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 천국>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을 고르라면,영화 감독이 된 토토가 알프레도 아저씨가 남겨놓은 자투리 필름-그러니까 카톨릭 신부가 음란한 장면이라며 강제로 삭제하라고 명령했던 '야'한 장면 모음- 을 차례차례 자신의 영사실에서 돌려보는 장면이다.
(바로 이 장면이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좋았던 한 때인 시네마 천국을 돌아보는 이 장면 - 주인공의 눈에서는 회한과 감동의 눈물이 차오르고 영사실의 스크린에서는 키스와 유혹의 화면들이 연신 교차된다 -에 세번째로 등장했던 클로즈업된 입술은
오늘의 영화 <무법자>에 등장하는 제인 러셀의 입술이다.제인 러셀은 <무법자>에서 엄청난 발연기를 관객에게 선사했지만,이 장면 하나로 세계 영화사의 섹슈얼한 계보 한 구석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새겨넣었다.또한 이 영화 <무법자>가 기억되고 있는 이유 역시 제인 러셀의 육감적인 입술과 터질 듯 풍만한 가슴 때문일런지도 모른다.영화적 완성도도 매우 떨어지고 심지어 영화적 흥미까지 끌지 못하는 이 영화 역시,쟝르로서의 웨스턴에 자잘한 혼합물 -그러니까 섹스- 을 가미했다는 이유로만 기억된다.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다.강조되는 것은 오로지 제인 러셀의 육체 그 자체이다.홍보용 스틸 사진도 모두 다 제인 러셀이었을 것이다.
(뭐,대략 이런 사진..)
이런 매우 영화적이지 않은,그러면서도 매우 영화적인 시도를 했던 장본인은 바로 미국의 기인 하워드 휴즈다.(마틴 스콜세지가 <aviator>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일대기를 그려낸 하워드 휴즈,바로 그 사람이다)
하워드 휴즈는 헐리우드의 치과 병원 접수계에서 일하던 제인 러셀을 우연히 픽업해 <무법자>로 데뷔시켰고 후에 제인 러셀은 휴즈의 수많은 헐리우드 연인 중 하나가 되었다.휴즈가 러셀을 부각시킨 방법은 그녀의 육체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었다.심지어 휴즈는 러셀의 가슴을 강조하게 위해 특수한 브래지어를 제작하기까지 했다.어쩌면 이런 세심한 집념이야말로 휴즈의 영화적 무기였을 것이다.
영화 포스터와 제인 러셀만 고려한다면 이 영화를 웨스턴 없는 웨스턴 영화라고 바라보기 쉽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건 파이트(gun-fight) 도 있고 추격전도 있고 보안관과 무법자 사이의 갈등도 있다.있을 건 다 있다.그렉 톨런드(Gregg Toland)의 카메라는 깊은 서부의 풍광을 촬영할 때도,또 좁은 공간에서 인물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들을 촬영할 때도,한결같은 유능함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부영화음악의 레전드인 빅터 영(Victor Young)의 솜씨도 수준급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정말 특이한 점은 매우 엉뚱한 곳에 있다.그것은 제인 러셀이 연기하는 여성 캐릭터 리오를 둘러싼 세 명의 남성 캐릭터들이다.전설적인 보안관 팻 개럿(Pat Garret -<역마차>의 술주정뱅이 의사 토머스 미첼이 연기한다),서부 전설에서 보안관 팻이 처치한 것으로 알려진 역시나 전설적인 무법자 빌리 더 키드 (희한하게도 휴즈는 이 배역에 굉장한 꽃미남 잭 부어텔을 캐스팅했다.그리고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리고 웨스턴 영화의 단골 캐릭터 닥 할러데이 (존 휴스턴의 아버지이자 안젤리카 휴스턴의 할아버지인 -아,이거 맞나? - 월터 휴스턴이 연기한다.그의 미소는 훗날의 해리슨 포드의 미소와 완벽하게 유사하다). 이 세사람이다.
이렇게,동시대인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적어도 닥 할러데이는 확실히 나머지 두 명과 동시대인이 아니다.- 세 사람을 한꺼번에 붙여놓은 것이다.이건 거의 만화적인 설정인데 흡사 서부영화 캐릭터들을 패러디하는 듯한 느낌 마저 갖게 한다.그런데 이 세사람은 다른 영화라면 내러티브의 목표와 중심점이 되기 쉬웠을 리오-제인 러셀-와 완전히 따로 논다.이 세사람은 제인 러셀은 완전히 제껴놓은 채,자기들끼리의 3각관계를 해결하기에 여념이 없다.즉 꽃미남 빌리 더 키드를 사이에 둔 남성들 사이의 복잡한 삼각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닥 할러데이는 영화 이야기 구조상으로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빌리 더 키드에게 무작정 이끌린다.여기엔 몇몇 매개 - 빌리가 훔친 닥의 말,닥의 여자였던 리오-가 있긴 하지만,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나이든 남성의 꽃미남 남성에 대한 이런 이끌림은 어쩔 수 없이 동성애 코드를 생각나게 한다.여기에 보안관 팻은 남성들간의 사랑에 대한 방해자처럼 묘사된다.그는 자신의 오랜 친구 닥 할러데이가 빌리를 변호하며 편을 들자 확실하게 토라지기도 하고,그가 빌리와 닥을 추격하는 것 역시 잃어버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몸놀림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기 이들 간의 스토리를 묘사하는 방법 역시,선 굵은 남성들간의 의리나 복수,또는 권력 구조등을 통해 풀어가지 않는다.그들은 마치 헐리웃 특유의 스크루볼 코미디의 그것처럼 끊임없이 말다툼을 벌이고 재담과 농담을 던지고 세력의 균형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최후의 해피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헐리웃 연인 커플처럼 움직인다.(이런 구조를 차용한 사람은 어쩌면 이 영화를 최초에 연출하다가 휴즈에 의해 해고 당한 하워드 혹스 감독일 수도 있다)
(이렇게 두 사람은 계속 툭탁거린다.총 쏠 생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되자 오히려 여주인공인 리오가 영화 내부에서 그 의미를 잃고 존재감이 축소되고 말았다.이 이상한 3각관계가 리오의 섹스 어필을 허망하게 만들고 그녀의 존재를 불필요하게 끼어든 미아 정도로 격하시켜버리고 말게 된 것이다.심지어 리오는 나중에 닥 할러데이와 빌리 더 키드 관계의 단초를 제공한 그들의 애마 보다 더 못한 존재로 떨어져 버린다.빌리가 닥의 여자인 리오를 차지했을 때 닥은 특별한 항의 표시 조차 하지 않는다.또한 빌리 역시 리오가 닥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미리 알았더라면 리오와의 관계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리오 대신 예의 그 말을 선택한다.
리오가 빌리에게 이끌리는 계기도 사실 분명치 않다.닥이 빌리를 구한 다음에 리오에게 간병을 맡기게 되는데,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러니까 갑자기 천사로 변신하여- 리오는 'I'll get you warm 운운하며 옷부터 벗어제낄 궁리를 하는 것이다.그럼에도 그녀는 말 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어쩌면 서부 여인들의 실제 가치가 그랬을 런지도..- 장난스런 배신자이자 무법자 포획의 미끼로만 이용된다.
이 모든 과정들은 매우 조잡하고 자잘하다.결국 영화는 영화적 해결을 위해 닥 할러데이를 팻 개럿의 총에 죽게 하고 -이 죽음은 거의 자살에 가깝다- 죽어서도 닥은 빌리를 위해 희생하고 - 묘비에 닥 대신 빌리의 이름이 쓰여지면서 빌리를 자유롭게 하고- ,결국 빌리 더 키드와 리오를 함께 떠나게 한다.(여전히 문제의 말은 함께이다..) 중노년 남성 캐릭터의 희생을 통해 사랑이 맺어지고 정의가 구현되고 전설이 완성되고 남성들 사이의 의리 마저 훼손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냥 영화적 제스추어이다.그래서 여운도 없다.그냥 그렇게 끝난다.결국 영화는 영화를 구성했던 개인들의 이름만 남겼다.하워드 휴즈 월터 휴스턴 빅터 영 그렉 톨런드 그리고 제인 러셀..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물론 제인 러셀,그녀의 입술이다.기억이 승자인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 기행2.-베레니스 (라울 루이즈 1983) (0) | 2018.05.12 |
---|---|
전주국제영화제 기행-Routine.ticket to the another world (0) | 2018.05.12 |
옥스 보우 인서던트 (the ox-bow incident 윌리엄 웰먼 1943)-서부의 이면 (0) | 2017.01.18 |
모호크족의 북소리-작은 창세기2 (0) | 2017.01.16 |
모호크 족의 북소리(1940.존 포드)-작은 창세기. (0) | 2017.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