문 당하기 위해서 극장의 좁은 의자에 쑤셔박혀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라고..뭐,맞는 말이다.아내가 싫어할 만한 영화는 언제든지 나 혼자 극장에 가서 볼 수 있다
물론 아내 역시 내가 싫어할 만한 영화는 언제든지 친구들과 극장에 가서 보고 온다...

그래서 우린 <판의 미로>가 상영되는 극장으로 들어갔다.아주 밤 늦은 시간인데도 가족 단위로 들어온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소녀들이 스크린 앞을 왔다갔다 했다.

2.스페인어가 뜨다.

스페인어가 떴다.미국 영화가 아닌가 보다.그러려니 했다.감독 이름이 눈에 익다.길예르모 델 토로? <헬 보이>와 <블레이드 2>의 감독? 멕시코 사람인데? 이 사람,이제 어린이용 팬터지 영화도 만드나? 그의 이름을 읽으며 난 약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하긴 헐리웃에 진출한 멕시코 감독들,꽤 있다..<구름위의 산책>이나 <달콤쌉싸름한 쵸컬릿>을 만든 알폰소 아라우도 멕시코 출신이다.터질듯 섹시한 여배우 셀마 하이엑도 이쪽 출신일 것이다.그러고보니,그녀는 자기 나라의 불세출의 예술가 <프리다>를 연기했었다..

옆자리에 앉은 젊은 데이트족이 연방 부시럭거린다.두 사람에게서 통닭냄새와 술냄새가 풍겨온다..남자는 이 시간에 극장에 앉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약간 불만이 있는가 보다.은근히 투덜대고 있다.으흐흐,,사실 여기 보단 다른 곳에 가고 싶었던 모양이군...웃음이 나왔다..

영화는 팬터지스럽게 시작한다.숲 속 오솔길을 달리는 자동차와,그 안에 곱게 앉아 동화책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맑은 눈빛의 소녀,아이를 출산하기 직전인 소녀의 엄마..숲속에서 마주친 요정이나 정령처럼 보이는 벌레..( 생긴 게 잠자리 같기도 하고 사마귀 같기도 하다) 한바탕의 모험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숲이 이상하다.헐리웃 특유의 아름답게 포장되고,환상적이고 심각한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호기심 넘치는 숲이 아니다.금방이라도 늠름한 왕자들과 용감한 기사들,그리고 그들을 도와줄 착한 동물들과 천사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숲이 아니다.이 숲은 너무나 평범하다.뒷산의 숲 같다.게다가 약간은 음침하기까지 하다.이 숲은 디즈니의 숲 보다는 송일곤의 <거미숲>에 나왔던 숲이나,<블레어 위치>의 공포스런 숲과 닮아있다.

소녀와 엄마가 도착한 곳은 군대의 캠프처럼 보인다.한눈에 보아도 잔인스레 보이는 계부가 그들을 맞이한다.스페인 내전 상황이다.난 가방속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생각난다.이래저래 올 겨울은 스페인 내전과 자주 맞닥뜨린다고 난 생각한다.뭐,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비정한 아빠가 등장하는 것도 동화적인 스토리의 일부분일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한다.아내가 속삭인다.

- 저 여자,아무래도 재혼 잘 못한 것 같은데..

3.스페인의 여배우들,그리고 또다시 스페인 내전

이 영화가 <나니아연대기>와 비슷할 거란 환상은 정말 금방도 깨어졌다.오필리아의 아빠가 애꿎은 농민들을 게릴라들의 협력자로 착각하고는 머리에 총을 쏘아버리는 즉결처분을 집행하자마자,난 깜짝 놀라고 잔인한 장면을 싫어하는 아내는 질끈 눈을 감아버린다.

모하는 거야,모하는 거야..애들 보는 영화에서..나는 놀라며 그제서야 뭔가 약간 속았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이 때,소녀 아빠 집 저택의 가정부인 메르세데스라는 하녀가 등장한다.난 그녀를 금방 알아본다.마리벨 베르두..

 

 



난 아내에게 속삭인다.

- 저 여자,옛날엔 꽤 섹시하게 나왔었어.

갑자기 잔인한 장면이 나온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변명일 것이다.아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 별로 안 좋게 늙었는걸?

동의할 수는 없지만 잠자코 있기로 한다.아내는 내가 말한 '옛날'을 '아주 옛날'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은 내가 아직 학교에 다니던 1992년이다.언젠가 ,내가 좋아했던 여배우들에 대하여 포스팅한 적이 있었는데,그 때 두번째로 좋아했던 여배우로 지목된 빅토리아 아브릴이 출연했던 <아만테스>라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난 마리벨 베르두를 보았었다.

 

그 영화에서,마리벨 베르두는 팜므 파탈인 빅토리아 아브릴에게 자신의 연인을 빼앗기고 끝내 살해당하기 까지 하는 순박하지만 섹시한 매력이 있는 하층계급의 처녀로 출연했었다. 최근에 그녀를 본 것은 <이투마마>에서 였다.그러고 보니 <이 투 마마>역시 멕시코 감독의 영화이다.아무래도 멕시코와 스페인은 영화적인 친척인지도 모르겠다.하긴 스페인의 루이스 브뉴엘은 한 때 자국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멕시코에서 영화를 만들었었다.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 출신이다..

 

갑자기 스페인의 여배우들이 떠올랐다.내가 맨 처음으로 보았던 스페인 영화와 스페인 여배우는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과 '마리 솔'이다.

 

 

 

이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면,당신은 아주 오래된 영화팬일 것이다.텔레비젼으로 보았는지 극장에서 보았는지 분명하지 않지만,난 아주 어린 시절의 이 뮤지컬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소공녀와 캔디,그리고 빨간머리 앤을 섞어놓은 듯한 이 영화에서,먼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던 마리솔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물가물하다..그러나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는 청각적인 기억보다는 보다 복합적인 기억의 층위에서 내 두뇌 속에 아로새겨져 있는 듯 하다..

 

그러고보니 오필리아의 엄마로 나오는 여배우도 기억이 났다.(이름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검색한 후 알아냈지만) 아리아드나 길..내가 그 여배우를 본 것 역시 <아만테스>를 보았던 그 시절이다.그때는 굉장히 샤프하고 세련된 여성을 연기했었다.<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 역시 스페인 영화이다.지금은 세계적으로 스타가 되어버린 페넬로페 크루즈가 청순하게 등장했던 영화이다.

 

 

한 남자를 다같이 사랑했던 네 자매를 다룬 로맨틱하고 발랄하며 유쾌상쾌한 코미디다.거기서 나왔던 막내 동생이 바로 페넬로페 크루즈다.사랑의 승리자답게 포스터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그 위로 네 자매가 다 보이는데,독립적이고 똑똑한 현대여성인 둘째언니를 연기했던 배우가 바로 오늘의 오필리아 엄마 아리아드나 길이다.그리고 섹시한 셋째 언니가 바로 <판의 미로>에 나오는 마리벨 베르두이고 말이다.행복하게도(?) 이 네 자매의 구애를 한꺼번에 받아챙기는 남자역인 호르헤 산즈는 마리벨 베르두를 살해하는 비정한 연인 역으로 <아만테스>에서도 나왔었다.기억이 뒤죽박죽 되어있는지도 모르지만,아마 맞을 것이다.찾아보자.

 

 

맞는 것 같다.검은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지금은 도대체 눈에 띄질 않고 있는 빅토리아 아브릴이고,왼쪽 하단에 호르헤 산즈에게 키스를 퍼부으려 하는 여자가 바로 마리벨 베르두이다.이 영화들,엄청 재밌다.한 번 찾아보시라.

 

그런데,지금 생각해보니 십 몇 년이 지난 지금,이 여배우들 - 마리벨 베르두와 아리아드나 길- 은 그때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라보인다.섹시한 여인이었던 마리벨 베르두는 노련하고 뭔가 숙명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스페인의 여전사로 변해 있고,이지적이고 날카로웠던 도회풍의 여인이었던 아리아드나 길은 모성애에 가득찬 엄마로 변신해있다.또 <아름다운 시절>에서 순수함 그 자체였던 페넬로페 크루즈는 최근 영화 <밴디다스>에서는 강도와 여전사로 변해 있다.

 

하긴 스페인 여배우들은 언제나 변신한다.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야성의 처녀에서 더 이상 잔혹할래야 잔혹할 수 없는 사이코 킬러에 이르기까지,그들은 이미지 변신을 전혀 사양하지 않는다.그것은 그들이 일부러,예를 들어 연기폭을 넓히기 위해 그렇게 한다기 보다는,스페인 여배우들 자체가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미지를 생래적으로 타고 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나는 추측한다.그들은 내부에 여러가지 스펙트럼의 이미지들을 죄다 구비해 놓고 있는 것이다.(물론 내 과장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심지어 오늘의 아역배우 오펠리아 역의 이바나 바쿠에로 역시 그렇다.이 아이는 반은 아이이고 반은 어른이다.이바나의 눈매는 다코다 패닝과는 너무 다르다.오필리아가 고통에 잠길때,그녀는 서른 살도 더 먹은 어른의 눈매를 한다.오필리아는 단순한 팬터지 영화의 공주와는 거리가 멀다.그녀는 그녀 앞에 놓인 고통스런 현실,스페인 내전과 계부의 학대, 엄마의 위기와 더불어,그녀가 꼭 극복해야 하는 판타지 속에서의 미션조차 이겨내야 한다.이 미션은 하나도 신나지 않고 하나도 신비롭지 않다.오히려 고통스런 쪽에 속한다.지상의 현실에 심각한 고통이 존재한다면,땅 밑 판타지 세계에선 약간의 위로나 환상이 존재해서 아이의 마음을 보상해주어야 할텐데,이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고 오필리아는 어쩔 수 없이 미션을 수행해나가야 하는 고행자처럼 보인다.관객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그녀를 도와주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요정 판이나 잠자리처럼 작은 요정들 역시,도무지 확실히 그녀의 편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 같다.어떤 땐 그들 역시,불쌍한 오필리아에게 무지막지하게 부당한 임무를 강요하는 악당들처럼 보이기까지 한다.오필리아에겐 조금의 여유도,약간의 행복감을 맛 볼 시간도 없다.그녀는 현실과 환상이 부과한 임무 사이에 끼여 압살당하는 느낌을 준다.

 

스페인 여배우 특유의 다층적인 에너지가 아니었더라면 어린 여배우가 이런 역을 감당하기는 좀 힘들었지 않나 싶다.여러가지 색감의 눈동자와 고통스런 눈매를 소유한 이바나 바쿠에로라는 이 12세 소녀가 아니었더라면,오필리아는 형편없이 허구적인 공주 캐릭터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따라서 이 소녀는 길고 긴 스페인 여배우의 계보 위에 서 있는 것이다.

 

 

4.스페인 내전

 

영화는 지상의 스페인 내전과 지하의 오필리아의 미션을 번갈아 보여준다.이 두 가지 세계의 비중이 적절하지만 독립적으로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오필리아가 상대하는 괴물들은 유니크하고 기발하지만 영화의 전체는 아니다.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오필리아의 괴물들이 파시스트들을 닮아있지 않느냐,하는 문제가 떠오르는데,그것에 대한 대답을 난 아직 자신할 수 없다.

 

한편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는 판타지에 집착하여 당시의 현실을 왜곡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분명히 말하지만 이 영화의 절반은 스페인 내전이다.당시의 보수적인 종교지도자들과 지주들,그리고 프랑코 지휘하의 파시스트들이 연합한 정부군과,농민들 노동자들 양심적 지식인들이 연대한 반파시스트 진영과의 싸움을 그는 정확하게 지적하고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판타지 영화인줄 알고 들어온 관객 입장은 다르다.의외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12세입장가 영화인줄 알고 들어왔는데,난데없이 성인용 영화를 보게 된 것과 진배없다.아내가 이야기한다.

 

- 어쩐지 영화가 따로 노는 것 같아.재미있지만 말이야.

맞는 말이다.영화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다...

 

으음..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까봐,여기서 끊는다.이 영화는 정말 수작이다.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동화적 세계안에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섞어놓았다고나 할까,그러면서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장인의 솜씨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게르니카..스페인 내전 당시 나찌가 폭격했던 스페인 마을의 이름이다.피카소는 그 어처구니 없는 학살에 항의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5.마케팅의 미로

 

우리는 극장을 걸어나오며,극장 안에 있던 어린아이들을 걱정했다.너무나 잔인한 장면들이 끼어있었던 탓이다.면도칼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을 고문하고 머리에 대고 총을 쏘았다.심하다..우리나라에선 15세 등급을 받았다는데,그것도 세다.

 

집에 와서 생각했다.

- 누구의 잘못인가?

 

영화에 대한 아무런 기초상식도 없이 무작정 영화를 고른 관객의 책임일까? 제대로 된 포스터를 우린 오독하고 말았던 것일까? 스페인 내전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의 잘못인 것일까? 그러나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챙길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를 보기 세 시간 전엔 무조건 인터넷을 검색하고 영화잡지를 뒤적거려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렇게 억울한 기분이 든다는 것은,진수성찬을 먹고 난 후 장염에 걸리는 일처럼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난 인터넷으로 이 영화의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영화의 포스터가 뜬다.

 

 

역시 판타지 영화처럼 보인다.이 포스터 어디에서도 스페인 내전의 참상이나 잔혹함에 대한 힌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홈페이지엔 이렇게 써 있다.

 

- 올 겨울 당신을 신비로운 세계로 초대할 웰메이드 판타지 대작.반지의 제왕,나니아 연대기

  해리포터 시리즈를 잇는...블라블라블라..

 

약간 짜증이 난다.홈페이지 왼쪽 상단엔 미로퍼즐게임을 알아맞추면 추첨해서 선물을 나눠준다는 광고가 떠 있다.여기 저기 뒤져보아도 영화의 잔인함에 대해선 일말의 설명도 없다.짜증이 확 난다.수입사와 배급사의 이름을 기억해 둘려고 하다가,영화의 진짜 홈페이지는 어떨까 싶어서 야후 USA 로 들어간다.

 

그 홈페이지도 시작은 똑같다.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미국 쪽 홈페이지는 이 영화가 분명히 스페인 내전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으며,R등급을 받은 영화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것이다.

 

한국쪽의 홈페이지가 지하왕국의 공주가 인간세계로 떠나고,,요정은 오필리아를 미로로 인도하고,세 가지 미션을 풀어야 전설이 깨어난다,어쩐다 하면서 영화의 동화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반해서,

미국 쪽은, 스페인 전쟁을 설명하고 길예르모 델 토로의 전작 <악마의 등뼈> - 이 영화 역시 스페인 내전 시기에 잔혹한 피해를 당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 와의 연관성을 얘기하고 있다.아주 자세히 스토리를 설명하고 있다.

 

캐스팅을 설명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우리나라 쪽에선 겨우 오필리아 역의 이바나 바쿠에로와 요정 판 역의 더그 존스,그리고 길예르모 델 토로에 대한 반 쪽 자리 설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미국 쪽은 아버지 비달 대위 역의 세르지 로페즈와 마리벨 베르두가 먼저 설명이 되고,그 다음에야 오필리아 역의 배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그리고 아드리아나 길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왜 감독이 스페인 내전을 이렇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유럽 쪽의 동화가 가지고 있는 의외의 새도매저키스틱한 면까지를 감독은 직접 얘기하고 있는데,그제서야 난 요정 판이 왜 그처럼 내게 친숙하지 않았던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판의 모습은 오필리아를 도와주는 서포터라기 보다는 그녀를 자꾸만 채근하고 괴롭히는 못된 선생님같은 존재로 내겐 느껴졌었다.

 

머,그렇게 화가 나진 않는다.우리나라 홈페이지는 처음부터 영화의 절반만을 - 오필리아의 지하세계에서의 모험만을 - 얘기하려고 기획된 '마케팅용 전단지'였다.잘 만들어진 찌라시일 뿐이다.우리는 그 찌라시를 보고,그 화려한 색감을 본 후 ,익숙한 환상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 극장엘 들어왔다가 의외의 쓴 맛을 보고 항의 한 번 못해 보고 극장 안을 쫓기듯 나와 버린 것이었다.

 

아마 식당 같음 주인한테 따져 물었을 것이다.아니,설탕 넣어달랬더니 왜 생강을 넣어주고 그러는 거요,하고 말이다..그러나 극장 앞 그 누구에게도 따져 물을 수 없었고,우리 관객들은 집으로 집으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었다.

 

도대체 걔네들이 왜 그랬겠느냐고? 사실 이런 의문 역시 무의미하다.배급사와 수입사는 돈을 건져야 했을테니 말이다.우리가 이렇게 안했음 니가 이 영화를 볼 수 있기나 했을 것 같아?,하며 오히려 어깃장을 놓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아마 항의하는 내게 그들은 점쟎게 훈계했을 것이다.

 

있쟎아요.이 순진한 양반아..우리나라에서 장사가 되는 전쟁은 한국전쟁과 미국이 수행한 전쟁 이외엔 없단 말이에요..뭘 다 알면서 그러시는 거유..유럽의 전쟁,더구나 영국도 프랑스도 독일도 아니고,생소한 나라 스페인의 전쟁,그것도 파시스트에 대항한 전쟁,잘 알지도 못한 전쟁,그런 얘기 해 봤자 뭘 도움이 되겠수..유사파시스트들이 지금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나라에서 말야..

 

그렇게 수입사는 생각했을 것이다.그리고선 이렇게 반 쪽 짜리 찌라시성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원래의 홈페이지엔 있지도 않는 문구들을 삽입한 것이다.델 토로에게 함 보여줬음 좋겠다.이건 거의 제2의 창작 수준이다..오필리아는 졸지에 해리 포터가 되고 만 것이다..

 

물론 '돈'이라는 구차한 변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적어도 초등학생들이 솔깃해할 가능성 정도는 막아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건 정말 아니쟎아?// 응? 이 베니스의 상인들아.

 

6.Miscellaneous

 

 ㄱ.멕시코의 영화산업은 바로 FTA에 직격탄을 맞은 영화산업이다.

 ㄴ.멕시코는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즉 반파시스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

     전쟁에서 패하고 많은 스페인 예술인들이 멕시코로 망명했다.

 ㄷ,트로츠키가 망명하고 체 게바라가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익힌 곳도 바로 멕시코다.

 ㄹ.멕시코는 축구와 마약,그리고 코로나 맥주의 나라만은 아닌 것이다..

 

 ㅁ.판은 아무래도 프란체스코 고야의 '괴물'을 닮은 것 같다.

 ㅂ.어떤 영화평에.'루이스 브뉴엘이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을 만났다라고 했다

     전적으로 옳다.

 ㅅ.그래도 이 영화는 괜챦은 영화다.단 조카나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ㅇ.아,참 내 옆에 앉아있던 그 데이트족의 사나이,결국은 잠들고 말았다.진정한 판타지 세계로 가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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