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란 시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쓰고 싶은 영화의 리뷰가 자꾸 자꾸 밀려도 어떻게 접근도 해 보지 못한 채 막 시간이 흐르고 있다.인류가 발명해낸 것 중,시간처럼 상대적인 것은 다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내 머릿속에 들어있는,시간이 지나면 잊혀져버릴 영화 리뷰들이 가련하게 느껴진다.(결국 바쁘다는 소리다.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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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한 영화가 바로 <화려한 휴가>이다.아마 제 때 리뷰를 쓸 수 있었더라면,그 영화의 화법이나 주제들,현재의 5.18,그리고 그 5.18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대선 후보들에 대해서 썼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고 <화려한 휴가>도 과거의 한 영화로 묻히게 될 뻔 했다.그런 내게 이 영화를 다시 불러낸 것은 임창정이 주연한다는 영화 <스카우트>였다.1980년 그 때를 배경으로 해서 광주와 선동렬이 소재가 된 영화이다.
1.호남 선동렬 김대중 그리고 광주
1980년,선동렬,,그렇다.여기에 김대중을 보태면 바로 광주다.흔히 광주를 대변한다는 정서,민주화, 정의 민중의 저항, 호남고립, 차별,이런 것들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존재하는 광주의 대표정서가 바로 야구와 김대중이다.그러나 나는,'광주항쟁'에서 조차 김대중이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크다고 생각한다.김대중에게 투사된 호남민중들의 염원 속엔,수백년 동안의 차별과 20세기 후반 들어 눈에 띄게 자행된 고립 속에서 느끼는 그들의 모멸감이 엿보인다.그 김대중이 결국 그들에게 어떻게 했는가는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물론 김대중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그는 정말로 오랫동안 우리 현대사 내부에서 존재해왔다.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다만 한 가지, 1970년대의 김대중을 2007년의 김대중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70년대의 그는 충분히 진보적이고 앞서나간 정치인이었다고 기억된다.그리고,그토록이나 많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덧씌워진 이후에도 살아남은 정치인은 아마 그가 유일할 것이며,그 뒷면엔 호남 사람들의 절박한 염원과 성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1980년 이후의 호남엔 김대중이라는 키워드와 더불어 야구란 키워드가 상존했다.프로야구에서의 그들의 연승신화에는,행운이나 실력같은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 다른 요소들이 존재했었다.지금도 아주 가끔씩 호남을 연고로 한 팀들이 벌이는 시합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기운들이 존재한다.(특히 야구에서 그렇다) 김대중의 패배 또는 수감 생활 동안에 그 쪽 지역민들의 자존심을 지탱해주었던 것은 무엇보다 해태 타이거즈,그리고 선동렬로 대표되는 야구가 아니었을까 싶다.따라서 김현석 감독이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 <스카우트>에서 광주항쟁과 선동렬을 소재로 선택한 것은,그가 무엇을 의도했던지 간에 어쩌면 참으로 적절한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광주의 영화들
나는 지금 <스카우트>에 대한 영화 리뷰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사실을 말하자면 그 영화를 보지도 못했다.다만 <스카우트>가 일깨워준 몇 달 전에 본 영화 <화려한 휴가>를 얘기하고 있다.아,참 이 영화를 다시 생각나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 또 있다.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엉뚱한 자들의 모임이라는 �을 가진 '전사모'회원들이 그들이다.그들이 간간이 부려대는 히스테리 역시 이 영화를 잊지 않게 해 주었다.고맙다..
그런데 1980년 광주를 영화화한 것은 <화려한 휴가>가 처음이 아니다.아주 예전 이정국 감독이 만들었던 <부활의 노래>라는 영화가 있었다.1980년의 전남대학교의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과 '들불야학'이 소재의 모태가 된 듯한 이 영화는,1980년대의 운동권적인 정서를 담뿍 담고 있었다.죽은 자와 산 자,떠난 자와 남은 자,맞서 싸운 자와 도망친 자를 대비시키는 익숙한 양극구도였었다.지금은 사라져버린 연기자인 이경영이 광주항쟁 때 사망하는 야학선생님 역을 맡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르면,장선우 감독이 <꽃잎>을 만든다.이미 <모래시계>같은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여러 번 다루어져서 당시 역사의 줄거리가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탓인지 혹은 아닌지,이 영화는 광주의 서사보다는,개인의 뇌리에 깊은 상흔을 남긴 정신적 트라우마를 다루었었다.크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한편으로는 어두웠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아직 관객들이 그 당시의 비극을 정면으로 대할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 <꽃잎>에는 지금은 우리 영화계에서 유명해진 몇몇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한다.설경구 추상미 박광정등이 주인공 이정현의 흔적을 찾아헤매는 (남은 자이지 빚진 자로서) '우리들'역으로 출연했었고,허준호와 명계남과 안석환이 단역으로 등장했다.또 <화려한 휴가>에서 감초 같은 조연으로 나왔고 <스카우트>에도 나온다는 박철민이 이 영화 <꽃잎>에서도 얼굴을 보인다.박철민은 아마 '5월 광주'를 다룬 영화들의 증인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광주를 다룬 <화려한 휴가>는 전작들과는 다른 차이점을 갖는다.최근의 한국영화가 그렇듯이 관객의 정서를 미리 예측하고 거기에 영합하거나 조응하려는 시도들이 있고,무엇보다 대규모의 상업적인 매니지먼트가 가미되어서 10년 전 영화들에 비해 훨씬 덜 무겁게 느껴진다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그러나 뭐,이런 얘길 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정으로 <화려한 휴가>와 '광주'가 비교되어야 할 곳은 칠레의 산티아고,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해 1973년 9월의 산티아고와 칠레를 다룬 일련의 영화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영화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 It's raining on Santiago > 1975년 헬비오 소타 감독
< 칠레전투 3부작>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
그리고 미겔 리틴의 1985년 영화 <칠레의 모든 기록>이다.
3.칠레,산티아고.1973년 9월 11일
이 세 영화 중 가장 드라마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화는 첫번째 영화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이다.나머지 영화,특히 <칠레전투 3부작>은 칠레라는 사회의 몇 년 간을 완벽하게 조망해낸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는 1973년 9월 11일 칠레 사회를 강타했던 군부의 쿠데타 장면으로 시작한다.영화는 쿠데타 당시의 실제 자료화면과 영화 장면을 교대로 뒤섞어놓아서 가끔 오싹하기 이를 데 없는 긴장감을 맛보게 한다.아무래도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군부'나 '쿠데타'따위의 단어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보게 되면 묘한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어떤 집단적인 정서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모양이다.
산티아고에 있는 대통령 관저를 향해 진군하는 탱크들과 군인들을 바라보면 어쩔 수 없이 박정희와 전두환을 떠올리게 되고,그들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물론 군사쿠데타는 쏙 빼놓고 있지만) 인물들이 곧 정권을 잡아서 통치하게 되는 이 그지같은 세상에 탱크의 포신을 돌려놓고 싶어진다.
저 산티아고에서 쿠데타를 주도했던 피노체트,수십년의 독재 끝에 결국 영국에서 체포되어 칠레로 강제송환되었던 피노체트가 가장 존경했던 정치가가 바로 박정희이다.세계 최초의,선거로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그가 했던 대국민선언을 함 보자.
오늘 군이 봉기한 이유는 이 혼란에서 조국을 구하겠다는 애국심뿐이다. 조국은 혼란 속에서 살바도르 아옌데의 맑스주의 정권에 유린당했다. 혁명위원회는 사법권과 언론 통제권을 갖게 되며 다음 조치가 있을 때까지 국회는 휴회한다. 이상!
그들의 회견 모습이다.저 선글래스와 더불어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가 아닌가? 박정희가 쿠데타를 성공한 이후 했던 말들과 거의 흡사한 강아지 소리다.표절에 가깝다.피노체트는 박정희에개 로열티라도 지불했던 것이었을까? 1979년 박정희가 총살당했을 때 칠레의 전국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할 것을 고려했을 정도로,피노체트는 박정희의 매니아였다.(설마 이 이야기를 듣고 박정희의 국위선양에 가슴뿌듯해 할 인간은 여기 없겠지?)
쿠데타 장면 이후 영화는,칠레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던 1970년으로 돌아간다.인민전선의 당원들은 공장의 넓은 홀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앞날의 개혁을 논하고 있다
.그들은 맥주잔을 부딪치고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이제 장관이 될 동료에게 농담을 건넨다.(저기 서 있는 사람이 이 영화에 우정출연한 프랑스의 명배우 장 루이 뜨랭띠냥이다)
그 다음 카메라는 바로,좌파에게 정권을 빼앗기게 된 기득권층,군부와 자본가들과 외세(이 나라에서의 외세란 오직 한 나라,미국이다) 결탁세력들을 향해 넘어간다.기독교민주당의 정치가들은 - 우리는 그를(칠레의 새 대통령 아옌데를) 결코 편히 살아가게하지 않겠소- 라고 이죽거리며 사용자들의 파업과 사재기를 통한 물가불안 아직도 그들이 다수파인 국회를 통한 사사건건 발목잡기 그들이 장악한 보수언론을 통한 지속적인 불안감 조성 등 끊임없는 사보타지와 방해공작의 계획을 세운다.(머,우리에게도 낯익은 광경이다)
영화는,보수파가 정권을 이양하는 그 순간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며,그 배후인 미국과의 연관성을 확실하게 제시한다.미국대사는 아예 쿠데타를 제안하고 미국 CIA는 쿠데타의 구체적인 계획을 직접 만들어낸다.
반면 우리의 광주영화들엔 바로 이런 것들이 없다.<화려한 휴가>뿐만 아니라 <부활의 노래>와 <꽃잎>역시 그랬다.아직도 <화려한 휴가>는 개인의 비극에 집중하며 맑디 맑은 화면들과 순진한 청춘남녀들의 에피소드들로 영화를 시작한다.마치 관객들의 눈치를 보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무려 27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비극은 개인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비극의 원인은 미궁 속으로 스며든다.
물론 이런 전략 역시 유효할 때가 있다.딱딱한 이론적 설명이나 논리의 유추보다도 감성적인 터치 쪽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27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나 길다.현재의 관객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휴가>보다는 강풀의 <26년>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많은 제약들을 차치하고 생각해 보더라도,최근 우리 영화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매끈하게 가공된다.관객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도가,선량함을 넘어서서 구역질을 향해 다가간다.관객에게 익숙한 문법들을 제시하고 그 문법의 틀 안에서 재주만 부린다.선이 굵은 영화들에겐 설 땅 조차 마련해주지 않는다.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는 칠레를 다룬 앞서의 세 영화들 중 가장 선이 굵지 않은 영화이다.그런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역시 칠레의 사회주의 정부와 대통령 아옌데를 지키기 위한 칠레 민중들의 노력을 눈물겹게 보여준다.
쿠데타군의 출동을 거부하다가 총살당하고 마는 중위에서부터 '나는 내 위치에 있어야 한다'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공장노동자,군대에게 저항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체포된 군중들 사이에서 '단결하라 (벤세레모스)'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팔목이 부러진 채 죽음을 당하는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사람들의 장렬한 최후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생된 그들이 왜,무엇 때문에 그렇게 죽어가야 했는가를 설명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다.그들의 대의는 무엇보다 그들의 '계급'과 '연대'였다.그들이 지켜내려 했던 것은 그들의 개혁과 혁명이었고,글자 그대로 죽음이 씨앗이 되어 그들의 정신이 끈을 이어왔으며 칠레의 민주주의는 결국 부활하는 것이다.
결국 칠레의 민중들은 1980년대의 기나긴 민주화 투쟁을 거쳐 1988년의 국민투표 승리를 통해 아일윈을 대통령으로 만든다.2000년엔 칠레사회당의 라고스가 정권을 잡고 현재의 대통령인 베첼레트 역시 사회당에서 배출되었다.물론 미국식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따르고 있는 칠레의 정부를 온전한 좌파정부라고 부르기는 어려울런지도 모른다.(챠베스의 나라는 칠레가 아니다) 그러나 1973년의 희생이 아니었더라면,적어도 쿠데타 주모자인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체포되고 칠레 본국으로 송환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그 자신이 쿠데타의 희생자이자 유가족인 베첼레트 대통령이 과거사 청산적업을 벌여가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칠레의 현대통령이다.그녀의 아버지는 아옌데를 지지하는 고급장성이어서 쿠데타 이후 모진 고문 끝에 사망했고,이 사람 역시 고문 끝에 망명한 후 다시 돌아와서 정권을 쟁취한다.)
그리고 여기엔 동지들의 희생을 정확하게 그려낸 영화인들의 몫이 있었다.칠레의 영화인들이 당시 희생의 의미를 확실하게 규정해냈기에,30년도 더 지난 지금 이 영화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다.
4.영화적인 광주의 죽음
반면 광주를 다룬 우리 영화들엔 광주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죽어갔는지가 분명치 않다.<꽃잎>의 광주는 광주를 다룬 것이 아니라,광주 이후의 정신적 외상을 개인의 레벨에서 다룬 것이고,
<화려한 휴가>에서의 시민들의 죽음은 멜로와 개그에 가려져 있다.만일 <화려한 휴가>를 외국인들이 보게 된다면 -오늘 내가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를 다시 보았듯이- 김상경과 안성기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은 아마 김상경은 동생 이준기의 죽음 때문에,안성기는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군조직에 대한 배신감과 그의 원칙 때무에 희생을 택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화려한 휴가>속엔 박정희의 지루하고도 지나친 장기독재와 각종 인권유린 차별과 소외의 사회상이 그 어느 곳에도 그려져 있지 않으며 박정희와 피노체트의 똘마니깜도 안되는 전두환 일당의 개입 마저 역시 미미한 흔적만을 묻히고 있을 뿐이다.
물론 당시의 광주시민들이 정말로 무엇 때문에 봉기했는가를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당시의 민주화의 열기와 호남차별 그리고 김대중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당시의 광주시민들이 '계급'에 기반한 싸움을 벌였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그러나 칠레의 영화인들이 목숨을 건 망명 끝에 진실을 알린 반면,한국의 영화인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데다가 표면적인 표현의 자유를 획득한 지금에 와서도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혹시 이명박과 이회창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눠가지려는 지금의 우리나라와,과거사 청산에 열심인 베첼레트를 대통령으로 가진 칠레를 만들어낸 것은 이런 차이가 아닐까?
단순한 비교는 물론 어렵다...하지만 과거사 청산 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라 치고는 참 말이 많기도 많은 것이다...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에서는 가장 가슴아프면서도 감동적인 장면들이 두 군데 있다.첫번째는 대통령 아옌데가 쿠데타 군에 의해 죽음을 맞기 얼마 전,국민들에게 대국민 연설을 하는 대목이고
또 한 군데는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가 체포된 연후,체육관에서 벌벌 떠는 대중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그의 노래 '벤세레모스'를 부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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