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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분미를 다시 보다3 -죽음의 한 연구

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by 폴사이먼 2011. 4. 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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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밤과 낮 사이에.

 

새로 나타나는 세계는 분미의 과거도,분쏭의 원숭이 세계도 아닌 과거 어느 시점의 공간이다.시간은 몇백년을 거슬러 과거로 올라간 것이고,이제 <엉클 분미>의 세계는 과거와, 그리고  설화의 세계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 시간대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공주이다.그녀는 가마꾼들이 어깨에 멘 가마에 실려 어딘가로 가고 있다.그러나 공주의 가마가 지나가고 있는 장소는 어딘지 낯이 익은 숲길이다.우리는 그 길이 영화 도입부의 물소가 자신의 전생을 보기 위해 달려갔던 그 숲길일 수도 있으며,영화 말미에 분미가 자신의 종말을 향하여 마지막 여정을 떠나게 될 그 길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할 수 있다.그러나 그것은 결국 추측에 불과하다. 무한한 해석이 가능한 <엉클 분미>와 같은 영화의 경우,어쩌면 관객의 머릿속에서 쉴새없이 반짝이는 뇌파의 진동수에 의하여  수백만가지의 이야기가 태어나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니가 말이다.

 

가마 안의 공주는 가마 안에서 은근히 팔을 뻗어 한 가마꾼의 벌거벗은 어깨를 어루만진다.분명한 욕망의 신호이다.가마꾼이 공주의 정확한 얼굴을 아는지는 불분명하다.그는 자신의 어깨를 애무하는 손길이 공주의 것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다.이윽고 가마는 멈추고 공주는 어쩐지 비의로 가득할 것 같은 폭포가 전면에 보이는 연못 앞에 멈춰선다.

 

 

저 폭포가 보이는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질러 걸어가 멈춘 공주는 얼굴을 감추려고 항상 쓰고 다니는  베일을 벗고 연못 기슭에 앉아 자신의 못생긴 얼굴을 비추어본다.

 

 

(미안한 얘기지만 공주의 얼굴은 우리나라 트로트의 여왕 이미자를 좀 닮았다)

 

이때 갑자기 거울 같은 이미지의 연못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다른 얼굴로,훨씬 예쁜 얼굴로 변한다.

 

공주는 손을 뻗어 자신의 변화한 예쁜 그림자를 만지려 한다.그러나 이 모습은 분명한 허상이다.공주도 그것을 안다.그녀는 자신에게 속삭인다.

 

- 저 그림자는 환영일 뿐이야.

 

 그녀는 실망하며 자신의 욕망과 감각을 환영으로 치부한다.

 

이때 그녀가 어깨를 만졌던 젊은 가마꾼이 등장한다.그는 공주의 겉옷을 벗기고 그녀와 키스한다.그러나 어느 순간 공주는 그의 몸을 밀쳐낸다.그리고 그에게 너는 나를 보는 게 아니라 가마 속 여자의 그림자를 상상하는 것 뿐이다,자신이 공주가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다가오지 조차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그리고 공주는 그를 그 자리에서 쫓아낸다.

 

공주가 연못가에서 절망에 사로잡혀 울고 있을 때 연못 속의 메기가 말을 건다.메기는 공주에게 당신이야말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한다.메기는 공주를 연못 속 그림자로나마 예쁘게 변신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일종의 영물이다.공주는 당연히 메기가 자신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시켜 줄 것이라고 상상하며 몸에 걸친 온갖 보석을 물 속에 떨어뜨리며 (혹은 공물로 바치며)물 속으로 걸어들어간다.그리고 마치 수영의 배영 자세처럼 물 위로 눕는다.

 

(아핏차퐁의 전작 <친애하는 당신>에서도 이와 비슷한 씬이 있었다.물론 그 영화의 여주인공은 메기의 유혹에 이끌려 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아핏차퐁 영화에서의 물의 역할에 대해서는 한번쯤 진지하게 고려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영화 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인간과 메기의 섹스씬이 펼쳐진다.섹스 장면이라고 뭔가 자극적인 걸 기대해선 안된다.그저 공주의 사타구니 사이에서 펄떡거리는 메기의 모습이 그 장면의 전부이다.그리고 물 밑으로는 공주가 버린 보석들의 모습이 교차편집된다.

 

이 공주의 이야기는 당연히 전날밤 분미의 아들 분쏭의 이야기,즉 소통을 위해서 원숭이와 짝짓기하여 원숭이가 된 사람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물론 공주가 메기와 짝짓기를 한 것은 분쏭처럼 소통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공주는 그녀의 욕망-예쁜 얼굴을 가지고 싶다-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분쏭의 이야기에서 미래의 영화에 대한 언급-미래의 영화는 어쩌면 피사체와 짝짓기를 할 정도로의 몰입이 필요하다-을 한 적이 있었다.그래서 우리는 이 공주의 이야기 역시 영화와 관련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즉 공주의 이 이야기는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에 깃들어 있는 욕망,특히 관객의 영화에 대한 욕망을 은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것이다.

 

거울-연못-스크린에 비친 환영인 자기 그림자를 바라보며 존재의 변환을 위한 욕망과 가능성을 느끼고 메기와 짝짓기를 하는 이 이야기는 스크린에 나타난 허상들을 바라보며 그것에 자기를 투사하는 관객의 무의식적인 욕망과 몰입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 경우 공주가 버린 보석들은 우리가 영화에 대해 지불하는 댓가가 되는 걸까?) 이 장면은 이렇게 이상한 울림을 가지고 관객에게 또다른 우주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공주의 이 장면들이 데이 포 나이트 (의사야경촬영이라고 번역되는 촬영 테크닉으로 밤의 장면을 낮에 찍음으로써 밤의 효과를 얻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촬영으로 찍혔다는 것이다.밤과 낮이 교차되며 이어가는 이 영화의 시간적 진행을 고려해보면,공주의 이야기는 낮은 분명히 아닌,그렇다고 밤이라고 확언할 수도 없는 이상한 시간대에 찍힌 것이다.혹은 일부러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다.즉 메기의 색시가 되는 공주의 이야기는 밤과 낮 사이에 존재한다.그것은 또다른 확장,또다른 세계로의 진입이다.

 

4.분미,죽음을 향하여 걸어가다.

 

이제 다시 영화는 분미의 스토리로 돌아온다.분미는 침상에 누워있고 이제 그를 간병하는 것은 라오스 출신의 노동자 자이가 아니라 (그는 전날 낮의 자신의 대사를 통해 혼인신고를 하러 고향 라오스에 다니러 간 것으로 처리되었다.태국과 라오스는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의 죽은 아내 후아이다.

 

이 시점,분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다.그는 천천히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아내를 안는다.엄마에게 안긴 아기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한편으론 더 이상 아내의 모습을 볼 수 없으리라는 예감과 안타까움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분미는 말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죽음을 앞둔 당사자들의 기분이나 느낌 -(분미는 두렵고 흥분된다고 얘기한다)-,사후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 -이미 한 번 죽은 후아이는 천국이란 단연코 없으며 그 개념은 단순히 과장된 거라고 말한다-, 죽은 후의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 - 유령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나 생명체에 깃든다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후아이의 대답이다- 따위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들은 정말로 정연하고 담담하게,거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런 얘기들을 주고 받는다.설교단의 불뿜는 설교로 천당의 위용과 보답을 부르짖는 웅변가들이나 현란한 특수효과로 사후세계의 신비함 만을 강조하는 헐리웃 영화와 비교하면 거의 어이가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안정된 상황이다.

 

그런데 사실 죽음은 이렇게 다가온다.텔레비젼이나 영화와 같은 매체로만 죽음을 대하면 죽음이 뭔가 웅장하거나 극적인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인상을 받게 될 수도 있으나,내가 목격한 많은 죽음 -물론 나는 수백건 이상의 사망을 그냥 병원 안에서만 보아왔다-은 이런 식으로 다 담담했다.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던 사람도 많았고 죽음이란 결국 결정적인 에너지의 소진이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그래서 죽음이란 사건의 진행 자체는 커다란 자연 속 한 개체의 사멸처럼 당연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거기에 영웅적 분투나 초자연적 사건들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사고사나 돌연한 죽음도 있다.그러나 그런 죽음은 그야말로 '돌발적이고' 갑작스럽다.그리고 그런 죽음 자체도 우리를 둘러싼 세계나 자연 전체를 상정해보면,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한 것이다.

 

분미는 이제 자신의 죽음 과정을 이끌기 시작한다.옆방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던 처제 젠과 통을 불러서 마지막 유언-유언이란 단순히 재산 상속에 관한 것이다-을 얘기한 다음,그들에게 자신이 이제 가야 할 죽음의 장소로 동행할 것을 부탁한다.이에 대한 젠의 반응은 '형부와, 그리고 언니 유령은 미쳤다'는 것이다.그녀는 형부의 이런 죽음을 결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하긴,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분미는 자신의 길을 재촉한다.아내 후아이를 앞세운 채 깊은 산 속을 향하여 나 있는 숲길을 따라 올라간다.숲은 어두움으로 감싸여 사람들의 모습을 분간하기 힘들고 나뭇가지 위에서는 원숭이 인간들이 날아다닌다.카메라는 분미의 어깨 뒤에 위치해 그와 그의 일행의 뒷모습을 따라잡아가는데,그들이 힘든 여정 끝에 도착한 곳은 어떤 동굴이다.

 

 

 

이때 카메라는 사람들보다 먼저 동굴 안에 도착해 있다.카메라는 동굴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데,이것은 마치 분미가 드디어 자신이 죽게 될 장소를 찾게 되었다기 보다,동굴이 오랫동안 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그들은 이제 동굴 안을 탐사하기 시작한다.마치 '가장 잘 죽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듯한 느낌이다.동굴 벽에 박힌 돌들은 오래된 불상들을 닮아서 수천수만 년의 시간들을 체화한 듯 보이고 동굴 속 옹달샘의 물고기들은 못생긴 공주와 짝짓기했던 메기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듯 카메라는 하늘 높이 걸린 달을 비춘다.이제 분미의 죽음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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