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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옌데.<칠레 전투 3부작>

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by 폴사이먼 2007. 12. 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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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에 이어,1973년의 칠레 이야기를 또 한 번 쓰려 한다.물론 내가 칠레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것은 아니다.어쩌면 내가 아는 칠레는,고대문명의 흔적이라는 이스터 섬,유럽 리그와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몇몇 축구선수들,대형 마트에서 팔고 있는 칠레산 와인,몇 년 전 우리나라와 체결했던 FTA,지네처럼 생긴 길고 긴 땅덩이 등에 불과할런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칠레 이야기를 또 다시 써내려가려 하는 이유는 그들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때문이다.그의 인생 전체와 더불어,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불러 왔던 '대통령으로서의 삶'은,몇 명의 대통령을 보았었고 앞으로도 몇 명의 대통령을 보아야 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충분하다.이 지치도록 지겨운 대통령 선거의 와중에서 그를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칠레와 우리는 여러 모로 다르다.또 칠레 사회의 어떤 면과 우리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또는 허망한 일이다라고 반론하는 것도 전적으로 가능한 일이다.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그래도 아옌데의 이야기를 또 하는 이유는 예의 그 지겨움,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한없는 천박함과 그들로부터 풍겨나오는 값싼 향수 냄새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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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바도르 아옌데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세계최초로 출범한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의 대통령이었다.그는 대통령 당선 이후,그를 지지했던 민중들의 열렬한 뒷받침과 그를 싫어하고 그를 좌초시키려는 기득권층의 방해공작 사이에서,칠레 사회의 개혁을 진행하는 도중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를 정점으로 하는 군부의 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살해당한 인물이다.

 

그는 쿠데타 세력의 망명회유를 끝까지 거부하며 대통령 궁을 공격하는 쿠데타군(탱크는 기본이며 심지어 그들은 호크 전폭기까지 이용했다) 의 위협에,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해 준 소총을 들고 저항하다가 살해당한다.

 

살바도르 아옌데,그리고 그를 지지하고 그와 함께 싸웠던 칠레 민중들의 1970년에서 1973년까지의 투쟁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영화가 바로 <칠레전투>다.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을 위시한 칠레의 젊은 영화인 다섯 사람은 조명 장비 조차 제대로 없이 달랑 카메라 하나만을 들고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그 삼년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그들은 수도 산티아고에서부터 광산과 시골의 농장에 이르기까지 칠레 전역을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칠레의 기록을 역사 속에 남겼다.갑작스런 쿠데타의 와중에,이들은 기록된 필름을 6개월에 걸쳐 쿠바로 밀반출하고 ,이어 망명까지 한 끝에 1979년에야 편집을 마쳐서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그 <칠레전투 3부작>중 1부 <부르조아지의 봉기>가 시작하는 시점도 바로 피노체트 반란군이 대통령 관저를 폭격하는 그 순간이다.대통령 관저에서 피어오르는 포연은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가 자신들의 최고상관을 살해하려는 위협이자 하극상을 상징하는 것 같아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진다.부서져 내리는 대통령 관저의 벽들과 유리창들을 바라보며 관객은 충격을 받게 되는데,그 충격은 영화 초반부터 의외의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스릴러 영화의 관객들이 받는 충격과도 유사하다.단,이 다큐멘터리에서 사용되는 영상이 실제 장면의 기록 화면이어서,관객들은 눈 앞에서 실제의 살인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비극적인 쿠데타가 일어나기 3년 전,사회당 후보로 나선 아옌데가 공산당 후보로 나섰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 등 진보진영과의 후보 단일화 성공 등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으로 돌아간다.글자 그대로의 환희의 순간이다.

 

 그러나 이 3부작 다큐멘터리의 첫번째 부분의 제목은 '부르죠아지의 봉기'이다.부르죠아지로 표현되는 기득권층은 계속되는 탄핵과 고의파업 사보타죠,그들이 장악한 의회에서의 발목잡기고 아옌데의 개혁정책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카메라는 기득권층이 장악한 '시장'의 발목잡기로 브레이크가 걸려 블랙 마켓과 매급제에만 의존해야 하는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국회의 일정들을 보이콧하고 있는 야당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였다는 헨리 키신저를 필두로 한 미국과 CIA의 움직임을 차례로 보여준다.아옌데가 임명한 장관들은 거의 다 해임결의안을 통해 내각에 발도 못 붙이게 하고 개혁에 관한 법률들은 통과 시도도 못해 본 채 좌초되었다.파시스트들이 준동하는가 하면 우익들에 의해 장악된 군대는 의회에 의해서 시민사회에 대한 폭력적인 권한을 뒷받침할 법적인 근거까지 확보한다.

 

영화는 아옌데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육성을 들려주고 파시스트들의 폭력시위와 그에 맞선 아옌데 세력의 맞시위에도 눈을 돌린다.차분하게 그 때 당시의 상황들을 따라가는 것이다.언론은 끊임없이 아옌데를 지지하는 대학생들과 시민사회의 시위를 폭력과 무질서로 몰아가고,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아옌데 정부를 철저하게 무능한 정권으로 몰아세운다.(머,두 말 할 것도 없는 조중동의 수법이다.이런 종류의 테크닉엔 국제적인 전통이 있는가 보다)

 

미국 극우단체의 원조를 받는 반 아옌데 성향의 운송노조는 반정부 파업을 일으키고 미국은 칠레 경제를 고사시키기 위해 칠레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구리의 시장가격 폭락을 목적으로 미국의 구리를 국제시장에 내놓고,아예 칠레에 들어가야 할 의약품이나 산업장비의 수출 조차도 차단시켜 버린다.모든 부르죠아지들이 연대해 칠레 민중과 아옌데의 숨통 자체를 겨누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아옌데는 미국,그리고 기득권 세력에게 완전히 무릎을 꿇으려 하지 않는다.그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엘 달려가 그들을 설득하고 끊임없이 국민과 대화하며 민중들과의 채널을 유지했다.

 

 

 

 

그는 극심해져버린 빈부의 격차 (지금식으로 말하면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길 원했으며,자신이 끝까지 고수했던 사회주의적인 대의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무엇보다 그는 그의 조국 칠레의 대미종속적인 경제구조를 고쳐보려는 시도를 빠뜨리지 않았다.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그랬지만,그들의 경제구조는 기득권층과 그들의 모국인 미국을 위해 완전히 왜곡되어 있었다.특히 칠레의 주된 수출용 지하자원인 구리의 탄광들은 대부분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어서,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옌데는 고감하게 구리 광산을 국유화하고 노동자들의 활동성을 강화시키믄 방향의 개혁을 단행했다.이것은 기득권 계층과 미국의 직접적인 이윤을 건드리는 조치였으며,이것으로부터 '부르죠아지의 저항'이 시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극우 계층들은 진지전 뿐만 아니라,실제의 물리력과 폭력,납치와 살인 등의 방법으로 봉기를 진행했다.대부분은 미국과 연계되는 일이었다.아옌데를 지지하는 쪽에서도 그들이 만든 정부를 끝까지 지키겠노라고 맞서서 칠레 전역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2.칠레 전투 2부 <쿠데타>

 

군부가 행동을 최초로 시도했던 것은 6월이었다고 칠레 전투 3부작 중 두번째인 <쿠데타>는 얘기한다.심지어 군부는 쿠데타의 예행연습과 사전 준비로서의 암살과 납치 (아옌데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에 대한),그리고 좌익노동자들을 살해하기까지 한다.마치 쿠데타 성공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암매장하고 고문한 것들을 예고하듯이 말이다.(실제로 쿠데타 이후 7일간 약 3만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실종되었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아옌데는 실책을 저지른다.군부의 일부 인사들을 정권 안으로 끌어들여 포섭하려 했고 (피노체트는 쿠데타 한 달 전에 아옌데가 임명한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아옌데와 피노체트의 모습이다)

 

 

야당인 기독교민주당엔 대연정(이것도 많이 듣던 말이다)을 제의했다.보수층에게 우호적인 손짓을 보내기 위해 보수인사를 내각에 기용하기도 했다.영화에선 그 때 내각에 잠시 합류했던 보수인사인 카톨릭대 총장의 인터뷰가 나오는데,그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아옌데의 정치는 코드의 정치이자 증오의 정치'라는 소리였다.경악할 만큼 우습고도 슬픈 장면이었다.

 

아옌데는 심지어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항상 기득권자의 편이었던 법원을 옹호하기도 했는데,오히려 나중에 야당은 '정부가 헌법을 지키지 않는다'며 공격했다.슬픈 코미디는 세상 어디에서나 반복되는 모양이다.결국 아옌데가 원했던 것은 '혁명'이 아니라 '개혁'이었고,'정면돌진'이 아닌 '우회적인 돌파'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겠으나,그가 선택했던 이런 노선들이 과연 옳았는가,하는 것이 지금껏 논란이 되오고 있는 것이다.한편 기득권 계층의 강한 반격에 대항하여 비무장한 민중들 역시 투쟁을 전개한다.물리력과 폭력을 가진 상대방의 위협이 언제나 불안하긴 했지만,<칠레전투> 속 민중들은 다양하게 저항한다.

 

생필품과 물자의 부족에 직면한 그들은,스스로 조합식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배급을 통해 부족한 물자를 적절하게 배분하여 위기를 타개해 나가려 하였으며,그 공동체는 경제적인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초보적인 정치결사에까지 이르게 된다.꼬뮨이 형성되는 것이다.

 

반면 아옌데는 끝까지 합법적인 방법을 고수한다.그는 자신의 정책과 재신임을 걸고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것이다.(이 '재신임'도 익숙한 말이다)

쿠데타가 일어나기 7일 전 아옌데와 그를 지지하는 민중들은 칠레 역사상 최대로 기록된 민중집회를 연다.(서울의 봄을 연상시킨다) 군부로서도 절대절명의 상황이다.비무장한 민중들과 총과 탱크로 무장한 세력들간의 격돌이 임박한 시점이다.

 

 

그리고 쿠데타가 발발한다.9월 11일 아침 아옌데는 국민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보낸다.

 

결국 아옌데는 타도당한다.그를 위해 마지막 결전을 단행했던 민중들 역시 죽고 고문당하고 추방당했다.칠레의 사람들은 모두 다 죽은 듯,전멸당한 듯 보였다.

 

쿠데타 성공 후 군부는 자랑스레 인터뷰를 갖는다.그리고 <칠레전투>의 2부인 <쿠데타>가 막을 내린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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