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화들/FILM FLOATING

PASSION OF FASHION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PART2

폴사이먼 2006. 12. 22. 01:21

4.누구를 위한 패션인가

옷을 유난히 좋아하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자칭 60년대 패션리더였다는 어머니로부터,'자기만족'을 위해 옷을 입는다는 아내에 이르기까지,그리고 또다른 후보자가 될 수 있을 딸까지 더불어,.(이 20개월 녀석 벌써부터 모자 쓰는 걸 좋아한다)

특히 옷 자체가 취미이자 생계수단인 아내 때문에 난 옷에 대해서 많은 걸 알 수 있게 되었고,옷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언제나 접하게 된다.문제의 잡지 보그는 우리 집 화장실에 비치된 잡지인 것이다.또한 케이블 텔레비젼의 각종 패션 채널은 항상 거실에 켜진 채로 방치되고 있어서,채널 선택권이 기본적으로 제한되고 있는 나와 딸은 ,싫든 좋든 그 방송들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난 패션계를 정면으로 다룰지도 모르는 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패션 스타일 자체를 보기 원했을런지도 모른다.어쨌든 패션의 첨단을 걷는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느냐 이 말이다.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의 패션은 내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클래시컬하고 평범했다.조금은 의외의 스타일을 원했던 내 눈을 약간 배신했던 것이다.그러나 패션은 언어이다.다음의
사진들을 보라.



머랜다의 첫 등장 장면일 것이다.저 오만한 느낌의 빅 버클 벨트는 로베르또 까발리의 것이다.어떻게 그런 걸 아느냐고? 맨날 보고 있어 봐라.알게 된다.메릴 스트립이 입은 저 올리브 색의 코트는 그녀의 직장에서의 성향을 그대로 웅변한다.당당하다.



출근하자마자 휙 겉옷을 집어던지는 머랜다의 모습이다.이 때 앤드리아는 이미 변신해 있다.두 사람의 관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이다.머랜다는 블랙 수트를 입고 있다.전형적인 뉴요커 여인들의 정장이다.그러나 머랜다는 붉은 가죽 벨트를 배치함으로써 전문성에다가 확실한 강인함을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앤드리아는 아주 귀여운 스타일의 블랙 미니드레스를 입고 있다.그리고 화이트 컬러의 커프스가 돋보이는 스타일로 희생양스러운 분위기와 함께,묘한 의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런 모자를 쓰고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난 내가 너무나 블랙 앤 화이트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내 딸에게 그렇게 입히고 있다는 사실마저 같이 깨달았다.앤드리아가 점점 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제목엔 '프라다'가 들어가지만,내 눈엔 샤넬이 주로 보였다.앤드리아가 입은 옷은 샤넬의 코트이다.머리에 쓴 뉴스보이 캡도 샤넬이고 말이다.가방은 캘빈 클라인으로 보이는데 맞는지 모르겠다.앤드리아가 우아하게 변신하고 있는 과정을 옷은 설명한다.소설로는 불가능했던 부분이다.



저 옷도 샤넬의 트위드 재킷으로 보인다.앤드리아가 신은 부츠를 스틸레토 부츠라고 한다는데,솔직히 저 부츠에 미니가 어울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저 부츠를 보면서 난 약간 삐딱해지기 시작했었다.

저 패션 리더들은 끊임없이 유행을 선도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옷을 다룸으로써 몸을 다루려 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생각이 들었다.아닌 말로 아무리 비싼 옷을 사 입어도 간지가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몸을 옷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자연스러운 노력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그 유행에 감각과 신체를 맞추기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이런 옷과 몸에 대한 갈망과 부단한 노력들이 그냥 무익하고 그냥 어처구니 없게만 느껴지지 않을까?

더구나 솔직히 말해서 어울리지도 않는 샤넬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사람보다는 옷이 가엾게 느껴지기까지 한다.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왜 자연스럽게 살아가지 않는 걸까? 패션은 언어인데 말이다.

5.PASSION OF FASHION-차별과 배제로서의.

그 남자가 입으면 뉴욕이 되고,그 남자가 입으면 동남아가 된다..

이런 광고 카피를 보신 적이 있는가? 스카이 폰의 새 광고 시리즈 'MUST HAVE'의 카피다.이 카피의 어이없는 천박함에 대해서 말할 생각은 물론 없다.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중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들의 두뇌를 ,각종 검사 장비를 동원해서 탐색해보거나,그래도 안되면 직접 열어보고 싶을 뿐이다.

이 카피는 뉴욕과 동남아 사이에서 우리를 2등의 존재로 설정함으로써,분명한 차별의 세계를 그려보이고 있다.이런 종류의 차별은 세상 그 어디에서나 존재함으로써 나 같이 마음 약한 사람들을 떨게 만든다.그냥 둔감하게 이 죽일 놈의 차별적인 세상에 적응하면 마음이라도 편하련만,그게 그렇게 쉽게 되진 않는다.이런 광고문구들을 볼 때마다 밥맛이 뚝뚝 떨어진다.체온은 상승하고 심장박동수 역시 동반상승한다.

그런데,
옷을 고르는 사람들,옷을 사서 입는 사람들,특히 알려진 명품들을 구매해서 휘감고 다니는 사람들의 두뇌 속에서도 이런 차별의 심정들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약간 오버일 수도 있다.좀 더 순화해서 말하자.

그들은 혹시 '구별받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상의 구분이 확실했던 옛 사회에 비해 모두가 똑같은 세포들로 보이는 현대사회에서 ,그들은 명품의 화려한 디자인과
브랜드 자체의 아우라로 자신을 '구별하려'하는 것은 아닐까?

'차이'에 대한 이런 갈망이 '된장녀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명품중독증'을 생산해내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명품'은 구매력과 밀접한 상관이 있다.'돈'이 없으면 아예 접근 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명품은 비싸면 비쌀수록 그 '차이'의 가능성을 높여가는 것이며,사람들이 많이 갖게 되면 될수록 그 가치는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명품은 또다른 브랜드와 또다른 스타일을 자꾸만 창조하려 하며,또 그 방법은 단순히 새 옷을 만드는 것으로 수행되는 것만은 아니다.각종 언론들과 패션 잡지들과 센세이션과 스캔들과 쇼와 행사들,그리고 다른 분야들과의 결합,현대의 첨단광고기법의 동원등 온갖 수단들이
'명품의 차이 메커니즘'을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일하는 빌딩은 이 모든 것을 지휘하는 헤드 쿼터이다.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창조의 산물들이,그 창조물들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을 배제시키고 차별할 수  있을 가능성 따위는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심지어 그들은 그들의 물건들이 바로 '돈'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바로 그 '돈'이 차별과 배제의 첨병이라는 것쯤은 이미 너무나 기본적인 사항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변호한다.아까의 그 대사들을 보자.

파트 1에 인용했던 대사들을 보자.

--이런 물건? 오, 넌 이게 너랑 아무 상관이 없는 거라 생각하는구나!
그래, 넌 니 옷장으로 가서 뭐니 그 보풀잔뜩 일어난 블루 스웨터쪼가릴 골랐겠지.
세상 사람들에게 너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 가방 속에 든 것들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말이야.
하지만 네가 입은 그 블루는 단순한 블루가 아니란다.
그건 터쿼즈 블루가 아니라 정확히는 셀룰리언 블루야.
2002년에 오스카 드 랜타가 셀룰리언 블루 가운을 발표했지.
그 후에 입센 로랑이, 그 사람 맞지? 밀리터리룩의 셀룰리언 블루 자켓을 선보였고,
연달아 8명의 다른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 셀룰리언 블루가 등장하며 전성기를 열었지.
그 유행이 끝나자 셀룰리언 블루는 백화점에서 할인매장으로
다시 끔찍한 캐주얼 코너로 넘어가서 결국 너에게 까지 도달한 거야.
하지만 처음 발표된 이후 흥망성쇠를 거쳐 마침내 네 손에 이르는 동안,
그 셀룰리언 블루는 수백만 달러어치의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했어.
정말 우습지 않니?
패션계와는 상관없다는 너도 그 패션계 사람들이 만들어낸 블루를 입고 있다는 게?
네가 구분도 못하는 물건들 사이에서 나온.

이 대사는 이제,이런 섬세한 노력들이 바로 거대한 산업을 만들어낸다는 것을,이 노력의 가치들이 명품의 높은 가격들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을 차갑고 똑부러지게 웅변하고 있다.이 속사포 같은 메릴 스트립의 대사에,앤 해서웨이 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항변할 여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명품은 이래서 비싼 것이고,이런 노력이 기반이 된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새로운 귀족이며 새로운 양반이라는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시스템으로서 사회 속에 뿌리박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오버한 건가...

6.REAL PASSION OF FASHION -섬세한 열정으로서의.

그러나 이런 시각은 너무 건조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떻게든 구별해보려 하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 아닐까? 나는 진한 화장을 한 사람들,특이한 옷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그리고 치렁치렁 긴 머리를 하고 다니는 남자들,머리를 박박 깎고 다니는 여자들을 혐오하지 않는다.그들은 스스로를 어떤 '기호'에 의해서 구분하려 하는 것,아니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스스로 돋보이려 하는 것 뿐이고,이것은 기본적으로 자기만족에 기인하는 것이다.

여기에 쓸 데 없는 돌팔매를 던지는 것 또한 또다른 '차별'과 '배제'이다.이것 역시 정치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은,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또다른 가능성도 있다.패션과 돈은 비록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지만,돈과 연결된 패션이 반드시 '고급패션'이 된다는 법칙 또한 없다.진정으로 패션을 통해 자신을 구별하려면 좀 더 섬세해야 한다.정말 아름답고 정말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옷을 입으려면,좀 더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고 좀 더 옷에 대해 알아야 한다.자신에게 어울리는 색깔과 색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자신의 체형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옷을 입어야 할 자리와 분위기 역시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말이다.

두번이나 언급된 메릴 스트립의 대사 역시,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질 성질의 것일 수도 있다.패션계의 리더들은 블루 계열의 색깔 하나만을 가지고도 숱한 미학을 창출할 수 있다 이말이다.메릴 스트립의 단호한 '블루'에 대한 언급은,이런 미학에 대해 전혀 무지해있는 앤 헤서웨이의 기본적인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경고이지,독선과 잘난척의 소산만은 아닌 것이다.참된 '구분'은 정확한 인식과 섬세한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비싼 옷만 걸칠 줄 알았지,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천박함으로 일색이 된 사람들도 한두명이 아니며,손톱에 곱게 물들인 봉숭아 꽃물 하나만으로도 좌중에 빛을 발하는 '손'들 또한 한 둘이 아니다.미학은 외양만으로만 계산되는 것,또는 '돈'으로만 계량되는 것이 아니다..

동대문의 짝퉁 하나가 백화점 브랜드의 열 배 가치를 하는 일도 허다하고,열정적 노동으로 얼룩진 블루 컬러 하나가,허영과 위선 뿐인 화이트 컬러 수백 깃을 부끄럽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이것은 열정과 감각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더 이상,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내면을 쉽게 바라보고
쉽게 알아챌 수가 없다.심지어 그의 내면을 내보이는 블로그의 글 조차 아주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펌질'이 대세를 이루면 말이다..ㅎㅎ)

오히려 패션이야말로 자신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수단이자,타인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통로로 자리매김될 수도 있다.하기 나름인 것이다.

물론 백화점의 '옷값 거품'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아내는 'T'로 시작되는 브랜드의 매장 앞을 지날 때마다 혀를 차느라 침이 마른다.그리고 그런 옷을 입는 사람들의 허영을 말한다.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 패션계야말로,수없이 많은 층계와,수없이 다양한 형태의 엘리베이터를 가진 바벨탑이라고.
  (대놓고 말하긴 좀 어렵다.,,)

7.덧붙임..

 ㄱ.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세레나 역의 지젤 번천이다..ㅎㅎㅎ
    

 ㄴ.악마는 아마 앤드리아의 남자 친구일 것이다.이 친구의 행태를 난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ㄷ.머랜다의 인상적인 대사,THAT'S ALL 은 8번 등장하는데,등장할 때마다 정교하게 변한다.
 ㄹ.그런데..도대체 왜 머랜다는 앤드리아를 뽑은 거냐..
 ㅁ.마지막으로 정말 옷은 날개인 거냐..