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대의 리무진,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유령
여기 또 한 대의 리무진이 있다.<홀리 모터스>의 드니 라방처럼 리무진의 탑승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지만,드니 라방이 파리라는 대도시 안에서 자꾸만 리무진에서 하차하며 도시 전체를 유랑하는 반면,우주적 거대도시 (코스모폴리스) 뉴욕의 도심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리무진에 앉아있는 현대자본주의를 지탱하는 moneytary system의 총아인 에릭 패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다) 는 자신의 리무진에서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는 쾌적하고 안전한 리무진의 제왕이며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어전으로 소환한다.금융분석가와 해커,갤러리의 큐레이터 (쥴리엣 비노쉬가 연기하는 그녀는 에릭의 섹스 파트너이다) ,매일의 건강검진을 위한 의사,심리학자 사회학자,흑인 래퍼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궁전으로 와 머리를 조아린다.
반면 리무진의 외부는 혼란 그 자체다.자본주의에 항의하는 성난 시위대가 거리를 휩쓸고 있고 IMF 총재는 북한에서 암살당하며 미국 대통령 역시 뉴욕의 거리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다.패커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고 항의의 분신과 시민의 분노와 빈곤이 차창 밖에 펼쳐진다.그러나 에릭 패커는 안전하다.리무진 외부의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 같지도 않다.리무진의 창문을 내리면 그 어떤 소음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마치 텔레비젼의 볼륨을 아예 줄여없애고 화면을 응시하는 것처럼.
오히려 그를 무너뜨리는 것은 그 자신이다.자신이 고안한 환율의 수학적 예측 능력 시스템에 의해 거부가 된 그는 바로 그 시스템의 오류 - 잘못된 중국 위안화 예측-에 의해 알거지가 된다.영화 중간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잃는다.자본주의적으로는 죽는다.안락한 리무진의 내부에서도,또 리무진 바깥의 거리에서도 자본주의는 잔혹한 유령처럼 배회하며 사람들을 암살하는 것이다.모두가 파멸의 벼랑 끝에 서서 서로를 밀쳐댄다.이것이 현대자본주의의 심장부 뉴욕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원작자 돈 드릴로와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얘기한다.
그러나 이 영화엔 그것 이외의 무언가가 있다.자본주의의 지옥도만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게다가 이 지옥은 폭력과 비명이 들끊는 지옥이 아니다.분노는 내연하고 파멸은 조용히 진행된다.무엇보다도 영화의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는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그냥 한 쪽 발을 보도 위에 걸치고 쳐다보기만 한다.정작 영화가 쳐다보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세계 속의 어떤 '사람'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그 '사람' - 그가 제시한 현대의 Moneytary system 의 정점에 서 있는 에릭 패커- 을 통해 그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섬세하고 차분하게 진술하려 하는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바로 그 사람 에릭 패커를 생각해야 한다.자본주의 자체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크로넨버그가 바라본 것은 자본의 본질이 아니다.그는 거기서 파생된 어떤 인간성을 얘기하고 있다.패커에 대한 영화 속의 여러 사실들,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그의 모습들,그와 대화하는 사람들의 말들,그래서 도출되는 결론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패커,에릭 패커
1.리무진의 첫번째 탑승자인 젊은 금융 분석가는 말한다.
- 돈을 벌고는 있지만 만질 수 있는 것은 없어.
: 만진다는 것은 감각이다.피부가 느끼고 신경계가 작동하고 두뇌의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감각.그러나 이 사람들,자본의 정점에서 자본 자체를 다루는 사람들의 '돈' 에 대한 감각 경로 자체가 망가져 있다.
자극의 시작이 없으니 육체의 연쇄적인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남는 건 그저 컴퓨터 모니터 위의 숫자일 뿐이다.이 기묘한 리무진 안에서 자본은 미약한 시각적 자극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2.그는 우연히 자신의 아내 - 시를 쓴다는 상류층의 상속녀- 를 발견하고 차에서 내린다.에릭은 아내에게 말한다.
-당신이 파란 눈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어'.
:그는 아내의 눈동자 색깔 조차 모른다.순간 의심.이 어이없는 무지는 단순한 분주함에서 오는 무관심 탓이기만 한 걸까? 혹시 그가 색깔을 식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특히 타인에 대한 무관심,그의 모든 색감은 리무진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원래는 분명히 지니고 있었던 색깔에 대한 감각 기능에 심각한 균열이 온 것은 아닐까?
감각,그것이 문제다.그는 이후에도 아내를 만나지만 그녀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함께 무언가를 먹는 것 뿐이다.
그녀를 '감각'할 수 없는 그는 끊임없이 아내와의 섹스를 요구하지만 그녀의 거절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그 부부 사이엔 접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아내에 대한 감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시도-섹스는 언제나 불발된다.결국 그는 또다른 섹스를 찾을 수 밖에 없다.
3.경호원은 꾸준히 그에게 암살의 위험을 경고한다.그러나 그는 그 경고를 무시한다.경호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아니다.일종의 무감각이다.위험에 대한 무감각.그의 주요한 특징.
4.미술관의 큐레이터로 보이는 그의 섹스 파트너 쥴리엣 비노쉬 (정말 깜짝 출연이다) 에게 그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있는 휴스턴의 마크 로스코 채플을 전부 다 사버리겠다고 얘기한다.비노쉬가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그는 다 사야 한다고 주장한다.이것은 부호의 허세가 아니다.그의 감각의 역치와 상관이 있다.그가 예술을 예술로 온전하게 느낄 수 있으려면 '건물을 포함한 모든 것'을 소유해야 하며,미술관이나 교회처럼 예술작품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술작품을 보는 순간 그에게서 예술은 사라져버린다.예술에 대한 소유 감각 역시 엄청나게 날이 서 있는 것이다.(비노쉬는 다소 낭비된다.글자 그대로의 우정출연이다)
5.여성 보디 가드와의 격렬한 섹스.에릭은 말한다.더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6.경호원들과 함께 간 나이트 클럽.클럽의 군중들을 보며 경호원이 말한다.
- 현재의 고통을 잊기 위한 약물 노보(novo)가 저들에게 준비되어 있다고.
에릭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이미 그에겐 '대중적인' ,'누구에게나 약효가 통하는' 약물 따위는 소용이 없다.약물이 적용되는 단계를 그는 애저녁에 넘겼다.
7.자신을 죽이려고 총을 들이댄 회사의 해고 직원 폴 지아마티 앞에서 그는 자신의 손등에 총을 쏜다.자살 시도? 천만에,자살하려는 자는 머리나 목구멍 안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긴다.그는 죽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총을 쏘아서라도 자신의 감각을 일깨우려는 것이다.극심한 통증 감각을 통해서 망가진 자신의 육체적 기능들을 살려내려 하는 것이다.(그는 영화 내내 자신이 어린 날을 보냈던 이발소에 가서 머리카락을 깎으려 한다.엄청난 교통 체증과 바쁜 스케쥴들 사이에서 이런 계획을 고수하는 것 역시 잃어버린 감각들을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의해서 회복하려는 시도와 관련이 있다.물론 실패한다.)
그런 에릭에게 시종일관 에릭을 죽이려고 하는 폴 지아마티가 말한다.너는 병든 영혼이라고.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는 없다고.수학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의 불규칙성에 너는 당한 거라고..
결국 영화는 에릭에게 총을 들이댄 옛 부하 직원의 장면에서 끝나버린다.그가 결국 에릭을 쏘았는지는 불분명하다.그러나 관객은 그의 죽음 여부를 그렇게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었다.자본주의적으로도,영혼으로도.그리고 육체의 일부 마저도.
현실감각(reality sense)
에릭 패커가 수행하는 일련의 씬들을 관통하는 그의 -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생각했던 - 모든 행위들은 현실감각 (reality sense) 의 상실과 맞닿아 있다.그는 감각을 상실했고 현실을 인지하지도 못하며 과거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되살려내지도 못한다.그는 그가 벌어들이는 돈의 실체를 의식하지도 못하며 느낄 수도 없다.러시아제 제트기를 사고 미술품이 전시된 교회 전체를 사려 하지만 어쩌면 그의 매수 행위는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다.그의 존재는 허공 속에 있다.
모든 것은 수학적 시스템과 그래프 위의 좌표에 지나지 않는다.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그는 아내의 눈동자 색깔 조차 모르며,여성들과는 먹고 성교하는 것 이외의 그 어느 소통도 불가능하다.자극으로서의 섹스는 가능하지만 그 섹스를 통해서 얻어낸 감각은 오래 가지 못한다.약물의 도움 역시 불가능하다.자신의 손등에 총을 쏘아도 소용없다.
병든 영혼.그를 규정하는 짧은 단어다.
크로넨버그는 자본주의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세상은 그대로 돌아간다.나중에 언급하겠지만 항의하는 자들의 방법과 세력은 아직 미미하다.크로넨버그가 얘기하는 것은 개인의 레벨에 있어서의 상실이다.돈은 현실을 잊게 만든다.금전으로 대표되는 체제는 엄청난 속도로서 낙오자들을 양산한다.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뒤쳐지는 것이다.그러나 승리자 역시 잃어버리는 게 있다.현실감각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속도 그리고 수학이 사람들을 유령으로 만든 것이다.그래서 크로넨버그는 얘기한다.자본주의의 망령이 전세계를 떠돌고 있다고.
현대인들 특히 도시인들은 자신이 버는 돈을 가지고 뭘 하는지 잘 느끼지 못한다.기본적인 생존 활동과 교양 활동,그리고 삶의 편의성을 마련하기 위해 창안된 시스템들이 워낙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거기에 투입되는 물량만으로도 자본은 금방 바닥이 나 버린다.한국인들은 더욱 그렇다.한국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교육과 주거에 대한 비용은 이제 환상적인 숫자로만 존재한다.거의 잡을 수 없는 안개 수준으로 상승되어 버렸다.결국 우리는 집값과 아이들의 교육비에서 더 이상 현실감을 느끼지 못한다.그냥 죽어라고 따라가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 시민들의 환경이다.직접 자본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금전에 대한 감각은 감각 자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조 단위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수학적인 감각과 경험이 주는 본능 이외엔 없을 것이다.결국 현대자본주의는 자본을 신으로 만들었다.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림자,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귀신.유령으로서의 자본은 우리 모두의 현실감을 앗아가버렸다.
저항자들의 양상
당연히 저항해야 하는 상황이다.자신을 잃게 만드는 상황.그러니까 소외.마르크스의 모든 전제조건들을 다 오류라고 규정한다 해도 소외라는 말 하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바로 지금도 그렇다.그러니 저항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하다.이 영화 <코스모폴리스>에도 저항자들의 존재를 다룬다.
그러나 그들의 저항 방법은 단순한 상징에 불과하다.화폐(currency)는 쥐에 불과하다며 그들은 쥐의 시체들을 던진다.에릭의 리무진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고 차체를 흔들어댄다.분신과 소요가 뒤따라 나온다.매티유 아말릭이 연기하는 행동주의자는 에릭의 뒤를 미행하다가 어느 순간 에릭이 리무진에서 나오자 그의 얼굴에 케이크 세례를 안긴다.그들은 케이크가 뒤범벅이 된 에릭의 사진을 찍어댄다.내일이면 그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케이크를 뒤집어쓴 에릭의 대문짝만한 얼굴로 도배될 것이다.제목은 에릭의 굴욕,제왕의 수모..정도가 될 것이다.좀 더 적극적인 테러도 있다.아예 총을 들고 에릭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항의 유효성의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하기도 어렵다.이 정도의 저항으로 공고한 자본주의를 함락시킬 수 있을지도 모호하다.차라리 우습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케이크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한 사람을 암살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월 스트리를 점령한 이후에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과연 커다란 변화가 왔던 것인가..
에릭의 암살자는 말한다.성기가 뱃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불모와 불임의 상황이다.이것을 자본주의의 탈락자,아웃사이더의 목소리라고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저항 역시 아직은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의 엔딩 - 총을 든 폴 지아마티가 로버트 패틴슨을 겨누고 있는- 은 그래서 미완성이다.수많은 윤리적 선택들이 그 장면 이후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아마도 그 이후의 영화들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그는 저항자가 아니라 관찰자이며,자본주의적 인간의 해석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대로 누워있을 수는 없다.생각이,행동이,출구없는 코스모폴리스 내부에서 더욱 더 필요해질 것이다.
물론 우리네 상황은 이런 저항 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기본적인 시민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저항의 차원이 다운그레이드된 나라에 살고 있다.하지만,또 그래서..늦은 봄 쯤엔 엄청난 힘들의 부딪힘들을 목격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자본과 국가 폭력과의 전투는 그래서 시민들에게 또 하나의 숙명이다.특히나 폭력 혁명이 불가능한 시점에 살고 있는 현대의 시민들로서는 또다른 혁명들을 구상하고 수행해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죽거나 적응하거나? 글쎄.죽어가거나 살아가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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