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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PART3- 네 개의 장면들

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by 폴사이먼 2009. 5. 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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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를 다룬 앞서의 두  글에서 나는, 마이클이라는 닫힌 사랑을 계속하는 남자의 러브 스토리와,한나라는 불행한 운명을 가진 여인의 개인사로 이 영화를 읽었었다.그러나 이 영화는 또 하나의 스토리-즉 독일의 역사,나찌 시절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또 나찌의 유태인 학살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전후세대의 단죄,그로부터 야기된 전후세대와 전쟁세대간의 갈등 양상,또 법이라 이름 붙여진 문명 사회의 룰이 가지는 한계 따위를 폭넓게 얘기하고 있다.

 

이런 얘기들은 영화 전편에 걸쳐서,마이클과 한나라는 개인들의 스토리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다루어지고 있다.그래서 어쩌면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무엇보다 이 영화와 영화의 원작인 소설의 어떤 지점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역사의 특정한 부분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시간적 구성 역시,약 10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서 - 한나의 나찌 경력,한나와 마이클의 사랑,한나의 재판,한나의 수감 생활,한나의 죽음 같은 -중요한 사건들을 교대로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그리고 사회상의 변화가 개인들의 운명에 주는 변화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흐르는 역사'라는 주제를 피해 나갈 방법은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다른 데에 있다.그것은 영화감독 스티븐 달드리와 소설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과연 한나를 '어떤' 존재로 생각했는가 하는 것이다.그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한 개인의 개인사로 제시했는지,아니면 그녀를 2차대전 때 독일 사람들의 전형으로 표현했는지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즉 이 영화에서의 한나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갔던 한 불행한 개인으로 그려진 것인가 아니면 당시 세대의 전형적인 인물로 표상되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의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두  영화감독과 소설가가 한나를 후자를 대표하는 인물로,즉 전쟁 당시의 평범한 인물의 상징으로 그렸다면,그들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한나라는 캐릭터를 디자인한 방식 자체가 그렇다.그녀는 우선 문맹이다.문맹 때문에, 받아야 할 벌 보다 더 혹독한 벌을 받았다.또 그 문맹 때문에,자신을 제대로 변호할 수 조차 없었다.이 일을 다른 방식으로 읽자면,당시의 독일 사람들이 받은 벌이,특히 그들이 그들의 자녀 세대로부터 받은 단죄가 실제의 죄상으로 인한 것 보다 훨씬 컸다고 주장하는 셈이 되고,정상 참작의 여지가 분명히 있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그래서 이 영화에서의 '문맹'은 단순히 한나의 조건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그 당시의 사람들이 처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되며,.그래서 수많은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특히 여전히 과거 청산 작업 자체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선 더욱 그럴 것이다)

 

장면 하나- 한나의 전차

 

여기에 영화 속 한 장면이 있다.이 장면은 정말 가볍게 넘어가고 말지만,사실은 한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한 순간이다.

 

 

저 장면에서 제복을 입은 전차 검표원이 바로 한나이다.그는 자신이 서 있는 저 전차의 검표를 담당하고 있다.그녀는 지금 그녀의 전차가 아닌 다른 전차에 서 있는 마이클을 바라보며 심하게 놀라고 있다.마이클은 단순히 그녀를 놀래켜주려는 목표 하나만을 가지고,사랑에 빠진 남자 특유의 우매한 단순성을 가지고,한나의 전차 다음 칸에 올라 탔던 것이다.사실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로맨틱한 장난에 불과한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한나의 반응은 분노 그 자체였다.그녀는 매몰차게 마이클을 밀어내고 나중에 집으로 찾아온 그를  쫓아낸다.물론 마이클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그러나 한나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왜 자신의 전차가 아닌 다른 전차에 탔는가 하는 것이다.왜 자신의 정체를 함부로 들여다보려고 했으며,왜 자신의 영역에 말도 없이 함부로 침입했는가 하는 것이다.한나의 입장에서 마이클은 최소한 자신의 전차에 탔어야 했다.그리고 말없이 표를 검사받아야 했던 것이다.이 일은 어쩌면 또 한 번 한나의 문맹에 대한 컴플렉스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아니다.이 일은 아주 단순하다.한나는 그저 자기 자신의 일만을,다른 곳은 전혀 쳐다 보지 않은 채,마치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양 눈의 옆쪽을 가린 채 달려가는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자신의 전차 이외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그런 사람,자신의 업무에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바로 그런 사람이 한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시의 독일 사람들의 상황이 바로  이랬다는 것이다.그들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만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자신의 죄의식 따위를 고려할 여유는 없었다는 것,또한 그럴 환경도 아니었다는 것을 영화는 얘기하려는 것이다.당시의 사람들은 그저 전차의 검표원처럼 존재했고,다른 전차에 탄 승객들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그래서 그로부터 10년 뒤 한나는 법정에서,어떻게 유태인 학살 같은 그런 참혹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냐는 법정의 판사에게,'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며,이 발언은 레지스탕스가 아닌 다음에야 유죄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항의를 가능케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그녀는 그저 전차의 표를 검사하듯 자신의 나찌 친위대원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오직 자신의 전차에 올라탄 사람의 표 이외에 다른 전차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말이다.전차는 그들만의 폐쇄된 세계였고,그 전차의 행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검표원이 아니라 전차를 운전하는 사람이었다는 소리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 <더 리더>의 한나는 이제 한나 개인이 아닌 것이다.한나는 나찌 정권에 합류하고 협조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람들,나찌의 폭력과 살인을 모른 척 방관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은유하고,훗날 그들의 아들 세대에게 단죄 받고 손가락질 받는 전쟁세대의 사람들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런 사정만 가지고서, 그들에게  면죄부가 발급되어질 수 있는 것일까? 모르고 지은 죄,어쩔 수 없이 지은 죄를 향한 면죄부 발급은 가능한 것일까? 더구나 피해 당사자인 유태인도 아닌 뒷세대의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다.

 

장면 둘-브루노 간쯔의 강의

 

빔 벤더스의 1992년 작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베를린의 사람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천사 역으로 나왔던 브루노 간쯔는,이 영화에서 마이클을 가르치는 법대 교수로 출연한다.그는 마이클과 그의 법과대학 동료들을 한나의 재판으로 인도하고,법과 도덕률과 정의에 대해서 그들과 토론한다.

 

그와 마이클과 학생들은 몇 번의 토론을 벌이는데,특히 학생들의 주장들은 전쟁 세대에 대한 전후 세대의 시각을 대변한다.그는 한나의 재판을  지켜 보고 충격에 빠진 마이클에게,재판을 방청한 감상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마이클은 힘없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다'라고 대답한다.그렇다면 마이클은 한나의 재판을 방청하기 이전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이클의 동료 한 사람이 대신 말한다.'정의를 구현하는 현장을 보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다른 장면에서 브루노 간쯔는 학생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사회는 도덕성이 아니라 법에 의해 운영된다고.아우슈비츠에서 일했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그들을 단죄해서는 안된다고.당시의 학살로 인해서 단죄되는 살인죄는 그 의도성 여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또한 그 당시의 행위는 현재의 법이 아니라 과거의 법,바로 그 당시의 법률로 확정해야 한다고 말한다.마치 한나를 변호하듯 그는 그렇게 얘기한다.한나의 범죄가 꼭 의도적인 범죄는 아니었다는 것,.그녀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놓였었다는 것을 그는 그렇게 완곡하게 돌려쳐서 말하고 있다.

 

이런 얘기에 학생들-전쟁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전후세대를 상징하는- 은 반론한다.이런 종류의 재판은 단순한 쇼에 불과하다고.한나를 비롯한 여섯 명의 여자들을 법정에 세우고 그들을 형무소에 보내려는 현재의 시도는,그저 눈가림에 불과한 쇼라고,그렇게 기성세대는 몇몇 희생양을 내세워 양심의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한다고, 학생들은 격렬하게 항의한다.

 

당시의  세대들이 어디선가 유태인 학살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들은 그때 그 시간에 그 학살극을 막았어야 했다,그럼에도 그 당시엔 손 놓고 방관하던 그들,전쟁의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아버지 세대가 몇몇 하급 책임자들만을 방패로 내세운 채,그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있지 않느냐고 분격하며 학생 한 사람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세대간의 분쟁과 법률적 정의는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는 것에 관한 주제가 결정적으로 그려지는 이 장면에서,영화와 소설의 시각을 대변하는 마이클의 태도는 어떠했을까.진실을 알고 있으며,한나를 사랑했던 그가 과연 한나를 변호하며 면죄부를  발부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을까?

 

아니다.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그는 한나의 문맹을 변호하지 않으며 그녀의 양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증언을 거부한다..그리고 세대간의 문제,한나의 유죄 여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 버린다.그는 브루노 간쯔가 진행하는 세미나에서 그 어떤 확실한 태도도 취하지 않는다.그는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도망치는 것이다.그 어떤 한계 상황에 봉착한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법률가의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법제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된다.법의 변천사,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법과 정의의 가변성에 관한 연구에 자신을 바치며,그는 슬쩍 자신의 시간을 방기해버린다.세대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인 그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하며, 괴로운 햄릿의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그리고 모든 세대의 법률적 정의들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이 영화가 갖는 역사에 대한 태도인 것이다.그러나 이 태도는 역시 그 설정 때문에- 한나에게 사랑과 문맹,그리고 차후의 각성이라는 양날의 선물들을 시간차를 두고 부여하기 때문에- 모호한 미로에 스스로를 놓아두는 것이다.

 

3.장면 셋- 양철북

 

<더 리더>와 가장 극단적인 반대 위치에 서 있는 작품은 아마 귄터 그라스의 원작소설을 볼커 슐렌도르프가 연출한 1979년 영화 <양철북>일 것이다.

 

수많은 알레고리로 가득 찬 이 작품에는,나찌 시절을 살아야 했던 평범한 중산계층 사람들의 모습이 끊임없이 등장한다.스스로 성장을 멈춘 것으로 설정되는 소년 오스칼의 부모,그리고 실제의 친부 등으로 구성되는 이 사람들은,매일 밤 모여서 도박을 하고 술을 마시고 불륜에 빠지고 섹스에 몰입한다.그들의 일상들은 대부분 이런 종류의 일탈과 실없는 장난들로 구성되며 그외의 행동이나 생각들은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원초적 욕망과 탐욕들이 당시의 일상처럼 그려지는 것이다.이들의 이런 무기력한 일상은 결국 나찌라는 정치적 힘에 대한 경도와 굴종으로 수렴되고 여기에 대해 뒷세대를 상징하는 오스칼은 부친살해라는 극단적인 무기로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다.

 

 

평범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갔던 사람들,돈과 (오스칼의 양부 마쩨라트),섹스와 (오스칼의 친부모들),도박에 물들었던 그 시절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죄선고를 내리면서 전쟁과 나찌를 간명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차라리 그러한 무기력이 중산층 특유의 무감각과 정치적 균형을 가장한 기회주의와 어울리면서 나찌 정권의 토양이 되었을 수 있다고 이 영화는 주장하는 것이다.(간단하게 말해서 현재의 우리 중산층 사회를 보라).이 영화의 유죄 선고엔 그 예외를 두지 않으며,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겨냥하며 모두에게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사실상 세대의 구성원들은 그 세대 전체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다.88만원 세대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받는 386세대의 구성원들은,'나는 직접적으로 그들을 억압 하고 있지 않으므로 무죄이다,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한 세대는 똑같은 전차에 올라 타고 있다.그 전차의 검표원이 누가 되었든,그 재수없는 검표원의 마음 속에 어떤 순결한 세계가 디자인되었든,잘못된 방향으로 돌진하는 전차에 탄 이상,검표원 뿐만 아니라 승객들 마저 유죄판결을 받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케이트 윈슬렛에겐 미안하지만,한나는 유죄인 것이다.

 

4.장면 넷.레나 올린의 마무리

 

스티븐 달드리 역시,한나를 비롯한 독일 역사의 문제를 그렇게 안이하게 결말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한나에게 감성적인 면죄부와 육체적인 징역형 만을 부과하고 끝내기에,영화의 주제는 지나치게 무겁다.

영화는 영화 말미에,내가 한때 너무나 좋아했던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 레나 올린을 등장시키면서 마지막 정리를 시도한다.

 

 

이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여배우 레나 올린은,한나가 연루되었던 죽음의 행진,300명이 불타 죽은 살해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했던 사람으로 등장한다.그녀는 당시의 이 경험을 책으로 펴내 베스트 셀러로 만듦으로 해서,묻혀질 뻔했던 당시의 사건을 재조명시키고 ,결국엔 한나를 교도소로 보내는 계기를 제공한 유태인 여성으로 등장한다.

 

한나는 마이클에게 남긴 유언을 통해,단 한 사람의 생존자인 그녀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남긴다.마이클은 그 돈을 전달하러 뉴욕까지 날아간다.도대체 무엇을 말하러 여기까지 왔느냐는 레나 올린의 질문에 마이클은 '한나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레나 올린은 단호하고도 냉정하게,'문맹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마이클은 한나가 '교도소에서 글을 배웠으며 자살한 이후 남은 모든 것을 당신에게 남겼다'라고 대꾸한다.마이클의 눈 안에 가득 담긴 눈물을 쳐다보며 그녀가 결론내린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입장에서는 이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말이다.그리고는 돈 대신 한나가 돈을 넣어두었던 차 깡통 만을 가지기로 한다.세대와 세대 ,집단과 집단 끼리는 결코 한나를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약간의 화해 제스츄어만은 보여주는 것이다.

 

그 때 마이클은,그렇다면 이 돈을 문맹퇴치를 위한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하며,유태인들 역시 그런 단체를 운영하고 있느냐고 묻는다.그 때 레나 올린은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그 돈을 그런 곳에 쓰는 건 당신의 자유이지만,적어도 유태인 사회에는 문맹퇴치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유태인들은 태생적으로 문맹이 아니라고,모든 유태인들은 글을 읽을 줄 안다고 그녀는 얘기한다.약간의 우월감과 경멸감을 내비치면서 말이다.

 

내가 알기로,원작엔 이런 종류의 대화- 유태인들에겐 문맹이 없다-가 쓰여지지 않았다.(기억이 부정확할 수도 있다) 만약 내 기억이 맞다면,레나 올린의 이 대답은 스티븐 달드리가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문장이다.유태인들에겐 문맹이 없어서 독일인들과 같은 대학살을 저지른 적이 없으나,너희들 독일인들은 문맹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런 무시무시한 잔혹극을 벌였다는,희생자의 야유로서 이 대화를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좀 웃기지 않나?.유태인들,현재의 이스라엘인들이야말로 학살 내지 전쟁,살인 내지 파괴라면 그렇게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이스라엘 군인들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 소식들은 그 어느 매체를 뒤져보아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소식이다.문자를 '모두' 깨쳤다는,문맹과는 거리가 멀다는 유태인들 역시 폭력과 살인에서 결코 자유로운 민족들이 아닌 것이다.

 

혹시,이 대화야말로 스티븐 달드리의 자기 변명 내지 자기 알리바이 만들기가 아닐까? 사람들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그 어떤 책들로부터도,그 어떤 역사적 기억으로부터도 반성을 얻지 못했다는,역사는 결코 진보하지 못했다는,따라서 다시금 한나의 인생을 다시 보아달라는.그런 종류의 은밀한 끼워넣기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함으로써,다시 관객들을 제3의 자리에 위치시키려는,나찌 독일 뿐만 아니라 모든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정치행동들에 대한 최후의 성찰을 가능케하려는 마지막 시도가 아니었을까?

이 억측 아닌 억측이 맞다면,결국 우린 이 영화에 한 줄기 미소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더구나 케이트 윈슬렛과 랄프 파인스가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는가,보너스로 레나 올린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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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컨디션 난조로 좋은 글을 쓸 수가 없었던 것 같다.읽는 분들께 사과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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