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14년 영화에는 호텔이 있다2.-<메콩 호텔>Part1.-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신의 영화들/이백 편의 영화

by 폴사이먼 2014. 12. 15. 15:52

본문

ㄱ.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그리고 <메콩 호텔>이 있었다.'미래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타일랜드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올해의 그는 (물론 이 영화 자체는 2014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우리나라에 개봉했을 때가 2014년이다) 태국과 라오스의 접경인 메콩 강변의 어느 호텔로 갔다.그는 거기서,그가 예전에 그러했듯 시간과 시간들 사건과 사건들,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뒤섞고,뒤섞인 결과물들을 관객의 눈 앞에 불규칙하게 제시해서,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어떤 호텔을 세계의 어떤 생물군들이 한꺼번에 모인 불가사의한 장소로 제시했다.

 

 

 

우주와 세계의 근본적인 양상들이 고요한 강가를 배경으로 때로는 힘없이,때로는 가슴 아프게,또 때로는 난해하게 출현하고 있다.그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의 영화 양상과 정반대이면서도 유사한 면모를 갖는다.심지어 어떤 의미에서는 두 영화가 그리려고 했던 것은 동일한 세계였다고 할 수도 있다.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움직이는 생물들의 근본적인 존재 양상을 묘사한 것이다.다만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인터스텔라>는 관객의 눈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그 틀 내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인터스텔라>는 관객에게 우주라는 시각적 체험을 거대하고 드라마틱한 구도로 선사했지만,<메콩 호텔>은 그럴래야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나아가서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는 것,또 나아가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정도의 확실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터스텔라>가 현대 영화의 모든 테크닉들과 아이디어들과 영화인들의 천재성과 노력이 결합된 거대한 성 소피아 성당이라면,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메콩 호텔>은 그 오랜 세월 동안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고 버려져 있던,현대인들의 기술적인 진보와는 거리가 먼,조용한 앙코르와트의 폐허 일부분 같은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올 봄 어느 날,나는 오로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에 대한 팬심 때문에 이 영화를 보았다.처음엔 '소품'격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다.그러나 곧 정신을 바짝 차렸다.그의 영화가 관객을 공략하는 방식,대단히 기습적이고 흘러가는 강물 위에 고요히 떠 있는 안개처럼 흐릿해진 대기 한가운데서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결정타를 날릴 지 모른다는 그의 영화 시스템 때문이었다.사실 그랬다.그동안 보았던 모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다시 볼 때마다 달라졌다.

 

<열대병>과 <친애하는 당신>의 숲은 종교적인 비의의 장소에서 존재의 실종을 다루는 세상 바깥의 숲속까지 그 의미망이 넓게 번져있었고,<징후와 세기>의 유랑하는 카메라는 <엉클 분미>에 이르러서 삶과 죽음의 저 너머를 향해 침투해 갔다.그의 세계에 항상 등장하는 배우들 역시,한결 같은 인물들을 묘사하는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번쩍 변이해 자신의 시간과 존재를 탈출해서 과거와 현재,이승과 저승을 넘나들었다.일단 진입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한 번 들어갔다 하면 좀체로 나오기 힘든 미로,험하고 더럽고 먼지만 풀풀 날리는 길 양 옆에 마약 같은 향기를 내뿜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한 yellow brick road가 바로 그의 영화였다.

 

나는 그의 영화를 대할 때마다 언제나 한 번 더 그의 영화를 보았고 -이런 식으로 한 영화를 두 번 보는 일은 내게 너무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독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치 않은 글들을 남겼다.이것이 그 글들의 흔적이다.

 

<열대병>과 <친애하는 당신>에 대한 글들-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627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628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629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630

 

<엉클 분미>와 <징후와 세기>에 대한 글들-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696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697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698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699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700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701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702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703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704

 

(아이고,정말로 많이 썼다..)

 

나는 이 글들을 쓰면서 ,실제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관객의 몰이해와 오독의 가능성에 크게 괘념치 않는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었다.오히려 그는 오독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어왔고 오독이야말로 영화의,혹은 현대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고 역시나 내 마음대로 생각했었다.<메콩 호텔>을 분석하면서 더 얘기하겠지만,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다의적이다.그 어떤 장면에도 확실한 시공간적 배경을 부여하기 힘들며,또 그 어떤 장면도 영화의 맥락과 내러티브에서 완전히 이탈해버릴 가능성을 갖고 있다.

 

A라는 장면은 15세기의 장면이 될 수도 있지만 21세기의 장면이 될 수도 있다.B라는 장면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한 리허설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리허설 이후의 실제 연기일 수도 있다.C라는 장면에서 대화했던 두 사람은 비슷하거나 동일한 공간에서 찍힌 D라는 장면에서 한 쪽이 이미 죽었거나 둘 다 죽어 있는 존재일 수도 있다.물론 시나리오를 쓴 아핏차퐁의 마음 속에,또 시나리오의 초안을 잡았던 그의 두뇌 속에는 이 영화에 대한 그만의 진실과 이야기가 있긴 있을 것이다.그러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의도된 혼란상 때문에 관객 각자의 진실 혹은 독해에 의한 또다른 세계가 축조되고,그렇게 세워진 우주 역시 만만치 않은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도록 이 영화는 디자인되어 있다.따라서 하나의 메콩 호텔은 수백만 개의 메콩 호텔로 분화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그래서,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미래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포스트 모더니즘의 경박성을 훌쩍 뛰어넘은..

 

이런 얘기까지 진전할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우리가 결코 타인의 존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우리는 그저 가상의 어떤 공통분모들 - 언어라는 질료,문명의 교육,인간이라는 동종 동물에 대한 막연한 신뢰 - 때문의 서로의 표현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심지어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정말 그럴까? 지금 내 눈 앞에 서 있는 타인이 정말 나와 동일한 시간과 공간 안에 서서 나를 마주 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의 나이는 정말 27세일까? 실제로는 650세인 그의 나이를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아는 나와 내가 아는 나는 정말로 동일한 존재일까? 우리가 진짜로 아는 상대방은 책이나 영화 안에서 볼 수 있는 상대방 외에는 전혀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정확하게 말하자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그런 의문을 가졌을 거라는 내 언설은 그저 내 추측이며 내 오독이며 내 생각이자 내 상상이다.한 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내 마음과 두뇌를 장악한 느낌이자 꿈이고 파동이다) 그래서 그는 조용한 공간 안에 여러 존재들을 우겨넣고 - 나는 그가 평소에도 시간과 공간적 기반이 전혀 다른 여러가지 존재들을 Collection하고 있다고 생각하며,영화라는 공간을 대할 때에야 비로소 그것들을 풀어놓는다고 여겨왔는데,이런 내 생각을 입증할 수 있는 장면이 이 영화 <메콩 호텔>에 등장한다 - 그것들을 바라보는 관객들과 영혼의 실험을 벌인다.우리의 혼백을 날아다니게 한다.

 

ㄴ.메콩 강가에서

 

1.영화가 시작하면 두 남자가 얘기하고 있다.한 사람은 이 영화의 영화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며 한 사람은 기타 연주자 차이 바타나 (Chai Batana) 이다.그들은 chai의 기타 음악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아마도 이 영화에 쓰일 음악에 관한 얘기인 듯 보인다.

 

 

(오른쪽이 문제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다)

 

여기서 관객은, 이 영화 <메콩 호텔>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알고 있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둘로 나뉜다.이 영화는 아핏차퐁이 만들려 했던 <ecstasy garden>이라는 영화를 쓰다가 영감을 받은 영화이며,<메콩 호텔>안에는 <엑스터시 가든>의 리허설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사전 정보이다.그래서 이 장면은 <엑스터시 가든> 을 위한 영화음악 리허설일 수도 있다.그러나 관객은 그 사전 정보의 취득 여부에 따라 둘로 나뉠 수 밖에 없다.

 

또 이 영화는 몇 개의 영화제에 출품되었는데,공교롭게도 어떤 영화제에는 다큐멘터리 부문에 출품되었다.즉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라고 본다면 전혀 다른 얘기 - 메콩 강가에 자주 출몰하곤 한다는 사람의 내장을 먹는 폽(phob)이라는 태국 고유의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이야기- 가 될 수도 있다.즉 이 영화는 영화의 시작부터 영화의 쟝르적 정체성을 여러가지고 가지치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2.그리고는 강이 보인다.호텔 발코니 너머로 조용히 흐르는 거대한 메콩강.키치적인 여신상 뒤로 흐르는 강 - 강이야말로 시간에 대한 오래된 비유 중 하나이다- 때문에 호텔은 마치 정지 -시간적 정지- 되어있는 듯 느껴진다.맞다.호텔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정지되어 있다.호텔의 시간과 강의 시간이 뭔가 다른 흐름을 보이는 듯 묘사된다.(물론 그것은 내 느낌이다.내 감각이자 내 상상이다.그런데 그때 chai bhatana의 기타 소리가 여전히 영화의 뒷면을 따라 흐른다)

 

그래서 여기엔 이제 세 개의 흐름이 있다.메콩강의 흐름과 메콩 호텔의 시간 흐름과 영화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기타 멜로디의 흐름.관객은 또다시 판단을 요구받는다.이런 세가지의 낯선 흐름들을 그냥 넘겨버릴 것인가,아니면 그 중 하나의 흐름을 선택할 것인가..내 경우,강과 호텔의 흐름을 서로 다른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기타의 소리를 두 종류의 시간 흐름이 야기하는 혼란에 대한 영화의 시간적 닻 (anchor)으로 받아들이기를 선택했다.그렇게 해서 내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또 그렇게 해서 나는 시간들 사이에서  실종되지 않는 방향을 선택했다.

 

3.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영화의 단골배우 사크나 카에부아디가 등장한다.그의 극중 이름은 다른 영화에서처럼 '통'이다.(그런데 이 영화의 어떤 상대배우는 그를 마사토라고 부르기도 한다.나는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유보했다.태국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이다.단 통과 마사토가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라면 또다른 가능성이 발생한다.사크나 카에부아디가 통일 수도 또 마사토일 수도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혹은 환생 또는 윤회에 다라 이름이 바뀐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통은 옷장에서 옷을 꺼내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그러면서 화면 바깥의 남자와 대화하고 있다.(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통은 이 옷들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사크나 카에부아디라는 이 배우가 <엑스터시 가든>의 리허설을 하기 위새 의상을 교체하는 장면 - 혹은 폽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일부일 수도 있다- 일 수 있다.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잇다.이 장면이야말로 <메콩 호텔> 내러티브의 시작일 수도 있다.그리고 여전히 챠이 바타나의 기타 음률이 들리고 있다.혼란은 - 또 어떤 관객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여전하다.

 

그리고 통은 말한다.

-라오족이 말하기를,태국의 홍수는 라오스로 돌아가려는 (그러니까 태국이 빼앗은) 에메랄드 불상의 눈물일 수도 있다- 라고.

 

홍수,태국,라오스를 기억하기 바란다.홍수라는 소재는 이후로도 다른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여러 번 등장한다.그리고 태국과 라오스 사이의 역사 역시도..

 

                                                               (계속)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