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 어웨이 위 고- 말과 길
<아메리칸 뷰티>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만든 샘 멘데스가 감독하고,현재 미국의 스타 작가라는 실제의 부부작가 데이브 애거스와 벤델 라비다가 시나리오를 쓰고,능력있는 코미디언들인 존 크라신스키와 마야 루돌프가 주인공으로 나온 <어웨이 위 고>는 말과 길로 이루어진 영화다.
주인공 부부인 버트와 베로나는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육아를 담당해줘야 할 버트의 부모가 갑자기 벨기에로 떠나버리면서 '어디에 살면 좋을 것일까,어느 곳을 집으로 정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시달리게 된다.어찌 보면 희한한 고민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부에게는 그야말로 절박한 고민이다.(그러나 그들의 고민이 아주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살 만한 곳,아이와 함께 살 집이 있는 곳'을 찾으러 길을 떠난다.
커다란 사건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간간이 감정의 파동이 요동치고 약간의 언쟁이 생겨나기도 하지만,그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평화롭고 낙천적이다.그것은 그들이 어떤 강한 액션 대신 끝없이 말과 말만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액션 대신 농담을,로맨스 대신 위트를,총격전 대신 촌철살인의 짧고 강한 말들을 그들은 영화적 무기로 사용한다.그들의 그런 여정에 강한 임팩트와 정서적 충돌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역설적으로 그들의 내적 존재가 무척 강인하기 때문이다.그들의 농담들이 터지는 방식도 매우 직설적이다.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다.상대방의 제안을 급박하게 받아쳐 버린다.약간의 고민도 없다.
그것은 그들의 영화적 인물 설정과 거기서 뽑아져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확고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말로 다 할 수 있는데 뭐하러 싸울 것이며,말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무엇하러 울고 때리고 학대하겠는가.우리나라의 막장 드라마가 온갖 파멸스러운 퍼포먼스들의 시리즈들로 일관하는 이유는 캐릭터들의 내적 구축이 시작부터 덜 만들어진 탓일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도 연기하기 싫은 사건들을 지속적으로 벌여가면서 자신의 인물들을 그때 그때 알아서 창조하고 있는 거다.따라서 시청자들의 열화 같은 반응이 담보되지 않는다면,그런 인물들은 그냥 알아서 찌그러지게 된다.그 어떤 새디즘에도 시청자들이 무감각으로 상대한다면 더 이상 인물들을 만들어낼 필요와 가능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 우리네 인생이 그렇게 막장적인 일들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우리 삶의 태반은 오히려 평이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우리는 말로 소통하고 말을 통해 30분과 세 시간과 사흘 뒤를 결정한다.<어웨이 위 고>의 주인공들이 그들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그들과 '대화한다'.말하며,집과 미국에서의 삶과 아이들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토론한다.매기 질렌할과 엘리슨 제니,제프 대니얼스와 캐서린 오하라와 같은 튼튼한 조연배우들은 약간의 몸동작을 섞은 언설들로 그들 삶의 정수와 그들의 삶에 대한 의견을 설파한다.이 영화가 소품 같이 보이는 이유는 영화가 지나치게 배우들의 대사에 의존하기 때문이지만,우리 삶 역시 대개 그런 소품적 에피소드들과 바로 말의 연속인 것이다.그래서 나는 이들의 말풍선 행진에 공감을 아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상황극은 그들의 여정에 의해서 더 극적인 분위기를 얻는다.말과 더불어,이 영화는 그들이 걸어가고 자동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길'에 의해서,로드무비적 자격과 가벼운 구도적 설정이라는 이중의 효과를 갖게 된다.부부는 피닉스와 투싼과 마이애미와 몬트리올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난다.마치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미국의 별들을 유랑하며 삶의 가벼운 대답들을 얻으려 한다.그리고 바로 그 혹성의 소년이 그랬듯이 진실은 바로 자기 집에 있다는 것을,자신의 과거,자신이 쌓아올려 왔던 자기 존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방문과 방문,대화와 대화 사이에 끼어든 이 영화 속의 길들이 없었다면 영화는 매우 단조로운 어떤 것으로 전락해버렸을 것이다.길들이 영화 속 인물들에게 여유와 숨 쉴 시간을 주고, 길들이 관객들에게 긴장의 이완과 허를 찌르는 평화로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역시 미국영화에게 가장 부러운 것은 그들의 넓은 땅이다.끝없이 펼쳐진 직선도로들과 때마침 나타나주는 사막과 바위산들,그리고 해변들은 미국영화의 진정한 무기들이다.그들의 지성사와 정신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단선적이며 짧기 때문에라도 더욱,그들은 그들의 다양한 길들을 은닉했던 무기로 꺼내들게 된다.물론 심각한 깨달음은 있을 수 없다.그들의 문화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그것을 배제해버렸기 때문에 얕고 표피적일 수 밖에 없다.그래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자꾸만 수평적으로 확장시킨다.그 수평적 확산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면 인종간 계급간의 연대와 화합이 생길 것이며,반대로 그 문화를 제국주의적 침탈과 군사적 탐욕에 사용할 때 미국 문화는 아마 파탄을 맞게 될 것이다.어쨌든 그들의 땅이 부러운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저 부부는 아내의 옛집에서 안식을 찾는다.오즈의 마법사적 해결.there's no place like home의 전형적이고 익숙한 해결방식이 또다시 떠오른다.<아메리칸 뷰티>를 만들던 때의 샘 멘데스와 <어웨이 위 고>를 만들 때의 샘 멘데스는 서로 다른 샘인 모양이다.엉클 샘?
2011-6 <러브 앤 드럭스>-약물 반응으로서의 사랑
사랑도 결국 뇌세포의 화학적 변화를 유발하여 생리적 기제들을 변화시켜서 사랑에 빠진 개인의 심리와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는 하나의 약물작용일 수 있다.(이렇게까지 건조하게 말하면 지금 현재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수 있겠으나,헤이 커플들,이에 대한 비난을 지금부터 8개월에서 2년 후로 유보하라.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이런 어불성설로 보이는 발언에도 일말의 진리가 숨어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졸로프트나 프로작처럼 항우울제로 작용해서 사람들의 발바닥을 지상에서 약 20센티미터 정도 떠오르게 하고,사람들은 공중부양의 조증 상태에서 화려한 약속을 남발하고 자신의 공허해보일 수도 있는 행동 메카니즘을 당연시하게 된다.또한 사랑은 이 영화에 주된 약물로 등장하는 바이아그라이기도 하다.바이아그라는 성기의 혈관을 확장시켜 뜨거운 피를 한꺼번에 몰리게 한다.그러나 사랑의 또다른 바이아그라가 확장시키는 혈관은 남성의 성기 뿐만이 아니다.휴면계좌처럼 잠자고 있던 사람 두뇌의 빈 공간 하나로 통하는 어떤 가느다란 혈관을 부피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오르게 만들고,넘치는 혈액에 의한 포만감으로 고양된 그 방은 숨가쁜 속도로 호르몬들을 방출한다.행복,열락,흥분은 끝없는 심장박동이라는 또다른 자율신경반응을 발생시키고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육체의 만류에 의하여 사랑은 그 흥분도가 잦아드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체가 행하는 일련의 반응일 뿐이다.마음은 기억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사용해서 당시의 순간적인 선한 영상들을 영원히 캡쳐해낸다.그리고는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정신레벨의 계단을 질주해서 그 계단 최상위층에 놓여있는 황제의 의자 위에 그 영상들을 모셔놓는다.그 사랑이 끝나든 지속되든 그것은 상관없다.캡처된 영상은 또다른 영상이 올 때까지 옥좌에 앉아 독재정권을 유지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반응은 약물의 작용이 아니라는 것이다.이것은 약리학과 약물학의 교과서로는 설명 조차 될 수 없다.하나의 학문으로 성립될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또한 이 때 사랑은 이미 사랑의 레벨을 넘어서서 두 갈래길을 앞에 놓고 서성이게 된다.그것은 앞길과 뒷길로도 표현될 수 있으며 추락과 상승,사망과 생명의 길이라는 대조적인 단어들로도 대신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떻든 우리는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삶의 관성은 멈추지 않는다.
짠,이렇게 한 영화를 보고 할 말이 없음 어떤 소재 하나를 가지고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 밖에 없다.또 어떤 영화가 주는 감성적 충격이 그리 세지 않으면 이런 흰소리를 늘어놓은 후,그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이야기를 얼버무리며 글을 끝내게 된다.(그래서 이 글은 전형적으로 좋지 않은 영화에 대한 글일 수 있다)
이 영화의 경우,그 배우는 물론 앤 헤서웨이다.
<프린세스 다이어리>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와 같은 영화들과,<비커밍 제인>,<레이첼 결혼하다><<하복> 같은 영화를 교대로 출연하는 그녀는,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 역할로 출연하는 이 영화에서 매우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파킨슨 병 특유의 육체적 증상을 살며시 표현하면서도,그 병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태도들,그에 의해서 비롯되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존재적 태도들을 차분하고 질서있게 잘 표현해냈다.좋아질 것 같은 배우다.
2011-7 <김종욱 찾기>-달달하고 또 달달하다.
달다.쓰디 쓴 커피에 설탕 한 큰 술을 퍼부어서 달디 단 커피로 만들어냈다.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쓰디 쓴 사랑을 고민하고 있다 하더라도,영화의 전체적 분위기와 인상은 결코 써지지 않는다.달다.달달하고 또 달달하다.
물론 인생의 아름다웠던 어느 순간을 정신적 외상의 형태로 기억하고,그것을 반추하고 또 반추해내며 살아가는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그것도 하나의 태도이다.적어도 타인에게 심각한 상처를 끼치지는 않는다.그저 주변 사람들을 약간 불편하게만 만들 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임수정은 10년 전 인도 배낭여행 중 만났던 김종욱에게 꽂혀 있다.그 예외적인 일탈적 상황에서 만난 사랑을 그녀는 끝없이 갈구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그것은 그녀 삶의 가장 짜릿했던 단맛이었으며,그것이 그녀 두뇌의 어떤 방에서 보존되고 재생산되어, 어떤 면에서 그녀의 시간을 붙잡아두고 있다.임수정의 시간은 정신과 육체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일일까? 역시 아니다.누구나 그런 종류의 시간 멈추어보기를 수행하며 살고 있다.그래서 영화의 전반부에서,임수정의 화면은 자꾸만 인도에서의 꿈 같은 나날을 향하여 플래시백 된다.현실의 분주함 속에서 그 어떤 실마리 하나를 잡기만 해도,그녀는 곧바로 인도로 날아간다.예를 들어 그녀가 무대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는 뮤지컬에 나오는 호텔 이름이 'destiny'라는 사실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화면은 임수정이 인도에서 김종욱을 만났던 배낭 여행자 숙소의 이름 역시 'destiny'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인도에서의 그 때로 돌아가버린다.그래서 연거푸 나타나는 플래시백이 슬며시 지겨워지기까지 한다.(정말 두번 정도는 좀 줄여줬으면 했다)
임수정의 외양 역시 인도에서의 그것과 서울에서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인도에서의 그녀는 맑고 순수하다.하긴 당연하다.일상이 주는 스트레스가 인도에까지 달려갈 수는 없으니까..더구나 그 때 그녀는 아마 학생이었던 듯 하다.생활의 책임과는 거리가 있는 사회적 정체성이다.반면 서울에서의 그녀는 화가 나고 짜증나 보인다.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압박을 가한다.가족들은 빠른 결혼을 원하고 뮤지컬 감독은 그녀를 대놓고 무시한다.뮤지컬의 주인공인 아이돌 스타는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지각하며 그녀의 애를 태운다.나라도 첫사랑을 찾아나서겠다.나라도 순간적인 플래시백들을 통해 자신의 변화된 상황을 무시하고 시간여행을 아끼지 않겠다.(여기서 첫사랑 찾기 연구소가 민폐적인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애써 쳐다보지 않기로 하자)
물론 그녀가 시간만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아마 현실도 거부하고 있을 것이다.영화 역시 마찬가지다.예를 들어 영화는 인도의 아름다운 측면 만을 강조한다.가없는 로맨스의 장소로서의 인도 블루씨티만이 강조될 뿐 인도의 다른 현실들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는다.(물론 이런 종류의 로맨스 영화에서 인도의 현실을 보여달라고 주문한다는 것 역시 우습긴 우습지만.)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무엇이 되었든지 끝까지 가지 않는다.책도 결말을 보지 않고 영화도 결말을 알아내려 하지 않는다.결말엔 현실이 있고 시간의 끝이 있다.결말을 알고 나면 자신의 아름다운 과거 공간이 유지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그래서 이 영화는 일종의 성장기적 경향을 띠기도 한다.그녀가 김종욱에 대한 결말을 내고 다른 남자와 새로운 시작을 하는 순간 또다른 성장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결말까 이르는 영화의 과정이 중요하다.거기서 영화 만드는 자의 태도가 드러나는 것이다.이 영화가 사용하는 '방법'은 소소한 유머코드들에서 비롯되는 웃음과,그리고 십 년 전 청춘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이다.말하자면 달달한 방법들이다.달달하고 또 달달하게 임수정은 인생의 새로운 스테이지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이 영화는 임수정의 '변신 시리즈'에 영화적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이 영화의 원전이 뮤지컬이며 뮤지컬을 만든 감독이 이 영화의 연출까지 맡고 있다는 사실은 약간 제외하기로 하자).결국 임수정은 뮤지컬 공연의 주인공 대타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는데,원전 뮤지컬에서라면 좀 더 극적일 수 있었던 이 장면이 영화로 넘어오게 되자 약간은 힘을 잃고 주저앉게 되었다.이것은 임수정이 원래 뮤지컬 배우가 아니며 음악적 능력이 그리 출중하지 않다는 것 역시 이유가 될 수 있지만,오히려 뮤지컬 감독 출신인 이 영화의 연출자가 자신의 영화에서 자신의 뮤지컬을 연출하는 방식이 너무 심심하다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이렇게 임수정의 변신 시리즈는 또다시 이어진다)
임수정의 무대는 반앙각과 반부감 그리고 정면 촬영을 왔다갔다하며 원래의 역동적인 무대를 보여주지 못한다.물론 영화 외적인 이유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여기서 <시카고>나 <나인>의 뮤지컬 무대들을 보여달라는 것도 아니다.그러나 임수정의 무대가 그녀의 성장에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영화가 생각했다면 조금쯤은 더 그 뮤지컬 장면에 신경을 써야 했다.사족처럼 끼어들고 만 뮤지컬 무대 때문에 임수정의 변신은 잘 나가다가 비틀거리고 말았다.나는 이런 일들은 꼭 지적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야 생략의 여백이 생기고 시퀀스 하나하나에 관객들이 더 집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달달하다.달달하고 또 달달하다.
시대를 소환하는 방법1.<써니> (0) | 2011.09.26 |
---|---|
겨울의 영화들5 <초능력자> <불청객><여의도><타운<<걸리버여행기><상하이> (0) | 2011.03.01 |
겨울의 영화들3 -스스로 속다. (0) | 2011.02.25 |
겨울의 영화들2-<심야의 FM> -채권자와 채무자. (0) | 2011.02.23 |
겨울의 영화들 (0) | 2011.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