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디아나 존스의 4집 베스트 앨범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여름에,새로 나온 <인디아나 존스>를 보러 가는 것은 내겐 어떤 예의처럼 느껴졌다.무엇에 대한 예의냐고?
내 옛 시절,내 옛 청춘에 대한 예의다.확인해 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난 언제나 새로 나온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여름에 보았던 것만 같다.이제 마흔 살이 넘은 여름에 또다시 존스 박사가 찾아오다니..완전히 반갑지는 않았지만,어쩐지 꼭 만나야 할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공항에 도착했다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어떤 의미에서,난 이 영화가 아무리 재미가 없더라도 눈 감아 줄려고 작정했었다.왜냐하면 내가 보러 간 것은,나의 과거 나의 젊음,그리고 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솔직히 약간 오버스럽게 시작하는 것 같지만,정말로 난 그런 기분으로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엘 들어 갔다.아내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그녀가 기억하는 그녀의 '청춘시절 영화'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자,이젠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해리슨 포드는 확실히 늙어 있고,근육과 뱃살은 여지없이 늘어져 있다.(그래도 영화를 대비해서 열심히 몸을 만들었던 것 같다) 얼굴은 분장만으로는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주름들로 가득하고,인디아나 역시 굳이 젊은 척 하려들지 않는다.여전한 유머,그리고 여전한 펠트 모자와 채찍,그리고 특유의 씨니컬한 미소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월이 흘러 버렸다는 것을 영화 시작 5분만에 알아차려 버린다.
안다.나 역시 해리슨 포드처럼 늙어있다는 것을.잠시 쓰게 웃었다가, 그를 보며 보냈던 내 날들,구체적으로는 인디아나 존스의 1탄과 2탄,그리고 3탄을 그 누구 또는 누구들과 보았는지를 기억해낸다.그러나 상념에 잠기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언제나 그래왔듯이 스필버그는 관객에게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20년 전 만큼의 박진감은 없다.무언가 허술해 보이고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여전한 채찍질과 여전한 추격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영화는 예전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지만,스릴의 강도는 한참이나 적어져 있다.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우리는 그동안 인디아나 시리즈 보다 몇십 배 몇백 배 더 강하고 커다란 자극과 서스펜스에 시달려 왔던 것이다.그것은 해리슨 포드의 탓이 아니라 우리 탓이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아니,그러지 못할 것이다.자극과 어드벤쳐를 만드는 꿈의 공장장의 원조 중 하나가 바로 자신 아닌가..그는 그냥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굳이 흠 잡으려 들지 않는다.이것은,좋아하는 가수가 발매한 소위 '베스트 앨범'을 살 때의 심리와 비슷하다.앨범의 모든 트랙은 이미 한 번 씩은 들었던 노래다.그러나 베스트 앨범 안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노래들의 제목을 한 번만 훑어보기만 해도,우리는 과거의 향기들이 우러나옴을 느낄 수 있다.<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도 마찬가지다.그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어떤 가수들은 자신의 베스트 앨범에 꼭 한 두 개씩의 신곡을 끼워 넣는다.신곡이 아니라면 또다른 버젼의 옛날 히트곡들을 집어 넣는다.안 살 수 없도록 말이다.그러면 결국 그 앨범을 살 수 밖에 없다.눈과 주머니를 원망하면서도 손길은 이미 앨범 재킷으로 다가가고 있다.
4집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수록된 신곡은 뭘까? '크리스탈 해골'그 자체? 그렇담 뜨기는 글렀고..케이트 블란쳇? 그렇담 확실한 객원 featuring 가수를 모셔온 셈이고..샤이어 라보프? 잘 모르겠고..
아니,그것도 아니다.그들은 그냥 귀환한 것이다.좀 뻔뻔스럽게 웃으면서,우리 다시 왔다고 말이다..그것이 바로 영화에 있어서의 'old fashioned lover boy'들을 자극하는 것이다..
2.드디어 뭉친 전설의 듀오 <포비든 킹덤>
올드 보이들이 등장하는 또 하나의 영화가 있다.<포비든 킹덤>. 성룡과 이연걸,제트 리와 재키 챤.이제는 동네 바보 형처럼 보이는 외모의 성룡과 '비홍'시절의 결기를 기억해내기에는 이젠 약간 살이 찌고 불가사의하게 늙어 버린 (그런데 그가 1963년생이란다.) 이연걸.이들 역시 옛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는 매한가지다.
비록 이젠 둔해져서 옛날의 스피디함도 없고 주먹과 팔꿈치가 이루는 각도 역시 예각이 아니지만 영화 사상 최초의 그들의 맞대결은 여전히 흥미진진했다.약 6분간 이어진 그들 두 사람의 장면에서
이연걸은 가끔씩 황비홍 시절의 팔돌리기를 보여주고,성룡은 취권의 그 기이하고도 변칙적인 발놀림을 재현해내지만,우리는 이런 식의 대결이 그들이 이미 40대와 50대의 나이에 이르른 중년 남성들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는 것을 안다.(과거 같았음 그들은 함께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옛시절의 파워와 속도와 정확도가 유연함과 노련함,그리고 '영화'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그들의 지나온 시간들,특히 이연걸이야말로 홍콩 시절 마피아의 협력 요구에 감연히 거리를 두었던 '무인 곽원갑'이었다는 것,또한 성룡이야말로 헐리웃에 진출해서 오만가지 낮은 단계의 역할들을 견뎌 내며 지금의 위상을 만들어냈다는 것 때문에,그들의 대결을 바라보는 눈매는 계속 부드러워지고 다정해진다.
그들의 존재 뿐만 아니라,티나는 '디워삘'의 영상 때문에 점점 웃겨지는 이 영화 자체도 'old -fasioned' 자체에 대한 오밀조밀한 오마쥬하는 것이라는 분명해진다.이야기 구조의 엉성함,배우들의 연기가 주는 고개의 갸우뚱거림들 -특히 1인2역을 하는 이연걸- ,도대체 어느 나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국적불명의 산과 들이 시종일관 영화 보는 시선을 방해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으면서도,이런 어설픔 자체가 지난 수십 년간의 홍콩 무협영화로 돌아가기 위한 고전적인 뒷걸음질의 일환이라 생각하며,다 용서하고 다 덮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come drink with me'의 전설적인 무사 금연자의 몇십 년 만의 현신을 보게 되자 마자,'까짓 거 뭐 어때'하는 마음으로,영화에의 몰입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영화를 존중하게 된다.
따라서,결국 헐리웃이 흉내를 내려고 애쓰는 모든 무협 영화의 온전한 재현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히 속삭여 준다.(그것은 타란티노에게도 결국 마찬가지다.)
그 별 같은 dragon family (용가형제) 도 이젠 종막을 맞은 것이다.
이 종말과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혹시 old fashioned Hong Kong cinema의 종말? 아니,그건 아니다..
3.느리게 책 보기.<나니아 연대기;캐스피언의 왕자>
나니아 연대기는 물론 늙은 영화가 아니다.늙기는 커녕 어린 배우들이 출연하는 젊은 영화이다.나는 이 영화와 비슷한 종류의 판타지 영화들 -예를 들어 해리포터 시리즈- 도 챙겨 보았었는데,이상하게 그 영화들 보다 이 영화 <나니아>를 훨씬 좋아한다.그 이유가 아마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나니아>는 아주 잘 만들었거나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다.중간에 마녀로 나오는 틸다 스윈튼에게는 충분히 매혹당할 수 있지만,나머지 캐릭터에게는 그렇지 못하다.(아,내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웅장한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캐스피언 왕자의 규모는 1편 사자 옷장 마녀보다는 커졌다) 이야기 내부의 동력이 있어서 관객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도 아니다.또 이 영화의 제작진이 새로운 유형의 팬터지 물을 창조해낸 것도 아니다.
그래,그렇담 도대체 내가 (또 나의 동반자가)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것은,바로 이 영화의 상대적인 '느림'때문이었을 것이다.'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에 비교해보면,<나니아>는 느리고 또 느리다.해리가 기차 타고 호그와트에 도착해 있을 시간에,반지의 제왕의 호빗들이 벌판을 가로질러 골룸을 만나고 있을 시간에,나니아의 남매들은 그제서야 나니아의 숲속에 관한 오래된 기억들을 되살리고 있다.
대사의 양도 훨씬 많고 ,극 전개와 직접적인 가능성이 없을 법한 장면들까지 빠뜨리지 않고 유유히 지나쳐간다.돌고 돌고 또 돈다.어떤 때는 지루하다는 느낌까지 갖게 한다.
그러나 이런 '느림'은 ,우리가 이 영화를 '보는'것이 아니라 '읽고 있는' 같다는 착각을 갖게 한다.전집류의 동화책 중 한 권을 책장에서 빼들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나니아 남매들의 모험을 아주 차분하게 읽어나가고 있는 느낌이다.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은 동화책 사이사이에 끼워넣어져 있는 삽화들로 느껴지며,가끔씩 책장을 덮고 엄마 심부름을 다녀 와도,영화는 진행되지 않은 채 여전히 멈춰 서 있을 것만 같다.
이 느림과 느림이 연속으로 중첩되자,영화 말미의 '대전투 장면'조차도,여전히 느려보이고 책 페이지 속 한 장면 같이 느껴진다.빠름과 스펙터클에 익숙한 최근의 젊은 관객들이 가지는 <나니아>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지는 대목이었으며.무엇보다 나와 아내의 'old fashined'한 성향이 스스로 입증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이제 늙은 걸까? (아내는 '당신만'이라고 대답했다)
팁1) 이 '느림'이 혹시 매우 의도적인 것이라면,이 영화의 옥의 티같이 느껴질 정도인 지나친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집중에 그 혐의를 돌릴 수도 있을 것 같다.도대체 이 게으름뱅이 사자 아슬란은 어디서 휴가를 즐기다가 영화 마지막에서야 그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자신의 백성들이 그 숱한 싸움 끝에 죽고 다치고 깨지고 사멸해버린 연후에야,사자 아슬란은 단 한 번의 포효로 홍해의 기적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신의 섭리라고,당신은 그 사자의 얼굴에서 예수의 형상을 보지 못했느냐고 (실제로 보인다는 환각작용이 잠시 인터넷을 떠돌았었다) 누군가 물어온대도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왜? 진짜로 할 말이 없으니까.
(그런데 예수가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계시겠죠?)
팁2) <나니아>의 틸다 스윈튼은 <영 아담>에서의 이완 맥그리거와 공연하던 틸다보다는 아무래도 <올랜도>에서의 그녀에 더 가깝다.마녀 틸다를 계속 보고 싶다.계속...
4.폴 사이먼의 <OLD>
초여름의 내 영화의 키워드는 결국 'OLD'였다.늙어간다는 것,나이가 들어간다는 것,몸 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노쇠해져간다는 것,그거,물론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수 폴 사이먼은 그가 60세였던 2000년에 'old'라는 노래를 발표한다.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하는 그는 그 노래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무대에 들어와,그의 '늙음'에 환호를 보내지만,자신은 예수보다도 ,코란보다도,부처보다도 더 젊다고..또 인류의 역사는 이미 2700만년이나 흘러왔고,우주의 역사는 그 보다 더 오래 되었고,신이 그 창조 이전부터 존재해왔다면,신이야말로 늙었다고..따라서 우린 늙지 않았다고..신은 세상이 생기기도 전에 세계의 주형<MOLD>을 깔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고.신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그 사실 때문에 신은 늙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우리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 또한 늙지 않으리라는 것.
결국 늙음이란 '창조적 생산력',그의 예를 들자면 '노래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그는 얘기한다.멋지지 않은가,늙음에 대항하는 방식 치고는...
http://kr.youtube.com/watch?v=XP1jdwMnoHE
폴의 바로 그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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