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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년 영화6. <북촌방향>-두 개의 라인.

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by 폴사이먼 2012. 12. 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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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상수의 영화에 언제나 등장하는 길 잃은 듯한 남자,만나서 수다 떨고 술 마시는 이야기,여인을 유혹하거나 또는 유혹에 실패하고 조금은 바보 같이 구는 듯한 이야기,속물적인 지식인의 초상에 대한 전형적인 묘사,불륜..이런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다.

 

2)이 영화에 대한,거의 러브레터에 비유될 듯한 영화 평론가들의 과도한 찬사들에 대한 언급도 자제하겠음.어쩐지 영화인들의 홍상수에 대한 상찬은 그들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도 비슷한 기능이 있다는 일부 혐의를 지울 수가 없음.사실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을 영화 속에 그려내면 좋아할 수 밖에 없겠지만.

 

3) 하지만 이 영화엔 다소 시적인 어떤 것이 있다.꿈꾸는 듯한 몽상적 하루들이 시간 개념을 기묘하게 교란하며 묘사되는 데다가,술과 빗나간 연애와,거기서 비롯되는 회한과 절망이 주인공의 위선적인 의식들과 행동들을 은근히 짓누른다.인물들은 과거 홍상수 영화의 사람들처럼 희화화되어서 그려진다기 보다 조금은 멜랑콜리하게,약간은 슬픔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그려진다.이 소외로부터 하나의 시가 탄생한다.그것이 날리는 눈발과 밤의 도로들,또는 밤과 낮이 잘 구분되지 않는 시간대 내에서의 사람들과의 대화와 결합해 시정을 낳는다.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필름이다.

 

4)홍상수의 어떠한 태도 안에는 획일적인 파시즘을 거부하는 부드러운 단호함이 있다.그의 고의적인 교란과 반복,그 차이 속에서 관객들은 오히려 자유를 얻는다.획일화된 해석을 마음껏 비웃을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제공하기.그것은 홍상수 영화의 커다란 장점이다.나는 2년 전에 이미 그런 얘기를 썼다.그러므로 또 쓸 필요는 없다.

 

 

 

 

모자와 뒷모습

 

2년 전 이맘 때 나는 홍상수의 <하하하>와 <옥희의 영화>에 대한 글을 썼었다.<하하하>에 대한 글을 쓰면서,홍상수 월드 특유의 상황과 대사의 지속적인 반복에 대해 얘기했고,그 영화에 나오는 일부 소재 - 예를 들어 선물 받은 모자 - 의 영화 속 변화를 통해 홍상수가 자신과 영화 내의 시간감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얘기했었다.지금 와서 좀 더 덧붙이자면,모자가 유지하는 선형적인 시간이 홍상수 영화의 순환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직선과 곡선은 동시에 간다.

 

따라서 나는,모자로 대변되는 홍상수 영화의 시간이 앞으로 쭉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영화의 순환이 가짜라고 주장하려 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길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렇다면 왜 그토록 여러번 모자는 출몰하는가.여기에 대한 생각이 그의 다른 영화 <북촌방향>과,그리고 <다른 나라에서>에 대한 글이 될 수 있겠다.

 

또한 2년 전 나는 또다른 홍상수 영화 <옥희의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캐릭터 중 하나인 문성근의 뒷모습을 주목했었다.나는 2년 전,그 뒷모습의 아련함이 이 영화 전체의 인상을 어느 정도 뒤엎었다고 얘기하고 싶었다.그리고 바로 그 뒷모습의 시적 낭만성 때문에  홍상수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며 글을 맺었었다.

 

여전한 홍상수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북촌방향>을 보았다. 글을 쓰지는 않았다.올해엔 <다른 나라에서>를 보았다.그리고 <다른 나라에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북촌방향>을 다시 보았다.그리고 이 두 영화를 연결시키기로 했다.

 

<북촌방향>에도 홍상수 월드 특유의 인장이 찍혀 있다.이젠 익숙해지기까지 한 대사의 반복,상황의 반복,살짝 살짝 미끄러지는 시간들,그것이 야기하는 비현실감,어떤 땐 꿈에 가까운 상황들,꿈이 아니라면 그저 영화 속 인물의 착각이거나 착시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일련의 이야기들.

 

이 영화는 어딘가 지방대학의 영화과 교수인 유준상이 서울에 올라와 특정한 공간 일대를 떠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는 3일내지 4일간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이 몇 일 안되는 시간에 그가 하는 일들은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물론 사건들과 대사들이 반복되고 있는 기미는 분명하다.(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심지어 어떤 대화들과 행동들은 그의 지난 영화들의 얘기들을 잇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첫째날, 유준상이 선배 김상중과의 만남이 불발되고 영화과 학생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술자리에서 도망쳐 찾아간 옛애인 김보경(김보경은 두 개의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데,그녀의 첫째 날에서의 이름은 경진이다)에게 징징대며 하는 말.-사랑하는 내 새끼.이 '내 새끼'는 전작 <하하하>에서 사랑의 도피 여행 중이었던 유준상이 애인 예지원에게 했던 말과 거의 동일하다.

 

그는 두번째날 일행과 찾아간 술집 '소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이 피아노 연주는 <하하하>에서의 연주와 동일하다.두 영화에서 같은 배우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다.

 

세번째 날 술집 '소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송선미가 유준상에게 하는 말,'생각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아'는 과거 그의 영화 <극장전>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상경의 독백인 '생각을 제대로 하고 살아야겠다'에 대한 댓구일 것이다.

 

이런 식의 예,지난 번 영화에서의 언명에 대한 댓구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내부에서도 서로 닮아있는 장면들과 반복되는 대사가 많다.굳이 예까지 들 필요는 없지만 생각나는대로 몇 가지만 얘기하자면,

 

예1) '서두르지 마'라는 대사는 둘째 날 아침 유준상이 영화하는 여자 후배를 만났을 때와 마지막 날 유준상이 영화 선배 기주봉을 만났을 때 하거나 듣는 대사다.김상중도 그런 대사를 말한다.

 

예2) 술집 '소설'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그러나 두번째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준상이  '피아노 좀 치겠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어젯밤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날이 유준상이 피아노를 치려는 첫날인 것처럼 묘사된다.정말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말이다.따라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두 밤 사이엔 이상한 차원의 괴리가 생긴다.둘 중 하나의 밤이 완전한 거짓이거나,이 두 밤 자체가 꿈이나 환상이거나,아니면 다음 작품 <다른 나라에서>처럼 영화의 시나리오이거나,그렇지 않다면 이 얘기들이 모두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거나..(이 얘긴 나중에 다시 거론하겠다)

 

 

 

 

이런 예는 끝도 없이 등장하고,사실 이런 사실들을 열거하는 것이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그저 생각나는대로 써 보았을 뿐이다.다만 홍상수의 반복이 정확한 '동어반복'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하고,그것에 대한 열린 해석의 가능성에서 그의 영화의 반 파시즘적인 요소가 확연해진다.

 

그러나 우연과 필연

 

그의 전작들과는 달리 <북촌방향>에서는, 이런 종류의 반복과 차이에 대해서 홍상수 스스로가 약간의 영화적 대답을 내어놓고 있다.두번째 날,술집 '소설'에서 송선미가,'정말 이상한 일인데,우연히 20분 동안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아는 영화 관계자 4명을 연달아 만났다'라고 얘기했을 때,유준상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취사선택이다.그러한 취사선택이 라인을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송선미의 의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오히려 이것은 우연의 연쇄와 반복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영화에 대한 홍상수의 대답이다.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이 모든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나는 모든 것들을 취사선택했고,거기에서부터 어떤 선(LINE)이 형성된 것이다.당신들이 주목할 것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우연이 아니라,그 우연과 반복이 형성한 선이다..

 

라고..(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유준상 역시 이 영화에서의 마지막 날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영화관계자들을 잇달아 만난다는 것이다.이것 역시 자신의 취사선택이라고 홍상수는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라인의 끝없는 연쇄,그리고 그 기하학적인 쾌락.)

 

그러나 그 LINE 속엔 시간이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시간 속에도 일정한 종류의 LINE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라인은 한 가지가 아니다.두 가지다.한 라인은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하지만 또다른 선은 혼란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여기서 우리가 시간의 개념에 대해 고찰하면서 아인슈타인 얘기랄지 소립자 이론 얘길 끄집어낼 수는 없다. 현재 우리에겐 그 정도의 시간까지는 없다.그러므로 일단 영화 속의 시간 감각만 따라가 보자.

 

첫번째,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이것은 2년전 내가 얘기했던 <하하하>속의 모자의 흐름이다.그 영화에서의 모자는 시간의 정상적인 - 말하자면 앞으로의 흐름-흐름을 상징했었다.이 영화 속에서도 그런 흐름이 있다.유준상은 영화 속 4일 중 3일 동안 매일 아침,그러니까 그가 그날을 시작할 때마다 동일한 인물을 만난다.그녀는 그의 영화계 후배이며,현재 영화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 여배우이다.

 

첫날,그러니까 유준상이 서울에 도착한 첫날 -물론 이 '첫날'이란 것도 일종의 가설이다- 그녀는 커피숍 안에 있다가 그를 발견하고 뛰어나온다.그리고 대화를 나눈다.

 

두번째 날에도 그들은 만난다.유준상은 자신의 영화 이력에 대해 걱정하는 그녀에게  '서두르지 마'라고 말하고,그녀는 '전화해도 되냐'고 묻는다.(이 질문은 뒤에 김보경이 연기하는 두 배역 경진과 예전의 입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이날 그녀는 유준상에게 분명히 어제도( 어제 보다는 '지난번'이란 말이 정확할 것이다)그를 보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즉 두번째 만남은 첫번째 만남 보다 뒤에 이루어진 만남이다.

 

그들은 세번째 날에도 만난다.단,그 날은 그들 단둘이서만 이루어진 만남이 아니다.유준상은 선배 김상중과 함께 있고,그녀 역시 자신과 작업을 함께 하려는 영화과 학생들과 함께이다.그런데 이 학생들은 유준상이 영화의 첫날,함께 술을 마셨던 그 학생들이다.그는 그날 술에 몹시 취했고,또 옛애인을 만나려는 생각에 그들을 놓아두고 도망쳤으므로 학생들을 피하고,학생들 역시 그를 알아본다.즉 세번째 만남은 첫번째와 두번째 만남 이후에 벌어진일이다.

 

즉 이 여배우와의 세번의 만남으로 인해 이 영화는 정상적인 시간의 경로,시간의 LINE을 갖는 것이다.이 시간은 앞으로 간다.우리가 일상적으로 유지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시간의 라인 역시 이 영화에는 등장한다.

이 시간 라인에서의 첫번째 날을 먼젓번 시간 라인에서의 첫번째 날과 구분하기 위해 제1일이라고 불러 보자.

 

 제1일은 첫번째 라인의 첫번째 날과 동일하게 흘러간다.(그렇게 '가정' 해 보자)

제1일에 유준상은 김상중과 연락이 되지 않아 영화과 학생들과 술을 마시고 고덕동의 김보경을 찾아가 밤을 보낸다.그리고 그 전에 첫번째 라인의 여배우와 만난다.

 

제2일에 유준상은 김상중을 만난다.그리고 물론 그 전에 제1일에 만났던 여배우를 또다시 우연히 만난다.(그래서 두 개의 라인이 함께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시간은 정상적으로 '앞을' 향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김상중은 유준상에게 '낮술을 먹고 왔느냐'고 말한다.유준상은 소주에 고갈비를 먹고 왔다고 말하는데,이 메뉴는 제1일에 영화과 학생들과 함께 먹었던 메뉴와 동일하다.(물론 유준상이 제1일엔 학생들과 고갈비를 먹고 제2일에도 또 먹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술집 '소설'에 가게 되는데,거기서 그들은 송선미와,그리고 약간 늦게 도착한 술집 주인 김보경을 만난다.

 

이때 김보경을 보고 유준상은 전날 저녁의 경진(김보경이 1인2역을 하는)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그리고 술을 마시다가  피아노를 연주한다.

 

 

 

문제는 제3일이다.두 남자는 정독 도서관 앞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고 있다.(좀 뜬금없다) 그런데 다음 씬은 김상중의 집 안이다.(역시 뜬금없다)집 안에서 김상중은 무언가 요리를 하고 있고 유준상은 졸다가 깬 다음 김상중이 해놓은 달걀 요리를 함께 먹는다.(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말이다-즉 제3일엔 제2일엔 없는 요소,집과 달걀 요리와 꿈이 있다)

 

그 다음 그들은 다시 술집 '다정'과 '소설'에 들르게 되는데,여기엔 어젯밤의 송선미 이외에도 한때 유준상의 영화에 출연했던 김의성이 합류한다.그들 네 사람이 '소설'에 다시 가고,술집 주인 김보경이 어제처럼 늦게 나타났을 때,김상중은 유준상과 그녀가 마치 처음 만난듯 둘을 소개한다.(분명히 제2일에 한번 소개를 했고,그래서 두 사람이 안면이 있을 텐데도 말이다) 유준상 역시 전혀 어색한 기미가 아니다.제2일엔 그녀 '예전'이 그의 예전 애인인 '경진'과 똑같이 생겼다고 당황했음에도 말이다.즉 제2일과 제3일은 전혀 겹치지 않는다.그래서이 두 날은 같은 차원,같은 시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즉 같은 시간 라인에 속하지 않는다.제3일은 현실의 시간대가 아니며,일종의 꿈처럼,환상처럼 자리매김되어진다.

 

그리고 다시 유준상은 피아노를 연주하는데,그때의 태도 역시 어젯밤엔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식이다.그리고 유준상과 김보경은 만두를 사러 함께 나갔다가 골목길에서 키스한다.그리고 또 한 가지,제3일엔 첫번째 라인의 두번째 날에 등장했던 후배 여배우와의 만남이 없다.(즉 제3일은 확실히 첫번째 시간 라인에서 이탈한다)

 

따라서 두번째 시간 라인은 첫번째 시간 라인에 비하여 하루가 더 있다.제4일이 있는 것이다.그리고 제4일엔 제3일엔 나오지 않았던 후배 여배우가 또다시 등장한다.첫번째 날에 유준상과 함께 고덕동까지 가서 술을 마셨던 학생들과 함께 말이다.즉 두번째 시간 라인의 제4일은 첫번째 시간 라인의 세번째 날인 것이다.

 

그 후 유준상은 또다시 '다정'과 '소설'에 가고 역시나 술집 주인 '예전'과 키스하고 이번엔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낸다.

 

그리고 첫번째 라인의 네번째 날과 두번째 라인의 제5일이 시작된다.

 

이제 우리는 뭔가 얘길 하고 넘어가야 한다.왜 이 영화의 시간들은 일치하지 않는가.물론 이런 종류의 시간 라인들이 영원히 증식되고 미분될 수도 있다.즉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시간 라인들을 찾아내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어쨌든 이 영화엔 우리는 지금 이 영화에서 두 개의 시간 흐름을 발견했다.왜일까.

 

여기서부터는 가설이다.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매우 근대적이라는 것을 안다.게다가 시간은 일정 부분 자본주의의 소산이며,권력을 가진 쪽이 없는 쪽을 강제하려는 일종의 책략이다.과거의 사람들은 수탉이 울 때 잠을 깨며 일어났고,해가 질 때 잠잘 준비를 했지만 현대의 인간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야 하고 밤이 늦도록 잠을 못 이룬다.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만큼의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또 시간 운용에 실패한 하층 계급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에서 또 하층으로 내려가야 하고,때로는 영원처럼 지루한 시간이 잉여처럼 남게 된다.그 어떤 계급 투쟁도 시간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시간을 획득하지 못한 어떤 사람은 실종에의,꿈에의,소망에의 욕구를 가진다.시간을 숨겨놓을 공간을 마련하고 시간을 마음대로 활용할 다른 공간,다른 허위를 꿈꾼다.

 

따라서 이런 작은 일탈을 위해,그러나 근본적인 소시민적 자유를 위해 숨쉴 수 있는 공간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시간의 어쩔 수 없는 놀이들이 본능적으로, 또 어쩔 수 없이 기획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시민들 특유의 시간들 역시 마찬가지다.(여기에서 윤리나 도덕이 등장할 수도 있다) 홍상수 월드에서의 유준상은 과거에 애인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유부남이며,그런 종류의 일탈을 감행했다가 결국 돌아와서 다시 그의 원래 시간 속에 잡힌 사람이다.그러나 그는 이제 3일 내지 4일이라는 짧은 시간의 말미 속에 다시 지금 그를 사로잡는 시간을 떠나 '북촌'으로 도착했다.(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그가 도착한 날'이다)

 

그가 시간의 혼란을 겪고 조장하고 그 안에서 떠돌길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의 두 개의 타임 라인을 그가 상정하고 그 안에서 '놀고 있는 것'은 그가 가진 자발성이자 욕망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이 시간놀음에 성공했을까? 또 그런 성공 이후에 그에게 다가올 또는 회복될 시간대는 어떤 것일까.그 대답이 이 영화의 엔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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