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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love.-Air Supply-통합진보당에 표를 던졌던 사람들께.

신의 영화들/culture club

by 폴사이먼 2012. 5. 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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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몹시 아파 멀리 있는 아내를 공수하여 병실에 입원시켰다.일하다가 아내를 보러 갔다가,일하다가 아내 심부름 했다가 이러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다행히 아내의 병세는 조금 좋아진 듯 하여 한시름을 덜고 있다.이제 아내는 병실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기도 하고 스마트폰 게임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몸  상태가 아닌 게임의 승패에 대해 짜증을 내고 있다.나는 그녀의 짜증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내는 정치 뉴스를 좋아하지 않지만,정치 소식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다.그녀는 매우 평균적인 정치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그것은 가령 이런 것이다.아내가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그 후보의 상대당이 민정당이자 민자당이고 한나라당이자 새누리당이기 때문이다.그 무리들의 이름으로부터는 전두환의 학살극,노태우의 기만극,김영삼의 배신극,이명박의 사기극,그리고 박정희의 독재시대가 자동적으로,그리고 자연스럽게 연상되고,지금의 두목인 박근혜 역시,그녀가 그 어떠한 스탠스를 취하든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아내는 생각한다.그래서 아내는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다.

 

물론 아내는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좋아했다.아내는 김대중의 미소 - 특히 웃을 때  그려지는 눈가의 반달모양을 아내는 좋아했는데,그런 눈웃음을 가진 사람은 결코 나쁜 사람일 수 없다는 게 아내의 전혀 비논리적인 강변이었다 - 와 노무현의 결기를 좋아했다.노무현이 조금 더 '잘 생겼다면 좀 더 좋았겠지만 ' 그래도 아내는 노무현이야말로 인간적이었다고 그를 평했다.

 

YTN이 통합진보당이 벌이는 일련의 개그들을 보도하고 있을 때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저 사람들한테 또 비례대표 투표할 거야?

 

못하겠지.아내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그리고 진보당을 찍은 걸 후회하고 있으며,그렇게 만든 나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뭐,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어서 다시 누워있는 아내에게 다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뀔 수도 있지 않겠어? 새출발할 수도 있쟎아.

 

그러나 아내는 또다시 즉각적으로 대답했다.'그래도 기억은 남는다는 거'였다.통합진보당의 저 안타까운 내홍으로부터,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부정선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이는 강짜'들과 '국민의 눈길 보다는 당원의 권리'가 더 소중하다는 그들의 삿대질과 대거리를 기억할 수 밖에 없다는 거였다.더구나 저들의 저런 행태는 저들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마음의 상처'로 다가오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아내는 말했다.

 

맞다.정치는 결국 기억이다.박근혜가 육체적으로 피곤했을 때 보이는 무뚝뚝하면서도 소통 불가능의 인상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아버지가 벌였던 일들을 기억나게 한다.그녀의 당이 아무리 새빨간 색으로 로고를 바꾼다 해도,과거의 차떼기와 거수기 경력에 대한 기억과 인상이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통합진보당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기억은 영원을 향하여 다가간다.그들이 과거 어떤 사회적인 공헌을 했고,과거의 엄혹한 시절에 그들이 어떤 투쟁을 벌였다 해도,그들에 대한 현재 사건의 기억들은 생각보다 오래 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새누리-한나라-민자당-민정당에 대한 기억과도 다르다.이들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권력 공동체이다.이권이 사라지면 또다른 이권을 향하여 이합집산할 수 밖에 없다.지역감정이랄지 근대화랄지 극우보수랄지 하는 요소들도 어찌 보면 이들의 이런 써클을 접합시키고 연결시키는 하나의 방편들에 불과할 수도 있다.그러나 진보당을 연결시키는 요소들은 이런 종류의 이익 공유가 아니다.이들은 어떤 가치를 표방하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모여든 자발적인 구성원들의 모임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적어도 이번 일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되고 있었다.그러나 이제 '그런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증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진보적 가치 그 자체만을 공격하던 수구언론들이 때 만난 하이에나들 마냥 물어뜯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진보 공동체의 정체성이다.그들 역시 이권 공동체였던 뉘앙스를 그들은 신이 나서 흩뿌리고 있다.

 

해맑은 눈동자와 맑은 미소,그리고 그 이면에 강한 도덕성과 정의감을 갖추고 있다고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왔던 이정희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그녀가 공당의 대표로서,시민들 보다는 '당원'들을 강조하기에 이르렀을 때,그녀의 그간의 정체성은 심하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대중들을 위한 정치를 해왔는 줄 알았는데,알고 보니 '당원'들,그것도 당권파의 당원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커밍아웃으로 그녀의 최근 행보들을 대중들이 받아들였을 때,향후 그녀가 그 어떤 얘기들을 하더라도 그녀의 진정한 의미는 쉽게 왜곡되고 말 것이다.쉽게 말해 그녀의 어떤 투쟁도,그녀의 어떤 눈물도 그냥 '말바꾸기' 정도로의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꼭두각시라는 말까지 동원하지는 않겠다.그런 말을 쓰면 확실히 쓸쓸해지니까 말이다)

 

이럴 거면 굳이 공당을 표방할 필요도 없었다.그냥 과거의 정치 결사체로서,'그들만의 리그'로서,어떤 써클로서 존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새누리당이자 민주당은 욕망과 이익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결코 쇠락하지 않는다.그러나 '가치'를 내세운 그룹들은 언제든지 자멸할 수 밖에 없다.씁쓸하고 또  씁쓸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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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산책시키기 위해,또 아내의 입맛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공원 근처에서 아구찜을 먹었다.그리고 이젠 도저히 봄날의 볕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태양빛을 쬐기 위해 공원 근처의 도로들을 산책했다.거리의 사람들은 여전했고 삶은 언제나 그렇듯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간다.나와 아내는 이 태양의 온기가 아내의 건강을 회복시켜 줄 거라고 믿는다.

 

거리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은 air supply의 음악이다.나는 아내에게, 내게 그들의 음악을 소개시켜 준 어떤 선생님에 관한 추억을 얘기했다.중고등학교를 통틀어 유이한 여자 선생님 중 한 분이었다.선생님은 경제를 가르치셨고 수요 (demand)와 공급(supply)의 법칙을 얘기하시다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소프트 록 듀오 air supply를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레함 러셀과 러셀 히치콕,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이 팀은 처음엔 밴드였다가 나중엔 이 두 사람들만의 듀오로 변해버렸었다.록 음악을 한다기 보다는 이지 리스닝 계열에 더 가까운 음악을 한다고 생각되었던 사람들로,1980년대와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던 팀이었다.수많은 히트곡들이 눈가와 귓가에 맴돌았다.특히 그 시절 우리나라 음악씬에도 트로트와 대학가 위주의 포크 송을 떠나 발라드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어찌 되었든, 당시 우리나라 발라드 음악들은 적어도 멜로디 면에서 우리나라 음악들을 한 단계 상승시킨 것만은 분명했다.에어 서플라이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엣 우리나라 음악 팬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이문세와 신승훈 이전에 air supply가 있었던 것이다.(물론 이건 오버이다)

 

오늘 내 귀에 들렸던 노래는 그들의 'lost in love'이다.여전히 감미롭고 여전히 젊은 노래다.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에 관한 노래.,또 사랑의 상실에 관한 노래다.그 어떤 가사가 콕 귀에 박혔다.

 

You know you can't fool me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It started so easy
You want to carry on

 

통합진보당 ,그 전에 민주노동당,그 전에 국민승리 21,그리고 1987년의 백기완과 대학로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쓸쓸한 연가 같이 느껴졌다.그들을 좋아했던 사람들,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air supply는 이 사람들에게 마지막 코러스로 결정타를 날린다.

 

Now I'm lost, lost in love, lost in love, lost in love

노래를 들으며 나는 아내에게 예전의 스승님을 다시 얘기하기 시작했다.머릿속과 입이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스승의 날엔 모 중학교 교감선생님으로 계시는 선생님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고도 했다.5월의 봄날은 이렇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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