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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맛이 궁금한가? <황금시대> -PART1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09. 10. 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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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극장,팝콘,데이트,그림 같은 화면,액션,웃음,눈물,환호.그리고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를 아우르는 시간 동안의 흥분..

 

그런데,이 모든 이미지들은 거의 대부분 '장편 영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그러나 영화가 모두 다 장편인 것만은 아니다.영화가 최초로 만들어지던 시기의 영화들은 거의 10분 안쪽이었고,이후 세 시간에서 네 시간이 넘는 대작들,심지어 어떤 영화들은 열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다양한 길이의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져 왔던 것이다.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들의 러닝 타임이 60분에서 120분 사이가 대부분인 것은,여러가지 사항들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합의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내부에는 수많은 짧은 영화들이,다시 말 해 많은 단편 영화들이 존재한다.(다만 짧다고 다 단편 영화인 것은 아니다) 또 지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영화감독들의 대다수가 바로 그런 단편 영화들을 통해 데뷔했다.단편 영화가 마치 장편 영화를 위한 습작처럼 다루어지는 것은 매우 그릇된 시각이지만,단편 영화들은 특유의 강점들을 내세워 하나의 '쟝르'로 분명히 존재한다.사실 어떤 의미에서,단편은 장편 보다 훨씬 강렬할 수 있고,훨씬 메세지를 뭉뚱그려 전달할 수 있다.내러티브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고도 영화의 앞뒤를 짜 맞출 수 있고,장편 영화에서 만들려면 꽤 오랜 공을 들여야 하는  짜릿함을 단번에 창조해낼 수도 있다.또 영화작가들의 개성어린 지문들이 이렇게 잘 드러날 수 있는 양식 또한 없을 것이다.KBS의 '독립영화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없어진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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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제 시작 10년을 기념해서 10인의 영화감독들에게 10분 정도 분량의 단편 영화를 만들어 볼 것을 권유했다.영화제는 감독들에게 '황금시대'라는 제목을 제시했고,그야말로 이 시대의 총아인 '돈'을 영화의 화두로 내세웠다.전주국제영화제 JIFF가 황금을,자본을 ,돈을 제시했던 것은 어쩌면 매우 적절한 일일 것이다.돈이야말로 지금의 시대를 잡아먹는 괴물인 때문이다.도덕적 지탄과 더불어 유혹의 대상이 되면서도,그것을 감연히 거부하는 사람들이 날로 적어지는 세상이 아닌가.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갖는 돈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그것 자체로도 '시대정신'이며,우리의 생존과 관련되고,우리 사회의 깊은 정신적 외상의 한 징후이다.

 

여기서 MB를 또다시 떠올리지는 말자.(홍명보는 어쩌란 말이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10편의 단편영화들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황금시대>는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었다.물론 그 후 개봉관을 쉽게 잡지는 못했다.그러나 그들은 아마 이런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황금을 만들 수 없는 영화라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이 10편의 영화들은 모두 다 제각각이었다.영화들의 개성은 분명하고 낱낱하게 드러나 보였으며,관객들의 개성에 따라 선호도 역시 분명하게 엇갈렸을 것이다.나는 광주의 예술영화전용극장에서 일요일 저녁 8시에 이 영화를 보았는데,관객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10명이라도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런 생각을 했다.

 

 

1.코믹반전 <유언>-최익환

 

<그녀는 예뻤다>와 <여고괴담4-목소리>를 만든 최익환은,코믹반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유언>이라는 이름의 영화를 만들었다.이 짧은 영화는 매우 새뮤얼 베케트 (특히 고도를 기다리며) 적인 코미디다.식당을 운영하다가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게 된 청년들이,자신들의 억울한 하소연과 그들의 자살 과정을 비디오로 담아낸다는 내용의 영화다.

 

 

 

그들은 식당 바닥에 비디오 캠을 설치하고 자신들의 유언을 낭독한다.그들은 그 유언낭독에 뒤이어 뒷쪽에 서 있는 사다리 위로 올라가 목을 매달 작정이다.그러나 그것 역시 쉽지 않다.또 아무도 그들의 자살에 주목하지 않는다.몇 번이나 나타나는 여자친구는 그들의 비장한 상황과는 관계 없이 선물 받은 지갑의 반품에만 신경을 쓰고,가끔씩 문 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행동을 벌이던 상관 없이 그저 쓰윽 지나쳐가기만 한다.그들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서로 욕을 하고 싸운다.영화는 거의 부조리한 상황극의 양상을 띠어 간다.

 

즉 거의 어떤 시도에도 불구하고,이들의 불행과 자살 시도는 그들을 둘러 싼 세계에 의하여 진정한 절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돈'에 의한 낙오는 자살 조차 인간적인 몸짓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쓰디 쓴 현실상황을 ,영화는 코믹하게 증언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 영화는 '돈'이라는 제재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21세기의 한국인들이 처한 근본 상황,경제적 소외와 사람들 간의 파편화를 심각하지 않게 다루고 있다.심각한 상황을 코믹하게,그러면서도 가벼운 반전이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코믹 반전 영화이다.

 

2.이슈드라마 <담뱃값> -남다정

 

<아이들은 잠시 외출했을 뿐이다>를 연출했던 남다정 감독은 이슈 드라마를 표방했다.노숙자에게 담배심부름을 시키는 여중생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이,어쩌다가 담배를 피우다 들킨 여중생에게 실제의 상황을 부탁하게 된다.이렇게 해서 취재는 완성되지만 상황은 묘하게 풀려가고,폭력과 폭력이 이어지고,피해자와 가해자가 엇갈리면서 공포스런 상황이 만들어지고 만다는 내용의 영화이다.결국 폭력의 고리는 맨 처음 이 취재를 담당했던 여기자에게까지 접근하고,기자가 그 장면을 비겁하게 회피하면서 10분 간의 드라마의 막을 내리게 한다.

 

이 영화는 의외의 폭력성의 한 양상을 집어내면서,폭력적인 상황들이 얼마나 우리 근처에 '가깝게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영화를 읽히게 한다.단편 영화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미묘한 감정선과 역시 미묘한 내러티브의 교체를 통해서,남다정은 유려하게 드라마를 끌어나간다.장편으로 만들었더라면 매우 달랐을 것이다.

 

3.생활스릴러 <불안>-이송희일

 

<후회하지 않아>와 <탈주>를 만든 이송희일 감독은 생활스릴러를 내세웠다.생활과 스릴러.어찌 보면 잘 연관되지 않아 보이는 조합이지만,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가장 잘 관계될 파트너이기도 하다.박미현과 박원상이 부부로 출연해서 훌륭한 연기 하모니를 선보이는 이 영화는 돈으로 인한 위험함과 불안감을 극대화된 형태로 선보인다.

 

 

 

주식으로 직장과 돈을 잃은 남편과 아내는 강원도 어딘가로 차를 타고 떠나는 중이다.(아마 어딘가에 맡겨놓은 아이를 찾으러 가는 길인가 보다) 차가 갑자기 고장이 나게 되고 남편은 차 하나 잘 지나다니지 않는 심심산골의 국도에서 차량 서비스를 신청한다.운전병 출신인 남편이 차도 제대로 못 고친다며 핀잔하던 아내는 갑자기 의심과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내 그 두려운 감정들이 확장되어가기 시작한다.

 

아내는 남편의 차에서 새로운 주식투자계획을 위한 제안서와 자신의 생명보험증서를 발견하게 되고 남편에게 살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며,그들의 불안한 관계는 매우 공포스럽고 위태롭게 진행된다.남편의 진정한 의도와는 상관 없이 신경질적으로 발작하게 되는 아내의 태도에서,우리는 돈 1억에 의해 파괴된 가족관계와 현대 우리나라 사회의 돈으로 인한 취약성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돈은 위협이자 불안요소인 것이다.쨍쨍거리듯 날카로운 현악기의 음향처럼 까탈스러운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평범하면서도 숨겨진 진짜 모습들을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더불어 증언해낸다.돈이 생활을 스릴러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그리고 장편상업영화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가 되겠다.

 

4.공포특급 <톱>- 김은경

 

처음 듣는 감독 김은경이 연출한 이 영화 <톱>은 예쁜 호러 영화처럼 시작한다.비가 오는 어두운 밤 철물점에서 야근하는 고학생에게 ,곳곳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고 풀어헤쳐진 머리를 한 여자가 톱을 사겠다고 찾아오는 것이다.그리고 여자는 자신은 돈이 없다며 알 듯 모를 듯 공포를 조장하고는 외상으로 톱을 가져간다.그런 종류의 언론 기사- 자신을 학대하던 남편 혹은 동료를 철물점에서 산 톱으로 토막살해한다는 - 가 생각나는 장면들이다.

 

 

 

청년은 밤새 그 여자에 의한 두려움에 시달리며 영화는 점차 에로틱 판타지로 변해 간다.청년의 꿈은 여러가지로 변용되는데 본질적인 겁먹음과 더불어 대상 여성에 대한 에로틱한 상상까지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영화의 10분간은 실제로도 아주 무서웠는데- 아마 극장에 관객이라곤 여섯 명 밖에 없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 다음 날 여자가 다시 나타나 꼬깃꼬깃 구겨 준 만 원을 청년에게 건네며 영화가 끝나게 된다.10 분 중 9분 50초 동안 '돈'은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이다.

 

호러 영화라는 쟝르에 아주 충실하면서도,남자가 가지는 또는 영화가 가지는 고정적인 관습에 살짝 생채기를 내는 단편 영화스러운 단편 영화였다.

 

5.뮤직멜로 <페니 러버>-김성호

 

<거울 속으로>라는 공포영화를 만들었던 김성호 감독은 뮤직멜로라는 합성어와 롤러코스터의 여성 보컬리스트 조원선을 내세워서 <페니 러버>라는 영화를 가져 왔다.전주국제영화제가 내세웠던 시대정신으로서의 '돈' 즉 자본과는 약간 거리가 먼 영화이긴 하지만,돈이 다른 종류의 매개체로도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소품이다.

 

 

조원선은 오래 전 언젠가 연애했던 한참 연하 - 고등학생-의 소년이 주었던,자신이 태어났던 해에 주조된 동전을 아직도 갖고 있는데,소년에게 이미 여자친구가 생기고 그녀와 멀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그 동전에 대한 이상한 감정을 유지하며 지갑에 그 동전을 넣어 다니고 있다.

 

영화는 조원선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음악과 함께 느릿느릿한 음악 영화처럼 진행되고,조원선이 가지는 그 10원짜리 동전에 대한 애꿎은 집착이,마치 현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금전에 대한 애착과 평행선상에서 조명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조원선의 보이스 컬러가 아마 한 몫 했을 것이다.)

 

연애감정과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에까지 작용하는 금전의 이미지를 살짝 비틀어 만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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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열 편의 영화 중 다섯 편의 영화까지만 써야겠다.내일 아침이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발해야 하므로 지금부터 정리해야 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 것이다.

 

부산엘 매년 가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들 중엔 내가 부산에 가는 것이,일종의 의무 관념에서 비롯된 것처럼 착각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그러나 결단코 그건 아니다.아마 어느 훗날 부산에 가는 것이 의무라고 느껴지는 그 어느 시점이 오게 되면,아마 나는 부산에 가지 않을 것이다.그렇지 않아도 삶엔 수많은 암초들이 널려 있는데,또다른 징크스를 그 리스트틀 틈에 끼워넣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부산 뿐만 아니라 극장 역시 그렇다.관객들은 어떤 의무감에 시달리며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전 세계 영화인들의 고질적인 착각중 하나인 관객들의 수준에 대한 원망은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해 왔다.그리고 영화인들의 그런 의견들 중 일부는 진실이다.그러나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의무감 때문에 극장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집 앞 복합상영관에 가게 되더라도 거기엔 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마치 내가 매년 부산엘 가도 어느 순간 그것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면 접어버릴 심산인 것처럼 말이다.

 

영화제는 어쩌면 관객들 보다는 영화인들의 잔치일 것이다.영화의 성찬이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닐 정도로 상영되는 영화 편수 자체가 많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거대한 국립도서관이자 상설 시장,그리고 말 그대로의 페스티벌일 것이다.그들에 대한 단 한 가지의 부탁,그것은 아마 내가 계속 그 곳에 가게 해 달라는 그 한가지일 것이다.

 

토요일 저녁엔 수영만의 야외상영장에 있을 것이다.벌써부터 해방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데,아마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가 말하게 될 그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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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시대>의 나머지 다섯 편의 영화들은 오늘 말한 다섯 편의 영화들 보다 훨씬 흥미로운 영화들이다.내가 다음 주에 체력을 유지해서 그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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