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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신의 영화들/정체에 대해 떠들기

by 폴사이먼 2015. 12. 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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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씩씩거리고 있었다.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이건 배신이야,배신..'그런다.(송강호 말투는 아니다) 주방에서 나오시던 장모님 역시 '맞아,배신이야.'이러신다.자초지종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배신자의 정체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 집에서 더부살이 하면서 물심양면으로 우리를 괴롭혔던 처남이었다.사업자금 부족하다고 하면 여기저기 다른 곳에서 빌려다가 가져다 주고 카드값이 부족하다고 하면 메꿔 주고..(그러나 아직 한 푼도 갚지 않은ㅎㅎ)뭐 이렇게 살았던 처남이 결혼하자마자 점점 안색을 바꿔가고 있다,이거다..게다가 이 녀석,결혼하더니 운이 트여서 잘 나가고 있기까지 하다..


이런 시월드 같은 소리가 있나..하면서 대꾸하려다가 기색이 험악해지는 것 같아서 참고 있었더니 모녀의 이야기가 브레이크 없이 쭈욱 이어졌다.사실은 내년 설날 연휴에 여행을 가려 했다고 한다.첨엔 오키나와였는데 베트남 다낭으로 행선지를 바꿨다고 한다.(그런데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동생이자 아들인 처남의 제안이었다는 것이다)베트남 여행은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에, 으응? 하고 놀라고 있는데, 어느 날 처남이 장모님께 찾아와 이랬다는 거다.


-그동안 누나나 매형,그리고 부모님께 신세진 것도 너무 많고 하니,이번 여행 경비는 내가 다 쏠게요..

(아마,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매우 자랑스러워 했을 거다..)


그러자 으쓱해진 장모님,김장의 그 날,집에 찾아온 며느리에게 바로 그 말을 반복하셨다는 거다.(이건 약간 실수인데..라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내가 끼어들었다.

-난 결코 그렇게 시킨 적이 없어.지녀석이 혼자 그랬다고...


아내의 곁들임과는 상관 없는 그 시간 나의 머릿속  실시간 추측.


처남댁 일순간 당황-자신한테는 의논도 없이 7명의 여행 경비를 다 내겠다는 남편에게 약간 화가 남-그 날 저녁 퇴근하는 남편에게 따짐 (그러나 이 친구도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라서 불같이 화를 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앞으론 나한테 먼저 통보라도 해 줘..라고 얘기했을 거임..) - 그러나 애처가인 신혼의 처남 어쩔 줄 몰랐을 것임..


그런데 그 후의 전개(이것은 두 여인의 진술..)


처남,어느 날 매우 당황스러워하며 아내에게 점심식사 제의-밥을 먹으며 아내와 나와 은별이의 경비는 댈 수 없다고 얘기함- 아내 역시 당황스러워 하며 자신은 그런 부탁을 한 적도 없는데 웬 오버냐고 약간 화를 냄-처남 또다시 당혹해 하며 얼버무림..-그러나 아내,이 상황을 복기하며 점점 화가 남..(과거를 생각하며 더욱 스트레스 받음)


일단 두 여인이 내 입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당신,말이야..만약 처남이 했던 것처럼 내가 당신한테 일언반구 통보도 없이 당신 시댁 식구들에게 동남아 여행 전액 지원이라는 공약을 내세웠다면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아?


아내..일단 대답을 유보.


-그리고 어머님...아들을 믿지 마세요.결혼하면 거의 92%는 빼앗기는 거랍니다..저도 저 사람 시어머니에게 그랬었습니다.나머지 8%에서 행복을 찾으심 됩니다.그냥 잘 살게 놓아두세요..이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렇게 해 놓고 약간 난감했다.뭘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30분 후,처남에게 전화..


= 니 상황을 이해한다.하지만 앞으로 돌팔매는 혼자 맞기 바란다.와이프까지 같이 맞게 해선 안되쟎냐..여행경비를 지원하고 싶다면 몰래 했어야 해.나한테 몰래 몰래 송금했어야지.그래야 너랑 나랑 둘이서 횡령도 하고 그러지..


이넘,수화기 아니 휴대폰 너머로 희미하게 웃는다.웃으며 그런다..

=그러게요.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죠?


나는 덧붙였다.

-어차피 21세기의 한국의 아들들은 양쪽에서 얻어터지는 존재야.철저하게 니가 맞고 끝냈어야지.아내가 욕을 먹게 내버려두는 건 매너가 아냐..아님 끝까지 모른 척하고 밀어붙이는 방법도 있긴 한데,그건 어디까지나 case by case고...


-그럼 이 문제의 여행은 어떡하죠?


바로 결정을 내려주었다.

 

-취소해.네 아내도 내심 그걸 원할 거야.


순간 끼어들려 해서 말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나도 싫다.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그리고 휴대폰에서 뺨을 살짝 떼었다가 말했다.

-여름에 니가 쏴.몰래 쏴.내 계좌로 말야..


    -                            -


나는 내가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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